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1화 최강의 유저? (2)
표정에서 오는, 뭔가 빈정이 상한 듯한 느낌적인 느낌.
그리고 이건 내게 그다지 나쁘진 않았다.
사고를 이쪽으로 쳐 주면 오히려 고맙지.
어차피 한 번은 터질 예정이라면.
지금 이곳은 꽤 괜찮은 장소라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말린다고 말려질 것 같지도 않고.
이미 마음을 먹은 모양인데 마음대로 하게 두는 편이 나았다.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아스티아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하, 생각보다 열이 받아 있었나?
저건…….
스킬이나 뭐도 아니다.
잔상이 겨우 남을 정도로 바닥과 바닥을 박차면서 속도를 올리는 특급 가속력.
사람은 사물이 시야 바깥으로 너무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 순간 움직임을 놓치게 된다.
아마 일정 수준 이상의 인지 능력이 있어야 겨우 아스티아의 뒤꽁무니나 구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스티아가 평범한 사람이 볼 수 있는 인지 능력 이상의 이동 속도로 움직이자, 우리 앞을 막던 유저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 앞에서 사라졌…….”
“마법사?!”
“뭐야? 찾아!”
고개를 돌려 아스티아를 보려고 하겠지만 그게 쉽게 된다면 내가 대련을 하면서 그렇게 두들겨 맞진 않았겠지.
콰득!
그리고 제일 외곽에 있던 유저의 턱이 돌아가지 말아야 할 방향으로 억지로 돌아가면서 바로 목이 부러져 버렸다.
즉사.
저건 HP가 남아 있고 없고의 문제는 이미 아득하게 넘어갔다.
아마 저 한 방에 모든 HP가 증발해 버렸을 것이다.
급소를 치는 것도 모자라 강력한 타격력으로 목을 돌려 버렸으니까.
단순히 팔을 휘둘러 손바닥으로 턱을 쳤을 뿐인데 저런 타격력이라니…….
나와 대련할 때는 정말 많이 봐주면서 한 거네.
거기다 소름 끼칠 정도로 힘의 배분이 완벽했다.
목이 돌아갔음에도 당한 유저의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압도적인 스피드로 움직이면서도 한 점에 완벽하게 힘을 꽂아 넣는다라.
저건 자신의 힘을 완벽하게 컨트롤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만히 서 있는데 목만 휙 돌아가는 옆 사람을 본 유저의 심정은 어떨까.
“헉!”
“꺄악!”
기괴한 공포물도 아니고.
목만 돌아간 사람의 모습을 보는 일은 정말 보기 힘든 사건이었다.
물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쉐엑!
쉐엑!
파앗!
타앗!
그저 들리는 것은 바람 가르는 소리와 가끔 바닥을 박차는 소리뿐.
그리고 그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유저들의 목이 하나둘씩 꺾여 나가면서 공포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
보이지도 않는데 목만 돌아가는 엽기적인 모습.
심지어 탱커라고 장비를 거창하게 걸치고 있는 유저마저도 헬름과 함께 목이 반대로 돌아가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쓰러져 버렸다.
방어구 따윈 있으나 마나.
어느 정도 수준이 맞아야 공방이 될 텐데.
지금은 그냥 치면 치는 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의 뺨을 그대로 내어 주는 수준이었다.
거기다 아스티아는 여성 유저라고 해도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보다 못해 뒤에서 마법을 쓰려던 여성 유저의 목도 긴 머리를 휘날리면서 돌아갔다.
“케엑!”
단말마의 비명은 그 유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이었다.
정면만 신경 쓰던 적들의 뒷목을 싸늘하게 만드는 움직임.
뒤에 있던 유저의 목이 똑같이 돌아가자 사람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떻게 뒤쪽으로?!”
“젠장! 흩어져!”
단순히 앞만 막으면 어떻게 될 것이라 생각한 건가?
아스티아가 벽을 한 번에 차고 뒤로 넘어간 것은 아무도 인지를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학살.
