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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624화 (614/1,404)

#624화 어둠에 찬 레릭 왕국 (5)

물약 대란.

요새 방어전 수준으로 한순간에 물약을 쏟아붓는 수준이 아니라면 절대 떨어질 일이 없었던 물약이, 지금은 곳간이 텅텅 비듯 자취를 감추었다.

애초에 사냥터를 돌리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약은 가지고 있어야 사냥을 가는데 지금은 그것조차 힘들었고.

곧 사냥터 곳곳이 휑하게 비어 버리는 엽기적인 사태가 일어났다.

- 와, 물약 구하기 힘들어.

- 사냥터 전부 빈 거 실화냐?

- 지금 필드에 몬스터들 개떼처럼 돌아다님.

- 제때 처리를 못 하니까 장난 없네.

- 이러다 거점이나 요새들 위험해지는 거 아녀?

- 네임드들도 그냥 막 돌아다니는 중.

- 잘못하다가 진짜 무너지겠다.

- 몬스터들이 우리가 안 싸워 주니까 지들끼리 싸우더라.

- 개판인데?

단순히 던전뿐만이 아니라 유저들이 유적지, 거점, 요새 밖으로 나가지를 못하니까 필드에는 몬스터들이 그대로 남아 버렸다.

그리고 이런 몬스터들이 서로 모이더니 영역 싸움에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좀 더 강한 몬스터가 약한 몬스터를 죽이는 경우도 허다했고.

전사 형이 몇몇 BJ들의 영상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이거 잘못하다가 강제 방어전 하는 거 아냐?”

“예상은 했잖아요.”

“그렇긴 하지.”

레벨과 장비가 부족한 레릭 왕국이 돌아갈 수 있는 가장 큰 원천이 물약인데 그걸 끊어 버리면?

다른 필드나 사냥터는 상대적으로 유저들의 레벨이 높다 보니 어떻게든 버틸 수도 있겠지만 레릭 왕국은 그게 전혀 아니었다.

주변 환경에 비해 유저들이 레벨이 낮은 편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레릭 왕국이 유지되는 이유는 딱 하나다.

드워프들의 전력.

레릭 왕국이 그 자리에서 버티려면 이 드워프들의 전력이 필수였다.

그리고 아직 드워프들이 건재하기에 강제 방어전 같은 시스템 메시지도 울리지 않았고.

우리 이야기를 듣던 재중이 형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만약 이 상황에서 전신이 드워프들을 강제로 빼내면 어떻게 될까?”

분명히 화상이 끝날 때 전신이 우리 요새를 뺐을 거라고 경고를 했었다.

하지만 재중이 형은 전혀 그 경고를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 있으면 해보라는 말.

그건 다 이유가 있으니까.

현재 우리 요새들을 치려면 단순히 초월 길드 하나의 전력만으로는 어려웠다.

물론 동맹도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이쪽의 전력이 아직은 앞선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쪽도 요새의 NPC가 있으니까.

그리고 수성을 하는 입장이기에 전신으로선 좀 더 전력을 많이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 그가 가져다 쓸 수 있는 최고의 전력.

드워프들을 강제로 데려다 쓸 것이 분명했다.

재중이 형이 말한 부분이 바로 이거다.

레릭 왕국을 지켜야 할 드워프들을 전신이 강제로 가져다 쓰는 상황.

“우리를 이기려면 드워프들이 무조건 있어야 할 테니까요. 안 쓸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 그럼 여기서 문제. 과연 드워프의 왕인 카르바할이 이걸 허락할까?”

내가 만약 카르바할이라면 이건 절대 허락하지 않을 터.

재중이 형의 물음에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 카르바할은 절대 전신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을 거야.”

그럼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재중이 형이 씨익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분명 전신은 레릭 왕국의 운영권을 가지고 있지. 돈을 써서 억지로 드워프들을 빼내 오면 카르바할이 할 수 있는 게 없어.”

강제로 NPC들을 사서 움직인다면?

이건 정말 카르바할이 손쓸 수가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 정도 자금은 화련의 언니인 그 사람에게 분명히 있었다.

혹시나 싶어 화련에게 물었다.

“화련, 언니란 분. 더 쓸 수 있는 자금이 있나요?”

내 물음에 화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아직 용돈이 많이 남았을걸?”

용돈?

화련이 말한 용돈이라는 말에 다들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설마 지금 쓰고 있는 돈이 용돈이라는 말은 아니겠죠?”

“응, 맞는데?”

“하…….”

그 반응에 화련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용돈 가지고 좀 놀았을 뿐이야. 놀라기는.”

그동안 그렇게 써댄 돈이 용돈 수준이라고?

“네 덕분에 용돈을 좀 많이 쓰긴 했네.”

“하하…….”

이거 참.

저 집안은 대체 뭐 하는 집안일까.

