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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92화 (582/1,404)

#592화 반쪽짜리 봉인 (1)

대전사 칼룬의 말에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우리가 지금 상대하고 있는 저 거대한 녀석이 원래 잡아야 하는 놈이 아니라고?

저놈도 어떻게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저렇게 강한데?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만.”

이건 확인해 봐야 해.

그리고 만약 지금 우리 팀이 붙들고 있는 저 녀석을 잡는다 쳐도 퀘스트가 완료되지 않는다면 지금 하고 있는 노력이 헛고생이 된다.

아니, 어차피 빠져나갈 방법이 없으니 잡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가.

『 고대 드워프 왕께서 도움을 받아 봉인해 놓은 존재는 저 마물이 아닙니다. 』

도움을 받아?

이건 드워프 왕을 도와준 누군가가 또 있다는 말인가?

단순히 드워프 왕만으로는 끝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누가 도와줬다는 거죠?”

『 드래곤들입니다. 』

이거 뭔가 좀 개판인데?

드래곤들하고 사이가 안 좋다고 하지 않았나?

자신들을 멸망까지 이르게 한 존재들에게 도움을 받아?

대전사 칼룬도 자신의 말이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지 바로 다음을 추가했다.

『 대전 당시에는 드래곤들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

그 말을 듣고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동안 착각을 하고 있던 것 하나.

여기 이곳은.

단순히 고대 드워프 왕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었어.

“솔직히 말해 보시죠. 여기 대체 뭐 하는 곳입니까?”

내 질문에 대전사 칼룬이 순간 몸을 움찔했다.

역시.

말하지 않은 뭔가가 있었어.

“제대로 말을 해야 할 겁니다. 아니면 우린 그냥 저놈도 손 놓고 가 버릴 테니.”

그러면서 전사 형이 붙들고 있는 네임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니지.

저게 네임드인지도 지금은 잘 모르겠다.

진짜가 아니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는 그냥 잡몹으로 보이기도 하고.

물론 저렇게 강한 잡몹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래도 일단 저 녀석이 풀려나면 이곳 무덤이 개판이 될 거라는 것 정도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흠, 그건 좀……. 』

대전사 칼룬도 이 말에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네.

대체 이 녀석들 뭘 숨기고 있는 거야?

계속 기다렸지만 대전사 칼룬은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말하려고 했다면 이미 했겠지.

혹시 해서 다시 물어봤다.

“말하지 않는 겁니까? 말하지 못 하는 겁니까?”

덜컥.

내 말에 나를 보던 대전사 칼룬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건 말하지 못하는 거려나.

“뭐, 제약이 있다고 치고. 그래서 저 녀석을 잡으면?”

뭔가 수상하기는 한데.

더 파고들면 오히려 대전사 칼룬이 칼을 거꾸로 쥘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말을 멈추었다.

지금도 개판인데 이 녀석까지 난리를 치면 곤란해.

내가 이야기를 돌리자 겨우 녀석이 안도의 숨을 쉬었다.

다 보여.

고대 드워프 왕이 일을 맡겼다고 보기에는 너무 어수룩하네.

『 일단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

일단?

아마도 이건 주어진 퀘스트가 완료된다는 말이겠지.

내 쪽이 됐든.

이쁜소녀 쪽이 됐든.

퀘스트만 완료되면 오케이이기는 한데…….

당장 우리를 죽이거나 방해할 생각이었다면 이쁜소녀에게 영웅의 해머를 내어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고대 드워프 왕이 직접 나설 수 없으니까 줬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의심하기 시작하자 끝도 없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아무리 봐도 고대 드워프 왕이 수상해.

단순히 지금 이 가짜 보스를 잡는 것으로 일이 끝날 것 같진 않았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놈부터 처리하고 다시 이야기를 해 보죠.”

『 감사합니다. 』

속사정이야 어찌 돌아가든지 간에 우리도 필요한 게 많으니까.

걸린 것도 많고.

“이번에도 구경?”

『 아닙니다. 참가하겠습니다. 』

《 드워프 대전사 칼룬이 전투에 참여합니다. 》

그리고는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시스템으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정말 구경만 할 생각이었다는 거네.

확실히 이 녀석도 의심스러워.

퀘스트를 준 녀석들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바로 재중이 형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주호> 들었어요?

<불멸> 아아, 안 들으려고 해도 다 들리더라.

<주호> 어떻게 생각해요?

<불멸> 딱히 방법이 있나. 이 가짜 녀석부터 처리해야지.

<주호> 흘러가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군요.

<불멸> 그래, 아니면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사방을 둘러보는 제스처를 취했다가 사방에 뚫린 통로를 시선으로 가리키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불멸> 뚫고 나갈 수 있었다면 저 녀석이 먼저 나갔겠지.

<주호> 시스템상 못 나간다 이거네요.

<불멸> 어, 그러니 얼른 잡자. 전사가 오래는 못 버텨.

