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76화 (566/1,404)

#576화 학살의 무덤 (1)

“뭐?”

“주호?!”

“무슨 소리야?”

“주호가 여기 왜 있어?”

이쁜소녀가 나를 보면서 외치자 그녀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유저들의 시선이 곧장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공동의 입구로 들어온 나를 발견하고는 크게 외쳤다.

“주호다!”

“주호!”

“젠장, 여기에 어떻게 온 거지?”

“분명히 다른 미로에 금방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설마 미로를 벌써 깬 거야?”

“하, 괴물 새끼.”

이 새끼들, 나를 알아?

아니, 어지간한 유저들이라면 당연히 알기야 하겠지만 지금 반응은 단순히 나를 아는 반응이 아니었다.

저건 마치 지금 내가 없을 것을 확신한 말투.

좀 전에 미로에 들어갔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을 봐서는 아마도 내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체크하고 있었던 건가?

어쩌면 우리와 같이 왔던 녀석들 중에 스파이가 있을 수도 있겠는데…….

하지만 일단 이건 나중의 문제.

지금은 눈앞의 녀석들을 처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적의 대략적인 숫자는 삼백 정도.

흘깃 살펴본 결과 내가 알고 있는 길드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잘 알고 있는데다가 우리를 적대하는데 내가 전혀 모르는 길드라…….

그렇다는 말은 처음부터 우리 길드를 노리고 들어온 녀석들이라는 말밖에는 되지 않았다.

거기다 이런 녀석들이 여기만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최소 몇 개 길드는 더 있다고 봐야 하나?

일단 우리 쪽 사람들에게 주의를 줘야겠어.

반면에 공동의 벽에 몰려 막고 있던 쪽은 아무리 봐도 열 명밖에 없었다.

우리가 오기 전에 상당수가 죽은 건지.

아니면 원래 저 숫자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거의 30대 1의 세력 차.

이런 위기 속에서도 이쁜소녀가 전면에서 막아서서 그런지 유저들이 겨우 벽을 등지고 버텨 낸 것 같았다.

아마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났으면 무너졌을 거야.

그런 위기 상황에서 내가 등장하자 이쁜소녀의 표정이 더 없이 밝아졌다.

“오빠아!!”

“조금만 기다려. 일단 이놈들 싹 쓸어버리고.”

내가 쓸어버린다는 말을 하자 적 길드원들이 하나둘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와, 랭킹 1위라고 개념이 없네.”

“주호, 너 여기 있는 애들 숫자 안 보여?”

“우리 삼백이 넘어, 이 새꺄.”

“혼자서 이 숫자를 이긴다고?”

“그리고 넌 지금 같이 싸워 줄 길드원도 없잖아.”

“크크크큭. 저놈 지금 허세부리는 거라니까.”

“주호 둘러싸! 이번에는 확실히 죽인다!”

“전처럼 당하진 않아!”

이번에는?

그 말을 듣고는 기억에서 떠올려봤지만 저런 녀석들은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도 역시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난 기억에도 없는데? 우리가 어디서 본 적 있냐?”

당연히 이 말은 녀석들의 표정을 일그러뜨리기에 충분했다.

나는 전혀 기억에 없는데 녀석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중이라.

“이 새끼가! 우리를 모른다고?!”

“아, 몰라봤으면 미안. 그동안 스쳐 지나간 엑스트라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그리고 엑스트라라는 말에 녀석들이 완전히 폭발했다.

“엑스트라?!”

“야! 저 새끼 쳐!”

“오늘 누가 죽나 한번 해보자.”

“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수모를 당했는데……!”

“죽여!”

대충 알 것 같기도 하네.

아무리 봐도 해원 밑에 있던 떨거지들이려나.

그리고 일부러 녀석들을 도발했다.

오직 나에게만 시선이 집중되도록.

만약 포위 중인 녀석들이 계속 이쁜소녀를 공격했다가는 더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녀석들이 달려들려는 찰나에 입구 쪽에서 황룡과 엔느를 비롯한 미르 길드원들이 넘어왔다.