그런 궁금함을 가질 때 재중이 손뼉을 쳐서 주변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자자, 부럽긴 한데, 지금 용돈이 중요한 건 아니고. 화련이 확인시켜 줬듯이 전신은 드워프들을 강제로 빼내 올 겁니다. 우리를 치기 위해서.”

그 말에 회의실에 모여 있던 모든 길마들의 표정이 굳었다.

지켜보던 엔느가 양쪽의 전력을 비교했는지 바로 한숨을 쉬었다.

“대전사급 드워프들을 동원하면…… 잘못하다가는 요새가 날아가겠네요. 아마 이쪽은 제대로 막을 수가 없을 거예요.”

이건 스칼렛, 이슬두잔, 리더, 황룡, 폭군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오러를 쓰는 드워프들이 얼마나 강한지 다들 잘 알고 있으니까.

예전의 용의 대지에서 봤던 드워프들과는 전력부터가 달랐다.

그런 굳은 표정을 보고는 오히려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뇨, 오히려 이건 우리가 원하는 일입니다.”

그 말에는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 이해가 안 되겠지.

지금은.

여기까지가 나와 재중이 형이 그린 그림이었다.

물약을 억제하고, 전신을 도발해서 전쟁이 일어나는.

그리고 이 상황에서 전신이 부족한 전력을 메우기 위해 반드시 드워프들을 강제 동원해 줘야 했다.

그래야 드워프들과 전신 사이에서 균열이 일어날 테니.

재중이 형 역시 씨익 웃더니 멀리 레릭 왕국 방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자, 그럼 이 녀석은 어떻게 나오려나?”

* * * * *

물약 대란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기다리다 못한 상대측에서부터 반응이 나왔다.

《 초월 길드가 신화 길드에 적대관계를 선포합니다. 》

《 초월 길드가 최강 길드에 적대관계를 선포합니다. 》

《 초월 길드가 달 길드에 적대관계를 선포합니다. 》

《 초월 길드가 치맥……. 》

.

.

아니나 다를까.

본격적으로 초월 길드 측에서 우리 탐사대를 향한 선전포고가 들어왔다.

그리고 상대측은 초월뿐만 아니라 몇 곳의 길드들도 역시 포함되어 있었고.

게시판 역시 난리가 났다.

- 초월 길드가 선전포고를?

- 아, 난 이럴 것 같더라. 전에 초월 길드가 신화 쪽 길드들 던전 못 들어오게 막았잖아.

- 그렇네. 주호가 가서 깽판 쳐놓긴 했지.

- 먼저 초월 길드에서 시비를 걸었으니 당연한 거 아님?

- 그리고 이번에 물약도 주호 쪽에서 막았다고 하던데?

- ㅇㅇ. 지금 소문 자자함. 통제 막으려고 아예 물약 끊어 버렸다더라.

- 물약을 저렇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음.

- 요새를 통째로 써서 물약 막는 클라스 보소.

- 아놔, 사냥 못해서 진짜 짜증 났는데 이유를 알고 보니 뭐라고 할 수가 없고.

- 그래도 물약 막은 건 너무 했음. 유저들이 피해 보잖아.

- 아니, 솔직히 초월 길드가 통제만 안 했으면 된 것 아님? 지금 피해 보는 길드가 몇 갠데.

- 완전 돈독이 올라서.

- 지금은 입장료 받고 넣어 주기라도 하지. 수틀려 봐. 바로 던전 막아 버릴지도 몰라.

- 난 주호 쪽 지지함. 우리 길드도 적대 길드라고 입장도 못 해가 지금 며칠을 날렸는데.

- 초월 쪽에서 통제 풀면 결국 다 좋아지는 거잖아. 나도 주호 지지한다.

- 진짜 대신 싸워 주는 것도 고맙게 여겨라. 주호 아니었으면 초월 길드한테 계속 통제당해야 해.

- 그래, 주호가 힘이 있으니 저렇게 물약으로 압박하지.

- 옳소! 나도 요새에 가서 같이 싸울란다.

여론이 나쁘지 않아.

이걸 위해 미리 약을 쳐둔 것이었다.

초월 길드의 통제에 대항하는 이미지를.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유저들이 물약을 막아 버린 우리가 아닌, 초월 길드를 욕하고 있었다.

“상황이 괜찮죠?”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려고 그 고생을 했으니까. 이제 수확을 해야지.”

“전신이 바로 쳐들어올까요?”

“그래, 더 이미지가 나빠지기 전에 속전속결로 처리하려고 할 거다.”

전신도 이 상황에서 마냥 기다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가면 갈수록 여론이 안 좋아지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거기다 물약 문제도 있겠죠.”

“그렇지, 물약은 우리가 틀어막고 있으니. 자기들 쓸 것만 따로 뺀다고 하더라도 오래 기다리진 못해.”

