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5화 고대 드워프 왕 (7)
고대 드워프 왕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
이건 내게도 의외의 이야기였다.
드워프 대전사 칼룬이 무슨 수로 여기 먼저 도착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보다는 먼저 고대 드워프 왕을 만난 모양이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같은 드워프인데 이 지하 무덤의 비상통로 정도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이거 괜히 억울한데?
처음에 유저들이 따라 들어오는 바람에 지하 함정으로 떨어지면서 대전사 칼룬과 어쩔 수 없이 떨어졌었다.
만약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 벌써 대전사 칼룬의 안내를 받아 고대 드워프 왕을 만나 봤을지도.
열심히 미로를 통과해 지나왔는데 칼룬은 이미 최하층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만 봐도 이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되었다.
대전사 칼룬이 프리패스권이었는데…….
하지만 이미 지나온 것.
약간 억울하긴 해도 시간을 버렸다는 생각까진 들진 않았다.
미로를 넘어오면서 포인트도 제법 땄고.
아이템도 몇 가지 얻을 수 있었다.
거기다 드래곤 슬레이어의 진화라는 의외의 득템까지 했었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해원이 날 노려보면서 외쳤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뭘?”
물음에 그냥 반문을 했더니 해원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잔뜩 지어 보였다.
“어째서 저 드워프가 널……!”
“아, 칼룬?”
이거 참.
지하 무덤 입구에서 나를 따라온 칼룬을 못 봤을 리는 없고.
대전사 칼룬의 갑주가 달라져서 아예 못 알아본 건가?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해원은 왜 칼룬과 싸우고 있었던 거지?
애초에 말로 해결이 될…….
음, 그건 아니겠네.
칼룬이 처음 날 봤을 때도 배틀 액스를 들이밀었으니 아마 이번에도 뭔가 조건이 맞지 않아 싸우게 됐을지도.
이를 테면.
“칼룬 저자들과 왜 싸우고 있던 거죠?”
해원의 의문을 굳이 풀어줄 필요는 없었지만 사실 이건 나도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내 질문에 대전사 칼룬이 바로 대답을 해 주었다.
『 자격이 없는 자가 제단을 지나가게 할 수 없었습니다. 』
그 말에 해원의 표정이 바로 일그러졌다.
“큭, 저 녀석은 되고 나는 왜 안 된다는 거냐?”
해원의 말에 대전사 칼룬이 단호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 그대는 자격이 없다. 』
그 말은 더욱더 해원의 속을 긁어놓았고.
그러다가 뭔가가 생각난 듯 해원이 인벤 속에서 물품을 하나 꺼내 들었다.
“이래도 내가 자격이 없다는 말이냐?”
해원이 꺼내 든 것은 다름 아닌…….
『 카르바할의 전달 물품 』
칫, 역시.
해원 저놈도 저걸 가지고 있었어.
옆에서 지켜보던 이쁜소녀도 내 옷깃을 잡으면서 불안한 듯 말을 걸었다.
“오빠, 저거!”
“아, 그거 맞는 것 같다.”
“설마 칼룬이 돌아서진 않겠죠?”
지금 해원과 전신 쪽의 유저들이 우리보다 많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저 대전사 칼룬 덕분이었다.
대전사 칼룬이 나와 친한 모습을 보이자 그림 자체가 이상하게 변해 버렸으니.
적어도 저들이 원하는 그런 그림은 절대 아닐 터.
그런데 해원이 대전사 칼룬에게 인정을 받는다면?
만약 그렇게 되어 대전사 칼룬이 중립을 취해 버리면 우리에게는 큰 악재였다.
그래서인지 해원의 손끝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대전사 칼룬의 대답 여부에 따라 지금 이 최하층의 판도 자체가 달라질 테니.
『 음, 이건……! 』
대전사 칼룬도 꽤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이자 괜히 불안해졌다.
분명 전에 내가 저걸 꺼내 들었을 때 칼룬이 극존칭을 하면서 내게 무릎을 꿇었었지.
아마 기억에 ‘드워프 왕의 숨결을 받듭니다’라고 했던가?
이번에도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고.
긴장을 유지하며 대전사 칼룬을 계속 바라봤다.
여차하면 다시 전투를 시작해야 할 테니.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대전사 칼룬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반응이 없어?
이쁜소녀도 그게 이상한지 나와 대전사 칼룬, 해원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에 물음표를 잔뜩 만들었다.
“오빠? 칼룬이 그대로 있어요!”
“으음. 나도 잘 모르겠다.”
뭐지?
왜 반응이 이렇게 달라?
한참을 바라보면 대전사 칼룬이 계속 카르바할의 전달 물품을 바라보았다.
마치 감정이라도 하듯.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카르바할 님의 물건이 맞군. 하지만 그대는 여전히 자격이 없다. 』
어?
