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6화 고대 드워프 왕과의 딜 (2)
스칼렛의 연락을 받고 난 뒤에 생각한 점.
굳이 우리 손을 더럽힐 이유가 있나.
지금 눈앞에 뭐든지 해 줄 녀석이 있는데.
물론 이건 꽤 정도를 벗어난 방법이었다.
될지 안 될지 확신이 없는.
<불멸> 되면 좋고 안 되도 뭐 큰 상관은 없겠지.
재중이 형도 이게 확실히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과거에 가르시아 제국에서 유저들을 죽인 적이 있기는 한데 그때는 원래 적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때였고.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억지로 적대 관계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니까.
과연 될까?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앞으로 NPC들을 대하는 자세를 완전히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고대 드워프 왕이 확인을 하기 위함인지 다시 한 번 물었다.
『 레릭 왕국에서 쫓아내 달라? 』
일단 들어는 보겠다는 건가?
진행 상태는 나쁘지 않다.
“적대적인 모험가들이 있는데 꽤 거슬려서 말이지.”
그러자 고대 드워프 왕이 뭔가를 생각하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 영웅의 씨앗이 상대하지 못할 정도의 모험가들을 처리해 달라는 요청이면 이쪽이 손해인데? 』
반은 먹혔나?
적어도 거절은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 그렇게 강한 것은 아니고. 좀 귀찮은 정도야. 상대는 안 되는데 자꾸 와서 귀찮게 하는 딱 그런 정도.”
『 그런가? 』
그리고 고대 드워프 왕이 다시 생각에 들어갔다.
<불멸> 아무래도 유저와 관련된 사항이다 보니까 결정에 시간이 걸리는 걸지도.
<주호> 기다려 보죠.
얼마 뒤 고대 드워프 왕이 말을 꺼냈다.
『 좋다. 들어주지. 』
일단 퀘스트 같은 것은 뜨지 않는다.
그렇다는 말은 제작자의 의도와 완전히 방향이 엇나간 상태라는 점.
원래 기획된 시나리오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진행이 시작됐다.
그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고대 드워프 왕에게 길드 이름을 넘겨주니 바로 진행이 되었다.
《 레릭 왕국에서 트윈스 길드에 적대 선포합니다. 》
《 레릭 왕국에서 무지개 길드에 적대 선포합니다. 》
《 레릭 왕국에서 메텔 길드에 적대 선포합니다. 》
.
.
.
줄줄이 올라오는 적대 선포.
그걸 확인하고는 재중이 형과 마주 보고 씨익 웃어 보였다.
<불멸> 보기와 달리 일처리가 빠르네.
<주호> 네, 생각 이상이네요.
그만큼 몸이 달아올라 있다는 말인가?
바로 채팅창을 확인하자 난리가 났다.
- 아씨. 뭐야? 적대 선포?
- 젠장, 드워프들이 공격한다!
- 이놈들은 왜 이렇게 세?
- 아놔, 애들 다 죽겠다. 상대가 안 돼!
- 드워프 이 새끼들 미쳤나?
- …발! 일단 도시 밖으로 튀어!
- 죽은 애들 다 어디야?
- 레릭 왕국 바깥으로 강제로 튕겼어. 안에서 부활 안 되는 듯.
- 하, 진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냐.
개판.
도시 내에서 드워프 들이 공격을 하자 평소처럼 돌아다니던 녀석들이 일제히 공격을 당해 강제로 레릭 왕국에서 추방되었다.
그것도 한두 개 길드가 아닌 수십 개가 동시에.
<주호> 제대로네요.
<불멸> 나, 갑자기 이 녀석이 마음에 들려고 하는데?
재중이 형의 말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나도 좀 그렇네.
아낌없이 주는 나무.
딱 그런 녀석이었다.
속에 다른 생각이 가득 차 있다는 것만 빼면.
어차피 고대 드워프 왕에게는 이런 일들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마족의 신체만 가지면 그때부터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유저들도 죄다 적대관계가 될 테니.
물론 당분간은 정체를 숨기겠지만.
그때까지는 이 상태가 유지는 되겠지.
뭐 여차하면 아스티아에게 부탁해서 이 녀석을 처리해 버리면 되겠지만, 과연 아스티아가 그걸 해 줄지는 의문.
내게 호감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지만 그렇다고 모든 부탁을 다 들어준다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아스티아에게 부탁을 하면 역효과가 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쪽은 패스.
고대 드워프 왕이나 아스티아.
둘 다 생각 이상으로 자유도가 높은 녀석들이라 어떻게 튈지 모르니.
뽑아 먹는 것도 적당한 선을 지켜야 했다.
<불멸> 여기까지만 하면 될 것 같다.
재중이 형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바로 귓속말이 왔다.
<주호> 네, 여기까지 하죠.
진짜 유일 아이템인 토르.
10강 무기 강화석.
암흑혈의 조각.
15강 이후의 강화 방법.
그리고 걸리적거리는 유저들의 퇴출까지.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뽑아 먹었다.