마치 허수아비처럼 픽픽 쓰러지는 유저들과 혼비백산해서 흩어지는 유저들의 모습을 보고는 바로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이 전부 바보는 아니지.
분명히 아스티아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할 텐데.
그럼 랭킹에 없다는 사실 정도는 바로 알아챌 것이다.
“악! 이 괴물!”
“대체 뭐야 이년은!”
그런데 이년이라고 한 유저의 정면에 아스티아의 신형이 나타났다.
“헉!”
“너냐? 아까부터 이년이라고 한 놈이?”
“아, 아니 그게……!”
표정이 싸늘하게 변한 아스티아가 순간 모습이 사라지더니 녀석까지 한꺼번에 모습이 사라졌다.
콰앙!!
그리고는 강력한 공파음과 함께 저 멀리 벽이 심한 균열을 일으키면서 거미줄같이 쩌억 갈라졌고, 그 중간에 녀석이 고스란히 처박혀서 그대로 즉사해 버렸다.
정확하게는 아스티아가 녀석의 머리를 잡고 벽에다가 꽂아 넣은 모습이었다.
녀석이 같이 사라진 이유가 저거였나.
아스티아가 녀석의 머리를 잡고 고속으로 움직이니까 동시에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히익!”
“미친……!”
한 사람의 무게를 달고 저렇게 보이지도 않게 움직이려면 얼마나 격차가 나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었다.
그 정도로 멍청이들은 아니니까.
아니 이미 아스티아가 보이지 않던 시점부터 거의 대부분 전의를 상실했다.
뭐가 보여야 게임이 되지.
초가속.
헤이스트 같은 스킬은 그냥 씹어 먹는 능력 발현에 유저들의 기세가 한 번에 죽어 버렸다.
그런 유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스티아가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아씨, 손맛만 버렸네.”
여기 모인 유저들도 나름 서버 내에서 잘나간다고 싶은 유저들을 모아다 놨을 것이다.
지하 무덤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일정 수준 이상의 장비나 능력은 되어야 사냥이 되고 싸움이 된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 장비를 업그레이드 시켜 놓은 것을 보면 자금력도 제법 괜찮아 보였고.
나를 막을 생각이라면 아주 어중이떠중이들로 막지도 않았을 테지.
그런데 그런 유저들을 아무것도 아닌 양 밟아 버리자 저런 질린 표정이 나올 수밖에.
물론 아스티아는 전혀 그런 것에 관심도 없었다.
손맛을 버렸다던 아스티아가 다른 유저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나를 보면서 말했다.
“갈 거야?”
“아, 가야죠.”
평온한 수준의 대화.
하지만 주변에 있는 유저들은 우리 둘의 대화에 전혀 끼지를 못했다.
이전처럼 한마디 했다가는 바로 목이 날아갈 것을 알기에.
어차피 덤벼 봐야 뒤꽁무니도 못 보고 목을 돌아가는데 여기서 입을 열 간 큰 유저가 과연 있을까.
“가시죠.”
『 흠흠. 』
나와 카르바할이 움직이려는데 적들이 순간 나와 아스티아 사이를 막아섰다.
포기한 것이 아니었나?
그런 적들을 보면서 말했다.
“어디 연합 소속 길드입니까?”
“큭. 그걸 말할 것 같냐.”
“뭐, 기대도 안 했다.”
어차피 반말인데 이쪽에서 존대로 갈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앞에 있던 남자가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
“저건 대체 뭐 하는 여자냐?”
내 말에 적들의 시선이 곧장 아스티아에게 옮겨갔다.
그런 그들에게 한마디 했다.
“궁금하면 목숨을 걸어.”
그래 봐야 알 길은 없겠지만.
그때 앞에 있던 남자에게 연락이 왔는지 급하게 뭔가 속삭이는 모습이 보였다.
아래에서 연락이 온 건가?
바로 아스티아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귓속말을 그냥 두라는 것.
내 신호에 아스티아가 그냥 녀석을 내버려 두었다.
“알아서 해.”
나와 아스티아의 신호를 전혀 모르는 녀석이 누군가와 한참 이야기를 하던 중 바로 성질을 냈다.