대전사 칼룬의 대답이 완전히 다른데?
이쁜소녀도 깜짝 놀라서 말했다.
“오빠, 달라요!”
옆에서 엔느가 궁금하다는 듯 쳐다보자 간단히 말을 해 주었다.
“원래는 저런 대답이 아니거든요.”
해원이 대전사 칼룬의 대답을 듣고는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열쇠가 아니었나?! 왜?! 내가 이걸 얻으려고 돈을 얼마나 들이부은지 알아?”
『 그 물품에는 드워프 왕의 숨결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인장만 있을 뿐. 』
단호한 대답.
그리고 그 대답에서 힌트를 얻었다.
카르바할 이 아저씨.
적어도 우리에게 사기는 치지 않았는데?
해원에게 준 것과 우리에게 준 물품에는 확연히 차이가 있어 보였다.
“그럼 뭘 해야 네게 인정을 받을 수 있지?”
해원이 인상을 구기면서도 돌파구를 찾기 위한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 뭔가가 생각이 났다.
이거 설마?
그건 아니지?
내 예상이 맞다면…….
앞으로 나올 대답은 해원에게 끔찍한 일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 나와 1:1 전투를 해서 이기면 된다. 』
쿵!
순간 해원이 해머로 머리를 수백 번 두들겨 맞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허공에서 뭔가를 확인하고는 더할 수 없을 정도로 표정이 일그러졌다.
“큭, 지금 이 돌발 퀘스트가 말이 된다고 준 거냐?!”
대충 뭘 받았는지는 알겠다.
나도 똑같은 것을 받았으니까.
그런데 계속 기다려도 보상 조건 중에 하나를 말하지 않자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이기면 휘하로 들어온다는 문구가 없는 건가?
그게 있었다면 해원이 말을 하지 않을 리가 없지.
이건 아마도 호감도나 드워프 왕의 숨결에 따라 추가되는 항목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대전사 칼룬과 해원의 대화를 들은 주변에서는 웅성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미친 것 아냐?”
“말이 돼?”
“저 네임드와 1:1로 붙어서 이기라고?”
“네임드 아니고 NPC.”
“그거나 이거나. 센 건 똑같잖아.”
“저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누가…….”
마지막에 누군가 말도 안 되는 조건이라는 말을 하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내게로 돌려졌다.
완전히 굳은 표정으로.
“야, 아까 주호는 인정했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 그런 말은 안 했어. 그냥 고대 드워프 왕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지.”
“똑같은 말 아냐? 주호는 드워프 왕을 만날 자격이 있다는 말이잖아.”
“아, 정말 그렇네? 그럼 설마?”
그렇게 모두 입을 다물어 버렸다.
유저들의 말은 단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지니까.
그리고 누군가가 침묵을 깨고 놀라운 말을 꺼냈다.
“미친. 주호가 저놈을 이겼다고? 그것도 혼자서?”
그 충격적인 결론에 해원 쪽 사람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우리가 다 달려들어도 어떻게 못한 놈을…….”
“버그 쓴 것 아냐?”
“아무리 랭킹 1위라지만 이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엔느 역시 내게 물었다.
“정말 혼자 이겼어요?”
그 말에 그저 미소만 지어 보였다.
“그걸로 대답은 충분하네요. 왜 저 NPC가 당신을 따라다니나 했더니.”
엔느가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 이상을 묻지는 않았다.
뭐 무기 스펙을 좀 빌리긴 했지만.
어쨌든 잡긴 잡은 거니까.
반면에 해원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대전사 칼룬을 잡을 수 없었다.
짜증 난다는 표정을 하던 해원이 곧장 옆에 있던 리사에게 물었다.
“리사, 저거 잡을 수 있겠어?”
그 말에 리사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고.
“나중에 스펙이 좋아지면 몰라도 혼자서는 절대 못 잡아요. 이미 봤잖아요.”
“젠장, 무슨 퀘스트가 이 따위야.”
리사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내 주변에서 대기 중인 초월 길드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중 전신에게 제안을 했다.
“전신 님. 가능할까요? 당신이 가능하다면 카르바할의 전달 물품을 넘겨드리겠습니다.”
“새로운 제안인가?
“계약 수정이라고 해 두죠. 그리고 당신도 이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을 텐데요?”
그 말에 전신의 눈빛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쪽에서 알아서 판단할 문제다.”
제안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라는 건가?
전신이 확실히 선을 긋는 모습을 보고는 완전히 손을 잡은 관계가 아닌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리사도 그걸 아는지 거기서 말을 멈추었고.
잠시 생각을 하던 전신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몸 좀 풀어 볼까.”
