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7화 탐사대 (3)
마리아 가르시아가 내민 갑작스러운 제안에 빠르게 머리가 돌아갔다.
탐사대를 맡긴다고?
메인 퀘스트가 아닌가?
지금 제국성엔 수많은 유저가 탐사대에 등록하기 위해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이건 탐사대를 조직하라는 건지, 탐사대에 포함되어 지휘하라는 건지 진위를 모르겠는데?
그리고 아직 탐사대에 대한 어떤 정보도 받지 못했다.
오기 전, 탐사대 퀘스트를 받고 왔다면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지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정보가 너무 없어…!
확답을 내리기엔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 광범위했다.
정보의 부재가 문제라면 결국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탐사대를 맡으라는 것은?”
내 질문에 마리아 가르시아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꺼냈다.
『 그대들이 제국 최후의 보루인 경계 주둔지를 잘 막아준 덕분에 본 제국에 숨통이 트였다. 하여 경계 너머로 다시 한 번 진출을 하려고 한다. 옛 제국의… 크루아 대륙에 존재하는 악마들을 멸절하기 위해서. 모험자들이 도와준다면 크루아 대륙을 인간들의 손으로 되돌릴 수도 있겠지. 』
이건 메인에 가까운?
분명 이 탐사대 퀘를 받는 유저들 역시 비슷한 내용으로 제안을 받고 있겠지.
물론, 황녀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지 못하겠지만.
큰 맥락에서는 차이가 없을 것 같고.
마리아 가르시아가 좌우에 시립한 귀족들을 한 번씩 쓱 훑어본 후, 진중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꺼냈다.
『 이번 탐사는 인류의 희망을 건 중요한 시작이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제국의 경계 바깥으로 나갈 수 없을 터. 귀족들과 힘을 모아 그대들이 이 제국을 도와주길 바란다. 』
귀족들과 힘을 모은다?
듣기에 따라서는 꽤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지만, 그간 봐온 귀족들을 보면 신용이 가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
마리아 가르시아가 중대한 발표를 하는 와중에도 귀족들끼리 수군거리면서 의견이 갈리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완전하지 않아.
마리아 가르시아의 기반이 되어줄 귀족이 부족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계속 생기는 것 같다.
이거 탐사대가 제대로 돌아가긴 할까?
내 생각이 딱히 틀리지 않는지 마리아 가르시아가 주변 귀족들을 한 번 바라보고는 표정을 굳혔다.
혹시 마리아 가르시아가 내게 탐사대 중 일부를 맡기려는 이유가 이건가?
귀족들을 믿지 못하니까?
그때, 재중이 형에게서 귓속말이 날아왔다.
<불멸> 개판이군.
<주호> 네, 좀 그런 것 같아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을 하던 재중이 형의 눈빛이 매섭고 날카롭게 변하더니 내게 말을 꺼냈다.
<불멸> 역시 죄다 쓸어버릴까?
<주호> 뭐, 반대하지는 않겠습니다.
나와 재중이 형의 성향은 차이가 있지만 이런 면에서는 보통 의견을 같이했다.
마리아 가르시아가 정상적인 패턴으로 황위에 오른 것이 아니다 보니 산적해 있는 각종 문제들.
이걸 해결하려면 결국 뿌리부터 완전히 갈아엎어야 했는데 여러 일이 겹치면서 유야무야 넘어가 버렸다.
그래서 하만 후작을 본보기로 날렸지만, 문제는 그대로였다.
그런 상황이 이어져 지금의 어정쩡한 상황이 되었고.
당장 탐사대가 시작되면 제국을 나가 있을 테니 시간도 없다.
정말 이 기회에 싹 쓸어버려?
문제는 저 두 공작들.
테인 공작.
루젠 공작.
두 공작이 중립이라 제대로 된 전력 파악이 힘들었다.
대놓고 귀족들을 학살하면 분명히 문제가 생길 터.
결국 명분인가?
<주호> 상황을 만들어야겠어요.
이런 경우가 통하는지 안 통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만약 탐사대를 임의로 변경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충분히 해볼 만해.
팽팽히 머리를 굴리다가 생각을 정리한 후 마리아 가르시아에게 역으로 제안을 했다.
“폐하, 이번 탐사대는 국가와 대륙의 명운을 건 중요한 사안이지 않습니까?”
그동안 매번 몰려드는 몬스터를 막기 바빴지만 지금은 마리아 가르시아가 황제가 되어 처음 주도하는 제대로 된 일이었다.
이런 일은 실패를 하면 그만큼 마리아 가르시아에게도 큰 부담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그럼 귀족들의 목소리가 커지겠지.
아니, 필히 그렇게 될 것이다.
지금 다 쓸어버릴 수 없다면…….
그럼 아예 시작점을 바꿔야 한다.
그림이 우리 쪽에 유리하도록.
