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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628화 (618/1,404)

#628화 강 건너 불구경 (4)

솔직히 귀족들의 탐사대에 관여를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니, 이 경우에는 오히려 하면 안 된다.

앞으로 할 일들을 생각해 보면.

그런 내 생각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귀족파들이 저렇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것이고.

사실상 론도 후작이 대놓고 내게 시비를 걸었던 일도 탐사대의 전체 지휘권을 얻기 위해서였다.

나를 공개적으로 눌러놓으면 자신들이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으니.

그런데 그 지휘권을 그냥 내준다?

이건 귀족파들 입장에서 두 손을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앞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

막상 일이 이렇게 되니 귀족파들의 적개심이 확 수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과는 달리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이런 느낌은 시스템에 바로 적용되어 보여 주었다.

《 가르시아 제국 론도 후작과의 친밀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

《 가르시아 제국 메트 후작과의 친밀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

《 가르시아 제국 버몬트 백작과의 친밀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

《 가르시아 제국 그렌 백작과의 친밀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

.

.

확실히 원하는 것을 얻고 나니 기분들이 좋아진 것 같은데?

특히 론도 후작이 그런 면이 더 강했다.

『 허, 미리 언질을 주시지 그랬습니까. 괜히 오해를 했습니다. 』

지금은 론도 후작의 경계가 완전히 풀어져 있었다.

“당연히 귀족분들의 병력은 귀족분들께서 운영하셔야죠.”

《 가르시아 제국 론도 후작과의 친밀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

이번에도 역시 친밀도가 상승.

『 이거 참, 이런 분인 줄 알았으면 진작 한번 찾아뵀어야 했는데. 』

안 해도 돼.

어쨌거나 급화해 무드로 회의실 분위기가 변하면서 귀족들의 경계심이 많이 내려갔다.

그와 함께 각 길드의 길마들 역시 보다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귀족파 귀족들과 친분을 나눌 수 있었고.

좀 전까지만 해도 완전 살얼음판이었는데 그에 비하면 지금은 완전히 봄이 온 것과 진배없었다.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피식 웃더니 내게 말했다.

<불멸> 생각보다 잘 된 것 같은데?

<주호> 가장 원하는 것을 그냥 던져 줬잖아요. 여기서 기분 나빠하면 안 되죠.

<불멸> 그래,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 볼까?

재중이 형이 신호를 주자 축하 분위기를 즐기고 있던 론도 후작에게 몰래 말을 걸었다.

“잠시 따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내가 작게 속삭이자 론도 후작의 눈빛이 확연히 달라졌다.

마치 올 것이 왔나 하는 딱 그런 표정.

아무리 그래도 이런 권력을 넘겨주면서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이쪽이 양보한 만큼.

저쪽도 내어 줄 각오 정도는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론도 후작도 다른 귀족파에게 보여 주기 껄끄러운 부분이라, 아예 둘은 회의장 바깥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론도 후작에게 말을 꺼냈다.

“하하,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했지만 론도 후작도 쉽게 넘어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지 표정은 굳어 있었다.

『 흠, 그냥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만. 무엇을 원하십니까? 』

단도직입적.

원하는 게 있으면 빨리 말해 보라는 투라 오히려 말하기는 편해졌다.

“별것 없습니다. 약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할까요.”

『 흠, 역시 자금입니까? 』

그 말을 듣고는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돈을 원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는데.

바이탄 요새를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돈뿐만 아니라 병력이 주둔하면서 쓰는 돈도 있고.

『 새로 공작이 되셨는데 필요한 돈이 적진 않겠죠. 돈이라면 섭섭하지 않게 처리해 드리지요. 』

그리고 아마 론도 후작은 내가 별도로 돈을 챙기길 원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았다.

마리아 가르시아에게 듣기로 론도 후작이 큰 땅에서 나오는 알짜배기 부자라고 들었다.

귀족파의 수장이 된 것도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자금에서 나오는 힘도 무시할 수 없겠지.

한마디로 돈은 누구 부럽지 뿌릴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원한 것은 그게 아니다.

“뭐 돈이야 많으면 좋긴 하겠죠. 하지만 제가 원하는 일은 다릅니다.”

돈이 아니라는 말에 론도 후작이 궁금증 가득한 눈빛으로 변했다.

