#634화 가짜 전쟁 (2)
불을 먹어 치우는 무기라…….
주변의 불길로 인해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나르샤 누나가 그렇게 봤다면 확실할 것이다.
<주호> 어느 정도예요?
이건 확인이다.
론도 후작이 보유하고 있는 대검의 능력이 지금 상황을 뒤집을 정도의 무기라면.
당장 손을 써야 한다.
<나르샤> 여기서 보이는 모습만 보면 아마 이 산불로는 론도 후작을 잡진 못할 것 같아.
<주호> 그건 확실히 문제가 되겠네요.
<나르샤> 그런데 그 이상은 못 하고 있어. 딱 자기 병력 주변만 불길을 없애는 중이야.
<주호> 산 전체를 커버할 능력은 안 된다는 거죠?
<나르샤> 아직까진.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
<주호> 변경사항 있으면 계속 알려주세요.
<나르샤> 응, 조심하고.
불을 먹는 무기라니.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한 번 보기는 했었다.
용암을 먹는 드래곤 슬레이어를.
저 론도 후작이 들고 있는 무기는 아마도 그보다는 하위의 뭔가가 아닐까.
영웅의 무기이거나 그와 상응하는 유일 아이템이었다면 전에 영웅의 무기를 말했을 때 론도 후작이 그렇게 격한 반응을 보일 리는 없었다.
본인이 보유한 무기가 영웅의 무기면 반응이 시큰둥했을 테니.
생각해 보면 테인 공작의 무기도 평범한 무기는 아닐 것 같았다.
오러를 버텨 내고 막아 내는 무기가 그저 그런 무기라고 보긴 힘들지.
예전에 로가슈 왕국의 기사 한켈이 가진 라이데인 같은.
전격으로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무기는 지금 생각해 봐도 좀 사기에 가까웠다.
아마도 주요 NPC들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무기들이 몇 가지는 존재하는 모양인데…….
론도 후작이 가진 무기가 그런 무기라면.
녀석을 직접 잡을 필요가 있겠어!
한켈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드워프들에게 죽게 하는 것이 아닌.
내 손으로 론도 후작을 잡는다면 저 대검을 얻을 확률이 분명히 존재했다.
론도 후작이 특별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곧 유저들을 통해 바로 알려졌다.
- 론도 후작 보소. 혼자서 불을 막 집어삼키네.
- 후작이 괜히 후작이 아닌데?
- 아마 저 대검 덕분인 듯. 빨갛게 생긴 게 예사롭지 않더라니.
- 아주 죽으라는 법은 없네. 후작하고 있으면 살기는 살겠다.
- 그런데 왜 이렇게 불길이 안 잡히는 거야?
- 그러게, 불을 삼킬 수 있으면 빨리 처리 좀 해 주지. 이대로 가면 다 죽겠구만.
- 한참 삼키더니 지금은 또 아무것도 안 하잖아.
흐음.
역시 완벽한 무기는 아닌 듯한데.
아마도 저 무기를 쓰는데 마력을 소모한다던가 어떤 조건이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
무한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은 일단 잘 알겠네.
그때 나르샤 누나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나르샤> 론도 후작이 뭔가 할 건가 봐. 갑자기 대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어.
그리고 나르샤 누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론도 후작이 있는 방향 쪽으로 공기가 밀려들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자 주변에 타오르던 불길도 동시에 빨려 들어갔고.
거리가 꽤 떨어진 곳인데도 이 정도라니.
대체 뭘 할 생각이지?
무심결에 론도 후작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갑자기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왔다.
콰아아아앙!
동시에 딛고 있던 땅이 흔들릴 정도로 진동이 이어졌고.
조금 전까지 밀려들어 갔던 공기가 이번에는 반대로 거센 폭풍으로 변해 바깥으로 몰아쳤다.
얼마나 거센 바람이 부는지 순간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큭.
저 대검이 이런 위력을 낼 정도의 무기였나?
지금 이렇게 떨어져 있는 장소에서도 이 정도 파장이면 어쩌면 드래곤 브레스와 맞먹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리고 그 사실은 나르샤 누나가 바로 확인해 주었다.
<나르샤> 세상에. 산불을 반으로 갈라놓았어.
<주호> 네? 그게 무슨?
<나르샤> 방금 론도 후작이 불길 사이로 길을 만들었다고. 산을 밀어내면서 엄청 멀리까지.
하.
내가 이 거리에서 받은 느낌들이 거짓이 아니었다.
산을 통째로 가르는 위력이라니.
그리고 NPC들과 탐사대 유저들이 환호를 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 와! 살았다!
- 론도 후작 쩌네.
- 장난 없는데? 진짜 드래곤이라고 해도 믿겠다.
-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게 저거 한 방 모으려고 그랬구만.
