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60화 (550/1,404)

#560화 작위 경매 (2)

화련의 돌발적인 말에 회의장이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나 역시 꽤 놀란 상태였고.

“에? 언니… 인가요?”

“응. 아쉽게도.”

아쉽게도?

가족 사이에서 쉽게 나올만한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 화련을 보던 여인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나와 화련을 한 번씩 훑어봤다.

특히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맹수의 그것과 닳은 그런 눈빛이었다.

저런 눈빛은 예전에도 느껴봤다.

화련이 날 처음 봤을 때.

그 당시에도 흠칫한 느낌을 받았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여인이 화련을 다시 보고는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말을 꺼냈다.

듣기에 따라서 아주 무서운 말을.

“네가 그러니까 더 가지고 싶어지잖아?”

“칫, 신경 끄시지?”

여인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내뱉는 말과 화련의 날이 바짝 선 대답이 오가면서 얼음장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무리 봐도 사이가 좋은 자매는 아닌 모양이고.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나쁜 쪽에 가까우려나?

다시 날 바라본 여인이 갑자기 활짝 미소 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흐음, 그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는데… 마음이 바뀌었어. 정말 가져야겠다.”

“야!!”

회의장이 떠나가라 외치는 화련의 고함에 다들 깜짝 놀라 화련을 바라봤다.

저 여자.

정말 정상은 아니네.

가만있는 사람을 두고 가지네 마네하고 있으니.

그런 여인을 보고는 화련이 경고하듯 외쳤다.

“건드리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이번엔?

말이 좀 이상한데?

무슨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어머? 그렇게 마음에 들었니?”

“난 분명히 경고했어.”

떠보는 것 같은 여인의 말에 화련이 발끈할 법도 한데 날 선 태도를 유지한 채 여인을 그대로 노려보았다.

정말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군.

확실히 평범한 집안은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매서운 화련의 시선을 슬쩍 피해 뒤에 있는 나를 바라본 여인이 마치 절친이라도 본 것처럼 반가운 미소를 짓더니 말을 꺼냈다.

“반가웠어요, 주호 씨. 다음에는 화련이 없는 곳에서 한 번 보도록 해요.”

그 말에 화련이 다시 날을 세웠다.

“장난 아니라 했다!”

그런 화련을 한 번 스윽 훑어본 여인이 곧장 전신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앞으로 재밌겠어.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그 말에 전신이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흐음? 경쟁자를 우리 안으로 데려온다는데 흥미가 없는 모양이네?”

“누가 오든 상관없습니다. 그저 할 일을 할 뿐.”

“재미없는 남자 같으니라고. 그래서 널 좋아하긴 해.”

여인의 그 말에 대해선 전신이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이런 일에는 별반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그런 모습을 평소에 자주 봤는지 그 여인도 딱히 다른 말은 하지 않았고.

다시 화련을 돌아보고는 여인이 말했다.

“본가에도 좀 오고. 할아버님이 가끔 이야기하시니까.”

“흥, 그건 내가 알아서 해.”

“그러시던가.”

그 말을 끝으로 여인이 바로 빛으로 변해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볼일을 다 봤으니 나간 건가?

한바탕 회의장에 폭풍을 안겨주고 간 여인이 사라진 곳을 화련이 매서운 눈빛으로 째려보다가 이내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바로 신경질부터 냈다.

“아, 짜증 나.”

그다음 전신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당신도 조심하는 게 좋아. 겉으로는 저래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야.”

화련의 말에 전신이 화련을 잠시 바라보고는 역시 살짝 고개만 숙여 보였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새겨듣죠.”

화련은 그 대답을 끝으로 이내 관심에서 사라졌는지 전신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돌아서서 나를 보고는 말했다.

“저 불여우한테 넘어가지 마.”

“불여우입니까?”

보통 언니에게 불여우라고 잘 안 하지 않나?

갈수록 알 수 없는 집안이네.

이전에는 화련 한 명뿐이라 그러려니 했었는데 이젠 좀 궁금해졌다.

대체 뭐 하는 집안이길래 자매가 쌍으로 저렇게 돈을 써대지?

적어도 평범한 집안은 절대 아닐 것 같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 별거 아닙니다.”

“아무튼 언니 조심해. 한 번 눈에 들어온 먹이는 놓치지 않으니까.”