『 그럼? 혹시 희귀한 물건이라도? 』

병력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그럼 원할 만한 것이 그다지 없었다.

굳이 찾자면 아이템?

하지만 론도 후작이 내가 원할 만한 그런 아이템을 들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만약 유일 아이템 같은 물건이라도 들고 있다면 또 모를까.

너무 뜸 들이는 것도 좋진 않겠지.

바로 론도 후작에게 말했다.

“모험자들.”

『 모험자 말입니까? 』

전혀 의외의 말에 론도 후작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 귀족파들의 탐사대에 모험자들을 적극적으로 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이건 시스템의 문제였다.

퀘스트상의 문제고.

기본적으로 NPC들과 유저들 사이에는 친밀도라는 것이 존재한다.

우호적인 행동을 하거나 혹은 아예 적대를 하거나.

그런 판단의 기준이 되는 일종의 지표.

아무리 유저가 날고 긴다고 해도 지금 시점에서 귀족들과 친밀도가 높을 수가 없었다.

나나 우리 팀 같은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라면.

사실상 귀족들 얼굴조차 보기 힘든데 친밀도를 쌓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유저들은 귀족과의 친밀도가 거의 바닥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조건이 좋은 탐사대의 경우 유저들의 스펙을 엄청나게 따지는 편이었고.

자신들과 연관된 퀘스트를 진행해서 친밀도를 따로 올린다면 또 모를까.

귀족들도 유저들을 판단할 기준이 아직까지는 레벨과 장비의 스펙 정도밖에 없었다.

그래서 상위 귀족으로 갈수록 탐사대의 자리가 다수 비어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귀족파, 황실파, 중립파 할 것 없이 이건 공통된 사항.

유저들 입장에선 아쉽긴 해도 시스템이 그러니까.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본인이 직접 귀족이 되면 된다.

아니, 오히려 이쪽은 더 힘들다고 봐야겠지.

공적을 쌓는다는 일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절대 아니었다.

특수한 상황에서 특별할 정도의 공적을 쌓아야 겨우 작위의 끝자락이라도 만져 본다.

이번 경우에도 레릭 왕국을 멸망시키거나 마족인 고대 드워프 왕을 죽일 정도의 공적이 아니라면 작위는 구경도 못 해볼 테니.

결국은 귀족들의 탐사대에 기대야 하는데 상위 귀족들은 쉽게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건드려 버렸다.

과연 반응이 어떨까?

『 흠, 그건…… 좀. 』

역시나 꺼려 하는 모습을 먼저 보이는군.

이건 재중이 형이 말했던 것과 동일했다.

조금 더 가 볼까?

“모험가들이 귀족들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더군요. 같은 모험가 출신으로 좀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제야 론도 후작이 내가 모험가 출신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는지 고민하는 눈치를 보였다.

여기서는 다시 당근을.

“그냥 탐사대에 넣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왕 쓰시는 것 모험가들을 미끼로 쓰시지요.”

방금 한 말에는 론도 후작도 혹하는지 관심을 보였다.

사실 지금 내가 한 발언은 꽤 위험한 말이었다.

다른 곳에 알려질 경우에 말이지.

『 흠, 그 말은? 』

“그 왜…… 있지 않습니까, 몸빵.”

과연 몸빵이라는 말을 알아들으려나?

다른 식으로 표현할 수 있기는 한데 사실 이 말이 내가 원하는 일에 가장 근접한 표현이었다.

『 드워프 족을 상대하는데 모험가들을 방패로 쓰라는 말이십니까? 』

아주 잘 알아들었군.

너무 이해가 빨라서 오히려 감탄할 지경이다.

“론도 후작도 이런 곳에서 병력이 소모되길 바라고 있진 않을 텐데요.”

『 흠흠, 그렇긴 합니다만. 과연 모험가들이 그렇게까지 할지는……. 목숨을 거는 일이다 보니 모험가들에게는 신용이 없습니다. 』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아니야.

얘들은 굴려 주면 굴려 줄수록 더 좋아해.

그건 내가 확실히 장담할 수 있었다.

“모험가들은 이런 일을 오히려 좋아할 겁니다. 시련을 성장이라 생각하는 자들이니까요. 죽음도 불사할 겁니다.”

