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9화 작위 경매 (1)
순간 적막이 감돌며 모여 있던 이들의 시선이 그 여인에게 전부 몰렸다.
저 여인은 누구지?
화려하면서 풍부한 금발, 강렬한 느낌의 적안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
첫인상은 주변에 다가가기 어렵겠다 싶은 딱 그런 느낌인가?
그 이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는 기묘하고 무거운 그런 기분이 계속 들었고.
마치 사람들을 아래로 내려 보는 것 같은.
저 느낌을 어디서 느꼈지?
이전에도 비슷한 느낌이 든 적이 있었는데…….
옆에 있는 전사 형에게 눈빛으로 물었더니 전사 형이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꽤 강렬한데?”
전사 형의 너스레에 다시 시선을 그 여인에게 돌렸다.
흐음.
이상할 정도로 눈에 익단 말이지.
특히 눈빛.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음에도 전혀 당황하거나 흔들리는 눈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저런 상황이 당연해 보이는 눈빛이라…….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원래 저런 환경에 있었기에 나오는 눈빛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 사장님이 그 여인에게 다시 물었다.
“흠, 아직 경매가 시작되지 않았습니다만?”
사장님의 그 말에 여인의 눈빛이 확 가라앉았다.
“이런 곳에서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최고가로 살 테니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그러면서 그 여인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누군가를 바라봤다.
흐음.
저 사람은 전신?
“필요한 건 이게 끝이야?”
여인의 말에 전신이 부정하지 않은 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전사 형이 그 모습을 보고는 말했다.
“초월 길드 쪽 스폰서인 모양이다.”
“네, 그렇게 보이네요.”
그동안은 베일에 싸여 있던.
그간 초월 길드도 그렇지만, 다른 길드들 역시 공식적으로 후원을 받는 다는 이야기가 없어 그저 그렇다더라, 라는 소문만 돌았다.
우리는 재중이 형을 통해 알고 있는 정도였고.
“대놓고 이렇게 나오는 걸 보면 저기도 상당하네.”
“역시 그렇죠?”
저 여인이 전신의 뒷배인가?
마지막까지 우릴 밀어붙인 초월 길드의 자금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했더니 아마도 저 여인이 뒤에서 도와주는 모양이었다.
그때, 해원이 찡그린 표정으로 그 여인에게 외쳤다.
“누군 남아돌아서 온 줄 아나… 빨리 경매나 시작하지?”
그러자 그 여인이 잠시 해원을 돌아봤는데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마치, 혐오스럽다는 그런 표정과 눈빛에.
그 여인이 잠시 한숨을 쉬더니 해원을 무시하고 사장님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시작하죠.”
그 모습에 해원이 잠시 이를 으득 갈았으나 어쨌든 경매를 시작하게 됐으니 딱히 따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저 여인은 돌아섰는데 여기서 난리를 쳐봐야 해원만 우습다.
그걸 알고 있기에 해원도 그냥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여전히 표정은 불만이 가득한 모습.
해원을 저렇게 무시할 수 있는 여자라…….
잠시 해프닝이 생겼지만 곧장 경매가 시작되었다.
“오늘 경매할 백작 작위는 총 4개입니다.”
그 말에 회의실에 있던 유저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사람들 중 태양이 먼저 사장님에게 물었다.
“다섯 개라 하지 않았습니까?”
“아, 미처 변경사항을 알려드리지 못했군요. 작위 중 하나는 이미 임자가 있습니다.”
“음, 그렇다면 이거 생각보다 돈을 더 써야 하겠는데…….”
다섯 개보다 네 개가 경쟁이 빡센 것은 당연한 일.
태양이 걱정하는 것도 그런 점이었다.
그런 태양을 보던 황룡이 바로 태양의 속을 긁어놨다.
“쫄리면 뒈지시던가.”
“뭐? 이 새끼가!”
태양하고 황룡이 사이가 안 좋다는 소문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저 둘…….
조금만 건드려도 바로 활화산처럼 타오를지도.
“잘하면 한 대 치겠다?”
“못 칠 것도 없지.”
그렇게 두 사람이 으르렁거리자 회의장 분위기가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고 그런 분위기를 사장님이 중재를 하셨다.
“자자, 싸움은 경매로 하시죠. 경매를 이기는 쪽이 승자 아니겠습니까.”
은근슬쩍 사장님이 불을 붙여놓는 모습을 보고는 속으로 웃었다.
역시 노련하시네.
저러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무리해서 돈을 쓰게 될 것이다.
바로 태양이 화를 누르더니 혀를 차면서 자리에 앉았다.
황룡 역시 피식 웃으면서 마찬가지로 착석했고.
어수선하게 시작되긴 했지만 바로 경매가 이어졌다.
“기본가 1,000만부터 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가격은 점점 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기본 가격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듯.
“3,000”
“4,000”
:
초반에 달리는 사람은 역시나 태양과 황룡.
두 사람이 경쟁을 하면서 가격을 올리자 순식간에 가격이 부풀어 올랐다.
