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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632화 (622/1,404)

#632화 강 건너 불구경 (8)

유저들은 인벤토리라는 아주 훌륭한 가방이 존재했다.

그리고 귀환 주문서 같은.

마을을 가려면 얼마든지 날아갈 수 있는 방법도 있었고.

하지만 NPC들은 다르다.

이들은 우리와 달리 필요하면 이동수단을 타고 움직인다.

한 번에 날아가는 것이 아닌.

그리고 귀족들의 수많은 병력들을 먹고 입히려면 그만큼 보급 물자가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다 돈이고.

필요할 때 보급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으면 군대를 유지할 수 없었다.

이런 건 참 구현을 잘해 뒀단 말이야.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바이탄 요새를 운영하면서부터 점점 보급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미 론도 후작이 출발 전에 충분히 물자를 비축해서 나갔겠지만 탐사대의 전체 숫자는 결코 적지 않았다.

한 번에 소모되는 물자의 양도 굉장할 것이다.

그런데 이 보급을 과연 어디서 할까?

레티어스 요새가 가깝긴 해도 그렇게 가깝다고 보긴 힘들었다.

쿠론 요새도 마찬가지.

결국 바이탄에서 보급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내 도움이 꼭 필요했다.

막말로 내가 안 준다고 버텨 버리면?

그냥 낙동강 오리알 되는 신세가 되어 버린다.

물론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었다.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난 저쪽의 조력자니까.

누가 봐도 그렇게 보여야 했고.

이건 NPC뿐만 아니라 유저들도 공통적으로 아는 사실이라 여기서는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 남은 방법은?

줄 건 주되.

<불멸> 줘 놓고 뺏어 버리는 방법이지.

<주호> 형도 참 잔인하시네요.

<불멸> 흐음? 드워프들로 유저들 죽이는 거랑 이쪽이랑 어디가 잔인하려나?

<주호> 하하…….

재중이 형이 말한 방법은 아주 심플했다.

<불멸> 칼룬한테 우리 쪽 보급로 다 알려 줘.

<주호> 알아서 끊을 수 있게요?

<불멸> 그러취! 우리가 우리 손으로 끊을 수 없다면 좋은 칼이 있잖아. 아주 말 잘 듣는 칼로.

단순히 귀족들의 정보를 넘기는 것뿐만 아니라 어디로 어떤 시간에 보급이 나가는지 모두 알려 주라는 소리였다.

당연하게도 난 이걸 대전사 칼룬에게 전부 전달해 주었고.

대전사 칼룬은 또 멍하게 이걸 보기만 했다.

『 저희야 좋긴 합니다만……. 』

“좋으면 해. 안 말릴 테니까.”

그리고 대전사 칼룬과 헤어져 다시 바이탄으로 돌아오자 채팅창이 난리가 나 있었고.

특히 아이템을 떨군 유저들이 하소연하는 글이 엄청나게 올라왔다.

- 아놔,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드워프 새끼들 나와서 다 죽이고 감.

- …발! 내 무기 떨궜네. 그게 얼마짜린데.

- 나도 떨어뜨림. 무슨 드워프한테 죽었는데 이렇게 잘 떨구나.

- 지금 장난 아님. 한둘이 아니라니까?

- 이래서 본전이 남긴 함? 한 번 죽으면 개죽음인데?

- 사냥하다 죽은 것도 아니고 진짜. 귀족 새끼들 완전 나 몰라라임.

- 솔직히 레릭 왕국 가져와도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는지 모르겠다.

- 여기서 죽치고 있는 게 아니라 레릭 왕국 바로 가야 하는데.

- 귀족들 이 새끼들 진짜 안 움직임.

- 시간 아깝다.

- 확 귀족들 죽여 버려?

벌써부터 시작인가?

서서히 분열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드워프들의 공격이 임팩트가 큰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아무것도 못 하고 떼죽음을 당했으니.