“생각보다 예쁘던데요?”

“캬악! 저게 어디가!”

“아, 농담입니다. 제 스타일은 아니에요.”

“아씨, 진짜.”

이런 참.

농담도 못 하겠군.

이렇게 발끈하는 모습은 처음 보네.

그런데 화련이 갑자기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꺼냈다.

“…사람을 못 쓰게 만든단 말이야.”

“네?”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사람을 못 쓰게 만든다고?

설마……?

옆에 나와 화련을 보고 있던 재중이 형에게 고개를 돌리자 재중이 형은 그저 구경한다는 표정으로 어깨만 으쓱했다.

형에게 뭔가 듣기는 힘들겠네.

다시 고개를 돌려 화련을 보자 화련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막상 데려다 놓고 나중에 자기 맘에 안 들면 완전히 망가뜨린단 말이야. 아무것도 못 하게.”

“계약… 뭐 그런 겁니까?”

“비슷해.”

흐음.

이건 꽤 무서울 수 있는 말이다.

나 역시 여러 계약에 묶여 있지만, 내 자유를 묶는 계약은 거의 없었다.

DS 쪽도 그렇고.

소소하게 광고 쪽으로 도움을 주는 계약이 있긴 해도 이것도 내 스케줄에 맞춰주는 편이라.

애초에 그런 식이 아니었다면 시작도 안 했을 테니.

“그런 거라면 제가 당신의 언니에게 갈 일은 없겠네요.”

다른 것은 몰라도 이건 확실하다.

환경을 묶는 계약은 아예 하지 않는다.

돈이 아쉬운 상황도 아니고.

그래서 좀 전에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을 보여주면서 이야기했을 때도 동요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쪽이라면 예전에 화련이 제안을 했을 때 넘어갔겠지.

“그럴 줄 알았어.”

“저 쉬운 남자 아닙니다.”

“그건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아! 얼마나 철벽인지.”

완전히 확답을 주자 화련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 여자도 이렇게 웃을 줄 아나?

매번 화를 내는 모습만 봤더니 신선하네.

하긴 화련이 한두 번 스카우트 제의를 한 게 아니라서.

처음에 내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다 포기하고 손을 놓았다면 화련은 달랐다.

시종일관 같은 자세로 물어오니까.

아마, 처음에 재중이 형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화련하고 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순간 그런 황당한 생각이 나자 빠르게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미래가 무섭긴 처음이야…….

어이없는 생각을 날려 버리고 화제를 돌리기 위해 화련에게 말했다.

“약속한 건 지금?”

돌려 말했는데 화련이 바로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아, 백작 작위요?”

“네, 하나 빼두었거든요. 전에 약속했던.”

“당연히 받아야지. 백작 작위 하나에 얼만데.”

“돈을 신경 쓰긴 하나 봅니다?”

“그럼 내가 세상 물정 모르고 돈을 펑펑 쓰는 사람 같았어?”

그 말에 바로 ‘네’라고 대답을 하려다가 곧 입을 다물었다.

휴…….

정말 반사적으로 말할 뻔했어.

우리 팀도 나와 마찬가지인지 입을 꾹 막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야! 나도 돈 아까운 건 잘 안다고.”

“네네, 그러시겠죠.”

“아! 진짜라니까!”

뭔가 이야기가 벗어나긴 했는데 곧장 화련에게 백작 작위를 넘겨주었다.

지금 작위를 우리에게 받는 게 제일 좋다.

어차피 요새전에서 포인트를 전부 우리에게 넘겨주었기에 자력으로 백작으로 올라서지 못하니까.

우리는 약속을 지킬 수 있고.

화련은 백작 작위를 얻고.

둘 다 윈윈인 상황.

임명서를 받자마자 화련은 백작 작위 임명서를 찢었다.

《 헤라 길드의 화련이 가르시아 제국 백작 작위에 임명됩니다. 》

이런 건 공식으로 다 올라오는구나.

이로써 세 번째 백작인가?

재중이 형, 챠밍, 그리고 화련.

아, 한 명 더 있었지.

《 초월 길드의 전신이 가르시아 제국 백작 작위에 임명됩니다. 》

화련이 백작 작위에 오르는 것을 보고 난 뒤, 전신 역시 임명서를 찢어서 백작 작위에 올랐다.