모르는 누가 보면 바람잡이로 심어놨다고 생각할 정도로.
활활 타오르는 그 모습을 보며 전사 형이 신나 했다.
“불이 붙네. 붙어.”
“정말 지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두 사람의 폭주로 가격이 오르고, 그 액수가 어느 선을 넘어가자 슬슬 올라가는 속도가 더뎌지기 시작했다.
“9500만.”
“꽉 채워서 1억.”
결국, 태양이 1억을 불렀다.
단 2분 만에 1억이라…….
그때, 전사 형과 내 옆으로 다가온 재중이 형이 한 마디 했다.
“슬슬 시작하겠군.”
“그런가요?”
“쟤들한테는 단순한 투자금이니까. 이제 제대로 나올 거다.”
재중이 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이라는 유저가 손을 들어 외쳤다.
연이라는 유저는 호리호리한 신체에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유저였고.
저건 전사 형보다는 내 쪽에 더 가까운 신체 밸런스이려나?
“……억.”
그녀가 부른 액수에 순간 회의실에 있던 유저들이 모두 움찔했다.
그리고 이어서 월하향이라는 여성 유저도 추가로 액수를 불렀고.
길고 검은 생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여성.
고요한 듯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억.”
콜로세움에서 재중이 형을 찾아왔던 프로 유저 중 두 사람이 한 번에 억 단위로 금액을 올리자 바로 회의장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정말 저런 돈을 막 쓰는군.
물론, 예전 같았으면 기겁을 했을 정도의 금액이지만 지금은 그냥 무덤덤하게 그 경매를 바라봤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 값어치에 비하면 저 정도 돈은 고려대상이 아니었으니까.
거기에 가지고 있는 요새까지 친다면 더 그렇고.
“애들이 아직도 간만 보네, 두 자리는 나와 줘야지.”
재중이 형 역시 마찬가지.
아니나 다를까.
해원이 슬슬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슬쩍 손을 들더니 아까 그 전신과 있던 여인을 노려보면서 금액을 걸었다.
마치 보란 듯.
“10억.”
입가에 미소를 짓는 걸 봐서는 아예 이 액수 이하로는 떨어져 나가라고 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재중이 형도 그걸 느꼈는지 피식 웃었다.
“해원이 오늘 좀 빡쳤나? 바로 싸움을 거는데?”
아마도 이쯤 되면 자존심 싸움이려나?
10억, 이라는 돈은 정말 큰 액수의 돈이다.
단순히 게임 속 아이템 가치를 떠나서 말이다.
물론, 백작 작위가 얻기 쉬운 것은 아니기에 저 정도 액수도 좀 부족해 보이기는 했다.
쉽게 얻을 작위였다면 이미 다들 한 자리씩 꿰차고 있었을 테니까.
지금까지도 우리 외에는 작위를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거의 하늘의 별따기라고 봐야지.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경매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오지도 않았겠지.
심지어 일개 남작도 아닌 백작.
시작점부터가 다르다.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었다.
백작 작위는.
그런데 의외로 다른 쪽에서 먼저 신호가 올라왔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늦게 참석한 전설과 리더.
그중 전설이 바로 가격을 올려 버렸다.
보란 듯.
“11억.”
설마 전설이 나설 것이라고 생각 못 했기에 좀 의아하기는 했다.
전설도 자금이 꽤 있는데?
그리고 이어서 전설을 한 번 바라본 리더 역시 가격을 올렸다.
“12억.”
애초에 이 정도 가격은 생각하고 나온 건가?
액수가 확 올라가는데도 불구하고 흔들리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반대로 해원의 기고만장한 표정이 구겨지는 데는 단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사람들이 치고 나갔기에.
뭐, 저렇게 올려주면 우리야 고맙지.
그런 생각이 무섭게 각 길드 마스터들이 바쁘게 어디론가 연락을 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이대로 무너질 생각은 없다는 건가?
그 모습을 본 전사 형이 추측하듯 말했다.
“자기들 물주에게 연락하나 본데? 아마도 한 번에 쓸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을 테니.”
“그럼 감사하죠.”
그렇게 연락을 한 길드 마스터 중 천사 길드의 하논이라는 유저가 잠시 고민 후 손을 들어 외쳤다.
저 사람도 프로 중 하나였지.
그럼 돈을 더 쓸 수 있게 허가가 떨어졌나?
그런데 그 액수가 상당했다.
“3억 더.”
그 액수에는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 번에 15억이라.
아마도 개인 돈은 아닐 테고.
재중이 형도 그 액수에는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리고 처음에 이렇게 가격을 올려주면 남은 세 장도 가격을 측정하기 쉬워진다.
물론, 액수가 뒤로 가면 줄어들기야 하겠지만 대략 50~60은 되려나?
그보다 적다고 해도 애초에 공짜로 얻은 작위다 보니 어떻게 해도 이득이었다.
그렇게 지금.
