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6화 고대 왕의 흔적 (5)
얼떨떨한 마음을 다잡고 대전사 칼룬을 바라봤는데 그저 멀뚱멀뚱한 얼굴로 우리를 볼 뿐이었다.
아, NPC는 귓속말을 인식할 수 없지.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난 지 칼룬은 전혀 몰랐다.
그런 칼룬을 본 재중이 형도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고.
“이거 왠지 사기당한 기분인데?”
“확실히 그렇죠?”
누군 힘들게 네임드를 잡아 지도를 얻고, 대전사 칼룬이 주는 퀘스트를 받아 겨우 정보를 얻었는데… 알고 보니 경계 너머로 그냥 돌아다니다 보면 찾을 수 있는 거란다.
전사 형이 빠르게 게시판으로 들어가 관련 내용을 찾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아놔, 무덤 벌써 풀렸네 ㅡㅡ
-장난? 그냥 길가면 대놓고 보입니다만?
-진짜 주변 땅만 봐도 이상하다는 걸 알겠다.
-경계 너머로 조금만 가면 나오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하다.
-모르는 놈이 텅텅.
-사람들 몰려서 발 디딜 틈이 없네. 그만 좀 와라.
-여기도 무슨 유적지임? 새 사냥터?
-근데 왜 무덤 주변에 몬스터가 하나도 없지?
-무덤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닐까?
-입구가 대체 어디야? 찾을 수가 없네.
-다들 뒤지고 있으니까 곧 찾아낼 듯.
이미 무덤에 대한 정보는 퍼질 대로 퍼진 상태.
스크린샷도 제법 많이 올라와 있었고.
고대 드워프 왕의 저주받은 무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없지만 이미 유적지라고 판단한 유저들이 개떼처럼 몰려드는 중이었다.
아직 제대로 된 탐사대가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경계 너머로 넘어가다니.
“생각보다 행동이 빠르네요.”
“일찍 넘어가면 그만큼 정보와 아이템을 얻을 수 있으니까.”
“작위를 넘긴 쪽은요?”
“흐음, 모르겠는데. 벌써 넘어갔으려나?”
한껏 덩치를 부풀려 움직이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무덤이 발견되자마자 다급히 움직이지 않았을까?
그러한 확인을 위해 바로 사장님께 연락을 넣었다.
<주호> 사장님, 혹시 작위 얻은 길드들 움직임을 알 수 있을까요?
<카이저> 음, 귀족 NPC들 움직이는 것을 보고 난 뒤에 움직일 듯하더니 지금은 전부 경계 너머로 넘어갔다.
<주호> 역시 그런가요.
예상했던 대로인가.
무덤이라는 눈에 보이는 변화가 생기자 다들 발 빠르게 대처를 한 것 같았다.
<카이저> 이쪽은 많이 늦었어. 우리도 이제 출발해야 한다. 바로 합류할 거냐?
<주호> 네, 그래야죠.
<카이저> 그리고 강화석은 계속 알아보는 중인데 생각보다 물량이 없어.
<주호> 어쩔 수 없죠. 다들 내놓으려고 하지 않을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옆에서 지켜보던 재중이 형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강화석은 패스?”
“네, 사실 크게 기대는 안 했어요.”
“뭐 돈이 있어도 못 구하니까. 사장님이 구할 수 없다면 정말 꽁꽁 묶였을 거다.”
아쉽긴 해도 굳이 목매달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이제부터 무덤에만 집중해야지.
그사이 전사 형이 유저들에게 알려진 몇 가지 정보를 우리에게 넘겨주었다.
일단, 저주받은 무덤의 위치.
워낙 많은 유저가 제보를 해서 위치는 이제 비밀도 아니었다.
조금만 검색해 봐도 나오니까.
“레티어스 요새에서 가는 게 제일 가깝네요.”
“아무래도. 북서쪽이나 동쪽하고는 좀 거리가 있어. 화련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겠는 걸?”