공동에 추가적으로 유저들이 들어오니 내게 달려들려던 유저들도 제자리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고.

황룡이 나와 대치하고 있는 수백의 유저들을 보고는 황당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뭡니까, 이놈들은?”

일단 황룡은 모른다는 건가.

알면서 모른 척…은 아니겠군.

적어도 황룡과 엔느는 이 던전에서는 나와 함께 있어야 하는 목적이 가장 뚜렷했다.

지금 이 공동 안에서 배신을 하지 않을 아군이라는 뜻이고.

그 뒤로 미르 길드원들을 따라 우르르 공동에 들어온 유저들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배신을 한다면 저쪽에서이려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정보를 흘린 녀석들이 있어.

이건 확실히 알려놔야 했다.

<주호> 엔느, 우리와 함께 온 유저들 중 배신하는 녀석들이 나올 겁니다.

<엔느> 네, 알겠어요. 주의 시킬게요.

<주호> 미르 길드원들은 다 믿을 수 있나요?

<엔느> 아마도요. 황룡 이 사람, 그렇게 쉬운 사람은 아니니까.

그렇게 이유는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납득하면서 황룡과 시선을 맞췄다.

엔느가 저렇게 확신한다면 적어도 뒤통수를 얻어맞지는 않겠군.

미르 길드원들이 합세하자 적 길드원들의 표정이 싹 굳었다.

“그냥 쳐! 아직 우리가 훨씬 많아!”

“쫄지 마! 그래 봐야 길드 한 개야!”

“그럼, 저 뒤에 녀석들은?”

그 말에는 다들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를 따라온 유저들 숫자도 상당했으니.

만약 저들이 다 가세하면 많은 쪽수에서 오는 이득이 거의 없어진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되지만은 않았다.

“야, 이거 어떻게 해? 끼어들어? 말어?”

“이 새끼들은 무슨 미로 안에서 PK를 하냐…….”

“서로 적대 길드 아님?”

“아, 상황이 대체 왜 이래?”

“주호 덕분에 여기까지 오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여기서 같이 싸우자고?”

“난 안 싸울래.”

“젠장, 너희! 주호 죽으면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렇지만…….”

우왕좌왕.

함께 온 유저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서로 의견이 갈라졌다.

그 모습을 본 적 길드원 중 누군가가 나서 으름장을 놨다.

확실하게 쐐기를 박는.

“이건 주호와 우리 연합의 쟁이다. 끼어들지 마라. 나가서 척살 당하고 싶으면 끼어들고. 너희가 끼어들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그 말에 의견이 갈라지던 유저들이 제자리에서 멈칫했다.

아무래도 우리 쪽은 개인 유저들이 많아서 그런지 이런 면에서는 약하지.

그리고 길드에 속해 있는 유저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싸움으로 해서 상대 길드와 척을 지게 되니까.

아마 지금 각자의 길드에 귓속말을 한다고 바쁘겠네.

싸워도 되는지 안 되는지.

그리고 대부분의 유저들은 바로 나와 미르 길드에게서 떨어졌다.

이건 참전하지 않겠다는 표시를 간접적으로 한 것이고.

그 모습에 황룡이 바로 인상을 찌푸리면서 혀를 찼다.

“버러지 같은 녀석들.”

황룡도 한 성격 하는데?

뭐 여기까지는 대충 예상했다.

자기 이득이 없는 일에 선뜻 나설 유저들은 아니니까.

물론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몇몇 유저들이 나와 미르 길드원들 주변으로 붙어서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의리가 있지, 새끼들. 누구 덕에 여기까지 살아왔는데 말이야.”

“길드에서 싸워도 된다는군요. 주호하고 같이라면.”

“우리도 신화 길드하고 같이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 병신들은 주호 없이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죠.”

의리 때문에 남은 유저도 보이고, 길드 자체에서 붙으라고 한 곳도 있는 것 같았다.

뭐 이유야 어찌됐든.

적과 적이 아닌 유저.

중립으로 완전히 패가 갈렸다.

<주호> 아군인지 아닌지 헷갈리지 않게 연합으로 묶어 주세요.

<엔느> 이미 하고 있어요.