거기다 귀족들이 산에 짱박히는 것도 문제였다.

황제파가 움직이는 걸 끝까지 기다릴 생각이니 따라간 유저들에게서 바로 원성이 튀어나왔다.

바로 레릭 왕국까지 달려가 단시간에 전투가 끝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사냥도 못 하고 계속 묶여 있으니까.

이도 저도 못하고 가만히 묶여 있는 건 유저들이 원하는 게 절대 아니었다.

글을 읽다가 화련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황제파를 좀 움직여 주세요.

<화련> 얼마나?

<주호> 음, 귀족파보다 조금 더 앞서가면 되겠네요.

<화련> 정말 이것만으로 효과가 있는 거야?

<주호> 네, 귀족파는 황제파가 먼저 레릭 왕국을 치길 원하거든요.

이건 은신으로 숨어 들어갔을 때 메트 후작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황제파가 먼저 치지 않는 이상은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황제파가 레티어스 요새에서 꿈쩍도 안 할 경우다.

<주호> 황제파가 움직이지 않으면 속았다고 생각하고 되돌아가 버릴 수도 있어요.

<화련> 그러니까 그냥 왔다 갔다만 하면 된다는 거지?

<주호> 네, 정확합니다.

그리고 난 이 사실을 론도 후작에게 알려 줄 테고.

조금 더 버티려고 하겠지.

드워프들에게 끊어진 보급을 기다리면서.

얼마 뒤.

예전의 그 별동대 드워프들이 돌아다니면서 론도 후작에게 가는 보급로를 죄다 끊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이 드워프들은 절대.

잡히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우리 쪽 정보를 다 주고 움직이는 거라 잡힐 수가 없거든.

병력 배치가 있는 곳을 교묘하게 피해 다니면서 보급로를 끊어 버리자 결국 바이탄 왕국에서 기다리던 내게까지 연락이 왔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재중이 형도 피식 웃었고.

“우리 후작님께서 똥줄 타나 보네.”

“보급은 똑바로 보내는데 안 가는 걸 어떻게 합니까.”

완전 짜고 치는 고스톱인데 론도 후작만 모를 뿐이다.

앞으로도 알 길이 없을 테고.

보급 요청에 우리가 난색을 표하자 결국 론도 후작이 나섰다.

자신들의 병사 NPC들과 유저들을 보급로에 밀어 넣는 방법으로.

퀘스트가 주면 유저들은 일단은 한다.

물론 한번 당해 보면 다신 안 하겠지만.

아마 이번 보급로를 지키는 퀘스트는 최악의 퀘스트가 될 터.

“저, 수확 좀 하러 갔다 올게요.”

“아, 나도 은신만 되면 같이 가고 싶은데 말이야.”

“저도 그건 아쉽네요.”

재중이 형은 나만큼 은신을 오래 유지할 수 없으니 이것도 좀 아쉬웠다.

아스티아가 나 말고는 다른 사람에게 원천마력을 주지 않는다고 했으니 어쩔 수 없으려나.

은신을 한 상태로 나르샤 누나가 알려 준 위치로 가 보니 한바탕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대전사 칼룬이 신경을 많이 썼네?

무려 대전사급의 오러를 쓰는 드워프들을 별동대에 끼워 넣어 파괴력을 한층 올려놓았다.

저건 어지간한 유저들이 가서는 상대도 못 하지.

굳이 상대를 하려면 론도 후작이 가거나 전신이 보유한 대전사급 병력들을 꺼내 들어야 한다.

하지만 전신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

레릭 왕국으로 가 고대 드워프 왕을 잡을 때 쓰기 위해 아껴 둘 테니까.

그리고 제국파 쪽에서 오러를 쓰는 기사들도 있다고 했었는데…….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걸 보면 론도 후작이 이 일을 너무 쉽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사 칼룬은 반드시 이기는 카드를 들고 나오고.