『 잘 아는구나. 제국의 명운을 건 일이다. 현재 이보다 중요한 사안은 없겠지. 』
“그럼 이번 탐사대를 통해 신하들의 충성을 확인해 봄이 어떻습니까?”
『 호오? 그것참 솔깃하구나. 』
내 의도를 어느 정도 눈치챈 듯 마리아 가르시아도 바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리고 좌우로 길게 시립해 있는 귀족들을 쭉 한 번씩 바라보는 연기까지.
그러자 귀족들은 하나 같이 고개를 돌려 마리아 가르시아의 시선을 회피했다.
좋아.
넘어왔어.
아니, 이 경우엔 오히려 호응을 해주는 쪽이라고 해야 하려나.
그것도 아주 만족스럽게.
“이번 탐사대. 귀족 주도로 한 번 꾸려보면 좋겠습니다. 제국을 위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겠지요.”
쿠궁.
바로 제안을 꺼내 시선을 회피하는 귀족들에게 완전히 사형 선고를 내려 버렸다.
아마 탐사대는 황실 쪽의 세력, 혹은 제국의 병력에서 차출해서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이쪽이 정석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예상은 귀족들이 마리아 가르시아의 시선을 회피하는 순간 확신했다.
저 녀석들은 이번 탐사대에 손가락 하나 올리지 않았다고.
그럼 이야기는 정말 쉬워지지.
이걸로 두 가지를 모두 챙긴다.
눈엣가시 같은 귀족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것이 첫째.
그러면 자연스럽게 마리아 가르시아가 세력을 휘어잡을 수 있을 터.
두 번째가 명분.
국가의 명운을 건다는 확실한 명분이 있기에 귀족들은 절대 반대를 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자기 한목숨 건사하겠다고 발을 빼는 순간, 역적에 준하는 상태로 전락해 버릴 테니.
아니, 이 경우엔 귀족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돌발 제안에 귀족들의 표정이 바로 똥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반대하기엔 마리아 가르시아가 가진 명분이 너무 좋았다.
<불멸> 크큭, 머리 잘 썼는데? 아예 구렁텅이로 굴려 버렸잖아?
<주호> 이왕 치울 녀석들이라면 뭐라도 써먹어야죠. 아마 절대 거절할 수 없을 겁니다.
<불멸> 그렇지. 여기서 발을 빼는 순간. 저 알량한 귀족 작위도 끝이다. 거기다 마리아 가르시아 입장에서는 잘 되면 좋은 거고. 혹여 잘못되더라도 귀족들의 실패로 몰아가면 그만이니까.
<주호> 그 와중에 좀 죽어주면 더할 나위 없죠.
내 말을 들을 재중이 형의 눈매가 가늘게 변하더니 곧 입가에 웃음이 새겨졌다.
이 형.
눈치가 정말 빠르다니까.
그렇게 즐겁다는 표정을 가득하고서는 재중이 형이 말을 이었다.
<불멸> 확실히 죽은 자는 말이 없지.
그런 형을 보면서 나도 마주 웃었다.
맞다.
단순히 전쟁터에 녀석들을 내보내기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 탐사대는 결코 그냥 탐사대로만 끝나지 않을 거니까.
과연 마리아 가르시아가 여기까지 내다볼 수 있으려나?
아니, 이 경우에는 상관없지.
마리아 가르시아의 역할은 저들을 탐사대로 내보내기만 하면 된다.
내 제안을 받은 마리아 가르시아가 곧 귀족들을 보면서 묵직한 말을 꺼내 들었다.
『 이번 탐사대에 그대들도 참가하리라 짐은 믿고 있다. 제국의 명운을 건 이 탐사대는 그대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터. 성과를 가져오는 자에게는 내 그에 걸맞은 작위와 영지를 내리겠다. 』
<불멸> 이거 참, 우리 황제님 멋지네.
재중이 형 말대로 채찍만 주면 구석에 몰린 쥐처럼 반항할 수 있으니 당근도 같이 훅 던져주었다.
명분에 이은 보상.
빠져나갈 구멍을 주지 않는군.
그리고 이건 마리아 가르시아가 내 제안을 확실히 받아들였다는 증거였다.
이해관계의 완벽한 일치.
귀족들이 뭔가 반대를 하려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휩쓸렸다.
여기서 반대하겠다는 건, 가기 싫다고 생떼 부리는 것과 동일하니까.
정말 꼼짝없이 끌려가겠군.
문제는 그런 마리아 가르시아의 제안이 시스템을 통째로 흔들어버린 것 같다.
《 탐사대 이벤트 관련 시스템이 변경됨에 따라 5분 뒤, 긴급 점검이 있을 예정입니다. 고객님들 모두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
-또 점검이라고?
-아놔, 이벤트가 잘못된 건가?
-후, 겨우 접속했는데.
-빨리 들어오려면 시작부터 대기타야겠네.
-점검 좀 그만하라고!
점검 공지를 본 재중이 형이 나를 보면서 웃었다.
