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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633화 (623/1,404)

#633화 가짜 전쟁 (1)

처음에는 잘 될지 안 될지 의문이 들었는데 지금은 확인이 섰다.

전사 형이 옆에서 신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활활 타오르는구만.”

“네, 꽤 잘 타네요.”

“꽤? 산을 홀라당 태워 놓고 리액션이 너무 작다?”

“하하, 그런가요?”

머릿속에 미리 그려 놨던 그림에 근접해서 그런지 크게 감흥은 없었다.

그냥 이런 것도 되는구나 하고 놀라는 정도일까?

나르샤 누나도 이 광경을 보면서 감탄을 하는 것을 보면 내가 너무 무덤덤한 것 같기도 하고.

전사 형과 나르샤 누나를 한 번 보고는 아래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산이 계속 타오르면서 생긴 불지옥으로 세상이 아주 환했다.

얼마나 화력이 강한지 황실 비공정으로 높게 떠 있는 이곳까지 열기가 전달되는 느낌까지 들었다.

시야로 내려다보는 일대가 전부 타오르고 있으니 이런 느낌도 무리가 아니려나.

전사 형도 아래를 보면서 말했다.

“과연 저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글쎄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드워프들이 일으킨 이 불이 NPC들과 유저들에게 어떻게 작용할지는.

이렇게 불을 질러서 공격을 하는 경우가 이제까지는 한 번도 없던 일이고, 누가 실험해 본 적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누구도 결과를 알 수가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번 실험을 해볼 걸 그랬나?

아니,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으니까.

론도 후작과 귀족파 귀족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탐사대 유저들까지 이 산을 벗어나면 그냥 써먹을 수 없는 패가 될 테니 어쩔 수 없이 바로 진행을 해 버렸다.

그리고 이제 그 결과를 지켜볼 때고.

전사 형, 나르샤 누나와 아래를 계속 내려다보는데 나르샤 누나가 갑자기 손을 불끈 쥐면서 환호성을 내질렀다.

“됐어!”

그런 나르샤 누나의 리액션에 나와 전사 형의 시선을 돌아갔다.

“됐어?”

“됐어요?”

우리의 질문에 나르샨 누나가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응, 외곽에서부터 NPC 병사들이 죽고 있어. 거기다 유저들도 물약을 먹으면서 버티는가 하더니 방금 죽기 시작했어.”

나르샤 누나는 시야 거리가 우리보다 훨씬 좋으니까.

바로 확인이 가능했다.

전사 형이 뭔가 생각나는지 바로 물었다.

“귀환은? 유저들은 귀환으로 도망갈 수 있을 텐데.”

전사 형의 물음에 나르샤 누나가 고개를 저었다.

“으응, 잘 모르겠어. 그건.”

“흠, 아직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그럴 수도 있어. 단순히 불이 타오르는 이펙트라고 생각한다면.”

“조금 기다리면 알 수 있겠군.”

이제 유저들이 죽기 시작했으니 곧 반응이 나올 것이다.

셋이 골똘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나르샤 누나가 뭔가를 보고는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이상하네? 왜 귀환을 안 하지? 이미 유저들이 죽은 걸 확인했을 텐데?”

전사 형도 의아한지 바로 물었다.

“안쪽에서도 귀환을 안 해?”

“응, 전혀. 유저들이 죽었다는 건 아는지 빠르게 진영을 바꾸고는 있는데 귀환을 안 하고 있어.”

그런 둘의 반응을 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드워프들이 일으킨 저 불은 분명히 NPC와 유저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이건 나르샤 누나가 이미 확인시켜 주었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불이 탐사대가 모여 있는 산 중심부를 향해 그 화력을 옮겨가는 중이었다.

불이 일어난 처음에는 가능했겠지만, 이제는 너무 광범위하게 불이 번져 있어서 물약으로 버티며 저 불을 뚫고 달린다는 것은 시도조차 할 수 없다.

남은 방법은 귀환뿐.

