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5화 고대 왕의 흔적 (4)
데스 버스트가 터지고 난 뒤, 칼룬의 주변 일대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예상했던 것과 다른 위력에 살짝 당황했지만 용병왕의 분노 옵션과 듀라한의 데스 버스트가 합쳐진 위력은 어마어마할 정도였다.
한계까지 끌어올린 공격은 아니었음에도.
뭐, 한 번이라도 공격을 실패한다면 용병왕의 분노 옵션은 사라지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봤다.
공격 때문에 생긴 후폭풍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면서 주위를 살피니 전사 형은 듀라한 쉴드를 꺼내든 채,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돌려 형 쪽을 바라보는 것을 알았는지 전사 형은 바로 감탄이 섞인 말을 꺼냈다.
“어우, 어마어마한데? 저 칼룬을 완전히 씹어 먹었잖아?”
이런 말이 단박에 튀어 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퍼포먼스.
또한 바로 뒤에 서 있던 막내별 역시 입을 크게 벌리고는 경악에 찬 표정을 지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와, 완전! 사기! 어떻게 이런 위력이 나와요?!”
이쁜소녀는 스위치가 켜졌는지, 눈빛을 반짝거리며 나와 칼론을 번갈아 보며 있는 그대로 말했고.
“우와! 칼룬이 쓰러졌어요!”
데스 버스트가 터지고 난 뒤, 잦아든 상황 속에서 칼룬의 모습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배틀 액스가 튕겨 나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대전사 칼룬 특유의 붉은 오러 역시 데스 버스트의 위력에 밀려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게 대전사 칼룬이 완전히 다운된 모습을 확인한 뒤에야 겨우 안도를 했다.
“솔직히 이 정도로 잘 먹힐 줄은…….”
중간에 한 번쯤 공격이 캔슬되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칼룬의 성향이 너무나 좋았다.
철저한 힘의 승부.
뛰어난 본인의 힘을 믿는 것인지, 배틀 액스를 믿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칼룬은 절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칼룬의 공격적인 성향 덕분에 나 역시 연속 공격을 온전히 완성할 수 있었다.
만약 중간에 내빼거나 도망 다녔다면 이 정도까지 누적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상대가 달려들면 달려들수록.
그리고 연속 공격을 쭉 이어나갈 수 있는 컨트롤을 가진 유저가 제대로 써낼 수만 있다면.
이 발루딘은 그야말로 대인전에서 최강의 무구가 된다.
물론, 발루딘 하나만으로는 절대 이 정도의 퍼포먼스를 낼 수 없다.
중간에 마력이 모자라면 결국 용병와의 분노도 캔슬되어 버릴 테니까.
오러까지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엄청난 마력 소모는 발루딘의 큰 약점이다.
그런 발루딘의 단점을 보완하는 아이템이 이 르아 카르테였고.
발루딘과 르아 카르테.
이 두 유일 아이템의 조합은 정말 극강의 사기였다.
둘 중 하나라도 없다면.
절대 무리겠지.
“캬, 부럽다. 부러워. 나도 유일 아이템 어디서 하나 안 떨어지나?”
이 조합을 제대로 아는 재중이 형이 부럽다는 표정으로 유일 아이템들을 바라보자 그저 웃기만 했다.
재중이 형도 잘 알고 있다.
다른 유일 아이템을 아무리 써봐야 이 정도 위력을 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때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왔다.
《 돌발 퀘스트 - 대전사 칼룬의 시험 완료. 》
- 대전사 칼룬과 전투.
- 패배 시 돌발 퀘스트 취소.
- 승리 시 고대 드워프 왕의 정보 습득.
《 돌발 퀘스트 - 대전사 칼룬의 시험 (추가) 완료. 》
- 대전사 칼룬과 1:1 전투.
- 패배 시 돌발 퀘스트 취소.
- 승리 시 칼룬의 인정.
- 대전사 칼룬이 주호 공작의 휘하로 편입.
됐어!
아마도 이벤트 형식의 대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칼룬을 다운시키면 승리로 인정하는.
옆에서 그걸 지켜본 재중이 형이 말을 꺼냈다.
“정상적인 방법이라면 개고생 했을 걸?”
“이 한 방이 없다면 말이죠?”
“오러를 뒤집어쓴 NPC를 다운시킨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니까. 테인 공작을 다운시킨다고 생각해 봐. 쉬울 것 같아?”
재중이 형의 말에 잠시 그 장면을 상상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크, 그건 진짜 어렵죠.”
테인 공작과 대전사 칼룬.
둘 다 붙어본 경험으로는 칼룬 쪽이 상대하기 좀 더 수월했다.
일단, 테인 공작은 빠른 이속과 공속, 그리고 엄청난 스탯과 스킬을 소유하고 있으니까.
반면 칼룬은 느리지만 묵직한 한 방, 그리고 강한 힘에 치중되어 있고.
그러다 보니 상대하긴 편했다.
수룡화와 헤이스트를 병행하면 속도 면에서 절대 밀리지 않으니까.