엔느가 우리에게 붙은 유저들을 미르 길드와 연합으로 바로 묶어서 아군 표시가 나도록 만들었다.

이젠 미르 연합이 되는 거려나?

<주호> 부탁드릴게 있어요. 떨어져나간 유저들. 언제 뒤통수칠지 모릅니다.

내 말에 엔느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엔느를 보며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에 걸린 오러 블레이드를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이젠 더 못 기다리겠어요.”

오러 블레이드를 유지하는 데 마력을 엄청 잡아먹으니까.

“먼저 갑니다. 뒤를 부탁해요.”

【 헤이스트! 】

【 대쉬! 】

【 용병왕의 분노! 】

몸이 빠르게 쏘아지면서 우르르 몰려 있던 적들의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내가 아무런 신호도 없이 뛰어들 줄은 생각도 못 했는지 앞에서 으름장을 놓던 녀석이 부랴부랴 검을 들어 올렸지만.

스르릉!

촤아악!

오러 블레이드가 걸려 있는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이 녀석의 검을 깔끔하게 잘라 내고는 그대로 통과해 목까지 통째로 날려 버렸다.

“커억!”

이렇게 갑자기 덤빌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듯 갈라진 목을 부여잡고 눈을 부르르 떠는 모습을 보고는 한 마디 했다.

“난 아까 전부터 시작이었어.”

서로 대치하면서 잠시 방심하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지체 없이 달려들어 녀석을 물어뜯었다.

나서서 말을 많이 한 것을 보면 이 녀석이 이쪽의 간부급은 될 테지.

기선을 꺾기에는 나쁘지 않아.

단 한 방에 죽음의 빛으로 녀석이 사라지자 그제야 적 유저들이 외쳤다.

“젠장! 싸워!”

“포위해!”

“주호 먼저 잡아!”

외침과 함께 곧바로 아이기스를 든 유저들이 내 앞으로 막아서기 시작했다.

역시, 기본적인 장비는 갖추고 왔다는 거겠지.

지금은 국민 방패쯤 되는 아이기스로 앞을 막아서는 순간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으로 녀석들의 아이기스를 연속으로 후려쳤다.

순수하게 속도만을 앞세워.

보통은 검으로 라지 쉴드의 정면을 치면 대부분의 공격은 무마된다.

라지 쉴드 자체가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니.

그런데 가속이 붙으면서 검속이 점점 빨라지자 평타의 위력 역시 점점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확 바뀌기 시작했다.

쿠앙!

쾅쾅!

마치 포탄이 치고 지나간 것처럼 강렬한 타격이 들어가면서 라지 쉴드를 들고 있던 탱커들이 방패와 함께 계속 뒤로 밀려나갔다.

“윽! 뭐야! 이 위력은?!”

“젠장! 막을 수가……!”

“이익! 미친!”

꼭 크리티컬을 넣을 필요도 없었다.

일정 시간 안에 연속 공격만 성공시키면 용병왕의 분노가 적용된다.

오직 평타.

빠른 공속에 이은 평타의 연속 공격으로 추가 누적 대미지가 계속 쌓여가자 점점 가공할 정도의 위력이 터져나갔다.

한 발, 한 발이 스킬이라도 된 것처럼.

그리고 그런 내 공격을 막는 유저들은 이를 악물면서 겨우 아이기스를 붙들고 있었다.

“아악! 더 못 버텨!”

“누가 좀 어떻게 해봐!”

“힐!!”

터엉!

텅그렁!

그리고 몇 초도 되지 않아 아이기스를 들고 있던 유저들이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바닥에 방패를 놓쳐 버렸다.

한 발도 아닌 수십 발의 스킬이 동시에 라지 쉴드를 치는 것과 비슷한 공격을 당했으니 방패를 들고 있는 일조차 무리.

심지어 강한 충격에 인한 경직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탱커들도 속출했다.

아이기스라는 가드가 내려간 유저는 그야말로 떠먹기 쉬운 밥이나 마찬가지였고.

바로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의 오러 블레이드가 목을 연속으로 베어 내면서 내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탱커 라인을 싹 붕괴시켰다.

