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0화 고대 드워프 왕 (2)
넝마가 된 경갑을 입고 있는 리사가 내 질문에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시다시피 고대 드워프의 왕이죠.”
역시 고대 드워프의 왕인가.
여기서 이 정도 수준의 위협을 줄 존재는 그것밖에는 없겠지.
재중이 형이 예상했고, 르아 카르테가 확인시켜 준 것처럼 여기가 네임드가 나오는 최종 미로였다.
지금도 르아 카르테가 웅웅 울리는 것을 보면 확실해.
그런데 소리만 들릴 뿐.
막 입구에 들어선 탓인지 여기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리 역시 굉장히 멀었고.
전투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뜻.
지하 왕국과 닮은 이곳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하울링으로 봐서는 아마도 최하층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앞에 있는 리사를 바라보았다.
이미 한 차례 격한 전투를 치른 모습을 보고는 의아함부터 앞섰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도착한 거지?
내 쪽은 르아 카르테의 반응을 살펴 통과할 미로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지나왔다.
아직도 다른 유저들이 미로를 헤매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이건 확실했고.
그런데 그것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고?
심지어 한 차례 전투를 치를 정도로 앞서 왔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이건 르아 카르테를 가지고 있는 나만이 알 수 있는 점이기도 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그냥 좀 일찍 도착했을 것이라 여기겠지만 르아 카르테를 가지고 있는 난 다르지.
분명히 뭔가가 있어.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뭔가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설마……?
곧 의심은 확신이 되어 리사에게 물었다.
“미로의 지도를 가지고 있습니까?”
내 말에 리사의 어깨가 잠시 움찔했다.
맞네.
거기다 리사의 표정이 대체 어떻게 알고 있냐는 표정으로 바뀌었으니까.
그 표정을 보자마자 다른 가정도 하나 떠올랐다.
“그리고 일부러 그 녀석들을 남겼겠군요.”
내 말에 리사의 표정이 바로 굳었다.
저건 맞다는 반응이겠지.
굳이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답은 들은 셈이었다.
“무슨 수로 지도를 얻은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먼저 지도로 지름길을 통해 가장 먼저 학살의 미로를 통과하고. 이후에 학살의 미로로 들어오는 유저들을 무작위로 습격해 통제하면서 시간을 끈다. 당신들이 네임드를 공략하는 시간 동안. 맞나요?”
리사가 지금 이 시점에 여기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 모든 가정이 완성되었다.
애초에 그 녀석들.
포인트가 목적이 아니었어.
이 녀석들이 네임드를 공략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 시간을 끌 용도로 막아 둔 것뿐.
하지만 우리가 학살의 미로에 자신들의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도착해서 해원의 연합원들을 싹 죽여 버리는 바람에 쳐놓은 그물이 완전히 찢어져 버렸다.
원래 의도와는 상당히 빗겨난 상황이고.
우리가 여기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마중 나온 것도 이미 깨지고 아웃된 해원의 연합원들에게 보고를 들어서겠지.
내 추측에 리사가 바로 한숨을 쉬었다.
“……누구 덕분에 망했죠.”
그 말과 함께 고개를 돌려 아까 하울링이 일어난 방향 쪽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어요.”
필요가 없었다?
굳이 통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이건 듣기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지금은 딱 한 가지 가정밖에 없었다.
“생각대로 잘 안 된 모양이네요. 지금 모습을 봐도.”
공략이 잘 되고 있었다면 굳이 이렇게 우리가 들어오자마자 달려왔을까?
아니, 뭔가가 잘못되었기에 지금 리사가 이렇게 부랴부랴 보고를 받고 달려왔을 것이다.
자신들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그런 상황.
해원에 대해서 물으려다가 바로 다른 질문을 꺼냈다.
사실 해원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정작 중요한 건 전신의 초월 길드지.
“초월 길드는?”
분명히 네임드의 공략은 전신 쪽에서 맡았을 확률이 높았다.
해원 쪽에서는 이걸 해결할 능력이 안 될 테니.
그러자 리사가 입술을 꽉 깨물고는 갈리는 목소리로 한 마디를 했다.
“지금 고대 드워프 왕과 싸우고 있어요.”
방금 표정이 굳었어?
뭔가 이상한데?
공략이 잘 안 되고 있다는 것까지는 이해를 했는데 지금 보여 준 표정은 좀 다른 종류의 반응이었다.
리사의 굳은 표정을 보는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생각났다.
이전에 엔느가 해 주었던 말이.
바로 한 가지 가정을 꺼내들었다.
“혹시, 배신당한 건가요?”
