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625화 (615/1,404)

#625화 강 건너 불구경 (1)

처음에는 조금 시간을 두고 진행할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전혀 필요가 없었다.

전신이 고대 드워프 왕이 등장할 밑그림을 전부 그려 주었기에.

난 그 그림에 조금 덧칠을 했을 뿐이다.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빠져나갈 그림까지 함께해서.

레릭 왕국을 엎어 버리라는 말이 끝나길 무섭게 고대 드워프 왕의 안광이 붉게 빛났다.

『 흠, 오래 기다렸다. 』

사실 좀 더 기다렸어야 하는데 사정이 좀 바뀐 셈이라.

하지만 고대 드워프 왕은 그 시간도 기다리기 힘들었던 것 같았다.

“200년도 기다렸던 분이 왜 그러실까.”

어깨를 으쓱하면서 너스레를 떠는 나를 보며 고대 드워프 왕에게서 강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 이제 눈앞에 진정한 드워프 왕국이 있는데 더 기다릴 수가 있겠는가. 』

진정한 왕국이라…….

지금 세워져 있는 왕국은 왕국이라고 생각도 안 하는 눈치였다.

“뭐 그건 알아서 하시고요.”

솔직히 드워프 왕이 이렇게 나와 주는 게 우리 쪽에서는 고마운 일이란 말이지.

그걸 알 턱이 없는 고대 드워프 왕은 이대로 움직여 주는 편이 좋았다.

그 시작은 레릭 왕국을 되찾는 것부터.

『 내 목줄은 언제 풀어 줄 생각이냐? 』

고대 드워프 왕이 언급한 목줄.

그건 정말로 목숨 줄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스티아가 준 원천마력을 회수하기만 해도 고대 드워프 왕은 그냥 모래알로 돌아갈 테니까.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고대 드워프 왕은 그대로 따라할 수밖에 없었다.

아스티아가 내 옆에 없는 지금도 내게 이빨을 드러내지 못하고.

물론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들어맞고 있기에 지금은 그냥 순순히 넘어가겠지만…….

반대로 둘의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가 생기면 고대 드워프 왕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목줄만 없다면 말이지.

“약속한 대로 일이 끝나면 풀어 드리지요.”

『 약속 어기지 마라. 』

그 엄포에 그저 고개만 까닥였다.

지금은 이게 최선.

아스티아가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현 상황에서는 최대한 비위를 맞춰 줘야겠지.

만약 아스티아가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한다면 꽤 성가시게 될 테니.

지금 저 녀석을 컨트롤할 수 있는 존재는 아스티아밖에 없었다.

“앞으로 연락은 칼룬을 통해서 하겠습니다.”

『 그렇게 하도록. 』

앞으로 인간과 마족의 전쟁으로 바뀌게 될 텐데 내가 계속해서 여기 드나드는 일은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혹여라도 다른 유저의 눈에 띌 수도 있었고.

그 중간 다리로 대전사 칼룬을 선택했다.

양쪽에 모두 다리를 걸치고 있는.

“아, 그리고 카르바할은 우리가 데리고 가도록 하죠.”

내가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고대 드워프 왕에게서 사나운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 그건 곤란한데? 』

불편한 점을 건드렸나?

결국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어차피 죽일 생각이지 않았습니까. 남아 있다면 분명히 당신에게 대항할 테니……. 제가 알아서 치워드리죠.”

『 흠, 확실히 카르바할이 남아 있으면 일을 진행하기 껄끄럽겠지. 』

이전에 보았듯이 카르바할은 고대 드워프 왕이 마족으로 부활하는 일을 싫어했다.

아마 지금 이 상황을 누구보다 원치 않을 테고.

그럼 분명히 반발할 터.

가만히 놔두었다가는 카르바할이라는 고급 인력(?)을 그냥 놓쳐 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고대 드워프 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건 분명히 고대 드워프 왕이 내게 양보를 한 셈이니.

아니, 정확히는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 저렇게 던져준 것이다.

『 앞으로는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고대 드워프 왕이 있던 지하를 나선 뒤, 찾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곧 카르바할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역시, 망치로 뭔가를 두들기고 있었다.