그렇게 샤르르 녹듯 탱커들이 죽음의 빛으로 변해 가자 적 유저들이 깜짝 놀라 외쳤다.

“저게 말이 돼?!”

“미친……!”

“탱커가 다 죽어?!”

“대체 힐러들은 뭐 한 거야?!”

“힐 줘도 안 되잖아! 한 방에 죽는데 뭘 더 어떻게 하라고!”

이미 용병왕의 분노로 평타 위력이 올라갈 데까지 올라간 상황이었다.

거기에 급소를 맞은 유저는 크리티컬과 관통이 적용되어 원킬이 나오는 거고.

체력이 많고 방어가 높은 탱커 유저조차 이런데 경갑이나 마법사 유저들은 어떨까.

당연히 유저들의 안색이 싹 굳어 버렸다.

후, 위력은 충분히 끌어올려졌고. 제대로 해볼까.

탱커들이 도망을 안 가고 계속 맞아 준 덕분에 순식간에 용병왕의 분노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이제는 수확하는 일만 남은 셈.

“마법사들! 광역기 날려!”

“못 움직이게 디버프 걸란 말이야!”

“궁수들도 퍼부어!”

마법과 화살이 포화가 쏟아지기 전 아예 녀석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한복판으로 몸을 던져 정면에 있던 유저들을 평타로 녹이고 바로 밀고 들어갔다.

【 대쉬! 】

그리고 난 뒤 대쉬로 빠르게 그 지역을 빠져나가 다시 다른 녀석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조금 맞는 것은 괜찮아.

어차피 르아 카르테가 계속 체력을 흡수하는 데다가 물약 걱정도 전혀 없었다.

미르 길드가 있으니까.

화끈하게 쓰고!

확실히 죽인다!

“야! 우리 편이야! 쏘지 마!”

“광역기 당장 멈춰!”

“젠장, 이미 쐈다고!”

“아악!”

“미친놈들아!”

“좀 보고 쏴!”

화살 포화와 광역 마법이 아군들의 머리 위로 잔뜩 떨어지면서 같은 편이 녹자 서로 욕을 하기 바빴다.

내가 지나가는 방향이 죄다 녹아서 죽음의 빛으로 변하자 이젠 내가 달리는 방향은 아예 먼저 비켜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양 떼 사이로 파고든 늑대처럼 삼백여 명의 적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자 전선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바로 붕괴가 시작되었다.

그 상태로 일자로 쭉 밀고 나가면서 드디어 원하던 곳에 도착했다.

아까 전까지 포위가 되어 있던 바로 그곳에.

“오래 기다렸지?”

“히잉, 너무 보고 싶었어요!”

이쁜소녀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나를 바라보자 더 없이 푸근하게 웃어 보였다.

혼자서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뒤를 돌아보니 내 뒤를 따라오던 개떼처럼 모인 적 유저들이 움찔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것들을 일일이 상대하기에는 이쁜소녀의 상태가 마음에 걸리는데.

생각을 마치자 바로 행동에 옮겼다.

“포위는…… 한 방에 뚫어야지.”

【 데스 버스트! 】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한 스킬.

그리고 용병왕의 분노로 미친 듯이 위력이 뻥튀기 되어 있는 최악의 스킬이기도 했다.

그런 데스 버스트를 옆으로 길게 휘두르자, 공동 안을 통째로 터트리면서 커다란 굉음을 내었다.

콰아아아앙!!

이전에 보았던 그 어떤 폭발보다 강력한 위력에 나 역시 깜짝 놀랐고.

스킬이 이 정도까지 강해질 수가 있는 건가?

실제로 일직선상에 있던 모든 유저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증발한 듯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수십 명의 유저가 단 한 방에 녹아 버린 순간.

아군이고 적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전투를 멈추고 그 폭발을 바라봤다.

마치 겁에 질린 것처럼.

‘분위기가 괜찮네.’

강력한 한 방으로 기세를 완전히 가져온 뒤.

곧바로 대기하고 있던 엔느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이제 물어뜯으세요! 한 놈도 빠짐없이!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