- 한쪽이지만 불길 완전히 잡아냄.
- 다들 달려! 지금 못 빠져나가면 죽는다!
은신 상태에서 탈출로 쪽으로 달려가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론도 후작이 저 대검으로 만들어 낸 탈출로 사이로 유저들이 급하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귀족들과 NPC 병사들도 마찬가지고.
<나르샤> 보여? 잘못하면 론도 후작이 빠져나갈 것 같아.
<주호> 네, 잘 보이네요.
<나르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나르샤 누나가 물어오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시 이렇게 산을 뒤덮는 불길을 만들기에는 솔직히 무리가 아닐까.
이미 산을 통째로 태워 버렸기에 다시 불을 낸다고 한들 지금처럼 똑같이 포위하듯 태울 수는 없었다.
탈 만한 것들은 다 탔으니.
드워프들을 투입해서 죽일까?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럼 완전히 전면전이 되는데 그럼 승패를 장담할 수가 없어진다.
특히 저 론도 후작.
저런 무기를 가지고 있을 줄은.
예전에 한켈을 봤을 때보다 지금이 더 충격적이었다.
결국 론도 후작과 싸우려면 고대 드워프 왕이 나서야 할지도 모르겠어.
<주호> 후, 어쩔 수 없죠. 저들은 보내 줘야겠어요.
아쉽다면 아쉬운 결과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수확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이미 상당수의 귀족파 NPC들과 유저들을 죽여 놨으니.
흐음.
병력이 박살 난 론도 후작이 과연 어떤 행동을 할까?
이대로 남은 병력을 모아 전진하거나.
혹은 바이탄 요새로 후퇴하거나.
둘 중에 하나일 텐데…….
아마도 그대로 진격하지는 않을 테지.
뭐 진격한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나쁘진 않았고.
약해진 먹이만큼 물어뜯기 좋은 것도 없으니까.
그렇게 NPC들과 유저들이 모두 론도 후작이 만들어 둔 피난로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자 더 이상 꺼릴 것이 없어 그냥 마구잡이로 아이템을 주워들었다.
이전에는 무거워서 그냥 버리려 했던 아이템까지 모두.
그리고 공중에 떠 있는 황실 비공정에 계속해서 퍼다 나르면서 전사 형과 나르샤 누나에게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다.
넓은 황실 비공정 갑판이 아이템으로 수북하게 쌓여 있는 광경이란…….
이전에 정찰대를 잡고 나온 아이템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아이템들이 쌓여졌다.
이거 잘 하면 나라 하나를 사겠는데?
* * * * *
대규모의 학살로 이어진 이 불쇼는 결국 드워프들의 공격으로 결론지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드워프들이 불을 지르는 모습을 본 유저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 유저들의 증언이 이어지자 결국 아이템을 드랍한 유저들이 분통을 터트렸다.
“드워프 새끼들 다 죽여 버린다!”
“하, 대체 어디서 복구를 받아야 하는 거야.”
“젠장, 탐사대 같은 걸 하는 게 아니었는데.”
은신을 하고 다녔기에 내가 산속에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이건 우리 팀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심지어 연합 사람들에게도 전부 비밀로 하고 움직인 작전이었으니.
굳이 한 명만 꼽자면 사장님 정도일까.
당연히 유저들은 내가 드워프들을 시켜서 불을 일으켰다고는 꿈에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드워프들을 욕할 수밖에.
드랍된 아이템들은 이미 저들 머릿속에서는 되찾을 수 없는 사라진 물건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깔끔하게 세탁이 된 아이템들.
물론 한 번에 많이 풀리면 누군가는 의심을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팀과 사장님이 황실 비공정에 올라타자마자 바로 입을 쩍 벌리고 감탄을 했다.
한자리에 이 정도의 아이템이 놓여 있는 경우는 듣도 보도 못 했을 테니까.
운영자가 마구잡이로 아이템을 만들어서 쏟아 내지 않는 이상은 이런 광경을 보기는 힘들었다.
사장님이 두 손을 부들거리면서 그 아이템들을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양 쓰다듬었다.
저렇게 좋으실까.
아, 좋을 수밖에 없는 게 이 많은 아이템들을 처분하고 나오는 수수료가 장난이 아니다.
“허허허허허, 내 생애 이런 광경을 보다니.”
그런 사장님에게 말했다.
“5% 떼어 드릴게요. 뒤탈 없이 깔끔하게 정리 좀 해 주세요. 정말 아무 말도 안 나와야 해요.”
5%라는 말에 순간 사장님이 그대로 굳어 버리셨다.
그리고 한마디 하셨다.
“너, 대체 이 물건들을 다 팔면 얼마나 되는지 알고는 있는 게냐?”
“좀 많지 않을까요?”