론도 후작은 어설픈 병력을 보내서 계속 잡아먹히고.

양쪽의 패를 다 알고 있기에 이런 그림이 계속 나왔다.

그 와중에.

“룰루랄라.”

떨어지는 아이템은 전부 나의 몫.

전투가 있을 때마다 매번 다른 유저들이 갈려 나가면서 나를 더욱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인벤을 빽빽하게 채운 아이템 때문에 더 이상 넣을 자리도 없었다.

이 맛에 이 짓을 한다니까?

떨어지는 아이템들도 하나같이 고강 아이템들이었다.

그냥 하나에 천 단위는 하는 아이템들.

그런 아이템들이 바닥에 반짝반짝 빛나면서 돌아가고 있으니 안 즐거울 수가 있나.

내가 할 일은 그저 돌아다니면서 그런 아이템을 하나씩 수거하는 일뿐이었다.

한번 줍고 오면 수억씩 쌓이는 매직인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 장사가 잘 됐다.

나중에 이 아이템들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오히려 걱정될 정도라…….

사장님에게 맡겨 두면 알아서 해 주시겠지만 물량이 너무 많았다.

이건 고민을 좀 해 봐야겠네.

아마 지금쯤 유저들도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걸 느끼고 있겠지.

아니나 다를까.

슬슬 유저들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오는 분위기였다.

- 아놔, 장난해?

- 귀족 이 새끼들 일부러 우릴 죽을 자리로 밀어 넣는 거 아냐?

- 오러 쓰는 드워프도 날뛰는데 무슨 수로 잡으라고.

- 장비 아무리 좋아도 한 방에 녹더라.

- 이럴 거면 오러를 쓰는 놈을 집어넣어야지. 이게 무슨 개죽음이야.

- 드워프는 한 마리도 못 잡았다면서?

- 귀신같이 더 센 전력으로 기다리더라.

- 아, 들어간 돈이 얼만데……. 미치겠네.

- 진짜 귀족 뒤치다꺼리한다고 이러고 있어야 하나.

- 난 안 할란다. 이 시간에 그냥 사냥하는 편이 났지. 무슨 이벤트 해서 득 볼 거라고.

- 귀족파에 붙는 게 아니었어.

- 어쩐지 막 뽑더라. 여기 완전 개털임.

그러다 보니 슬슬 이탈하는 유저들도 생겨났다.

아직 길드 단위로 묶인 유저들은 남았지만.

그것도 앞으로 시간문제일 뿐.

현재 론도 후작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이대로 병력을 산에서 주둔시켜 버티거나 바이탄 요새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레릭 왕국으로 진격해서 전투를 벌이는 것.

하지만 이 선택은 미리 깔아 둔 포석으로 인해 론도 후작에서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

화련이 움직인 황제파가 레릭 왕국으로 진격 중이니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하는 기묘한 상황에 놓인 론도 후작이 참다 못했는지 오러를 쓰는 고급 기사들을 보급로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때는 드워프들이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대전사 칼룬이 손해 볼 것 같은 상황에서는 아예 병력을 빼 버렸으니까.

다 보고 움직이는데 망할 장사를 할까.

그렇게 잠시 보급로가 연결되었지만 이미 상황은 많이 안 좋아져 있었다.

황실 비공정에서 아이템을 쌓아 놓고 분류를 하던 전사 형이 내게 물었다.

“론도 후작이 오러를 쓰는 기사를 투입했네. 이 장사도 이제 끝인가?”

그 물음에 내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직 메인 코스가 남았어요.”

“응? 그런 게 있었어?”

“네, 사실 처음에는 계획에 없던 일인데…….”

그리고 전사 형에게 말해 주었더니 전사 형에게서 박장대소가 터졌다.

“와, 정말 그래도 되냐?”

“흠, 뭐 안 되면 말고요.”

“스케일이 다르잖아? 진짜 이번엔 곡소리 나겠는데?”