그리고는 카르바할의 물품을 건네받아 대전사 칼룬의 앞에 서더니 커다란 대검을 등에서 꺼내 아래로 내렸다.
『 네가 도전하는 거냐? 』
끄덕.
전신이 다른 말 없이 대전사 칼룬에게 집중하면서 허리를 낮춰 자세를 잡자, 대전사 칼룬 역시 자세를 잡았다.
전신의 실력을 볼 수 있는 건가?
그리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대전사 칼룬과 전신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대전사 칼룬의 거대한 배틀 액스에 붉은빛의 오러 블레이드가 입혀지자, 전신 역시 대검에 트리플 캐스팅을 입혀 웨폰을 중첩시켰다.
확실히 저거라면 단기적으로 오러 블레이드와 싸워 볼 수는 있어.
【 트리플 캐스팅! 】
【 다크 웨폰! 】
【 아쿠아 웨폰! 】
【 라이트닝 웨폰! 】
그런 둘이 빠르게 달려들어 격돌해 배틀 액스와 대검이 부딪히는 순간.
콰앙!
쾅!
한 발, 한 발 모두 강렬한 충격파를 내며 강렬한 파동이 퍼져 나갔다.
역시 처음부터 강공이네.
네임드급 대전사 칼룬의 오러와 달리 트리플 캐스팅은 시간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마력 소모가 무지막지하니까.
오래 싸울 수는 없을 터.
전신도 그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정면 승부를 하는 거고.
그리고 마냥 강공만은 아니었다.
서로 부딪혀 튕겨 나오는 힘을 이용해 대검을 회전시키더니 그대로 되돌려 주면서 점점 대검의 속도를 더 붙여 갔다.
속도가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아?
딱히 힘을 들이는 것 같지도 않은데 대검의 속도가 점점 올라갔다.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는 능력이 극에 달하면 저런 움직임이 나오려나?
저렇게 공방을 주고받으면서도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유려한 컨트롤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대검으로 저렇게까지 유연한 플레이가 되다니.
저렇게 하려면 정말 상대의 공격 패턴을 다 외우고 있을 정도가 되어야 했다.
설마 아까 제단에서 보고는 저걸 다 눈에 익혔다는 건가?
내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자 전투를 지켜보던 엔느가 내게 웃으면서 말했다.
“불멸 님하고 1:1로 맞붙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니까요.”
“확실히 대단하긴 하네요.”
“전성기 때의 불멸 님하고 아마 가장 비슷할걸요.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지만.”
흐음.
전신이라는 사람이 그 정도란 말인가.
그런 전투를 보고 있자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번 붙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그런 내 생각을 읽은 듯 엔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기회가 앞으로 많을 거예요.”
“뭐, 그렇겠죠.”
잠시 후, 몇 번을 더 격돌한 뒤 전신은 뒤로 빠지더니 대검을 내려놓았다.
“여기까지군.”
리사를 보면서 고개를 젓자 리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리사도 보는 눈이 있으니까.
마력이 다 닳아서 못 싸우는데 방법이 없지.
낮은 스펙으로도 저렇게 싸운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 흠, 자네는 좀 아깝군. 』
대전사 칼룬 역시 오러를 꺼뜨리면서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고.
해원을 대할 때와는 천지 차이가 나는 표정 변화였다.
전투가 끝난 전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초월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철수한다.”
그러자 해원이 전신을 보면서 인상을 썼다.
“이대로 빠지면 어쩌자는 거지?”
그 말에 전신이 굳은 입매로 말을 꺼냈다.
“그럼 네가 직접 하던가.”
“큭, 이건 계약 위반인데?”
“알아서 해. 관심 없다.”
해원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전신은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곧 초월 길드 유저들 전부 폐허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모습을 감추었고 전신 역시 바로 사라졌다.
이걸로 대충 정리가 된 건가.
해원은 아직 미련이 남은 것 같았지만.
“젠장, 그냥 쳐.”
해원이 거느리고 있는 유저들이 많기 때문에 아직 불편하긴 했지만 초월 길드가 빠지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거기다 이쪽에는 대전사 칼룬도 있고.
그때, 한쪽 공간에서 진동이 일어나더니 미로에서 넘어오는 입구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타난 사람은.
갑옷에 전투의 흔적이 가득한 재중이 형이었다.
잔뜩 파손된 갑옷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재중이 형이 저렇게 될 정도면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고 왔는지 상상도 안 되니까.
반대쪽은 완전히 작살이 났겠는데?
나오자마자 주변 상황을 쭉 살펴본 재중이 형이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야? 쇼가 벌써 다 끝난 거야?”
재중이 형이 격한 전투의 여운이 남은 듯 잔뜩 눈을 부라리면서 주변을 바라보자 순간 몸에 소름이 돋았다.
해원 저건 오늘 다 죽었군.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