“쟤들도 당황했나 보다. 이런 식으로 시스템이 변경될 줄 상상도 못 했을 테니.”
내 제안을 마리아 가르시아가 받아들임으로써 원래 예정에도 없던 시스템을 만들어 놔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벤트가 통째로 바뀐다는 말이었고.
“어떻게 바뀌나 한 번 두고 보죠.”
* * * * *
긴급 점검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기존 시스템에서 많은 것을 변경해야 할 테니.
그렇게 밤 시간 내내 진행된 점검.
퇴근을 못 하고 밤새 작업하고 있을 누군가가 생각나기도 하고.
그렇게 새벽이 다 되어서야 서버가 열렸다.
유저들의 원성은 덤이었고.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149.
> 로딩 중…….
이번엔 새벽에 접속을 해서 그런지 대기열을 쉽게 돌파할 수 있었다.
뭐가 바뀌었는지 볼까?
* * *
[ 공지사항 ]
▷ 『 경계 너머의 탐사대 』 이벤트가 일부 수정됩니다.
▷ 탐사대 선택 시 진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 해당 진영의 귀족들에게서 장비 지원과 물약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진영의 기여도에 따라 해당 귀족들과 친밀도가 상승하거나 하락합니다.
▷ 유저가 개별 진영을 개설할 수 있습니다.
▷ 개별 진영 개설 시 제국이나 귀족으로부터 NPC 병력과 물자 지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 개별 진영 개설 시 모든 보상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 경계 너머로 거점 설치 시 귀족 작위가 필요합니다.
▷ 귀족 진영에 속할 경우 귀족 거점에 주둔 가능합니다.
▷ 귀족 진영에서 귀족이 사망할 경우 진영이 해체됩니다.
▷ 진영이 해체되기 전까지는 진영을 변경할 수 없습니다.
▷ 이벤트 기간 동안 거점으로 영토를 확장, 혹은 그에 준하는 아이템 발견, 몬스터 퇴치 등을 통해 기여도가 적립됩니다.
▷ 가장 높은 기여도를 획득하신 유저에게 제국이나 해당 귀족으로부터 보상이 지급됩니다.
▷ 적대적인 다른 귀족이나 유저를 죽이면 해당 기여도를 획득하거나 아이템, 거점, 진영을 점거할 수 있습니다.
* * *
역시 예상했던 대로인가?
기존의 탐사대 시스템에서 귀족들이 참가함에 따라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좀 더 경쟁적인.
그리고 유저들이 직접 운영하는 진영 시스템이 추가되었고.
귀족들과 함께하면 귀족에게 의존을 하는 시스템이지만 유저가 직접 운영을 한다면 공을 전부 유저 측이 먹을 수 있었다.
물론, 처음 가보는 경계 너머를 유저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은 그만큼 부담이 늘어난다는 문제점이 존재했고.
거기다 귀족 작위가 없으면 거점을 설치할 수 없는 문제까지.
현재 귀족 작위를 가진 유저는 정말 극소수다.
어쩔 수 없이 귀족들이 참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하고.
접속한 뒤, 마리아 가르시아를 다시 찾아 이전의 퀘스트를 받았다.
《 마리아 가르시아의 제안에 따라 주호 공작의 진영이 형성됩니다. 》
《 주호 공작의 『 신화 』 진영이 탐사대 목록에 등록됩니다. 》
《 『 신화 』 진영에 다른 유저의 가입을 받거나 탈퇴시킬 수 있습니다. 》
《 주호 공작은 마리아 가르시아에게 개별적인 보상을 추가로 받을 수 있습니다. 》
이건 아마 다른 유저들과 다르게 내 쪽은 황제의 보상을 추가로 더 받는 모양이었다.
추가 보상은 나중에 가봐야 알려나.
일단 성과를 내는 일부터.
그때 마리아 가르시아에게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 탐사대를 위한 귀족을 몇 명 더 선별하기로 했다. 이번 탐사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하니까. 』
으음?
그동안 귀족 작위를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는데.
이런 식으로 풀어주는 건가?
이걸 알려주는 이유는 아마도 친밀도가 높기 때문일 터.
“언제입니까?”
『 곧 탐사대가 출발해야 하니, 빠를수록 좋겠지. 이전 경계 수호자 임무에서 높은 기여를 한 모험가에게 귀족 작위를 주려고 한다. 』
으음, 누가 받을지 답이 나오는데?
그 소식을 듣자마자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갔다.
그럼 그전에 최대한 해먹어야겠어!
“하루만 늦춰주시죠. 귀족 작위 수여를.”
『 주호 공작이 부탁하니 그렇게 하도록 하지. 』
역시 친밀도.
이 정도는 먹히는구나.
바로 접속한 재중이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형, 경매 한 번만 열어주세요.
<불멸> 갑자기 무슨 경매?
<주호> 귀족 작위. 급하게 팔아야겠어요!
그것도 아주 비싸게.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