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화 용마족의 가호 (5)
아스티아가 세다는 사실은 몸으로 겪어 봐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마족이 된 고대 드워프 왕을 압살할 정도로 강한 건가?
이건 아스티아의 진짜 능력을 모르기에 나온 생각이었다.
그리고 마족이 된 고대 드워프 왕의 능력을 모르기도 했고.
자세한 능력은 모르지만 GM이 그렇다면 아마도 그럴 것이다.
능력을 대조해 보는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왜 이걸 내게 부탁하는 거지?
애초에 내게 부탁할 필요가 없는 문제 아닌가?
옆에서 듣고 있던 전사 형도 궁금했는지 GM 훈에게 물었다.
“운영자 측에서 알아서 조절하면 되지 않습니까?”
“아, 그게 좀 곤란합니다. 이 경우에는.”
곤란하다고?
뭔가 이상한데…….
잠시 우리를 바라보던 GM 훈이 곧장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하아, 사실 아스티아는 우리가 손을 댈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그 말에는 나 또한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운영자가 손을 못 댄다고?
그게 말이 되는 건가?
“일단 제게 권한이 없기도 하고요. 그리고 여기서는 더 이상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운영 정책상 극비에 해당하는 사항이라…….”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꽤 곤란해하는 것을 보면 더 물어봐도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아무래도 뭔가 있는데…….
재중이 형이 뭔가를 생각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뭐 그건 차차 알아 가기로 하고. 그래서 결국 우리 쪽에서 아스티아를 컨트롤해 줬으면 한다 이겁니까?”
“네, 지금은 그게 최선입니다.”
그러면서 GM 훈이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스티아가 주호 님 주변에 붙어 있는 편이니, 주호 님이 고대 드워프 왕을 피해 주시는 것이 좋겠죠.”
“그건 좀 말이 안 되는데요?”
마족이 된 고대 드워프 왕이 부활하면 자연스럽게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나한테 핵심 역할을 하는 고대 드워프 왕을 피해 다니라고?
이건 우리에게 고대 드워프 왕을 잡지 말라는 소리와 동일했다.
그것도 시나리오가 일어나는 동안.
재중이 형도 같은 생각인지 바로 반대했다.
“피해 다니는 거야 그렇다 치고, 아예 못 잡도록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시나리오가 제대로 진행되도록 도와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나중에는 잡아도 된다?”
“네, 그것까지 막는 것은 도가 지나치겠죠. 운영 정책상 어긋나기도 하고.”
결국 고대 드워프 왕을 잡아도 되는데 지금은 하지 말아 달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꼭 아스티아가 반드시 고대 드워프 왕을 죽인다고 생각하시네요?”
내 의문에 다들 이상한 것을 눈치챘는지 시선이 GM 훈에게 모아졌다.
분명히 전에 아스티아가 고대 드워프 왕을 봤음에도 그다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을 봤으니까.
개구리로 만든 고대 드워프 왕을 신기한 듯 쳐다봤을 뿐이었다.
가짜 토르에 그냥 장난치듯 저주도 완성시켜 주었고.
“아, 그게 정확히 말하자면 주호 님 때문입니다.”
“네?”
저건 무슨 말이지?
“휴, 아스티아가 주호 님에게 너무 관심이 많아서요. 아마 주호 님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 아스티아가 나설 확률이 아주 높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설마요…….”
아니지.
분명히 아스티아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내가 죽을 위기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때 아스티아가 대답하길 나만 살려 준다고 했던가?
다른 말로 나한테 위협이 되는 존재가 고대 드워프 왕이라면…….
정말 죽여 버릴지도.
GM 훈이 계속 말했다.
“그리고 용마족의 가호를 받지 않았습니까. 높은 확률로 그렇게 될 겁니다.”
“용마족의 가호가 그런 식으로 적용되는 건가요?”
“네, 아스티아가 워낙 종잡을 수가 없어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 쪽에서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재중이 형이 GM 훈의 말을 듣고는 피식 웃었다.
“말로만 가호가 아니라는 거군.”
“하하, 좀 그렇죠. 아스티아의 우호도가 큰 영향을 미칠 겁니다.”
용마족의 가호라…….
결국 내가 움직이면 아스티아가 같이 움직일 확률이 높다는 말이었다.
그럼 여기서 주판을 튕겨 봐야 하나?