NPC들과 달리 유저들은 귀환을 할 수 있으니까.

살아날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귀환을 안 한다고?

“귀환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라면요?”

솔직히 유저들까지 이 불로 죽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NPC와 달리 유저들은 귀환을 해서 그곳을 떠나면 되는 문제라.

이번에 내가 원한 것은 딱 하나.

그리고 얻을 수 있는 것도 딱 하나였다.

론도 후작을 포함한 귀족파 NPC들이 싹 죽어 버리는 것.

그런데 예상과 달리 상황이 많이 이상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도 내게는 꽤 유리한 그런 방향으로.

전사 형도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곧장 답을 내놓았다.

“설마 탐사대나 뭔가의 장치 때문에 귀환을 못 하는 걸까?”

나르샤 누나도 마찬가지.

“일리가 있어. 예전에도 전투 지역에서는 귀환을 못 했으니까. 아마 드워프들이 일으킨 저 불이 이 근방을 전부 전투 지역으로 바꿔 버렸나 봐.”

드워프들과 탐사대 전부가 전투 상황에 놓인 거라면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됐다.

그리고 그런 예상은 채팅창에 바로 드러났다.

- 아, 망했다. 지금 귀환 안 됨.

- 나도 안 되네. 갑자기 왜 이래?

- 전투 상태라는데?

- 미친, 드워프들과의 전투로 귀환을 할 수 없단다.

- 설마 저 불 때문에?

- 귀족들이 저 불 끄라고 난리다. 퀘스트 주고.

- 하, 저걸 무슨 수로 꺼? 정말 돌았네.

- 지금 불 끄는 게 문제냐. 당장 죽게 생겼구만.

- 그냥 물약 빨고 지나가면 안 됨?

- 아까 누가 해 봤다는데 그냥 산 전체가 불이란다. 지나가다가 물약 바닥남.

- 그럼 대체 어쩌라는 거야? 이대로 죽어?

- 에라이, 귀족들 따라나서는 게 아니었어! 저 새끼들 지들만 살려고 퀘스트 주는 거 봐라.

- 유저들을 무슨 소모품 취급하네.

- 내가 귀족파 쪽으로 다시 가면 사람이 아니다.

- 귀족들은 지들끼리 죽으라고 해.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 확실한 건 우리 진짜 엿 된 듯.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채팅창을 가득 메운 하소연들.

다들 이 상황에 몹시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뭐 귀족들과 달리 어차피 유저들이야 한 번 죽으면 그만이긴 한데.

잘못하다가 무기라도 떨어뜨리는 경우가 문제였다.

누구에게는 싼 무기가 될 수가 있지만, 어떤 유저에게는 그 무기가 전 재산인 경우도 있으니까.

그것 때문에 지금 어떻게든 안 죽으려고 노력하는 중이고.

어쩌면 불에 죽어서는 드랍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운만 믿고 그냥 확 죽어 버리기에는 이 로스트 스카이의 드랍 시스템이 꽤 괴랄했다.

귀족파의 귀족들만 좀 죽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데…….

소 뒷걸음치다가 얻어걸린 건가.

나쁘진 않네.

어디선가 운이 우리를 돕고 있을지도.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산불은 더욱 크게 화마를 키워 가며 점점 산의 중앙을 향해 파고 들어갔다.

이제 귀족 NPC들이나 유저들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결국 유저들과 귀족들의 병사가 서로 밀치면서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나르샤 누나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쟤들 서로 싸우네?”

“네, 그렇게 보이네요.”

“서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대단하다, 진짜.”

“음, 귀족들은 유저들을 소모품으로 보니까요. 애초에 그러려고 불러들인 거고. 억지로 불로 밀어 넣으면 유저들이 좋아하진 않겠죠.”

문제는 최상위 귀족인 론도 후작과 메트 후작.

그리고 전신이 포함된 상위 길드들.

이들까지 가만히 죽어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전사 형이 날 보더니 물었다.