이 회의장에서는 일반 유저들이 봤으면 기겁할만한 액수들이 계속 오가는 중이었다.
그때 예의 그 여인이 손을 들었다.
그동안 계속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었는데…….
처음 등장과 달리 계속 구경하듯 관심 없는 모습을 보여서 중간에 손을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 여인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굳이 연락해서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바로 액수를 불렀다.
“그럼, 5억 더.”
에?
갑자기 급격하게 오른 금액에 다들 쥐 죽은 듯 그 여성을 바라보았다.
고요하게 변한 회의장.
그런 분위기 속, 여인이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 있게 발언했다.
“이건 처음부터 내가 가져간다고 했잖아.”
당당함.
미리 예고했던 대로 정말 본인이 백작 작위를 거의 손에 넣었다.
옆에 있던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이 이상 나올까요?”
“글쎄? 일단 지켜보자.”
이 상황은 재중이 형에게도 흥미로웠는지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긴 한 순간에 5억이 붙었는데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아까 시비 아닌 시비를 걸었던 해원을 한 번 슥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 무시해 버렸다.
저 여인의 그런 행동이 해원을 열 받게 했음은 당연했고.
그동안 돈으로는 어디 가서 밀려본 적이 없는 해원에게 굴욕에 가까운 사건이었다.
“큭, 1억 더해서 21억.”
그러자 해원이 그 자리에서 바로 가격을 올렸다.
그걸 또 그 여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쳤고.
마치 네가 올리면 나도 바로 올리겠다, 라는 그런 뉘앙스가 보였다.
“올릴 테면 올려보라는 건가? 재밌는 여자네.”
재중이 형도 그걸 느꼈는지 여전히 웃음을 짓고 있었고.
그만큼 해원은 빡친 표정으로 그 여성을 노려보았다.
아마 해원도 여기서 돈을 더 쓸 수 있을 것이다.
그간 전례를 보면.
충분히 여력이 있을 테고.
하지만 작위 하나에 저 이상의 돈을 걸 수 있느냐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거기다 문제는 해원이 올리면 당장 저 여성이 그대로 올려 버릴 것 같은 이 상황이 해원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걸 본 전사 형이 혀를 찼다.
“해원이 돈으로 밟히는군요.”
그런 해원의 똥 씹은 표정을 보고는 재중이 형이 결국 크게 웃었다.
“크큭, 저보다 돈 많은 놈 나타나면 알아서 짜져야지.”
결국, 기다리던 해원이 다시 손을 들지 않자 백작 작위는 그 여성에게로 넘어갔다.
정확하게는 전신의 손으로.
“감사합니다.”
“더 필요해?”
“아뇨, 작위는 하나면 충분합니다.”
전신도 이렇게 가격이 올라갈 거라고는 예상 못 했는지 하나로 족하는 모습이었다.
아니, 애초에 하나만 있어도 크게 상관없지.
다른 유저들이 작위를 얻는 것을 방해하려는 목적이 아닌 이상.
“그래, 이렇게 해줬는데도 지고 오면 죽을 줄 알아. 지는 거 누구보다 싫어하는 거 알지?”
“네, 실망하지는 않을 겁니다.”
“난 내가 가진 말이 최고여야 해. 너도 마찬가지고.”
그 말에 전신이 고개만 살짝 숙여 보였다.
확실한 주종 관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전신이 져주는 그런 모양새인가?
을은 언제나 슬프지…….
관계야 어찌 되었든 해원을 능가하는 사람이 나왔다는 것은 꽤 우려되는 부분이었다.
그것도 저런 프로게이머를 품에 넣고서.
그때 고개를 돌린 그 여성이 갑자기 우리에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응?
갑자기?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싹 무시하고 우리에게 걸어와서는 바로 내게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주호?”
아이디가 위에 뜨는데 몰라서 물어보는 것은 아닐 테고…….
“무슨 일이시죠?”
내 대답에 그 여성이 전혀 거리낌 없이 말을 꺼냈다.
“봤죠? 자금이라면 남부럽지 않게 드릴 수 있어요. 아니. 최고의 대우를 해줄 수 있죠.”
“지금 스카우트 제의입니까?”
“왜 안 될 것 있나요?”
이건 좀 얼떨떨한데?
이렇게 대놓고 면전에서 제의하는 사람은 오랜만이라 좀 신선하기까지 했다.
“아, 저는…….”
그런데 그때.
갑자기 우리 사이로 뛰어든 화련이 내 앞을 가로막으면서 그 여성을 쏘아보면서 외쳤다.
“얘는 안 돼! 내 꺼야!”
뭐?
이 여성만큼이나 황당한 화련의 말에 표정이 관리가 되지 않았다.
“혹시, 아는 사이…?”
화련이 말하는 것을 봐서는 그럴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다소 좀 다른 방향이긴 했지만.
잠시 머뭇거리던 화련이 결국 말을 꺼내놓았다.
그것도 아주 어이없는.
“그래, 이 사람…… 내 언니야!”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