어차피 전신은 그대로 뒀어도 남작 작위. 혹은 그 이상의 작위에 올랐을 것이다.

확실히 어떻게 산정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저 그런 작위만 주고 끝나진 않았을 지도.

요새전에 우리 다음으로 포인트가 많았으니까.

<주호> 돈 돌려달라고 하진 않겠죠?

<불멸> 아니, 전신에게 내려지는 게 원래 백작 작위면 어차피 모르는 건 매한가지다. 그리고 자기 돈이 아니라서 신경도 안 쓸 걸?

<주호> 뭐 그럼 됐죠.

백작 작위를 이미 가지고 있으니 황제가 전신을 부를 일도 없을 거고.

재중이 형 말대로 전신은 절대 알 수가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두 명이 동시에 백작에 오르자 채팅창이 갑자기 난리가 났다.

-우왁, 뭐냐? 백작이 둘이나?

-전신? 이번 요새전에 2등 한 유저 아님?

-혹시 요새전 보상 아냐?

-아님, 그럼 보상 없었음.

-그리고 화련 봐라. 화련은 순위에도 없는데 무슨 수로 받음.

-대체 어떻게 백작을 달았지? 남작 위도 아니고. 주호처럼 나라를 구한 것도 아닌데.

-아, 작위 따기 하늘의 별따기인데. 진짜 부럽다!

일반 유저들은 전혀 모른다.

이렇게 백작 임명권을 사고팔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어도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 회의장에 있는 길드는 정말 상위권의 돈 많은 길드로 한정되어 있었다.

평범한 유저는 작위 하나에 엄청난 돈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을 알면 산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테니까.

그런 채팅창을 본 회의장의 길드 마스터나 유저들도 자신들도 백작 작위를 달기 위해 바로 사장님을 재촉했다.

“거, 빨리 시작합시다.”

바로 눈앞에서 백작 작위를 다는 것을 봤으니 욕심이 동할 수밖에.

“흠흠, 좀 지체되었지만 시작하도록 하죠.”

그 뒤로 정말 압박감 속에서 경매가 이루어졌다.

화련의 언니와 전신이 참가했을 땐, 독주에 가까운 현질로 다른 사람들을 눌러버려서 싱겁게 경매가 끝났으나 지금은 달랐다.

비슷한 자금력을 가진 유저들이 서로 가격을 눈치 보면서 올리기 시작하자 회의장이 숨 막힐 것 같은 긴장이 흘렀다.

“누가 가져갈 것 같아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었다.

“뭘 물어? 돈 많은 놈이 가져가겠지.”

“하긴, 당연한 걸 물었나요.”

아니나 다를까.

세 장 중 한 장은 전에 화련의 언니에게 물을 먹은 해원이 가져갔다.

“젠장. 이렇게까지 쓸 필요는 없었는데.”

해원이 다른 사람들을 확실히 이기기 위해 다소 무리하게 돈을 질렀다.

그 때문인지 표정이 썩 좋지 않았고.

그러면서 우리에게 걸어오자 속으로 혀를 찼다.

너도 돈 아까운 줄은 아는구나?

“내놔. 작위.”

“맡겨둔 것처럼 말한다? 확, 안 준다?”

이놈아, 아직 작위는 내 손에 있다고.

내 말에 해원의 표정이 정말 썩은 것처럼 변했다.

그런 해원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 나서야 백작 작위를 거래했다.

“젠장, 이놈이나 저놈이나. 재수가 없으려니까.”

그러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임명권을 찢어냈다.

《 천상 길드의 해원이 가르시아 제국 백작 작위에 임명됩니다. 》

해원은 아마 꿈에도 모를 거다.

가만있어도 작위를 받았을 거란 사실을.

완전히 돈이 넘어오고 해원이 임명권을 찢는 것을 보면서 나와 재중이 형이 동시에 미소 지었다.

백작 작위를 달고 난 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해원을 보면서 겨우 웃음을 참았고.

그런 우리를 본 해원이 의아한 눈빛으로 나와 재중이 형을 봤지만 무엇 때문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젠장, 돈 받으니까 좋냐?”

그런 해원의 말에 나와 재중이 형이 동시에 말했다.

터지는 웃음을 참아가며.

“어, 정말 고맙다.”

“너, 진짜 복 받을 거다!”

진짜로.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