<주호> 아, 그건 걱정 마세요. 이제 칼룬이 들어갑니다.

<불멸> 음, 좋아. 그럼 좀 수월해지겠어.

대전사 칼룬의 스탯은 거의 준 네임드급이었다.

앞에서 버텨 주기만 해도 충분하지.

그리고 대전사 칼룬이 전투에 가세하자 확실히 전사 형의 부담이 확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어글 자체를 대전사 칼룬이 끌고가 버렸으니.

전사 형이 잠시 뒤로 빠져나온 뒤 바로 숨을 몰아쉬었다.

“후아, 살겠다.”

“고생했어요.”

대전사 칼룬이 몸에 오러 스킬을 잔뜩 휘감고 저 가짜 보스와 열심히 치고받는 모습을 보고는 전사 형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진작 싸워 줬으면 편했잖아.”

“그렇긴 하죠.”

NPC와 함께 싸워 본 경험이 없어 얼마나 연계가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저 모습을 보면 어글은 확실히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걸 보고는 재중이 형이 내게 흘리듯 말했다.

“사실 난이도가 너무 높았었어. 겨우 한 파티로 저 정도 수준의 몬스터를 잡으라는 것도 말이 안 되었고.”

“칼룬이 도와줬어야 정상이었겠네요.”

과정이야 어쨌든.

다시 정상적인 방향으로 퀘스트가 흘러갔다.

재중이 형이 바로 막내별에게 말했다.

“칼룬에게 힐 집중하고.”

“알았어요.”

NPC에게도 힐이 들어가니까.

지금 상황에서는 막내별이 칼룬에게 붙는 것이 맞았다.

“전사는 기다렸다가 어글이 튀면 뛰어들어서 바로 잡아. NPC가 유저처럼 유동적으로 어글을 잡을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하니까.”

“알겠습니다. 대기하고 있죠.”

“챠밍은 딜에 집중. 칼룬은 방어력이 좋으니까 굳이 너까지 나서서 힐을 해 주지 않아도 돼.”

“네, 그렇게 할게요.”

전사 형이 탱킹을 할 때는 위기 상황에 챠밍도 옆에서 힐을 같이 넣어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공격에 모든 힘을 쏟아도 된다.

“나르샤, 소녀, 엔느는 전사 믿고 딜을 확실히 넣어. 여차하면 전사가 잡아 줄 거다.”

그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주호 너도 주저하지 말고 딜 다 넣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탱커 역할이 둘이 되니까 운영에 훨씬 여유가 생겼다.

다들 사방으로 흩어져 뱀처럼 길게 뻗은 녀석의 주변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번엔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꺼내 들었다.

일단 내 쪽은 이 조합이 좋아.

발루딘도 괜찮겠지만.

지금 내게 요구되는 옵션은 전체 체력 감소 옵션이니까.

그리고 녀석의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계속 찔러 넣었다.

카각!

카각!

마치 쇠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녀석의 흑색 비늘이 내 블레이드를 계속 튕겨 냈다.

역시 드래곤의 비늘에 맞먹을 정도로 방어력이 좋아.

이 수준의 녀석이 가짜라니.

만약 다른 유저들이 여기에 들어왔다면 정말 기겁을 했을지도 모르겠는데.

땅 위를 계속 빠르게 움직이는 녀석의 움직임을 따라다니며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로 정확하게 같은 비늘을 긁어냈다.

그것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하게 같은 라인으로.

카칵!

카각!

그렇게 따라다니면서 같은 비늘만 공격하길 수십 번.

갑자기 비늘이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이 녀석도 부위 파괴가 돼?

곧장 손을 뻗어 제작 템을 주워들었다.

『 용암 철갑 비늘 / 제작 재료. 』

으음.

대전사 칼룬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니네.

아이템에 딱히 고유 명사나 네임드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드래곤을 잡았으면 드래곤의 비늘 같은 명칭이 있었을 텐데.

손에 느껴지는 강도는 드래곤의 그것과 비슷하니까 아마 성능은 동급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내가 떼어 낸 자리는 빈틈으로 남아 있었고.

“오빠! 잠시 뒤로!”

뒤를 돌아보자 쿨이 돌아왔는지 챠밍이 큰 스킬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장 내가 몸을 날려 뒤로 빠지자 챠밍이 녀석의 몸을 향해 스킬을 날렸다.

【 데몬 익스플로전! 】

예전에 흑마법사가 성벽을 날려 버릴 정도로 강력했던 스킬.

덩치로 보나 등급으로 보나 이 녀석이 제일 잘 통할지도.

그렇게 풀 차징한 데몬 익스플로전이 커다란 뱀의 옆구리에 작렬하자 녀석이 온몸을 꼬아 대면서 괴로워했다.

“크에에엑!!”

그런데 생각 이상의 과도한 반응에 마법을 쏜 챠밍도 깜짝 놀라 눈을 깜빡거렸다.

“어?! 왜 이렇게…….”