그리고 파워에서 밀려 칼룬을 다운시키려면 한참을 싸워댔을 테지만 발루딘 덕분에 그 문제를 바로 해결해 버렸다.
여러 가지로 내 쪽에 운이 좋은 상황이었다.
시스템 메시지가 나온 뒤, 온몸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칼룬의 피부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순식간에 몸의 상처를 다 회복하는 모습에 재중이 형이 눈빛을 반짝였다.
“신체 재생? 엄청 빠른데? 테인 공작은 저런 거 없잖아.”
전사 형 역시 관심을 가졌고.
“음, 아마 종족 특성이나 스킬일 수도 있고요.”
“너한테는 좋겠는데?”
“구할 수만 있다면 말이죠.”
확실히 여러 가지로 테인 공작과 비교되는 NPC였다.
육체적인 능력 하나만 따지면 이쪽이 압도적이다.
재중이 형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운이 좋았어. 저런 스킬을 사용했으면 장기전이 될 뻔했다.”
재중이 형 말대로 장기전이 되면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수룡화가 끝나면 오히려 속도 면에서 이쪽이 밀릴 테니.
우리가 대화를 나누면서 기다리는 사이 빠른 속도로 몸의 상처를 전부 회복하고는 칼룬이 서서히 무거운 신체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내 쪽을 바라보더니 묵직한 한 마디를 꺼냈다.
『 주호 공작, 당신을 인정하겠습니다. 』
《 드워프 대전사 칼룬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
《 드워프 대전사 칼룬이 주호 공작 휘하로 편입됩니다. 》
그렇게 돌발 퀘스트가 전부 완료되면서 대전사 칼룬 역시 아군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문제는 이 칼룬이 언제까지 내 편이라는 건데…….
휘하에 들어왔다지만 딱히 칼룬의 스탯을 본다던가 장비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은 없었다.
이건 직접 확인해봐야 하려나.
“우리와 함께 움직이는 겁니까?”
『 네, 그렇습니다. 』
일단,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대로고.
하나를 더 확인해야 했다.
“전투가 일어나면?”
『 위협이 되는 상대라면. 』
이건 꽤 포괄적인 대답이었다.
상대에 따라 움직일 수도 있다는 말이 되는 건가.
그걸 보고 있던 재중이 형에게 바로 귓속말이 들어왔다.
<불멸> 무조건 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시스템은 아닌 모양이다.
<주호> 네, 반응을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불멸> 상황에 따라 도움을 줄 수 있되, 적극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라고 해석해야 맞을 것 같은데.
<주호>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죠.
아마 우리 팀과의 무력 순위만 따지면 스펙 상 이 녀석이 거의 1순위이지 않을까.
그런 녀석이 옆에서 도와주는 것만 해도 이미 충분한 이득이었다.
그때 전사 형에게서 귓속말이 날아왔다.
<방패전사> 으음, 이건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주호> 무슨 문제가 있어요?
<방패전사> 혹시 저 칼룬의 기술을 좀 배울 수 없으려나?
<주호> 네?
<방패전사> 아까 본 기술들.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주호> 아, 가능할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물어볼게요.
기술에 대한 것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전사 형은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전사 형과 잠시 눈을 마주치고는 곧장 칼룬에게 물었다.
“혹시 기술 전수 같은 것도 가능합니까?”
내 돌발적인 물음에 이쁜소녀가 가장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전사 형과 이쁜소녀 같은 근접 계열은 이 칼룬과 상당히 겹치는 부분이 있으니까.
특히 이쁜소녀.
같은 배틀 액스를 쓴다는 점에서 보면 거의 닮아있었다.
내 물음에 잠시 멈칫했던 칼룬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 가능합니다. 』
“우와! 대박!”
다른 누구보다 이쁜소녀가 가장 좋아하면서 제자리에서 점프를 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대로 웃어버렸다.
저렇게 좋을까.
내게 물었던 전사 형 역시 주먹을 불끈 쥐었다.
『 다만 그에 맞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
“대가라면?”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짧은 시간 붙어보았지만 대전사 칼룬의 스킬 하나하나가 전부 위협적이었다.
어느 정도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배울 수 있으면 전부 배울 필요가 있었다.
『 암흑혈. 』
암흑혈?
처음 들어보는 말에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 고대 드워프 왕의 저주받은 무덤은 암흑혈 위에 건설되어 있습니다. 무덤의 최하층까지 저를 데려다주시면 됩니다. 』
이건 딱히 돌발 퀘스트로 뜨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단순히 대전사 칼룬과 우리의 거래 혹은 퀘스트 정도.
<불멸> 어차피 가야 하는데 잘됐네.
<주호> 네, 일이 쉽게 풀리네요.
그때 챠밍이 대전사 칼룬에게 물었다.
“혹시 암흑혈이 뭔지 알 수 있나요?”
질문을 한 챠밍을 잠시 바라본 대전사 칼룬이 다시 내게 고개를 돌렸다.
