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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629화 (619/1,404)
  • #629화 강 건너 불구경 (5)

    모든 장기 말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전쟁을 하는 기분은 과연 어떨까?

    전쟁이라는 것이 양쪽의 사활을 걸고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한쪽의 전력이 확연하게 차이 날 정도로 앞서 있지 않는 이상은.

    그런데 지금 내 손바닥 위에는 양쪽의 정보가 모두 올려 져 있었다.

    그중에 하나.

    가르시아 제국 귀족파의 정보들을 살펴본 대전사 칼룬이 황당하다는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 가, 가르시아 제국의 공작 아니셨습니까? 』

    얼마나 황당하면 말까지 더듬을까.

    그런 대전사 칼룬을 향해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응, 맞아. 내가 가르시아 제국의 공작이지.”

    『 혹시, 역모라도? 』

    “아,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하네. 그런 건 아니고.”

    『 그럼 이걸 왜 제게 주시는 겁니까? 이 정보만 있으면 가르시아 제국군을 싹 몰살시킬 수도 있습니다만……. 』

    몰살이라는 말을 꺼내면서도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대전사 칼룬의 모습을 보고는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응, 그래. 그게 사실 내가 원하는 거야.”

    내 대답에 대전사 칼룬의 턱이 놀라움에 쩌억 벌어졌다.

    대전사 칼룬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일 테지.

    “그래서 싫어?”

    내가 손을 뻗어서 종이를 뺏으려고 하자 대전사 칼룬이 빠르게 품 속으로 종이를 집어넣어 버렸다.

    혹여나 뺏어 갈까 봐 뒤로 물러나는 것 보소.

    『 이게 진짜라는 사실은 어떻게 믿습니까? 』

    여기서는 썰을 조금 풀어 줄 필요가 있었다.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명분을.

    “내가 공작이 되면서 적이 좀 많이 생겼어. 그런데 이게 내 손으로 죽이기에는 좀 까다롭단 말이지. 명색이 공작이라. 제국민을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대전사 칼룬의 눈빛이 강렬하게 변했다.

    『 저희에게 정적을 제거해 달라는 소리로 들립니다만……? 』

    아주 눈치가 없지는 않네.

    다행히 잘 이해를 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더 설명이 필요해?”

    내 말에 대전사 칼룬이 고개를 저었다.

    『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왜 이 정보를 넘기는지도. 』

    오케이.

    적당한 명분에 적당한 카드까지.

    이러면 대전사 칼룬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것이다.

    “고대 드워프 왕에게 전해.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라고.”

    이건 인간들을 죽일 거면 확실하게.

    죽이라는 말이었다.

    한 놈도 남김없이.

    『 알겠습니다. 꼭 전하도록 하죠. 』

    “아, 그리고 이 정보가 공짜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 대가가 있습니까? 』

    당연히 있다.

    “어디를 치는지 미리 알려 달라고. 어렵지 않지?”

    『 흠, 혹시 이 정보를 미끼로 드워프들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생각은 아니시겠죠? 』

    그 말에 바로 손을 저어 보였다.

    “아니, 어디를 칠지 알고 있어야 변수를 막을 수 있어.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게 있다는 걸 잊지 마.”

    『 그렇습니까? 』

    “한 번 실험해 보던가. 간만 봐도 되고.”

    실험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그냥 확인해 보면 되는 일이라.

    거짓이라 판단하는 순간.

    저 종이가 휴지조각이겠지만 반대로 진짜면 더 없이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 알겠습니다. 』

    대전사 칼룬이 문을 나서자 나 역시 바로 바이탄 요새로 귀환을 했다.

    준비는 끝.

    이제 수확하는 일만 남았나?

    귀환해 바이탄 성의 집무실로 들어가자 재중이 형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잘 다녀왔냐?”

    “네, 은신이 유용하네요.”

    적진에 마음대로 오갈 수 있다는 장점을 이번에 한껏 이용했다.

    “나도 하나 구해야겠는데?”

    이전에 쓰던 미스트 망토는 형체가 흐릿해지는 것뿐이지 보려고 하면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까.

    아예 모습이 사라지는 은신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하이딩 블레이드 빌려줄게요.”

    “오케이. 그건 조만간 사용하도록 하고. 칼룬은 잘 넘어왔어?”

    “네, 딱히 반대할 만한 구석도 없잖아요.”

    “뭐 그렇지. 칼룬 입장에서는 두 손을 들고 환영할 일이니. 보자. 길드 유저들도 슬슬 합류가 끝났으려나?”

    “확인해 볼게요.”

    귀족 탐사대에 길드들이 대거 포함되면서 사장님에게 줄을 대는 길드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 중간에서 사장님도 많은 이득을 남겼고.

    <카이저> 흐흐흐흐, 이 맛에 산다니까.

    덩달아 사장님의 영향력도 많이 올라갔다.

    길드들이 하나의 빚을 지는 셈이라.