솔직히 다 세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이거 최소 150억은 될 거다.”
“네?!”
“팔기에 따라서는 더 받을 수도 있을 테지. 시간이 좀 걸리기야 하겠지만.”
마지막엔 눈치 볼 것도 없이 그냥 보이는 대로 다 쓸어 담아 왔는데…….
생각보다 아이템 가치가 더 높은 모양이었다.
이건 거의 레릭 왕국을 팔아먹은 돈과 맞먹겠는데?
“저기 봐라. 9강이 있고, 8강도 좀 보이네. 거기다 6강, 7강은 발에 차이도록 막 굴러다니잖아. 10강이 있었으면 훨씬 더 나왔을 거다.”
워낙 아이템을 많이 봐와서 그런지 사장님은 바로 견적이 뜨는 모양이었다.
“대체 유저들이 얼마나 죽은 거냐?”
“모르죠. 그냥 무작위로 다 태워 버렸으니까.”
죽어 나간 유저들이 몇 백인지 몇 천인지.
솔직히 잘 모른다.
“휴, 이거 참. 물건이 너무 큰데.”
“힘들까요?”
“아니다. 알아서 해 보마. 떨어지는 돈이 얼만데 이 정도도 못 하면 안 되지.”
이미 사장님은 의욕이 가득해 보이셨다.
그렇게 사상 초유의 불쇼는 내게 엄청난 이득을 남겨 주었다.
그리고 아직 파티가 끝난 것도 아니고.
저 밖에는 아직도 많은 NPC들과 유저들이 남아 있었다.
재중이 형이 나와 사장님을 보고는 부럽다는 듯 웃어 보였다.
“이거 참, 부럽네. 부러워.”
“원하시는 물건 있으면 챙겨 가세요.”
“아서라. 다 네 머리에서 나온 건데.”
“중간에 도움을 많이 받았잖아요. 그리고 혼자 다 먹기는 물건이 크죠.”
“뭐 그럼, 주는 건 마다 안 한다니까?”
재중이 형이 내 어깨를 툭 치자 서로 마주 보면서 웃었다.
“아, 그건 그렇다 치고. 론도 후작. 굉장한 녀석을 숨겨 놨던데?”
재중이 형은 오히려 론도 후작의 무기에 더 관심이 있어 보였다.
“네, 옆에서 봤는데 상당히 좋아 보였어요. 네임드급은 확실히 넘은 것 같았고요.”
“나도 나르샤가 저장한 영상으로 봤어. 그 정도면 드래곤 브레스 수준은 되겠더라. 불을 흡수해서 한 방에 쏟아붓는 기술. 어디서 많이 봤지?”
“네, 드래곤 슬레이어의 용격하고 비슷해 보이던데요. 어쩌면 숨겨진 능력이 더 있을 수도 있고요.”
“빙고. 그럼 어떻게 해야겠지?”
그 말을 하면서 재중이 형이 씨익 웃었다.
“당연히 직접 론도 후작을 죽여야겠죠.”
“오케이, 그럼 작전을 한번 짜 보자고.”
순식간에 론도 후작이 직접 죽여야 할 녀석으로 전략해 버렸다.
재중이 형이 전사 형에게 물었다.
“지금 론도 후작 어디에 있어?”
잠시 게시판과 영상을 살펴보던 전사 형이 바로 답을 주었다.
“산을 빠져나와서 병력을 모아 후퇴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흠, 생각대로인가. 그럼 어디로? 역시 바이탄 요새?”
재중이 형의 질문에 전사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운 피난처가 바이탄 요새밖에는 없으니까요. 옆은 레티어스 요새인데 황제파가 있고, 멀리 동쪽의 쿠론 요새는 중립파가 있긴 해도 너무 멉니다.”
결국은 바이탄 요새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이 정도로 당했으면 몸을 사리겠지. 그리고 이번에 바이탄 요새로 들어오면 다시 움직일 생각은 하지도 않을 테고.”
론도 후작을 말 한마디로 움직이기에는 이미 피해를 너무 많이 줘 버렸다.
정말 황제파의 귀족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지 않는 이상은 움직이지도 않을 터.
흐음, 어쩐다.
겨우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렸는데 이대로 주저앉게 놔둘 순 없었다.
순간 이쁜소녀가 들고 있는 황금빛 배틀 해머에 눈이 갔다.
그리고 머릿속에 뭔가가 번쩍이면서 생각이 차곡차곡 정리되었다.
물고기가 물 깊숙이 들어가면…….
먹이로 유인해서 건져 올릴 수밖에.
“주저앉지 못하게 확실한 걸 보여 주죠.”
론도 후작.
네 녀석이 물지 않고는 절대 버틸 수 없는.
확실한 먹이를 보여 준다!
어디 한 번 물어 보라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