“이건 약속하고 다르잖습니까! 우린 주호만 막으면 된다면서!”
역시 누군가에게 오더를 받고 있는 거였나.
그리고 뭔가를 전해 들은 듯 녀석의 표정이 확 죽어 버렸다.
“…발!”
그런 녀석을 보면서 직감했다.
역시 싸워야겠는데.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똥 씹은 표정으로 오더를 내렸다.
“그냥 쳐!”
당연히 그 말에 같은 길드원들이 불같이 화를 냈고.
“지금 장난해요?”
“아, 길마. 이건 아니지.”
“다 죽으라고?”
그런 길드원들을 향해 길마로 보이는 그 남자가 짜증을 냈다.
“어차피 다 죽을 생각으로 온 거잖아. 뭘 망설여?”
“젠장. 시간 끌기도 안 되는 거 길마도 잘 알잖슈.”
그 말에 적들이 다시 아스티아를 쳐다봤다.
확실히 아스티아가 규격 외이긴 했다.
“덤비려면 빨리 덤비고. 이쪽도 시간이 널널한 건 아니라서.”
그러자 그 길마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쳐!”
뒤에 남은 육십여 명의 길드원들도 마지못해 무기를 들더니 나에게 덤벼들었다.
아래쪽 상황을 모르니 최대한 빨리 내려갔으면 했는데 결국 시간이 걸리려나.
그런데 그때.
아스티아의 한 손에 뭔가 기운이 응축되더니 크게 손을 한 번 휘젓자 검붉은 반월이 생성되어 전방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날아간 반월은 서 있던 유저들의 허리를 죄다 가르고 지나가 던전 벽을 그대로 뚫고 사라져 버렸다.
“크억!”
“컥!”
한 번에 거의 사십에 가까운 유저들의 허리가 잘려 나가면서 죽음의 빛으로 변해 동시에 사라지자, 운 좋게 범위를 벗어났던 유저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입만 쩍 벌린 채 그 모습을 지켜봤다.
한둘도 아니고 걸리는 유저들을 다 썰어 버린 것도 모자라 던전의 벽조차 뚫고 지나갔다.
반월의 절단력이 이미 유저들의 방어구 수준을 한참 뛰어넘었는데?
그런 스킬을 썼음에도 아스티아의 표정은 평안해 보였다.
전혀 무리를 하지 않은 평타를 날린 것 같은 그런 표정으로 아스티아가 말했다.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
용마족이라는 종족은 정말 터무니없네.
그동안 보아 왔던 녀석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그 한 방에 적들이 바로 전의를 상실했다.
덤벼 봐야 개죽음.
저들 말대로 시간 끌기도 안 되니까.
적들이 질린 표정으로 길을 열어 주면서 다 도망을 가자 아스티아가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손을 털었다.
“오랜만에 썼더니 잘 안 나가네.”
“……그게 잘 안 나간 겁니까?”
“응.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어서 그런가, 위력이 많이 약해졌어.”
그 말에 그냥 할 말을 잊었다.
일단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정상적인 시나리오대로 갔으면 제국이고 뭐고 다 망했겠는데?
그렇게 6층으로 내려가자 곳곳에서 사냥을 하는 유저들이 보였다.
그리고 다들 경계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흘겨봤다.
덤비려는 것은 아닌데…….
자리싸움인가?
일정 이상 넘어오면 치겠다는 의사를 눈으로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그런 유저들을 뒤로하고 7층에 내려가자마자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입구에서부터 난장판으로 싸우는 모습에 바로 우리 쪽 사람들을 찾았다.
저쪽인가?
최강 길드 유저들과 연합해서 자리를 잡고 있는 우리 팀을 보자 꽤 고전을 하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역시 새로운 장비를 착용한 적 연합 유저들이 우리 쪽 연합을 압박하는 중이었고.
혹시 초월 쪽 사람인가 해서 봤는데 그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연합들.
길드만 대략 이십여 개는 넘겠는데.
워낙 수가 많아서 차륜전으로 압박을 하니 우리 쪽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양이었다.