전사 형은 잔뜩 기대가 되는지 어린아이 같은 눈빛으로 저 아래 론도 후작이 있는 산을 내려다보았다.

“하려면 빨리 해야겠어. 조만간 론도 후작도 움직일 테니.”

“네, 알고 있어요.”

론도 후작도 바보는 아니니까.

메트 후작 역시 머리를 맞대는 중일 테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그게 우리가 드워프들에게 정보를 준다는 사실로 이어지진 않겠지만.

문제가 생기는 순간 저 산을 버리고 전진하거나 후퇴를 하겠지.

그리고 그 상황이 오기 전에.

먼저 친다!

“칼룬을 좀 만나고 올게요.”

이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 * * * *

다시 찾은 대전사 칼룬.

『 덕분에 적의 병력을 많이 줄여놓긴 했습니다만……. 인간들의 전력이 생각 이상으로 많더군요. 』

이건 아직도 부족하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유저들이 모험가로 끝없이 투입되는 상황이라.

대전사 칼룬이 보기에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고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제가 왔습니다. 이 마지막 카드를 드리려고요.”

그리고 마지막 카드를 알려 주는 순간.

대전사 칼룬의 눈빛에서 확 불이 솟아올랐다.

『 이건 전 병력을 투입해서라도 꼭 성사시키겠습니다. 마침 저희에게 좋은 물건이 있습니다. 』

“저야 감사하죠.”

과연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겠다만.

대전사 칼룬이 확신을 하는 것을 봐서는.

아마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얼마 후.

론도 후작의 진영이 산을 벗어나기 위해 움직일 거라는 제보가 들려왔다.

드디어 눈치챈 건가?

아니면 더 이상 참기 힘들어서?

어느 쪽이 되었든 시간이 별로 없네.

칼룬이 잘해 줘야 할 텐데…….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대전사 칼룬이 빠르게 준비를 해서 그런지 겨우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갑자기 론도 후작이 주둔 중인 산 전체가 크게 울릴 정도로 진동이 일어났다.

시작했나?!

콰앙!

쿠아아앙!

콰아아아앙!

연이은 거대한 폭발들.

그렇게 산의 능선을 따라 길게 둘러싼 화염 폭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 번에 수백 발이 넘는 화염 폭발이 터지는 광경이란…….

폭죽놀이만큼이나 화려함을 자랑했다.

- 우왁, 머냐?

- 무슨 일이야?

- 갑자기 무슨 폭발이야?

- 네임드?

- 아냐! 그냥 폭발!

- 한두 곳이 아닌데?

- 빨리 확인해 봐. 또 드워프겠지!

그리고 산의 능선에서 터진 화염폭발들이 곧 주변을 옮겨붙더니 이내 산 전체를 타고 무서운 속도로 번져 갔다.

모든 산을 불태울 기세로.

생각 이상이네.

정말 잘 타는데?

거기다 산 안쪽을 향해 강력한 바람이 불어 화력을 더해 주었다.

저건…….

풍력계 마법이라도 되나?

드워프들이 이상한 기계를 들고 있었는데 거기서 바람이 거세게 불어 나오고 있었다.

아마 오러를 뿜어내는 생성기와 유사한 기능인 것 같기도 하고.

좋은 물건이 있다는 게 저거였나 보네.

그렇게 외곽에서부터 타들어 간 화염지옥이 점점 산 안쪽으로 옮겨가자 산 전체가 빨갛게 타오르는 진풍경이 이어졌다.

마치 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태워 버리겠다는 듯.

화려하고.

강력하게.

드워프들의 인력과 기술이 있어야 가능한.

사상 초유의 불놀이가 이렇게 여기에 구현되었다.

전사 형이 그 광경을 보고는 입이 쩍 벌어져서 감탄의 말을 내뱉었다.

“흐흐흐, 넌 진짜 미친놈이야!”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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