내 추측 가득한 물음에 갑자기 리사의 이빨이 으드득 갈리는 소리가 났다.
이거, 바로 뼈를 쳐 버렸네.
리사의 거친 반응에 이쁜소녀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짜 배신이에요?”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다.”
보통은 배신을 하면 했지 배신을 당할 해원이 아니기에 충격은 더 크게 다가왔고.
내게 미리 언질을 주었던 엔느를 돌아보자 엔느는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지 크게 동요는 하지 않았다.
황룡 역시 마찬가지.
오히려 잘됐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물 건너 불구경쯤 되는 건가.
그런 황룡에게 물었다.
“원하는 대로 된 건가요?”
“아니라고 할 순 없겠군.”
곧장 고개를 돌려서 리사를 보며 물었다.
“당신이 배신을 당할 만큼 어수룩하게 보이지는 않는데요?”
해원이라면 몰라도 리사라는 이 여자는 그렇게 생각이 없어 보이진 않는데.
내 질문에 리사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네, 사실 그 정도는 고려하고 들어왔었어요.”
이건 이야기를 들어 봐야 하나.
내가 계속해 보라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니 리사가 말을 이었다.
“초월 길드를 원한 건 고대 드워프 왕을 상대할 수 있을 전력을 원해서였어요. 솔직히 해원이 취미로 만들어 둔 길드는 숫자만 많지 제대로 된 전력이 없으니까요.”
아주 적나라한 평가네.
솔직히 조금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다 아는 내용이기도 하고.
오합지졸쯤 되는 그런 느낌.
“사실 이전부터 초월 길드와 몇 개의 길드를 끌어들였죠. 이 무덤을 공략하기 위해서.”
“초월 길드가 쉽게 넘어오진 않았을 텐데요?”
“이쪽에는 초월 길드가 가지지 못한 미로의 지도와 드워프 왕의 증표가 있었거든요. 고대 드워프 왕을 깨울 수 있는.”
역시.
드워프 왕의 증표를 이쪽도 가지고 있었어.
아니라면 이렇게 무턱대고 공략에 나서지도 않았을 테니.
“초월 길드가 어떤 길드인지는 아시죠? 당신들이 유일템을 얻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않는다는 것도요.”
내 말에 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서 끌어들인 거예요. 이쪽도 초월 길드 말고도 준비를 많이 했으니까.”
이건 아마 초월 길드를 칠 수 있는 다른 전력을 끌어들였다는 말로 들리는데.
리사가 말한 초월 길드 외에 다른 길드들이 그 대상이려나.
“흐음, 전신은 사냥개로 쓰고 버리려고 했는데 먼저 물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제대로 되지는 않은 모양.
생각대로 됐다면 지금쯤 여기에 리사가 있으면 안 되니까.
“……우리가 생각한 타이밍보다 먼저 치고 들어왔어요.”
정보가 샌 건가.
슬쩍 엔느를 봤다가 고개를 돌렸다.
하긴 엔느도 알고 있는 걸 보면 그렇게까지 보안이 철저한 것 같지는 않았다.
“거기다 초월을 쳐야 하는 길드들 중 일부가 배신을 하는 바람에. 일이 완전 꼬였어요.”
확실히 해원이 초월 길드를 그냥 두고 보진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네임드를 사냥하고 힘이 빠진 초월을 잡을 만한 전력은 따로 준비했을 거고.
그런데 그 준비한 전력 중 일부가 배신이라…….
완전 콩가루 집안이군.
이러면 해원도 손을 쓸 수가 없었겠지.
리사가 나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저도 알아요. 망했다는 걸. 하지만 우리도 우리지만 초월 쪽도 정상은 아니에요. 저 상태로는 절대 네임드를 못 잡아요.”
“제대로 치고받은 모양이네요.”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전신이 생각한 것보다 우리가 모아 둔 전력이 강하기도 했고. 숨겨 둔 패도 있었죠.”
숨겨 둔 패라.
전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그게 아니라면 해원이 초월을 끌어들이지도 않았겠지.
결국 둘 다 서로를 치다가 아작 난 상황이라는 건가.
그때 머리에 스치는 생각.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주호> 혹시, 전신에게 정보를 흘렸나요?
<엔느> 흐음? 눈치채셨어요?
이거 참.
해원과 전신을 엿 먹인 장본인이 바로 옆에 있었다.
그러면서 엔느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엔느> 전신에게 직접 전한 건 아니에요. 살짝 흘리니까 덥석 물었죠.
<주호> 전신을 별로 안 좋아하는 걸로 보이던데요?
