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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68화 (558/1,404)
  • #568화 저주받은 지하 무덤 (2)

    재중이 형과 대화를 마친 뒤, 폭발음이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폭발음이 들리지 않는다?

    폭발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제외한 우리 팀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나와 우리 팀원이 완벽히 다른 공간에 있다는 말이 된다.

    그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잘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던전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긴 힘들다.

    일단 최소 두 개 이상의 공간인가?

    뭐, 나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면 그 이상일 수 있고.

    이건 아예 시작 포인트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해야 하려나?

    그리고 다시 한 번 폭발이 일어난 장소를 바라봤다.

    현재 유저들이 분주하게 뭔가를 막고 있는 모습을.

    북쪽?

    아니, 남쪽인가?

    방향을 알아내려다 이쪽은 바로 포기했다.

    만약, 이곳의 미니맵과 지도가 차례대로 밝혀졌다면 이런 일은 절대 없었을 테지만, 지하 무덤 입장부터 함정으로 떨어졌기에 지금 보고 있는 방향이 북쪽인지 남쪽인지 도무지 구분할 방법이 없었다.

    거기다 팀과 떨어졌기에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조차 의논하기 힘들었다.

    당분간 못 만나겠군…….

    이런 식으로 우리 팀과 떨어져 본 적이 없기에 꽤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곧 생각을 가다듬었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도 사정은 똑같아.

    지금은 이곳에서 살아남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당장 저 정체불명의 몬스터를 막는 것을.

    다시 고개를 돌려서 공동 전체를 바라보았다.

    이 공동으로 들어오는 길이…….

    총 세 곳인가?

    방금 저 몬스터가 들어온 한 곳.

    그리고 나머지 두 곳은 공동을 중심을 두고 60도 각도로 좌우로 서로 떨어져 있었다.

    일단 저 세 출구 중 한 곳이 탈출구라는 말이 되는데.

    아니.

    세 곳 모두 다른 공동으로 향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장소로 이동할지도 모른다.

    저 중 하나를 택일하라는 소리이려나.

    아니면 여기서 버티는 방법도 있겠지만.

    언제까지 죽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곳이 안전지대라면 당분간 버티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지만 아무리 봐도 이 공동은 안전지대는 아니다.

    저 몬스터가 날뛰는 것으로 봐서는.

    그때, 옆으로 누군가의 인기척이 났다.

    워낙 많은 유저가 주변에서 움직였기에 지나가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정확하게 내 옆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는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에 힘 좀 풀지?”

    “해원?”

    이 녀석도 여기 같이 떨어진 건가?

    거기다 옆에는 녀석을 수행하던 여성 유저가 함께하고 있었다.

    꽤 실력이 좋았지.

    해원 옆에 있기엔 아까운 유저.

    딱 둘만 있는 것을 봐서는 길드원들과 떨어진 모양이었다.

    워낙 유저가 많아서 그런지 녀석 역시 갈라졌나?

    해원이라…….

    이런 장소에서 보기에 썩 반가운 인물은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시 다른 생각이 났다.

    아니지.

    해원도 알게 모르게 내게 뜯긴(?) 돈이 적지 않다.

    화련을 제외하면 내게 가장 많은 이득을 안겨준 녀석이기도 하고.

    다르게 생각하면 이 녀석도 반가운 호갱님이라는 소리였다.

    그렇다고 대놓고 호갱 취급을 할 수는 없어서 표정만 살짝 푼 채 물었다.

    “무슨 일이지? 싸움 걸러 온 거면 환영이고.”

    슬쩍 해원의 옆에 있던 붉은빛 단발 헤어를 한 여성을 바라보았다.

    리사.

    경갑 착용에 나처럼 슬림하고 가벼운 무장을 선호하는 스타일.

    전에 나와 재중이 형의 공격을 잠시나마 막아냈던 것을 보면 해원이 데리고 있는 유저 중 가장 실력이 좋은 편일 것이다.

    그때, 그 여성이 내게 아무 표정이 없는 얼굴로 말을 꺼냈다.

    무미건조한 어투로.

    “여기서 나가기 전까지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싶습니다.”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리사의 말에 해원이 투덜거리면서 바로 인상을 썼다.

    “젠장, 리사. 이 녀석과 진짜 같이해야 해?”

    그 순간, 리사의 미간이 팍 일그러지더니 무서운 말을 꺼내 들었다.

    “도련님. 좀… 닥쳐주시죠?”

    “큭.”

    리사의 단호한 말에 해원이 순간 입을 닫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턱이 쩍 벌어졌다.

    뭐지…?

    이 어이없는 관계는?

    리사, 라는 여성이 해원과 주종 관계 비슷한 것 아니었나?

    이건 흡사 리사가 해원을 꽉 잡고 있는 그런 모습인데…….

    생각했던 것과 완전 다른 모습에 순간 넋이 빠졌다.