그리고 의외로 유저들의 호응이 너무 좋았다.

“지금 계속 모여들고 있죠?”

“어, 놀랍게도 말이지.”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바이탄 요새의 성벽 부근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NPC들밖에 없어서 휑하게 느껴졌던 성벽이 지금은 각기 다른 이름의 길드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통제를 이렇게 싫어할 줄은 몰랐어요.”

솔직히 별 기대도 안 했고 생각도 안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모여들 줄이야.

“우리야 통제와 상관없는 상황에서 늘 사냥을 했지만, 저들은 다르니까. 매번 이런 경우에 당했을 테니.”

“그래서 지금 저렇게 모이는 건가요?”

“뭐 분풀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려나?”

현재 드워프들과 맞싸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유저들이 모여 주었다.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우리가 지나가자 유저들이 서로 먼저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해주었다.

심지어 환호하는 유저들도 보였고.

“같이 싸우러 왔습니다!”

“기회를 줘서 고마워요!”

“이기자!”

“초월 길드 박살 내자아!!”

이거 참.

정말 호응이 너무 좋네.

“고맙네요. 이런 건.”

의외로 전력이 불어나자 상황이 기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잘하면 드워프들과 그냥 붙어서 이길 수도 있으려나?

“한번 그냥 치고받아 봐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말고. 애초에 계획도 아니잖아.”

“하하, 뭐 그렇죠.”

유저들이 몰려드는 것은 고맙긴 한데 어차피 유저들과는 별개로 다른 작전이 있었다.

당연히 유저들에게는 아쉽겠지만.

그사이 사장님의 주도하에 세 개의 요새에 각기 병력을 배분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카이저> 일단 세 요새에 전력을 분산해 놨다. 한 곳만 집중할 순 없으니까.

정찰을 꾸준히 하고 있기는 한데 아직은 드워프들과 전신이 어느 요새로 쳐들어올지 모르니까 이건 어쩔 수 없었다.

혹은 병력을 나뉘어서 싸움을 걸어올 수도 있고.

한 곳만 지키려고 하다가는 나머지 두 곳을 다 내줄 수 있으니.

그리고 이렇게 해 놓아야 상대방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

<주호> 네, 감사해요. 거기도 유저들 모여들고 있어요?

<카이저> 흠, 덕분에 병력 배치가 쉬워졌어. 다만 문제가 있다.

문제?

<주호> 무슨 문제요?

<카이저> 급하게 모인 병력이다 보니 제대로 관리가 안 돼. 일단은 같은 편에서 싸운다고는 하지만 스파이로 들어와 우리 쪽 전력을 저쪽에 알려줄 수도 있고.

<주호> 그건 문제겠네요.

<카이저> 거기다 내부에서부터 갑자기 배신을 할 수도 있어.

시간도 없고 일단은 도와주러 왔다고 하면 다 받는 상황이라 그런지 상황이 복잡해 보였다.

한참 전쟁을 하다가 내부에서 배신이라…….

이건 치명적이지.

그리고 전신 쪽에서 이런 것을 고려 안 할 리가 없었다.

<카이저>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일단은 주의는 하고 있다만 혹시 모르니 조심하거라.

<주호> 네, 알았어요.

사실 싸울 생각도 없어요.

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장님이 걱정이 많으시네.”

“네, 뭐 이렇게 크게 싸울 일이 잘 없으니까요. 지금 사장님이 주도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전신 측 연합과 드워프들이 레릭 왕국에서 출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도 레릭 왕국 근처에 눈을 심어 놨으니 상황 정도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녀석, 진짜로 해볼 생각이군.”

무려 칼룬급의 드워프 대전사가 다수 끼어 있는 대규모의 전력.

“카르바할하고 대판 싸웠겠죠?”

“아마도.”

저 정도 전력이라면 거의 레릭 왕국의 전체의 병력과 맞먹었다.

속전속결로 끝낼 거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다.

전신 쪽도 카르바할이 신경 안 쓰일 수가 없을 터.

정말 한 번에 싹 밀고 끝내려는 생각이었다.

재중이 형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알아서 상대하고 있을 테니, 가서 깽판 놓고 오라고.”

“네, 다녀올게요. 너무 무리하진 마시고요.”

“한 번은 붙어야 우리도 그림이 나오지.”

그런 재중이 형을 뒤로한 채. 바로 페가수스를 타고 이동했다.

정확하게는 레릭 왕국의 한복판의 장소.

고대 드워프 왕이 있을 최하층을 향해.

그렇게 움직이는 도중 전신과 드워프, 우리 측 연합이 한판 붙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금쯤 내가 없다는 걸 알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대 드워프 왕에게 도착했다.

『 흠, 왔나? 』

마치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고대 드워프 왕에게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명분은 다 만들어졌다.

지금부터는.

“이제, 레릭 왕국. 엎어 버리시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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