기다릴 시간이 없어서 바로 말을 걸었다.

“카르바할 님.”

『 주호 공작? 여긴 어쩐 일로? 』

“여기 있으면 곧 죽을 겁니다. 살려면 따라오시죠.”

『 그게 무슨 말인가? 』

“고대 드워프 왕이 마족으로 부활했습니다.”

내 말에 카르바할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대 드워프 왕이 잿더미로 변한 것을 눈앞에서 봤으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 대체 어떻게?! 』

“저야 모르죠. 아무튼 이대로 있다가는 무조건 죽습니다. 절 따라오시죠.”

『 그래, 고대 드워프 왕께서 레릭 왕국을 되찾으려면 날 죽여야겠지. 』

“네, 일단 살아 있으셔야 다시 드워프 왕국을 세우실 수 있습니다.”

내 말에 잠시 고민을 하던 카르바할이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 알겠네. 내가 어디로 가면 되겠나. 』

빙고.

혹시나 안 따라오고 고대 드워프 왕을 죽이러 간다고 하면 어쩌나 했다.

당신은 아직 써먹을 데가 많아서 말이야.

이런 곳에서 죽으면 안 되지.

『 아, 그리고 날 따르는 드워프들이 있다네. 』

호, 그 사이에 측근을 만들어 두셨나?

이건 나쁘지 않아.

조금 시간이 촉박하겠지만…….

데리고 갈 수 있다면 전부 데리고 간다.

우호적인 전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남들의 눈을 피해 카르바할을 따라 몇몇 드워프들과 접촉해 피난을 시작했다.

그렇게 카르바할을 포함한 십여 명의 드워프들을 빼내 레릭 왕국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늦진 않았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아마도 카르바할이 없어서 고대 드워프 왕이 더 빠르게 레릭 왕국을 장악한 것 같았다.

《 고대 드워프 왕이 마족으로 부활합니다. 》

《 레릭 왕국은 암흑 세력의 진영으로 변경됩니다. 》

《 기존의 레릭 왕국의 부활 포인트가 가까운 탐사대의 임시 부활지로 변경됩니다. 》

《 레릭 왕국에서 가까운 지점에는 탐사대 진영을 설치할 수 없습니다. 》

《 레릭 왕국의 NPC들은 일반 유저들이 더 이상 이용할 수 없습니다. 》

《 레릭 왕국의 드워프 NPC들이 가르시아 제국 NPC, 유저들과 적대 관계를 형성합니다. 》

《 레릭 왕국 외 일부 드워프 NPC들은 유저들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

.

.

《 시나리오 : 경계 너머 어둠의 레릭 왕국이 시작됩니다. 》

《 시나리오 변경에 따른 지형 변경으로 5분 뒤 임시 점검이 있을 예정입니다. 고객님들 모두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

역시 미리 준비한 시나리오답게 바로 준비된 시스템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임시 점검도 함께 떴고.

지형이 바뀌거나 새 업데이트가 있을 때마다 점검을 했으니 당연히 이번에도 할 것이라 생각했다.

<불멸> 잘 됐나?

<주호> 네, 카르바할도 무사히 빼냈어요.

<불멸> 괜찮네.

<주호> 한 판 붙은 건 어떻게 됐어요?

<불멸> 밀렸지 뭐. 오러를 저렇게 써대는데 일반 유저들이 어떻게 이기냐.

<주호> 그 정도로 차이가 나나요?

<불멸> 그래, 상대적으로 유저들이 너무 약해. 앞선 시나리오를 땡겨 와서 그런지 맥도 못 추더라.

<주호> 앞으로가 재밌겠네요.

확실히 이 정도 밸런스는 되어야 마족화가 된 드워프들과 제국을 포함한 유저들이 싸워볼 만할 것이다.

너무 맥없이 한쪽이 밀리면 재미가 없을 테니.

운영 측에서 생각한 밸런스가 분명히 있을 터.

지금 상황은 분명 나쁘지 않았다.

한편, 채팅창은 현재 난리가 난 상태.

특히 전신 측에서 오러를 쓰는 대전사 드워프들을 앞세워 전투에서 압도적으로 밀고 있는 와중에 이런 일이 생기자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 갑자기 점검?