    “하… 오늘 신기한 것을 많이 보게 되네요.”

    저 해원을 말로 닥치게 만들다니.

    이 여자.

    대체 정체가 뭐지?

    당장 저기서 날뛰는 몬스터보다 이쪽에 더 관심이 쏠렸다.

    “전에 몇 번 만났죠?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리사라고 합니다. 도련님의 비서라고 생각하시면 편하실 겁니다.”

    “평범한… 관계로는 안 보이는군요.”

    보통은 비서가 저렇게 하진 못하지.

    뭔가 다른 관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궁금하다고 굳이 그걸 캐묻지는 않았다.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쪽 길드원 대부분이 죽거나 떨어졌습니다. 아마 저 혼자서는 끝까지 도련님을 살리지 못할 테죠.”

    바로 본론인 건가?

    해원과는 완전히 스타일이 다른데?

    일단, 재중이 형과 나의 합공을 잠시나마 버텼으니 그 정도면 정말 실력 하나로는 상위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혼자서 버틸 수가 없는 것이 문제.

    해원이라는 짐을 달고서는 특히 더 문제였고.

    그런데 한 가지 말이 걸렸다.

    왜?

    끝까지 해원이 살아야 하지?

    “굳이 끝까지 살아남을 필요가 있습니까?”

    내 말에 리사가 눈매를 굳히면서 정말 의외의 말을 했다.

    “잘 아실 텐데요? 여기가 어떤 곳인지.”

    응?

    설마?

    이건 떠보려는 건가 싶어서 잠시 말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랬더니 잠시 숨을 고른 리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귓속말을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리사> 고대 드워프 왕의 유일 아이템.

    !!!

    뭐지?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순간 표정을 굳히며 리사를 바라보았다.

    이건 정보가 새는 문제가 아니야.

    어차피 고대 드워프 왕의 유일 아이템에 대한 정보는 우리만 아는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사장님이 누군가에게 흘렸을 리는 절대 없고.

    그러면 저쪽에서 자체적으로 알아냈다는 말이 되는데.

    경로가 다르기는 해도 분명히 알아낼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전혀 모르는.

    그때 해원이 인상을 팍 쓰면서 내게 말했다.

    <해원> 드워프 왕이 생각보다 욕심이 많더라고.

    <주호> 뭐?

    <해원> 드워프 왕국을 재건하는 데 드는 비용을 우리가 일부 대기로 했거든. 이래 보여도 드워프 왕하고 호감도가 상당하다니까?

    돈으로 정보를 샀다는 건가?

    대체 얼마가 들어갔을지 상상도 안 되는데?

    <해원> 어중이떠중이들한테 백날 돈 들여 봐야 소용이 없더라고. 확실한 곳에 투자해야지.

    확실히 해원의 연합을 내가 계속 박살 냈으니 해원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예 NPC에게 줄을 대었다고?

    유저를 버리고?

    생각해 보면 아예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니었다.

    우리만 해도 마리아 가르시아를 황위에 올려놓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중요 NPC의 지지라는 것은 로스트 스카이에서는 아주 큰 힘이다.

    스타트 지점의 NPC는 그저 단순하게 설정된 말과 행동을 반복한다면, 그 이상의 지역에선 AI를 통해 좀 더 자유롭고 능동적인 말과 행동을 한다.

    한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우리처럼 다른 유저들보다 빠른 행동과 정보를 이용하여 NPC와 협력한다면, 해원은 ‘투자’라는 개념으로 접근한 거니까.

    그렇게 나와 해원의 대화가 끝나자 리사가 말을 꺼냈다.

    <리사> 우리는 그 유일 아이템을 얻고 싶습니다.

    <주호> 알고 있다니까 하는 말인데 지금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고 계시는 건 아시죠?

    똑같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목표가 같다면 경쟁자다.

    그런 내게 해원을 도와주라니.

    앞뒤가 완전 안 맞아.

    <리사> 공짜로 해달라는 것은 아닙니다만.

    <주호> 돈… 인가요? 저도 돈 많습니다만?

    물론, 화련이나 해원처럼 미친 척하고 돈을 쓸 수야 없겠지만 돈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절대 들지 않았다.

    <리사> 네, 압니다. 이쪽이 가져다드린 돈만 해도 상당하니까요. 누가 삽질을 자꾸 해서.

    그러면서 리사가 해원을 흘깃 노려보자 해원이 갑자기 고양이 앞에 쥐처럼 팍 움추려 들었다.

    역시 평범한 관계는 아니야.

    <주호> 알고 계시다니 거절하도록…….

    <리사> 이거면 될까요?

    그때, 리사가 바로 내게 링크를 올리자 순간 말을 멈췄다.

    『 +1강 확정 정제 강화석. 』

    이건…….

    꽤 혹한 데?

    의외로 사장님이 구하지 못하는 몇 안 되는 물품 중 하나였다.