    <주호> 잘 되고 있나 보네요.

    <카이저> 그럼, 그럼. 대기표를 줘야 할 판이야.

    <주호> 하하, 네. 정리되는 대로 말해 주세요.

    사실 론도 후작을 꼬드겨 유저들을 탐사대에 합류시키라고 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우리 대화를 듣던 재중이 형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유저들은 어디로 튈지 모른단 말이지.”

    “네, 확실히 그렇죠.”

    이번 일은 우리가 파놓은 늪에 유저들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그 시작이 바로 탐사대다.

    “귀족들이 탐사대로 묶어 두면 움직임을 보기가 편해져.”

    재중이 형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을 계획하면서 고민했던 유저들의 행동반경을 제어해 줄 좋은 도구였다.

    귀족이라는 녀석들은.

    그래서 미리 론도 후작에게 기름칠을 한 것이었다.

    유저들을 데려다 쓸 수 있도록.

    “퀘스트라고 하면 꼼짝없이 묶여들 수밖에 없죠.”

    귀족이 주는 보상들.

    이건 유혹이다.

    늪으로 빨려 들어갈.

    “자, 그럼 슬슬 우리도 준비해 보자고.”

    * * * * *

    귀족파 탐사대의 유저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중에 화련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거기 귀족들은 어때요?

    <화련> 확 엎어 버리고 싶어.

    <주호> 하하…….

    화련의 레티어스 요새.

    이곳에는 현재 황제파의 귀족들이 주둔 중이었다.

    일단은 우리 쪽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화련에게는 그다지 마음에 드는 상대가 아닌 모양이었다.

    <화련> 후작이라고 하나 있는 놈이 계속 깐죽거리네? 그냥 죽여 버릴까 고민 중이야.

    화련의 직위가 백작이기에 나오는 현상.

    만약 내가 있었다면 반응이 달랐을 터.

    <주호> 그러시면 안 되죠. 아직은.

    <화련> 오래는 안 참을 거야. 확 나라를 하나 세우던가 해야지.

    확실히 화련이라면 나라를 세우고도 남는다.

    누구 밑에서 명령을 듣고 있을 사람이 아니니까.

    완전히 터지기 전에 해결책을 알려 주었다.

    <주호> 슬슬 움직이라고 전해 주세요. 제 명이라고 하면 알아먹을 겁니다.

    <화련> 칫, 공작이라 이거지? 짜증 나. 끊어!

    부럽다는 걸 저렇게 표현하나?

    일단은 황제파의 귀족들이 먼저 움직여 줘야 한다.

    그래야 엉덩이 무거운 귀족파들이 움직일 테니.

    그 말을 끝으로 화련과 연락을 끊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재중이 형이 미소지으면서 말했다.

    “화련이 마음대로 안 되는가 봐?”

    “백작이 후작을 마음대로 움직이긴 힘들겠죠. 아무래도.”

    그래서 내 이름을 팔라고 말해 주었고.

    황제파 귀족들도 이제는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라면 마리아 가르시아가 가만있지 않을 테니.

    화련과 연락을 끝내고 난 뒤 바로 챠밍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챠밍, 그쪽 상황은?

    <챠밍> 아, 오빠. 아직은 잠잠해요. 후작이 있어서 그런지 제 말을 잘 듣는 편도 아니라서.

    챠밍 쪽, 쿠론 요새는 중립파가 있었다.

    문제는 화련과 마찬가지로 챠밍의 작위도 백작이다 보니, 마찬가지로 후작 쪽에서 말을 들어먹질 않았다.

    테인 공작이나 루젠 공작이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둘 다 마리아 가르시아 옆에 있기 때문에 딱히 움직일 방법이 없었다.

    <주호> 레티어스 요새에서 황제파가 움직였다고 넌지시 찔러줘봐.

    <챠밍> 아! 시작하나 보네요?!

    <주호> 그래, 이제 시작이야.

    <챠밍> 네, 해볼게요.

    예상대로 중립파는 이도 저도 아닌 행보를 보였다.

    그런 중립파를 움직이려면 황제파의 움직임을 알려 주는 편이 낫겠지.

    이래도 안 움직인다면 다른 방법을 쓰고.

    그리고 마지막.

    바이탄 요새에게 아주 푹 쉬고 있는 귀족파의 수장 론도 후작을 찾았다.

    『 어쩐 일이십니까? 』

    전혀 움직일 생각조차 없이 아예 눌러앉은 론도 후작을 보고는 속으로 웃었다.

    다른 녀석들이 움직이기 전에는 생각이 없다 이거지?

    그럼 그 무거운 엉덩이가 움직일 소식을 전해 줄 수밖에.

    “황제파가 움직였다는군요.”

    『 벌써 말입니까?! 』

    론도 후작도 깜짝 놀란 눈치였다.

    귀족파만큼이나 굼뜬 게 황제파라.