“가까우면 유리하겠죠. 그런 점은.”
새 사냥터가 생기면 가장 중요한 일은 보급이다.
로스트 스카이는 기본적으로 필드가 굉장히 넓기에 한 번 물약을 보급하려면 엄청난 거리를 날아가야 하니까.
그래서 거점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고.
그런데 그 사이 뭔가 이상한 점이 보였다.
“전사 형, 작위를 받아 간 유저들 왜 거점을 안 만들었어요? 이 정도 거리라면 충분히 만들 수 있을 텐데?”
레티어스 요새와 고대 왕의 무덤의 거리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매번 물약을 사서 옮길 게 아니라면 지금쯤 거점이 만들어졌어야 한다.
거점이 만들어졌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아직 거점이 생성되지 않았다는 것.
내 질문은 다들 궁금했는지 시선이 전사 형에게로 향했다.
“흠, 그냥 거점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그래요?”
“거점을 만들면 주변 몬스터들이 개떼처럼 몰려들잖아. 초반부터 두들겨 맞을 생각이 아니라면 쉽진 않겠지.”
“확실히 거점이 그런 단점이 있었죠.”
거점 생성 초반에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일정 기간 버텨낼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경계 너머로 악마형 몬스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쪽은 거의 도박에 가까운 일이라.
단체로 몰살당할 생각이 아니라면 피하는 편이 좋았다.
“거점이 몬스터들을 끌어들이는 것을 확인했을 테니까. 괜히 만들었다가 부서지고 날아가면 큰 손해지.”
“일단은 화련의 요새에서 공급받겠다는 소리네요?”
“아마도? 귀족들이 나서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아직은.”
“사장님도 별다른 말은 없으셨어요.”
“아, 그리고 화련 쪽에서만 물약이 나가지 않을 거다. 한 요새에서 공급할 수 있는 물량엔 한계가 있으니까.”
전사 형의 말에 챠밍을 바라보자 눈치 빠른 챠밍이 바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쿠론 요새에도 물약 꽉꽉 채워놓을게요.”
“그래, 당분간은 장사 잘될 것 같아.”
화련의 요새가 부족하면 다른 두 요새에서도 물량이 나갈 테니 이쪽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재중이 형이 잠시 뭔가 생각하다가 말을 꺼냈다.
“용의 지대 거점 어떻게 할 거냐?”
“흐음, 부서질 때까지 유지해야죠.”
현재 용의 지대에 있는 내 거점은 쌩쌩하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다른 유저가 손댈 수 없는 입장이기도 하고.
유망한 사냥터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거점을 손댈 간 큰 유저는 없다.
해원 같은 녀석만 빼면.
지금이야 작위를 가진 유저가 늘어났으니 이야기가 좀 다르지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공작 작위가 훨씬 영향력이 큰 건 알고 있지?”
“네, 공작 작위로 거점을 만들면 거점이 소유할 수 있는 NPC, 물약, 건물, 창고 저장 공간을 포함해서 모든 분야가 올라가니까요. 거기다 거점의 범위도 엄청나게 넓어지고.”
작위 하나당 거점 하나.
그럼 용의 지대에 있는 거점은 없애야 새로 생성할 수 있다.
언제 용의 지대도 한 번 들려야겠네.
뭐, 페가수스가 있으니 딱히 큰 문제는 없겠지.
그냥 좌표를 찍어서 날아갔다 오면 된다.
거기다 단체로 워프가 되는 황실 비공정까지 가지고 있었고.
“슬슬 우리도 출발하죠.”
그리고 잠시 테이든 영지와 집사를 보다가 뭔가가 생각나서 칼룬에게 물었다.
“조사를 하러 여기로 왔다고 하지 않았나요?”
『 그렇습니다. 테이든 영지에는 드워프들이 맡겨둔 특별한 물건이 있습니다. 』
특별한 물건?