“넌 어떻게 할 거냐?”

“흐음, 고민 중이에요.”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긴 힘들 거다.”

“네, 저도 전투 상황에 놓일 테니까요.”

은신을 하면 다른 유저들에게 들키지야 않겠지만 탈것을 소환해서 다시 올라오기는 힘들어진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결국 결단을 내렸다.

“아무래도 내려가야겠어요.”

유저들이 드랍해서 산에 무작위로 나뒹구는 아이템들.

저걸 그냥 흘려보내기는 너무 아쉬웠다.

가만히 놔두면 다른 유저들이 주워 먹을 테니까.

저들로선 죽기 전에 아이템 하나 더 먹고 죽으면 남는 장사지.

“물약은 괜찮겠냐?”

“음, 아마도 괜찮을 거예요.”

암흑 드래곤 플레이트에 내장된 화염 저항이 어디까지 적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처럼 저항이 떠 준다면.

“혹시 이상하면 바로 빠져나와. 네가 들키거나 죽으면 그게 더 손해다.”

“네, 알고 있어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지.

“그럼, 갑니다.”

전사 형과 나르샤 누나를 황실 비공정에 놔둔 채 페가수스를 불러 바로 뛰어내렸다.

도중에 은신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낙하를 한참 하다가 화염이 가득한 산속으로 뛰어내리기 전 페가수스는 소환 해제해서 돌려보냈다.

아마 페가수스는 이런 화염에 버티지 못할 것 같으니까.

그리고 바닥에 착지하자 바로 암흑 드래곤 플레이트가 반응했다.

《 +10 암흑 드래곤 플레이트 상의의 화속성 방어가 화염 상태 이상 - 5단계에 저항합니다. 》

《 +10 암흑 드래곤 플레이트 하의의 화속성 방어가 화염 상태 이상 - 5단계에 저항합니다. 》

《 화염 상태 이상으로 체력이 소모되지 않습니다. 》

역시 저항하는구나.

덕분에 체력이 전혀 깎이지 않은 상태로 산속에서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5단계라.

아마도 화염의 위력에 따라 단계가 있는 것 같은데 암흑 드래곤 플레이트의 저항이 워낙 좋아서 그것도 이겨 내는 것 같았다.

거기다 헬름과 건틀렛, 부츠에 내장된 저항도 동시에 떠올랐다.

그리고 각기 화염에서의 경직 저항. 체력 회복, 이동 속도 증가까지.

적어도 여기서 화염 상태 이상 때문에 내가 죽을 일은 없겠네.

마치 예전부터 이런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암흑 드래곤 플레이트는 이곳에서도 최적의 성능을 자랑했다.

좋아.

이제 한번 거닐어 볼까?

불길이 활활 타올라 가까이 가기만 해도 죽을 것 같아 보여도, 그런 불길이 내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산책이라도 나온 듯.

유유자적하게 불길 속으로 걸어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유저들과 병사들이 실랑이를 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로 불길로 밀어내는 상황이라…….

개판도 저런 개판이 없네.

그나마 정신이 있는 마법사 유저들이 물이나 얼음 마법들을 써서 불길을 잡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으로 보였다.

수많은 빙계 마법이 날아가 불길을 밀어냈지만, 곧 그보다 큰 화염의 벽이 밀고 들어오니 방법이 없었다.

“젠장, 마력 바닥났다.”

“아씨, 이걸 어떻게 끄라고……!”

“타죽는 건 싫은데.”

“실제로 타는 건 아니잖아.”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거지.”

“아놔, 탐사대는 물 건너갔네. 귀족들 어떻게 살려.”

“지금 귀족들 말이 나오냐? 저 새끼들 하는 꼬라지 봐라. 살려 주고 싶은가.”

“그래도 탐사대는 포기하기 좀 그렇잖아.”

“그냥 갈아타면 되잖아. 저 새끼들 죽으면.”