“공짜로 해 달라는 것은 아니겠죠?”
단순히 유저들의 힘만으로 고대 드워프 왕을 잡게끔 만들어 두진 않았을 것이다.
가르시아 제국과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을 봐서는 이쪽이 타당할 터.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마족이 된 고대 드워프 왕과 조우하지 못하는 동안 다른 유저들이 잡아 버릴 수도 있는 일.
혹은 제국의 NPC가 나서서 싸울 수도 있었고.
가만히 구경만 하다가 다른 녀석들에게 선수를 놓칠 수 있었다.
그런 일들을 감안하고 지금 우리에게 제안을 했으면 당연히 우리도 조건을 걸어야 했다.
“하, 그냥은 안 넘어가 주시네요.”
“제가 공짜는 싫어해서.”
내 대답에 GM 훈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책상 특별한 사유가 아니고는 게임 내 물품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주시던데요?”
이전에 버그를 발견하고 안지운 팀장에게 데스나이트 무기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네, 덕분에 운영 정책을 싹 뜯어고쳐야 했죠. 몇 날 며칠을 세었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안지운 팀장님이 달달 볶으셔서.”
“그럼 아스티아를 데리고 한번 나들이나 다녀와야겠네요. 제국에도 한번 들려 볼까나. 볼일이 있다고 하던데.”
그 말에 GM 훈이 화들짝 놀라면서 나를 말렸다.
“하하……. 그건 좀 참아 주시죠.”
“그러면 어떻게?”
“음, 직접적으로 아이템을 드릴 순 없습니다. 형평성 문제도 있거든요. 예전에 데스나이트 무기를 지급하고 난 뒤 정말 내부에서 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정보 정도는 드릴 순 있겠죠. 얻고 못 얻고는 본인의 능력에 달린 일이니까요. 조금의 지름길을 제공하는 정도는 괜찮습니다. 사실 이쪽도 형평성 문제가 있긴 하죠. 만약 정보가 싫으시다면 시말서 좀 쓰고 아이템으로 드리겠습니다.”
정보라…….
그럼에도 정보가 싫다면 아이템을 준다는 건가?
반응을 봐서는 GM 훈이 독단적으로 생각하고 나온 것 같진 않았다.
아마 안지운 팀장의 허가를 받았을 터.
그럼 GM 훈이 줄 수 있는 한도가 딱 여기까지란 말이었다.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에게서 귓속말이 왔다.
<불멸> 솔직히 여기서 일반 아이템을 더 받아 봐야 큰 의미가 없어. 유일 아이템이나 마족의 심장 정도가 아니면.
<주호> 그럼 정보로?
<불멸> 그쪽이 좋겠지. 그리고 괜히 여기서 GM하고 얼굴 붉혀 봐야 서로 피곤할 테고.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아이템이면 어느 선이죠?”
“음, 아마 강화석 수준이 될 겁니다. 그 이상은 제 재량을 넘어가서. 흠, 하지만 이걸로는 성이 안 차시겠죠?”
“좀 그렇죠.”
돌려서 말했지만 정보로 받는다고 말한 것과 다름없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GM 훈이 한숨을 쉬면서 말을 했다.
“이것도 사실 말하면 안 되는 거긴 하지만 유일 아이템 중 하나의 위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다들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이 정도까지 줘 버릴 줄이야.
“아, 정확한 위치는 아닙니다. 근처의 좌표 정도만 찍어드리죠. 확인해 보니 이미 상당수의 지도를 모으셨더군요. 지도 조각을 더 모아야 하는 수고를 조금 단축시켜 드리는 정도입니다.”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 일단 받아. 애들이 정보를 빨리 모아서 언제 따라잡힐지 몰라.
<주호> 네, 알았어요.
“나쁘지 않군요. 그걸로 하죠.”
그러자 GM 훈이 다가와 내 지도 중 한 곳에 좌표를 찍어 주었다.
“광풍의 바르칼입니다.”
광풍의?
바람 속성인가?
“아직 까만 지역이네요.”
레릭 왕국에서 거리도 상당히 멀었다.
여기를 찾아가려면 다른 걸 포기해야 할지도.
아니지, 왕실 비공정이 있으니 어떻게든 되려나.