내 질문에 칼룬이 집사를 보자 곧 집사가 지하로 내려갔다가 뭔가를 가지고 올라왔다.
저건…….
거대한 열쇠?
확인해 보니 유저들이 왜 입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위치만 찾는다고 끝이 아니었구나.
『 고대 드워프 왕의 저주받은 무덤 열쇠.
- 사용 제한 시간 1일 / 1회용. 』
이게 없으니까 무덤만 찾았지 아무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게 사용 제한 시간이 있다는 점.
“하아, 또 주목받겠네요.”
***
테이든 영지에서 대전사 칼룬을 태우고 황실 비공정을 띄워 바로 무덤으로 향했다.
《 경계 너머로 진입합니다. 》
《 경계 너머는 일반 비행 펫과 비공정으로는 비행할 수 없습니다. 》
《 엘리트 비행 펫과 비공정의 성능이 암흑의 기운에 80% 하락합니다. 》
《 네임드 비행 펫과 비공정 성능이 암흑의 기운에 30% 하락합니다. 》
이건 꽤 심한데?
저 정도 제한이 생기면 엘리트라고 해도 몇 분밖에 날아다닐 수 없다.
그나마 네임드는 사정이 나아지겠지만.
그런 네임드 비행 펫은 드래곤을 포함해 정말 몇 마리 존재하지도 않았다.
또한, 비공정은 베록이 엘리트 급에 해당하니까.
베록도 제대로 못 쓰겠군.
아무래도 처분해야 하려나?
아래를 바라보니 꽤 많은 유저가 지상 테이밍 몹을 꺼내서 힘들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반대로 황실 비공정은 그런 비행 제한이 없기 때문인지 유유히 암흑 지대를 날아다녔고.
“확실히 아이템이 좋아야 한다니까.”
전사 형의 말에 다들 미소를 지었다.
굳이 힘들게 걸어가지 않아도 되니까.
물론, 드래곤이 있기에 걷지 않았을 테지만.
그리고 아직 공중 몹이 나오는 구간은 아닌 모양이라 가는 동안 특별히 공중에서 공격을 받지는 않았다.
여유가 생겨 게시판을 보니 대다수 유저가 무덤 근처에서 진을 치면서 들어갈 방법을 찾는 상황이었다.
-아, 진짜 몇 시간째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혹시 무덤 들어가신 분?
-입구 찾은 듯. 근데 못 들어감.
-BJ들도 다 막혀서 못 들어간다는데?
-그러게, 들어갔으면 누군가 방송했을 텐데.
-주호 쪽은 벌써 들어간 것 아냐?
-진짜 그럴 수도.
-걔들이라면 가능하지.
-이미 공략했을지도 모름.
-하, 진짜 불공평하네.
아직, 우리 안 들어갔거든?
“그냥 이대로 두고 볼까요?”
“떠날 것 같진 않은데? 사용 제한 시간도 있고.”
무덤 입구를 어떻게든 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유저들을 돌려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우리가 이미 들어갔다고 생각하는지 포기할 생각도 없어 보였고.
날아가다 보니 화련에게서 연락이 왔다.
<화련> 혹시 지금 무덤 안이야?
<주호> 저 아직 안 죽었는데요.
<화련> 진짜 죽는다?! 그럼 왜 안 보이는데?
<주호> 사람들 많이 모였나 봐요?
<화련> 바글바글해. 짜증 날 정도로. 됐어. 아직 안 들어갔으면. 오케이. 수고해!
그러고는 바로 화상이 끊겼다.
그걸 본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쪽 공주님은 뿔이 나신 모양인데?”
“그러네요.”
화련이 저렇게 생각할 정도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뻔하네.
“자, 가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주자고.”
얼마 뒤, 황실 비공정이 무덤 근처까지 도착하자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뭐지? 저 비공정은?!
-경계 너머에서 제대로 비행 못 하는 것 아니었냐? 너무 잘 날아다니잖아. 속도도 빠르고.