시련은 다른 말로 퀘스트.

성장은 레벨업.

곧, 귀족들이 주는 꿀 같은 퀘스트와 보상들을 원하고 있었다.

여기서 꿀 같은 퀘스트가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고.

자, 과연.

억지로 친밀도를 무시하고 유저들을 받아들일 건지.

궁금해지네.

잠시 침묵으로 고민을 하던 론도 후작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모험가 출신인 주호 공작 님이 같은 모험가를 챙겨 주시려는 마음을 잘 알겠습니다. 』

아니야.

그건.

챙겨 주는 게 아니라 지금 늪으로 끌어들이려는 중이다.

거기다 올라오지 못하게 발로 꾸욱 밟아서 집어넣어 줄 생각이고.

이런 내 속을 알 리가 없는 론도 후작에게 기꺼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해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 그럼, 휘하 귀족들에게 여력이 되는 대로 모험자들을 더 받아들이도록 지시하겠습니다. 』

좋아.

넘어왔어.

그리고 딱히 론도 후작에게도 나쁜 일만은 아닐 테지.

병력 소모를 줄여 주는 존재는.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윈윈하는 좋은 거래였다.

거기다 공짜로 해 주는 것도 아니었고.

“한 가지만 더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 뭡니까? 』

“탐사대에 어중이떠중이들을 넣어드릴 순 없으니 진짜 강한 모험자들만 추천해 드리죠.”

『 흠, 나쁘지 않군요. 알겠습니다. 』

고급 병력을 원하는 것은 저쪽도 마찬가지.

론도 후작은 공짜로 온전한 지휘권을 손에 넣은 데다가 쓸 만한 방패들을 얻어서 좋고.

나 역시 얻는 것이 있어서 좋았다.

<주호> 형, 넘어왔어요.

<불멸> 크큭, 진짜로 그게 되냐?

<주호> 네, 지금부터 사장님께 각 길드 길마들하고 접촉해 수수료 받으라고 전해 주세요.

<불멸> 좋아. 못 들어가는 탐사대에 넣어 주는 조건이라면 알아서 가져다 바칠 거야. 상위 귀족과 친밀도를 올릴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까.

<주호> 공작인 제 직위로 협상했다고 꼭 알려 주시고요.

당연히 공짜가 아니다.

이런 일은.

일단 여기서 최대한 뽑아먹고.

<주호> 전 이제 고대 드워프 왕을 움직이러 갑니다.

본 게임은 지금부터.

유저들을 탐사대란 늪에 집어넣어 놨으니.

어디 얼마나 잘 죽을 수 있는지 한번 두고 보자고.

고대 드워프 왕의 손에 말이야.

* * * * *

사장님과 각 길드 길마들의 협상은 잘 이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상위 탐사대는 친밀도, 레벨, 장비의 제한 때문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는데 억지로 집어넣어 줬으니까.

누군가는 청탁이라고 할 만한 사건을 사장님은 웃으면서 해결해 주셨다.

우리는 돈을 얻어서 좋고.

길마들은 원하는 바를 얻어서 좋고.

표면상 서로 나쁠 게 하나도 없었다.

조금 의심하는 녀석들도 있었다고는 하는데…….

사장님이 싫으면 말라는 엄포에 다 손을 들어 버렸다던가.

물론 작위가 있는 전신과 몇몇 길드들은 여기에 휘말리진 않았다.

특히 전신은 대전사급 드워프들을 보유하고 있어서 그런지 귀족들의 손을 빌릴 생각도 없어 보였다.

뭐 저쪽은 어쩔 수 없나.

그리고 메인 요리를 먼저 먹는 우를 범할 순 없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둠의 레릭 왕국 안으로 은신한 상태로 들어섰다.

외진 구석의 한 건물 안.

그곳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자 얼마 뒤 대전사 칼룬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 오랜만입니다. 』

“아아, 그렇지. 인사는 됐고. 이것부터 받아.”

그리고 뭔가가 써진 종이를 대전사 칼룬에게 건넸다.

『 이건 대체……?! 』

내가 준 뭔가가 빽빽이 적인 종이를 살펴보더니 화들짝 놀란 대전사 칼룬에게 씨익 웃어 보였다.

“우리 측 탐사대 정보. 한번 잘 요리해 보라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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