“오! 그렇지. 어차피 귀족들 죽어도 페널티도 없던데.”

“내 말이.”

“그냥 귀족 확 죽이고 뜰까?”

“에이, 알아서 죽어 주는 것하고 죽이는 건 차이가 클걸? 지금 가르시아 제국하고 적대라도 되면 진짜 답 없어. 전에 기억 안 나냐?”

“아, 이제 어떻게든 살기만 하면 되는데. 안 되겠지?”

분명히 공지에 그런 페널티는 없었지.

귀족들이 죽으면 그대로 탐사대는 해체된다.

그럼 유저들에게 다른 선택권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과연 그 선택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흐음, 조금 더 기다려 볼까?

그렇게 잠시 기다리다 보니 결국 유저들 중 누군가가 우르르 뭉치더니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얼핏 살펴봤는데, 가운데에 힐러를 둔 채 탱커가 앞을 뚫고 딜러들은 양옆의 불길을 막으면서 달리는 모습이었다.

저렇게 붙어서 달리면서 광역힐을 넣으면 동시에 힐이 되니까.

물약을 최소한으로 쓸 수 있을 터.

그리고 이 모습을 본 많은 유저들이 비슷하게 진형을 갖춰 동시에 화염을 뚫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전부 달려!”

“빌어먹을 퀘스트, 할 필요도 없잖아!”

“그래, 귀족은 됐어! 우리만 빠져나가자!”

“불길이 아무리 세 봐야 불이지!”

“물약도 충분해! 할 수 있어!”

하지만 녀석들은 이 화염지옥을 너무 우습게 봤다.

얼마 달려 나가지 못해 딜러들부터 물약이 떨어져 죽더니 곧 체력이 약한 힐러가 죽어 나갔고, 탱커 역시 쓰러져 버렸다.

그렇게 쓰러진 녀석들의 뒤를 따라 달리다가 불길 속에 떨어져 있는 드랍 템들을 하나둘 주워 들었다.

이건 4강…… 버리고.

저건 5강. 쓸모없다. 버리고.

오, 이건 7강이네.

일단 줍자.

아이템의 소지 무게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강화 수치가 낮은 템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냥 바닥에 버리는 것으로 끝.

최소 6강 이상은 되어야 아이템을 주워들었다.

특히 무게가 많이 나가는 갑옷류는 그냥 지나쳤고.

값이 많이 나가는 무기나 악세서리 종류 위주로 줍다 보니 그렇게 부담스럽진 않았다.

유저들이 쓰러진 곳을 찾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나르샤> 좌측, 11시 방향에 한 무리 녹았어.

<나르샤> 우측으로. 7시 방향. 조금 더 달리면 나와.

.

.

나르샤 누나가 황실 비공정 위에서 유저들이 뛰어나가다 죽은 장소를 일일이 알려 주었다.

덕분에 놓치는 아이템 없이 고강 위주로만 아이템을 싹 걷어 올릴 수 있었다.

죽기 전에 다른 녀석이 아이템을 먹고 죽은 경우는 어쩔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꽤나 많은 아이템이 떨어졌다.

지금 이 산에 들어와 있는 유저들의 수가 수천은 가볍게 넘어가니까.

아이템 밭.

딱 그 말이 어울렸다.

걸어 다니는 모든 장소에 초고가의 아이템이 즐비한 광경이란…….

아마도 꿈에서나 볼만한 장면이 아닐까.

그렇게 화염 속에서 한참을 아이템을 줍고 다니는데 나르샤 누나가 좌표를 부르려다가 갑자기 멈춰 버렸다.

<주호> 위에 무슨 일 있어요?

<나르샤> 아, 아니야. 이상한 게 보여서.

이상한 것?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정말로 이상한 것이었다.

<나르샤> 세상에, 론도 후작이 불을 끌어들이고 있어.

<주호> 네?

<나르샤> 론도 후작이 가진 대검이 주변에 있는 불을 먹어 치우고 있다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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