그때 고대 드워프 왕이 말을 꺼냈다.
『 그럼 이제 토르를 받지. 』
“암흑혈부터 주시죠?”
그러자 고대 드워프 왕에게서 암흑혈의 조각 300개를 바로 받을 수 있었다.
<불멸> 후한데?
<주호> 네, 작정했나 봐요.
암흑혈의 조각 300개면 몇 개 파티 정도는 바로 무장시킬 수 있는 양이었다.
현재 정말 안 나온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값어치 역시 상당했다.
내 쪽도 방어구를 좀 더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고.
『 이제 토르를 줄 수 있겠지? 』
미안한데.
못 줘.
지금은 뻥카로 빼먹은 거라.
사실 없거든.
그래서 우리에겐 시간이 좀 필요했다.
“적대 선포가 바로 풀어지면 우리가 곤란해서. 지금부터 딱 이틀 후. 그때 준다.”
그러자 고대 드워프 왕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 이 녀석이!! 당장 네 녀석들부터 죽여 버릴 수도 있다! 』
엄청난 기세로 우리를 노려보는 고대 드워프 왕을 보고는 나 역시 인상을 썼다.
여기서 고대 드워프 왕이 폭주하면 곤란하지.
그럼 녀석의 분노를 억누를 수 있는 뭔가를 걸어야 해.
“약속의 의미로 내가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지. 여차하면 날 죽여 버리면 되잖아?”
『 뭐?! 』
고대 드워프 왕의 눈이 놀람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옆에 있던 재중이 형도 당황했는지 급하게 귓속말이 날아왔다.
<불멸> 야, 너 미쳤어?
<주호> 아직은 멀쩡해요.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그만한 걸 걸어야죠. 시간을 벌어야 해요.
<불멸> 너 대체 어디까지 갈려고?
<주호> 레릭 왕국을 통째로 먹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 녀석도요.
<불멸> 하, 미친 자식. 승산은 있어?
재중이 형의 걱정에 씨익 웃어 보였다.
<주호> 제가 언제 정면으로 붙는다고 했나요?
<불멸> 너, 이 자식. 뭔가 준비해 놨구나?
<주호> 아무것도 없이 덤벼들지는 않죠. 이런 경우에는.
『 너 자신을 건다라……. 좋다. 』
그때서야 고대 드워프 왕이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실상 내가 죽으면 르아 카르테가 날아가는 것이라.
나를 건다는 것은 르아 카르테를 건다는 것과 동일했다.
이런 도박수가 통했는지 얻을 것을 다 얻어 내면서도 재중이 형이 나가는데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확실히 재중이 형이 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몇 가지 설명을 해주었더니 재중이 형이 키득거리면서 웃어버렸다.
<불멸> 와, 이 미친 새끼. 처음부터 이걸 노렸어?
<주호> 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먹으려고요.
<불멸> 나 참. 이러니 그렇게 당당하게 딜을 했지. 오케이. 좋다, 내가 확실하게 준비해서 다시 간다. 꼼짝 말고 기다려.
<주호> 형이 잘해 주셔야 해요. 아마 아스티아가 짜증을 낼지도 몰라요.
<불멸> 큭, 알았다. 잘 달래 보지.
또다시 이틀이라는 시간을 날리게 되었지만 이건 백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니까.
* * * * *
이틀 동안 많은 일이 생겼다.
첫째로 다시 내가 잠수를 타면서 소문이 무성하게 흘러나왔다.
이전에 르아 카르테를 수리하는 시간과 여기 묶여 있는 시간을 합쳐 레벨이 150에서 거의 십 일 넘게 멈춰 있으니까.
게임을 접었다느니.
이제 접속을 안 하다느니.
- 정말 접은 것 아닐까?
- 에이, 랭킹 1위가 접긴 왜 접어.
- 이틀 전에 한 번 봤는데? 접은 건 아닌 듯.
- 그냥 접속을 안 하는 모양인데? 봤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음.
- 이건 기회지. 레벨 150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따라잡아.
- 뒤에 애들 진짜 눈에 불을 켜고 사냥하는 중임.
- 특히 지하 무덤 사냥터 완전 불붙었지.
- 상위 길드 에이스들 레벨 올린다고 살벌하던데?
- 근처만 가도 바로 칼 날아오더라. 방해하지 말라고.
- 몰아주기도 장난 아님.
- 암흑혈도 나오는 족족 다 사 버리고. 지금 시장에 나오면 1초 만에 순삭임.
그사이 유저들이 발 빠르게 내 레벨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겨우 벌려 놓은 레벨의 격차가 좁혀지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지하 무덤 자체의 경험치가 높다 보니, 유저들의 레벨이 상당히 빠르게 올라왔다.
특히 프로 팀을 비롯한 자원이 빵빵한 길드들, 혹은 기존의 강자인 상위 길드들의 일부 유저들이 정말 엄청난 속도로 경험치를 쌓아 갔고, 그러면서 매일 랭킹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보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었다.
그리고 다른 소식은 레릭 왕국에서 쫓겨난 유저들의 동향이었다.