저 정도면 날 막기 위해서 한 개 길드를 통째로 보낼 여력이 충분했다.
아스티아를 바라보자 아스티아는 그다지 이 싸움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카르바할 역시 마찬가지.
하긴, 언제부터 NPC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꺼내 들고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사방에서 둘러싸고 압박을 하던 적 유저들이 내가 접근하자 다들 날 알아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주호?!”
“뭐야? 저 녀석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내려와?”
“방금 싸우고 있다고 안 했어?”
“설마 길드 한 개분이 벌써 다 죽었다고?”
“말도 안 돼.”
“올라간 놈은 왜 보고도 안 해?”
위쪽에 있던 녀석이 아예 말도 안 한 모양이었다.
다 같이 엿 먹으라는 건가?
뭐 내게는 나쁜 이야기가 아니었다.
미리 대비하고 기다렸으면 귀찮아질 뻔했으니.
내가 등장하자 잠시 서로 떨어지면서 소강상태로 변해 버렸다.
저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빨리 내려왔기 때문에.
싸움이 멈추자 전사 형과 챠밍, 이쁜소녀가 나를 보면서 외쳤다.
“휴, 드디어 왔냐!”
“오빠!”
“와, 주호 오빠 왔다아!”
최강 길드 유저들도 나를 보면서 반기는 표정이었고.
전방에서 막고 있던 수호 형과 최종병기 형도 갑옷이 반파된 상태로 나를 반겼다.
저 형들은 지금 접속할 시간대가 아닌데?
설마 이 자리를 지키러 들어온 건가?
대체 여기가 뭐길래.
달 길드나 치맥 길드도 일부 유저들이 합류해서 싸우고 있었는데 접속 시간 때문인지 숫자가 꽤 적었고.
일단 우리 쪽 사람들과 합류를 하기 위해 움직였는데 의외로 상대측에서 나를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흐음, 안 막아?
나와 아스티아, 카르바할이 내부로 들어가기 쉽게 오히려 길을 열어 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합류를 하자 다시 사방으로 녀석들이 우리를 에워쌌고.
재중이 형이 그런 날 보더니 웃으면서 반겼다.
“여! 왔냐?”
“네, 그런데 절 안 막네요?”
“네가 바깥에서 흔들어 대는 것보다 포위하는 게 편할 테니까.”
일부러 자리를 열어 준 이유였나.
“상황은요?”
“그렇게 좋진 않아. 애들 딱 교체 타이밍에 들어와서. 나하고 다른 애들도 쉬지도 못하고 바로 들어왔어.”
“접속 시간 얼마 안 남았죠?”
“어, 빠듯해.”
우리 연합이 가장 약한 전력일 때 치고 들어온 거였군.
이러니 속수무책으로 밀리지.
“토르는요?”
가짜라고는 해도 그 성능 하나는 진짜였다.
이쁜소녀 정도의 컨트롤에 광역 공격이 되는 토르를 쓰면 포위를 박살 내는 건 일도 아닐 터.
그럼 이 정도까지 밀리진 않았을 텐데 뭔가 이상해.
그런데 재중이 형이 한숨을 쉬면서 의외의 말을 했다.
“하, 토르 그거 짝퉁 맞더라. 내구도 엄청 떨어져서 쓰지를 못해.”
“고칠 수는 없나요?”
“아마도 일회용 같다.”
옆을 보니 이쁜소녀가 부서져 가는 토르를 들고 울먹이는 표정이었다.
저거 얻었을 때 그렇게 좋아했는데.
마음이 씁쓸하네.
“그럼 이제 저 토르는 어차피 못 쓰는 거죠?”
“어, 고대 드워프 왕 멱살이라도 잡아야 할 판이야.”
그렇단 말이지?
원래라면 네임드를 잡아 가면서 르아 카르테를 좀 더 가다듬으려고 했는데…….
부서진 토르를 보자마자 계획이 싹 바뀌었다.
이쁜소녀를 보면서 말했다.
“그거 내가 좀 써도 될까?”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