<엔느> 네, 하지만 해원이 준비를 꽤 많이 했더라고요. 그대로 놔두면 해원의 뜻대로 흘러갈 것 같아서. 반대로 둘이 치고받으면 절대 네임드를 못 잡을 거라고도 생각했고요.
<주호> 지금 상황을 보면 어느 정도는 들어맞네요.
사냥개가 주인을 물 수 있도록 타이밍을 잡아 준 것.
그리고 우리를 포섭해서 초월을 상대한다인가?
엔느도 정말 무시할 수 없어.
<주호> 설마 저도 사냥개로 생각하는 건가요?
<엔느> 제가 해원처럼 그렇게 멍청하진 않아요. 당신은 규격 외니까. 아마 우리가 쪽박 찰 걸요?
<주호> 뭐, 일단은 그렇게 알아두죠.
그러면서 엔느를 보며 미소를 짓자 엔느 역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속을 알 수 없는 여자.
마냥 아군이라고 보기에는.
조심할 필요는 있어.
다시 고개를 돌려 리사를 바라봤다.
“그래서 이렇게 온 이유가?”
리사가 살아남아 굳이 이렇게 날 찾아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잠시 한숨을 쉰 리사가 나와 엔느, 황룡을 번갈아 보더니 기어코 내게 말을 꺼냈다.
“초월을 잡아주실 수 있나요?”
그 말에는 다들 표정이 굳었다.
초월을 잡아달라고?
네임드가 아니라?
* * * * *
얼마 뒤, 리사는 자리를 떠나 멀리 사라졌다.
바로 옆에 있던 엔느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요?”
내 물음에 엔느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요? 초월을 잡아달라니. 그것도 돈과 확정 강화석까지 걸면서요.”
리사가 제안한 금액은 상당한 액수의 금액이었다.
그리고 확정 강화석은 이전에 내게 제안했던 바로 그 물건들이었고.
돈은 몰라도 확정 강화석은 필요하지.
그리고 어차피 경쟁자인 초월은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 보너스 정도로 생각하면 되려나.
옆에서 이쁜소녀가 듣다가 한마디 했다.
“설마 당한 게 억울해서 그럴까요?”
“하긴, 해원의 성격을 보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긴 한데.”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그것도 찝찝함을 동반하는.
배신 한 번 당했다고 복수를 해 달라고?
그놈 성격상 맞기는 한데…….
왜 이렇게 찝찝하지.
“엔느 혹시 그 정보원 좀 쓸 수 있어요?”
“네?”
“있잖아요. 해원 쪽에 넣어 둔.”
“……아, 진짜. 남의 밑천을 털어 드시려고요?”
“싫으면 말고요.”
“누가 싫대요? 한 번 쓰면 못 쓰니까 그러죠. 뭐가 알고 싶은데요?”
“해원의 속사정요.”
“어머? 야해……!”
“소녀야, 이분 한 대만 때려.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차마 내가 때린 순 없고.
내 말에 이쁜소녀가 벌떡 일어나자 엔느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웃어 보였다.
“농담 두 번 했다가는 아웃되겠어요. 뭐, 마침 저도 궁금했으니까.”
그러더니 어디론가 연락을 넣었다.
그리고 얼마 뒤.
엔느가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뭔가가 이상할 때 짓는 딱 그런 표정.
“으음, 되게 이상하네.”
“네?”
“아, 일단은 방금 리사가 말하고 간 이야기가 다 맞아요. 지금 해원 쪽 연합 사람들이 분열이 나서 엉망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그게, 너무~ 너무 깔끔해서요. 보통 이런 경우 굉장히 어수선해야 하는데…….”
심어 둔 사람으로 확인해 봐도 맞는데 이상함이라.
“아무래도. 확인을 좀 해봐야겠어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이딩 블레이드를 꺼내들고.
【 은신! 】
그리고는 은신을 걸고 지하 왕국과 비슷한 지형을 따라 쭉 걸어 내려갔다.
최대한 소리를 죽여서.
한참을 혼자서 내려가는데 전투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저쪽은 고대 드워프 왕과 초월이려나.
그렇게 계속 내려가다 보니 최하층에 전투 흔적이 가득한 제단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건…….
아직 초월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아마도 초월과 해원의 연합이 붙은 흔적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걸 계속 보다가 보니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뭐지?
흔적을…….
일부러 냈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었다.
무기의 흔적이 너무 일정해.
항상 이런 식으로 검을 휘두르기 때문에 더욱 잘 보였다.
제 딴에는 최대한 흩트린다고 흩트린 것 같은데…….
그걸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감각을 사방으로 퍼트렸는데 곧 뭔가를 확인하고는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것들 봐라?
꽤 재미난 짓을 하잖아?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