    현재 돈으로 구매가 불가능한 물건이기도 하고.

    하지만 고작 저것 하나를 얻기 위해 그런 수고와 혹시 모를 문제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주호> 저도 정제 강화석은 이미 몇 개 가지고…….

    <리사> 그럼 다섯 개면 되나요?

    뭐?

    흥정도 없이 바로 다섯 개를 부르는 모습에 잠시 표정을 굳혔다.

    옆에 해원을 보자 해원도 마지못해 하면서도 거부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뭔지 모르지만…….

    이 녀석.

    유일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뭔가를 가지고 있어.

    아마도 드워프 왕에게 나처럼 특별한 물품을 받았을지도 모르겠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정제 강화석이 다섯 개라…….

    물론, 여분으로 정제 강화석을 몇 개 가지고 있다.

    드래곤 슬레이어에 지르려다가 남겨두었던.

    그리고 발루딘을 얻고 난 뒤에 드워프의 왕의 무기를 보고 결정하려고 아직까지 인벤에서 잠들고 있는 물품이기도 하고.

    10강 발루딘만 해도 부족함이 없으니까.

    당연하게도 정제 강화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없어서 못 쓰지…….

    그런 와중에 다섯 개라.

    후.

    혼자 결정할 문제는 아니야.

    이건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

    리사에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바로 재중이 형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불멸> 다섯 개? 마지막까지 목숨만 붙여놓으면 그걸 준다고?

    <주호> 네. 일단 그런 조건이에요.

    <불멸> 혹하기는 한데……. 좀 꺼림칙하네.

    <주호> 어떻게 생각해요?

    내 말에 잠시 생각하던 재중이 형에게서 답변이 왔다.

    <불멸> 나 같으면 거절.

    <주호> 역시 그렇죠?

    재중이 형이 다른 말을 하면 어쩌나 했다.

    <불멸> 해원이 저렇게 장담하는 걸 보면 최소 너와 비슷한 종류의 물건을 받았을 거다.

    <주호>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불멸> 정제 강화석이 아쉽지만… 그렇다고 유일 아이템과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없어. 정제 강화석은 나중에라도 자력으로 얻을 수 있으니까.

    혹시나 하는 만약의 상황.

    해원을 끝까지 살려놨다가 유일 아이템을 가져가기라도 하면 죽 써서 개 주는 꼴이니까.

    <주호> 그럼, 살려놨다가 마지막에 죽여 버릴까요?

    <불멸> 크큭, 가끔 너 보면 무섭다니까?

    <주호> 말이 그렇다는 거죠. 저도 그런 걸로 욕먹고 싶진 않아요.

    아쉽기는 해도 해원과 같이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에게 호갱이긴 하지만, 그래도 적이고 경쟁자니까.

    거기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당장 눈앞에 있는 해원을 죽이고 싶은 마음마저 들어 살려놓긴 더 힘들고.

    내 표정을 본 리사가 순간 표정을 굳혔다.

    <리사> 협상 결렬인가요?

    <주호> 제가 깔끔한 걸 좋아해서요.

    그러면서 바로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에 힘을 주었다.

    미안하지만, 해원을 여기서 죽여야겠다.

    만에 하나 있을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우리 사이로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그것도 거대한 하얀색 라지 쉴드를 들고 있는 여성이.

    저건?

    초월 길드?

    분명히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전신의 옆에 같이 나타났던.

    지아라는 여성 탱커.

    거기다 이쪽도 프로지.

    그리고 그런 지아의 옆으로 롱 블레이드를 한쪽으로 늘어뜨린 전신이 나타나 해원의 앞을 막아섰다.

    “거기까지입니다. 주호 님.”

    전신과 지아.

    프로 게이머 둘에 리사까지 서자 바로 강한 블록이 형성되었다.

    하, 동시에 초월 길드에 줄을 댄 건가?

    리사 저 여자도 보통이 아니네.

    “이쪽도 보험은 있어야 하니까요.”

    “뭐 그건 인정하죠.”

    잠시 대치를 하더니 내가 행동을 하지 않자 전신이 말을 꺼냈다.

    “그럼 이쪽에서 모셔가는 걸로 하죠.”

    당장 싸울 수 있지만 아직 저쪽에 누가 더 남아 있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서 아쉽지만 일단은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마음대로.”

    내 허락이 떨어지자 전신이 해원과 리사를 데리고 멀리 사라져 버렸다.

    하. 정말 쉽지 않네.

    <주호> 형, 여기 문제가 좀 생겼어요.

    <불멸> 무슨 일인데? 해원이 살았어?

    역시 재중이 형.

    당연히 내가 죽일 거라고 생각했던 건가.

    <주호> 초월 길드가 끼어들었어요.

    그리고 지금 확실해졌다.

    이 무덤 안에서 해원을 비롯한 잠재적 경쟁자들을 반드시 리타이어 시켜야 한다는 것을.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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