- 마족? 고대 드워프 왕 부활?

- 레릭 왕국이 어둠의 진영으로 바뀐다는데?

- 저게 무슨 말이야?

- 레릭 왕국 그럼 이제 더 못 들어감?

- 아마도 그런 듯.

- 와, 미쳤네. 사냥 전부 저기서 하는데.

- 어? 그럼 지금 초월 길드는? 초월 길드가 레릭 왕국 소유권 쥐고 있지 않나?

- 맞네. 소유권은 어떻게 되는 거지?

- 돈을 백억 넘게 주고 샀는데 날아가면 빡칠 듯.

- 에이 설마 통째로 뺏어가기야 하겠어?

- 꼬시긴 하다. 그렇게 통제를 하더니.

- ㅇㅇ. 너무 해먹으려 했음.

- 주호가 물약으로 견제하니까 대전사들 동원해서 요새 밀어버리려는 거 봐라. 그대로 뒀으면 초월 길드 천하가 됐을걸?

- 대전사 드워프 세긴 세더라. 오러에 유저들 막 녹아 버림.

- 진짜 점검 아니었으면 싹 밀렸을 듯.

- 그런데 이제 어디서 사냥함? 어둠 진영으로 바뀌면 못 들어가지 싶은데.

- 모르지. 설마 드워프들 사냥하라는 건 아니겠지?

여러 의견들이 오가는 가운데 얼마 뒤 점검으로 인해 접속이 끊겼다.

바로 VRS에서 나와 게시판을 확인해 보니 게시판 목록이 미친 듯이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초월 길드가 너무 해먹어서 벌 받았다느니 압도적인 대전사 전력으로 요새를 공격한 일로 욕을 꽤나 먹고 있었다.

그리고 사냥터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고.

휴, 확실히 관심이 멀어지긴 했네.

우리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는데 마족의 부활이나 어둠의 진영으로 변한 레릭 왕국과 우리를 연관 짓는 이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누가 생각이나 하겠는가.

고대 드워프 왕을 마족으로 만든 것이 우리라는 것을.

* * * * *

점검이 끝난 후 다시 접속하자 꽤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일단 메인 퀘스트가 들어왔다.

《 메인 퀘스트 : 마족 고대 드워프 왕의 처지. 》

- 드워프 왕, 카르바할을 도와 고대 드워프 왕을 저지하라.

- 마족으로 부활한 고대 드워프 왕 처지.

- 퀘스트 보상.

『 레릭 왕국 통치권. 』

『 마족의 심장. 』

『 10강 무기 정제 강화석. 』

『 10강 방어구 정제 강화석. 』

『 10강 일반 강화석. 』

『 +1 확정 강화석 』

『 원정대 포인트 500000 P. 』

『 가르시아 제국 공작 작위. 』

『 아다만티움 / 특수 제작 재료.

- 운석의 파편. 』

이전에 내게 떴었던 딱 그 메인 퀘스트가 지금은 전 서버 사람들에게 자동으로 부여되었다.

누구든지 고대 드워프 왕을 잡기만 하면 보상을 준다는 말.

거기다 추가된 것도 있었다.

무려 제국 공작 작위.

이건 전에는 없었는데…….

거기다 고대 드워프 왕이 모든 드래곤을 잡아오면 주기로 했던 보상 재료인 아다만티움까지 보상으로 걸려 있었다.

이건 꽤 큰데?

분명히 영웅의 무기에 버금가는 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으니까.

솔직히 공작은 이미 되어 있으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저 아다만티움 밖에 없었다.

퀘스트를 집어넣자 다시 시스템 음이 울렸다.

《 어둠의 레릭 왕국 변경으로 들어오셨습니다. 》

역시 기존 위치는 아니네.

레릭 왕국 안에 존재했던 유저들이 전부 레릭 왕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외곽으로 밀려 나와 임시 부활지 근처로 접속되었다.

수도 없이 많은 유저들이 미아가 된 광경이란…….

흡사 전에 로가슈 왕국이 날아가서 어둠 지역이 된 것과 같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특히 레릭 왕국의 주변 필드가 전부 어둠 지역으로 변경되어 근처가 전부 사냥터로 변해 있었다.