이거 참.
나를 통하지 않으면 대답도 하지 않겠다는 건가.
승리를 하고, 드워프 왕의 숨결을 가진 내게는 우호적이지만 우리 팀은 딱히 아닌 것 같았다.
“괜찮으니까 대답해주시죠. 나도 궁금하기도 했고.”
내 대답에 칼룬이 곧장 고개를 끄덕이고는 암흑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 암흑혈은 고대 괴물들의 근원입니다. 』
고대 괴물이라면…….
네임드를 뜻하는 건가?
재중이 형도 같은 생각인지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네임드를 말하는 것 같은데?”
“네, 전에도 비슷한 내용을 본 적이 있어요.”
하르가 빛의 물질.
타르는 그걸 타락시킨 물질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유적지는 원래 인간들의 도시 문명이었고.
아마도 유적지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고 봐야 할 것 같은데.
“고대 괴물이 암흑혈에서 태어나기라도 합니까?”
『 정확한 생성 원인은 저도 모릅니다. 다만 암흑혈이 생기면서부터 그 주변이 오염되어 아무도 살 수 없는 땅이 된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 괴물이 살기 좋은 환경이 됩니다. 』
일명 저주받은 땅인가?
『 문명이 있던 대륙이 암흑혈에 침식되어 대부분 경계 너머로 밀려났습니다. 전 그걸 조사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겁니다. 』
그말을 듣는데 갑자기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메인 퀘스트 - 암흑혈 조사. 》
- 드워프 대전사 칼룬에게 암흑혈에 대한 정보 입수.
- 암흑혈을 조사하라.
- 퀘스트 보상.
암흑혈의 파편.
이건?
메인 퀘스트가 이쪽으로 연결되는 거였나?
우리 팀 모두에게 메인 퀘스트가 뜨자 재중이 형이 내게 말했다.
“어떤 식으로든 암흑혈에 대한 정보만 알면 메인 퀘스트가 뜨는 것 같은데?”
“습득 경로가 여럿일 수도 있겠네요.”
“아마 다른 유일 아이템에 다가갈 때도 메인 퀘스트가 뜰 수도 있고. 흠, 꼭 그렇지 않더라도 경계 너머로 넘어가면 알게 되려나?”
경계 너머의 환경 자체가 암흑혈과 관련이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유저들도 암흑혈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정보를 얻을 테고.
단순히 경계 너머의 조사를 하는 것만으로 끝나진 않겠는데…….
챠밍이 그때 손을 들어서 물었다.
“한 가지 더 물어봐도 돼요?”
이미 내가 대답을 해도 된다고 말했기에 칼룬이 대답을 해주었다.
『 뭐가 궁금하지? 』
확실히 나와는 대하는 태도가 천지 차이네.
딱히 챠밍은 그런 태도가 상관없다는 듯 궁금한 것만 물어보았다.
“혹시 용혈과 비슷한 건가요?”
용혈?
『 맞다. 용혈로 드래곤의 무구를 만들 수 있다면. 암흑혈은 이것을 제련할 수 있지. 』
그러면서 칼룬이 내게 받았던 듀라한의 갑옷 조각을 꺼내 들었다.
어쩐지 제련이 안 된다고 하더니.
아니, 그렇게 치면 애초에 제련도 안 되는 네임드들을 잡아 온 건가?
듀라한도 그렇고.
고르곤, 흑장로까지.
재중이 형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바로 말을 꺼냈다.
<불멸> 크큭, 이러니 기겁을 했겠지.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네임드를 다 잡아버렸으니.
<주호> 하하…….
<불멸>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이제 슬슬 출발하자고. 고대의 왕을 찾으러.
이 영지의 볼일은 이것으로 끝.
집사가 불쌍했지만, 여기서 더 이상 시간을 끌 순 없었다.
“그럼, 슬슬…….”
그렇게 출발하려고 하는데 사장님에게 귓속말이 들어왔다.
응?
벌써 준비하신 건가?
당장 사장님에게 연락이 올 일은 그것밖에 없기에 사장님과 연결했다.
<카이저> 지금 바쁘냐?
<주호> 아뇨, 이쪽은 거의 다 마무리됐어요.
<카이저> 음, 생각보다 빠르구나. 그럼 이쪽으로 빨리 넘어와야겠다.
<주호> 네? 무슨 일 있어요?
<카이저> 선발로 출발한 유저들이 뭔가를 발견한 모양인데... 이게 문제가 있어.
문제?
우리를 부를 정도로 문제가 되는 건가?
그때 사장님이 꺼낸 말에 다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카이저> 유저들이 경계 너머에서 이상한 무덤 지대를 발견했다는구나. 그런데 이게 아무래도 유적지 같아. 거기다 지금 소문이 잔뜩 퍼져서 개떼처럼 몰려드는 중이다.
뭐?
나 역시 어이없는 표정으로 우리 팀을 바라봤다.
“이거… 그거 맞죠?”
뭐야?
이렇게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거였다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