-저거 혹시 이벤트 보상?
-황실 비공정이 저거야?
-주호?!
-신화 이제 온 듯.
이래저래 주목받는군.
황실 비공정도 그렇고.
착륙하자 미리 기다리던 사장님이 마중을 나왔다.
그런데 사장님이 내 옆에 있는 거대한 대전사 칼룬을 보고는 흠칫 뒷걸음질을 치셨다.
“이, 이건 뭐냐?”
“아, 사정이 좀 있어요. 일단 우리 편입니다.”
“정말 볼 때마다 날 놀래키는구나.”
다른 드워프보다 꽤 험악하게 생기기는 했지.
덩치도 훨씬 크고.
거기다 오러까지 쓴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하하… 상황은요?”
“똑같지. 여전히 입구에서 멍 때리는 중이다.”
“그럼. 그것부터 해결하러 가죠.”
“허, 방법을 찾은 게냐?”
“일단 다 모아주세요.”
바로 스칼렛과 이슬두잔을 포함한 우리 쪽 연합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지금부터 무덤에 들어갈 겁니다.”
당연하게도 대전사 칼룬을 보고는 다들 멈칫거렸고.
칼룬은 그냥 데리고만 다녀도 주목받을 정도였다.
그렇게 우리가 앞장서서 무덤 입구라고 생각되는 장소에 오자 주변을 빽빽하게 채운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주호 아냐?”
“헉! 저건 또 뭐야?”
“드워프인가?”
“인상 봐라.”
“설마 입구 열러 오는 건가?”
“주호는 확실히 다르지. 열어버릴지도?”
“한 번 두고 보자고?”
“각이다! 빨리 주호 쪽으로 돌려 주호 모습 다 담으라고!”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내게 길을 열어주었다.
입구까지 쫙 갈라지자 바로 한숨부터 쉬었다.
역시 주목받는 건 편하진 않네.
그대로 사람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 거대한 무덤 입구 앞에 섰다.
“칼룬. 열쇠.”
칼룬에게 열쇠를 받아서 입구에 가져다 대자 순간 입구의 문이 변형되면서 열쇠 구멍이 생겨났다.
이걸 집어넣으면…….
《 고대 드워프 왕의 저주받은 무덤이 열립니다. 》
여기까진 나쁘지 않고.
내가 먼저 입장을 하자 다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고대 드워프 왕의 저주받은 무덤에 입장하셨습니다. 》
이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어?! 고대?”
“드워프 왕?”
“저주받은?”
그렇게 어두컴컴한 무덤으로 들어오자 바로 신경이 곤두세워졌다.
역시 던전인가?
앞을 구분할 수가 없어.
넓다는 것은 알겠는데 아직 형태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바로 옆에 있는 칼룬에게 물었다.
“칼룬, 이제 닫아도 돼.”
『 한번 열린 무덤은 닫을 수 없습니다. 』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만.
역시 그런 건가?
그런 우리 뒤로 기다리고 있던 유저들이 개떼처럼 무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우와, 열렸다!”
“들어가!”
“내가 먼저야!”
“아! 밀지 말라고!”
“앞이 안 보여! 좀! 그만 들어와!”
어둠 속으로 유저들이 꾸역꾸역 들어오자 자연스럽게 우리도 안쪽으로 밀려들 수밖에 없었다.
쏟아지는 유저들 때문에 한동안 계속 밀리다 보니 결국 우리 팀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주호 오빠! 어디에요?”
“힝, 오빠 놓쳤어!”
그렇게 챠밍과 이쁜소녀의 목소리가 멀리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연합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져 버렸고.
젠장, 이대로는 찾을 수가 없어!
그리고 얼마 뒤.
발아래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건……!
설마 추락?!
“뭐야!!!”
“바닥이 꺼진다!”
“으악!”
“살려줘!”
아, 진짜.
대체 뭘 어쩌자는 거야?!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