이전에 터널을 달리던 녀석을 제지하면서 데몬 익스플로전을 쐈을 때야 다 같이 쏴서 그렇다 치더라도…….

나 역시 의아한 얼굴로 챠밍과 녀석을 번갈아 봤다.

스킬 한 방에?

저렇게 고통스러워한다고?

아니지, 데몬 익스플로전급의 스킬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라보는데 내가 부위 파괴한 부분에서 특이한 점이 발견되었다.

다른 곳에 비해 비늘이 부서진 부위만 유독 검은 기운이 크게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하, 추가 대미지?

비늘이 날아간 부분에서는 방어력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것 같았다.

혹은 아예 방어가 안 된다던가.

이전에 레비아탄을 상대할 때도 이랬는데.

아마 이 녀석도 마찬가지인 모양.

그러면 이야기가 쉬워지지.

문제는 녀석이 챠밍의 공격을 받고는 다시 몸을 크게 꿈틀거리더니 대전사 칼룬을 무시하고 터널로 몸을 이동시켰다.

연속 공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건가?

아니면 약점을 감추기 위해?

둘 중 어느 쪽이 되었든 다시 터널로 들어가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들어간 녀석이 다시 튀어나왔는데 이전과 달리 패턴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전사 형을 바라보자 전사 형도 인상을 찡그렸고.

“순서가 바뀌었어. 한참 동안 다시 살펴봐야 해.”

“귀찮게 됐네요.”

그럼 또 바닥에 용암 흔적이 깔리면서 물약을 상당히 소비해야 한다.

지금도 지나간 자리가 불타오르면서 다시 한 번 이전의 상황이 반복되어 갔다.

피곤해지네.

혹시나 싶어 대전사 칼룬을 보자 터널로 다시 사라지는 녀석을 쳐다보기만 할 뿐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저걸 멈출 수 있나요?”

내 말에 대전사 칼룬이 고개를 젓더니 의외로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응?

어디를 보는 거지?

따라서 고개를 돌렸는데 대전사 칼룬이 이쁜소녀를 빤히 바라보는 중이었다.

이쁜소녀가 깜짝 놀라 토끼 같은 눈동자를 껌뻑거렸다.

“저요?!”

『 아마 영웅의 해머라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

저 돌진을 멈춰 세우는 게 가능하다고?

단독으로?

이건 꽤 놀라운 일이라 모두의 시선이 이쁜소녀에게 모아졌다.

“일단 꺼내 봐.”

“아! 네에!”

재중이 형이 말하자 이쁜소녀가 곧장 무기를 교체했다.

영웅의 해머.

꺼내 들자마자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황금빛 해머에 이쁜소녀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과연 봉인된 무기가 저 네임드급에도 통하려나?

우리끼리 살펴봤을 때 확실히 좋기는 했는데 스킬 몇 개분을 합칠 정도의 위력은 나오지 않았었다.

자신의 키보다 큰 영웅의 해머를 바닥에 끌면서 이쁜소녀도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으음, 일단 해 보자. 칼룬이 괜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니겠지.”

“안 되면요?”

“내가 옆에 따라갈게. 언제라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아! 네!”

여차하면 이쁜소녀를 빼내면 되니까.

“그럼! 가요!”

옆에 붙은 날 믿는 건지 이쁜소녀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 헤이스트! 】

이쁜소녀가 발걸음을 가볍게 한 뒤 녀석이 튀어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3시 방향에서 녀석이 나오자 이쁜소녀가 곧장 스킬을 써서 옆으로 따라붙었다.

【 대쉬! 】

나 역시 옆으로 따라 달렸고.

“으앙, 너무 무거워요!”

속도가 안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려나.

겨우 녀석의 꼬랑지 부근을 잡고는 누가 봐도 무거워 보이는 영웅의 해머를 크게 치켜든 뒤 비늘 위로 크게 휘둘렀다.

이건 해머가 휘둘러지는 건지.

소녀가 휘둘러지는 건지 모르겠네.

“이야압!!”

그렇게 힘겹게 휘두른 황금빛의 해머가 녀석의 검은 비늘에 맞닿았을 때.

큰 변화가 일어났다.

쿠콰아앙!!

갑자기 영웅의 해머와 녀석의 비늘 사이가 강력하게 터져나가며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저건……!

황금빛 뇌전?

영웅의 해머에 닿은 순간 비늘이 통째로 터지더니 저 커다란 뱀의 몸집이 크게 휘청거렸다.

심지어 그 뇌전이 녀석의 몸 전체를 타고 나가며 엄청난 스파크를 연속적으로 일으켰다.

콰지지직!!

그렇게 뇌전이 몸을 잔뜩 태우고 지나가자 녀석도 힘을 잃은 듯 완전히 멈춰 버렸다.

정작 해머를 휘두른 이쁜소녀는 허공으로 튕겨 나가며 멀뚱멀뚱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앳된 비명을 질렀다.

“흐아앙?!”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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