아예 바깥으로 빠진 건가?
레릭 왕국의 전투형 NPC들이 워낙 강하다 보니 도저히 뚫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이다 아예 다른 사냥터를 찾아 빠진 것 같았다.
우리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합은 그렇게 레릭 왕국에서 완전히 쫓겨나 버렸다.
스칼렛 말로는 뒤에 끈이 더 있다고 하던데.
아직 거기까지는 찾아내지 못한 모양이었고.
일단 저 정도로 타격을 준 것만 해도 괜찮으려나.
적어도 그 이후에는 사냥터에서 우리 길드를 건드리는 간 큰 녀석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적대 선포를 당한 유저들의 대부분이 그때 우리에게 시비를 걸었던 길드라는 소문이 다 나 버렸기 때문에.
- 와, 주호 점마는 레릭 왕국을 어떻게 움직인 거지?
- 클라스가 다르네. 지들 좀 건든다고 왕국 동원하는 것 봐라.
- 가르시아 제국 공작인데 저 정도 능력은 있는 듯.
- 이래서 작위, 작위 노래를 부르는구만. 공작쯤 되니까 파워가 장난 없네.
- 쫓겨난 애들은 어떻게 됨?
- 모르지. 밖에서 지들끼리 산다는 말이 있던데.
- 괜히 건드려 가지고 망했네.
- 주호가 레벨은 안 올리고 정치질하는 모양.
- 저렇게 할 수만 있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음.
흠, 딱히 공작이라서 녀석들을 추방한 것은 아닌데.
순전히 고대 드워프 왕과 딜을 해서 얻어낸 결과라 좀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공작 작위로 부탁했어도 됐으려나?
지금은 재중이 형과는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면서 인질로 잡혀 있었다.
<주호> 준비는 어느 정도 됐어요?
<불멸> 거의 다 됐다. 아스티아가 좀 짜증 내기는 했어.
<주호> 다들 살아는 있죠?
<불멸> 크큭, 설마 죽었을까. 네 이름을 대니까 딱히 거절은 안 하더라고.
<주호> 다행이네요. 소녀는요?
<불멸> 진짜 토르?
<주호> 네, 이제 괜찮나요?
<불멸> 튼튼해. 성능도 더 좋고. 나중에 보여 줄게. 지금 토르 성장시키고 다니는 중이다.
<주호> 소녀가 좋아하겠네요.
<불멸> 크큭, 말도 마라. 챠밍하고 소녀가 너 인질로 잡혀 있다니까 처음에 구하러 간다는 걸 말린다고 혼났다.
분명히 그런 적이 있었다.
챠밍하고 이쁜소녀가 동시에 연락이 왔었지.
둘 다 얼마나 걱정을 하던지.
진짜 죽는 것도 아닌데 이러면 잡혀 있는 내가 오히려 미안할 정도였다.
현재 이곳에서는 떠날 수 없게 결계가 따로 쳐져 있었다.
들어오는 것도 안 되고.
철저한 격리.
이 정도쯤 되니까 고대 드워프 왕이 재중이 형을 내보내 준 것이다.
그리고 약속한 이틀째가 되자 고대 드워프 왕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 약속한 물건은? 』
“곧 올 겁니다.”
『 좋군. 드디어 내 오랜 소망이 이루어지는 건가. 』
“그렇게까지 해서 마족이 되려는 이유가 뭐죠?”
『 넌 이해하지 못한다. 닿지 못하는 곳에 닿으려면……. 』
흐음.
닿지 못하는 곳이라.
장소를 지칭하는 건지 아님 어떤 목표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네.
<불멸> 왔다.
<챠밍> 우리 왔어요.
드디어 도착했나?
고대 드워프 왕과 하던 이야기는 어느새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결계를 열어 주시죠? 도착한 것 같은데.”
그러자 우리 팀이 들어올 수 있도록 고대 드워프 왕이 결계를 열어 주었다.
다들 그동안 장비를 다 업그레이드시킨 듯 전에 볼 때와는 모습이 달라 보였다.
“이틀 만에 보는데 되게 반갑네요.”
그리고 챠밍을 보면서도 웃어 보였다.
“온다고 수고했어. 물건은?”
“오빠가 들고 있어요.”
“여기 있다.”
재중이 형이 품에서 가짜 토르를 꺼내서 내게 넘겨주었다.
그걸 본 고대 드워프 왕이 흥분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오! 드디어! 』
<불멸> 잘 안 되면 알지? 아스티아급 아래의 마족과 치고박아야 할지도 모른다.
<주호> 네, 잘 되길 바라야죠.
“여기, 약속한 물건이다.”
가짜 토르를 넘겨주자 시스템 메시지가 엄청나게 울려 댔다.
《 고대 드워프 왕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고대 드워프 왕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고대 드워프 왕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
얼마나 좋아하는지 호감도가 미친 듯이 상승했다.
그래, 지금을 즐겨 둬라.
과연 조금 후에도 그렇게 좋아할지는 한번 두고 보자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