“말씀해 주신 기간 동안은 제가 고대 드워프 왕을 죽이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안심하고 가 보겠습니다. 만약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유일 템의 위치를 다른 곳으로 옮기겠습니다. 그 정도는 가능합니다.”
“뭐 그렇게 하시죠.”
그렇게 사라지려던 GM 훈이 뭔가 깜빡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 이건 서비스. 조만간 2차 대회가 열릴 겁니다.”
“그래요?”
“예전하고는 방식이 조금 달라지긴 하겠지만요.”
“미리 알려 주셔도 되나요?”
“어차피 곧 발표가 날 거라. 1차 우승자에 대한 작은 성의라 생각해 주시죠.”
그렇게 말하고는 GM 훈이 문으로 왔을 때와는 달리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2차 대회라…….
아마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러고 옆에 있는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제일 힘든 사람이 옆에 있으니.
재중이 형도 대회라는 말에 웃음을 보였다.
“재밌겠네.”
“네, 그렇죠.”
거기다 프로 유저들까지 있으니 아마 쉽지는 않을 터.
“대회는 시간 날 때마다 연습해 보자고.”
재중이 형의 말에 챠밍과 이쁜소녀를 포함해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과 달리 상위권에 들어가려면 꽤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미리 알게 된 이점은 거의 이 정도.
그 밖에는 딱히 준비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새 유일 템의 위치.
“찾아가 볼까요?”
“위치가 너무 멀어. 중간에 거점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할 거야.”
당연히 거점을 만들면 개떼처럼 몬스터들이 몰려들 테니.
연합 사람들을 죄다 빼 와야 할지도 모른다.
이것도 현재는 부담스러운 일이라.
다른 좋은 방법이 없나?
좀 생각해 봐야겠는데.
그때 아스티아가 갑자기 내 옆에 나타났다.
“뭐해?”
내 옆으로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고 하더니 정말 아무 곳에서 나타났다.
그런 아스티아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가 확 하고 스쳐지나갔다.
흐음, 혹시 이게 되려나?
“아스티아, 재밌게 해 달라고 했죠?”
“응? 재밌는 일 있어?”
이게 과연 아스티아를 재밌게 할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질러 볼까.
“혼자 너무 강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주변에서 아스티아와 싸워 이길 존재는 없다고 보면 된다.
사냥터가 더 올라가면 또 모르겠다만.
“혹시 병정놀이 좀 해 볼래요?”
“그게 뭐야?”
“아스티아가 장기를 두는 거죠.”
몇 가지를 물어봤더니 아스티아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해 주었다.
그리고 매혹적인 눈웃음을 하면서 나를 바라봤다.
“너, 정말 당대 용사의 씨앗은 맞지? 무슨 용사가 이래?”
“하하…… 아마도요.”
뭐, 맞겠지?
어쩜 아닐지도?
* * * * *
얼마 뒤.
예전에 고대 드워프 왕이 개구리가 되어 죽은 지하로 다시 돌아왔다.
아스티아와 우리 팀을 데리고.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그러자 아스티아가 몸에서 원천마력을 약간 꺼내더니 고대 드워프 왕의 잔해가 있는 곳으로 날려 보냈다.
그리고 잔해에 원천마력이 흡수되는 모습을 지켜본 막내별이 혀를 찼다.
“와, 악마가 따로 없어.”
나르샤 누나도 나를 놀리듯이 똑같은 말을 했다.
“악마가 울고 가겠어. 정말.”
전사 형도 마찬가지.
“난 네가 우리 편이라는 게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챠밍과 이쁜소녀는 차마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거의 비슷한 표정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했던 대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댔다.
《 고대 드워프 왕이 아스티아의 원천마력을 받아 마족의 형태로 부활합니다. 》
분명히 마족의 원천마력을 받아 부활한다고 했었지.
그럼 그 마족이 누가 되든 무슨 상관일까.
재중이 형도 그 모습을 보고는 크게 웃어 댔다.
“크큭, 아주 제대로 전쟁을 일으켜 보겠다는 거냐?”
“네, 이왕 전쟁 나는 거. 우리 손으로 한번 해 보죠.”
시나리오가 어쨌든 전쟁만 일어나면 장땡 아닌가?
GM 훈도 고대 드워프 왕을 죽이지 말랬지, 써먹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니까.
마족과 인간의 전쟁.
그 전쟁의 서막은 여기서 시작한다.
바로 용사인 내 손으로.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