    서로 아직은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는 말이 정확할 것 같았다.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한 듯하더군요.”

    『 흠, 황제파가 빠르게 움직였다면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군요. 』

    이건 일종의 뻥카였다.

    황제파는 그냥 움직이는 액션만 취하는 거니까.

    그리고 그에 맞는 미끼도 던져 주었다.

    “아마도 레릭 왕국에 영웅의 무기가 있다는 제보를 받은 것 같습니다.”

    이건 론도 후작이 깜짝 놀랄 만한 정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론도 후작이 크게 외쳤다.

    『 영웅의 무기! 』

    반응이 이 정도로 좋으면 고맙지.

    혹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어쩌나 했다.

    “영웅의 무기가 가진 힘은 잘 아시고 계시죠?”

    『 제가 어찌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대륙의 패권을 움켜쥐던 최강의 무기들인데. 』

    역시.

    귀족들 사이에서도 영웅의 무기는 최고로 취급받고 있었다.

    그 수장인 론도 후작은 더했고.

    특히 론도 후작은 테인 공작에 이어 무력 서열이 2위다.

    영웅의 무기에 관심이 없다면 말도 안 되겠지.

    당연히 지금 차고 넘칠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욕심이 가득한 눈빛을 발하면서.

    『 하지만 레릭 왕국에는 마족이 있다고 하는데.…… 』

    레릭 왕국이 어둠으로 물들면서 NPC들 사이에선 소문이 다 난 것 같았다.

    그리고 론도 후작은 마족으로 변한 고대 드워프 왕이 꽤 껄끄러운 모습이었고.

    론도 후작도 강하다고는 하지만.

    마족은 이야기가 달랐다.

    그런 론도 후작에게 넌지시 말을 꺼냈다.

    여기서는 한번 찔러 줄 필요가 있어.

    “어차피 제국을 지키려면 한 번은 부딪혀야 하는 상대 아니겠습니까?”

    『 흠, 그렇기는 합니다만. 』

    “그리고 만약 황제파에서 먼저 영웅의 무기를 가지게 된다면요?”

    그 말에 론도 후작이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 당연히 안 되는 일입니다! 지금도 황제를 뒤에 업고 귀족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

    그런 론도 후작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만약 론도 후작이 이 영웅의 무기를 가지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지도 모르죠. 무려 한 대륙을 좌지우지했던 최강의 무기가 아닙니까. 테인 공작을 누르고 서열 1위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영웅의 무기에 대한 욕심.

    그걸 한 번에 찔러 본다.

    마지막에 테인 공작을 언급함으로써 퍼즐을 완성시켰다.

    분명히 반응이 올 거야.

    『 테인 공작! 확실히 영웅의 무기가 있다면! 테인 공작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

    빙고.

    아주 잘 걸려들었어.

    “그리고 영웅의 무기가 있다면 한 나라의 수장이 될 수도 있겠죠.”

    쿵!

    엄청난 폭탄 발언을 던져 주자 론도 후작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 주호 공작은 황제의 편이 아니었습니까? 왜 제게 이런 말을……! 』

    당연히 론도 후작이 오해할 만한 사항이었다.

    여기서는 준비한 말을 던져 주고.

    “아, 그게 막상 마리아 가르시아께서 황제가 되고 나니 제가 좀 푸대접을 받아서요. 겉으로 보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만. 사실상 제가 황위에 올려드린 건데도 말이죠. 제대로 보상을 못 받았다고 하면 될까요?”

    『 으음, 그래서 저를 밀어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

    “안 될 것은 없겠죠. 영웅의 무기만 가지신다면요.”

    아예 욕심에 불을 지피다 못해 기름을 잔뜩 부어 버렸다.

    이러고도 안 움직이면…….

    그건 좀 곤란하긴 하네.

    한참을 고민하던 론도 후작이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두 눈에는 욕망이 활활 타올랐고.

    『 모험가들을 더 모아야겠습니다. 』

    그래, 그래 줘야지.

    아주 다 가져다 써라.

    장작처럼 태워 버릴 수 있게.

    론도 후작이 단시간 내에 병력을 불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험가니까.

    그렇게 갑자기 모험가들을 대폭 받아들이고 얼마 있지 않아 론도 후작의 탐사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전 부대 출진! 』

    론도 후작과 함께 귀족들과 병사들, 유저들까지 부랴부랴 떠나는 모습을 바이탄 요새에게 지켜봤다.

    그리고 다시 페가수스를 타고 레릭 왕국으로 날아가 대전사 칼룬을 만났다.

    “가장 세력이 약한 남작부터 노려.”

    『 알겠습니다. 』

    칼룬에게 세세한 정보를 넘겨준 뒤 다시 요새로 돌아와 론도 후작의 뒤꽁무니를 따라갔다.

    은신을 유지한 채로.

    자, 이제부터 진짜 지옥을 만들어 볼까?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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