기존 지하 던전에서 사냥하던 드워프 악령 같은 몬스터들이 모두 필드로 나온 건가?

이로써 사냥터에 대한 문제는 거의 해결된 듯한데.

주변에 웅성거리던 유저들도 기존 던전보다 지금 바뀐 필드 사냥터를 더 선호하는 듯 크게 불만을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초월 길드가 통제를 했던 것보다는 지금이 훨씬 나을 테니까.

더 이상 입장료 타령을 하지 않아도 되고.

문제는 장비 제작.

원래 레릭 왕국 내 드워프 장인 NPC들이 제작을 해 주었는데 그 레릭 왕국이 마족의 근거지가 되어 버려서 제작할 방법이 없었다.

물약 보급이야 어떻게 탐사대를 활용해서 한다고는 해도 이쪽은 무리지.

주변을 둘러보는데, 혼자서 레릭 왕국으로 왔더니 아는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 쪽 탐사대 인원들 모두가 요새를 지키기 위해 요새에 가 있었으니 지금은 완전히 혼자였다.

일단 카르바할과 접촉할까?

하지만 주변에서는 카르바할이 보이지 않았다.

찾아 나서야 하나.

<주호> 접속했어요?

<불멸> 어, 상황이 어때?

<주호> 예전에 로가슈 왕국하고 비슷해요. 부활지에서 조금만 나가면 전부 사냥터로 바뀌었고요.

<불멸> 나쁘진 않네. 퀘스트 보상은 확인했지?

<주호> 네, 아다만티움이 걸려 있던데요?

<불멸> 우리가 잡을 땐 안 주더니 말이야.

<주호> 그냥 확 잡아 버릴까요?

하지만 아쉽게도 아스티아가 없어서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전에 GM 훈과 이야기한 것도 있었고.

조건부라…….

다른 영웅의 무기냐.

아다만티움이냐의 문제인가.

<불멸> 일단 기다려. 상황을 최대한 보고. 둘 다 놓칠 순 없으니.

<주호> 네, 그렇게 해요. 초월 쪽은요?

<불멸> 아직 확인은 못 해 봤는데, 아 잠시만. 전신한테서 연락 왔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재중이 형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불멸> 역시 레릭 왕국 소유권이 날아갔다는군.

<주호> 따지지는 않아요?

<불멸> 우리에게 할 말은 없지. 마족이 나와서 이렇게 됐는데 말이야.

<주호> 흐음, 너무 쿨한데요?

날아간 돈이 한두 푼도 아닌데.

너무 쉽게 포기하는 느낌이 들었다.

<불멸> 들어보니까 드워프 NPC들의 소유권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군. 그것도 꽤 오랜 기간.

대전사 드워프 하나가 가지는 값어치가 얼마나 될까?

칼룬만큼은 아니겠지만 하나하나의 전투력을 생각해 보면 지금은 완전 오버 밸런스였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전부를 유지하게 뒀다는 건…….

<주호> 설마 운영 측에서 욕 안 먹으려고 그냥 뒀다는 건가요?

<불멸> 어,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그 정도 전력이면. 차라리 이쪽이 나을 수도 있겠지.

초월 쪽에서 지금 아무 불평도 내지 않는 이유가 대전사 병력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 전력이면 앞으로 탐사대 관련해서는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가는 셈이니까.

운영진은 게임을 더 홍보해서 좋았고, 우리야 당연히 돈을 얻었으니.

<불멸> 그리고 전신이 당분간 휴전하자는군.

<주호> 휴전요?

<불멸> 아무래도 마족이 된 고대 드워프 왕을 먼저 잡고 싶은가 봐. 대전사 드워프를 우리에게 소모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 말에는 그저 웃기만 했다.

솔직히 대전사 드워프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힘들어.

<주호> 그렇게 해 주면 더 고맙죠.

우리 대신 레릭 왕국과 최전선에서 싸워 줄.

좋은 병력이 될 것이다.

앞으로 싸움은 저들이 하고.

우린 열매만 따 먹으면 될 테니.

<불멸> 어디 강 건너 불구경 좀 해 볼까?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