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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47화 (540/1,404)

#547화 다시 한 번 깽판 (5)

진짜 이런 방법이 가능하긴 한가?

한 번씩 죽는 건 정말 큰 손해다.

그럼에도 저런 방법을 쓰다니…….

무식하다고 해야 할지, 대담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넋 빠진 표정으로 영상을 보던 나에게 재중이 형이 물었다.

“구경한 소감이 어때?”

“으음, 좀 미친 것 같네요.”

“그렇지? 재밌지 않아?”

뭔가 대답을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난 분명히 미친 것 같다고 대답을 했지만, 재중이 형은 재밌다는 표현으로 돌려주었다.

신나 보이는 표정이기도 하고.

다소 의아한 표정을 하고 있자니, 재중이 형이 말을 이었다.

“…드디어 녀석이 나선 것 같네. 저런 건 그놈이 아니면 뭐.”

녀석? 그놈?

누구를 말하는 거지?

“혹시 아는 사람인가요?”

“아아, 있어. 프로 쪽에. 이따위 전술을 쓸 만한 녀석은 내가 알기엔 그 녀석밖에 없거든. 결국 왔나 보네.”

프로?

“전에는 다들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거 같다면서요.”

“뭐, 아닐 수 있는데… 만약 내가 생각하는 그 녀석이라면 레벨링에 신경 쓸 녀석이 아니라서. 레벨이 필요 없는 녀석이랄까?”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는 시늉을 했다.

“이게 잘 돌아가는 녀석이거든.”

“머리를 잘 쓴다? 전략, 전술도 좋고?”

“맞아, 그것도 아주 골치 아플 정도로. 나도 예전에 꽤 애먹었다니까? 아예 다른 녀석들하고는 유형이 달라.”

“그런가요?”

“일단 프로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피지컬이 좋아야 하는 건 맞아. 그런데 이 녀석 피지컬은 그렇게 좋지 않아. RTP만 보면 프로 중 하급에 가까워. 아니, 단순히 수치만 보면 프로에 끼기도 힘들 정도이려나? 아마, 피지컬만으로 다른 프로와 직접 붙으면 백이면 백 다 깨질 거야.”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그 사람을 낮게 보지 않았다.

예전에 재중이 형이 말하길 RTP가 낮으면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재중이 형도 RTP 때문에 프로를 나왔다고 했고.

프로에게 RTP란 그야말로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

그런데도 저런 평가라…….

확실히 뭔가 다르긴 한 모양인데?

곧 재중이 형이 말을 이었다.

“음, 최종병기가 빡빡하고 빈틈없는 딜 사이클을 짜기로 유명하면 이 녀석은 그냥 전체 판을 잘 짜. 빡빡하고 빈틈없이. 다른 말로 전략을 기가 막히게 짠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피지컬이 안 좋으면 결국 지지 않나요? 1:1로 붙으면 무조건 지잖아요. 반응 속도에서부터 차이가 날 텐데.”

“어, 그래서 이 녀석이 피지컬이 주가 되는 게임에선 완전 죽을 썼지. 조 최하위로 떨어지길 수백 번이야. 대신 전략으로 가면 절대 이 녀석을 무시 못 해. 나도 예전에 하던 전략 대전 게임에서 몇 번 물을 먹었다니까?”

“형이요?”

“크큭, 가끔가다 정말 미친 빌드를 짜오거든. 이 녀석이. 지금처럼 듣도 보도 못한 짓을 많이 해.”

“흐음, 형이 한 방 먹을 정도면 정말 그쪽으로는 알아주겠네요.”

“어, 피지컬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잘 알려주는 녀석이기도 하지.”

아까 본 태양이라는 사람도 준비를 잘한 것 같은데 단순히 머리 쓰는 것만으로 치면 이쪽이 한 수 위려나?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을 하던 나를 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이 녀석은 너 같이 혼자 네임드를 썰어버리는 짓을 못 해. 피지컬이 좋지 않으니까. 그래도 주의해야 할 거다. 정말 게임에 미쳤거든. 거의 이삼일 동안 방 안에 혼자 틀어박혀서 상대방 죽일 궁리를 한다니까?”

그 말에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좀 확실히 무섭네요.”

“그치? 나하고 대회에서 붙기 전에 그랬다는 걸 듣고 얼마나 놀랐는데. 솔직히 나도 그렇게는 못 해.”

“왜 형이 그렇게 경계하는지 알 것 같아요.”

일단 한 명인가?

그것도 꽤 골치가 아플 것 같은 사람이 한 명 넘어와 버렸다.

다시, 쿠론 요새의 영상을 보는데 여전히 요새는 건재한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안 무너질 것 같아요.”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렇게 흘러가겠지. 흑장로의 감염만 막으면 거의 절반 이상 성공한 것과 다름없으니까. 네가 흑장로를 억지로 요새 안으로 워프시켜서 두들겨 팬 것처럼 말이야. 페가수스도 한몫했고.”

“그런데 이 사람은 페가수스가 없어도 되는 방법을 찾아낸 거네요.”

“그래, 중간에 소모가 많긴 하지만 확실히 유효한 방법이야.”

유저들을 소모품 취급을 한다는 건가?

아니, 이 경우에는 미리 이야기가 끝나 있다고 보는 편이 좋다.

감염이 걸리면 바로 죽이는 것부터 해서 죽는 사람들조차 찍소리 않고 그 자리에서 죽는 식으로.

만약 아무런 이야기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렇게 아군을 죽여 댄다면 이미 난리가 나도 몇 번을 났을 것이다.

“쿠론 요새를 잡은 연합이 어디라고 했죠?”

“으음, 보자. 미르 길드 쪽이군.”

미르 길드라…….

이건 얼마 전에도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다.

“불새 길드와 앙숙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어, 잘 아네. 서로 못 죽여서 난리지.”

“전에 전사 형에게 들었어요.”

당장은 쓸 일이 없겠지만 일단, 이건 기억해두는 거로.

“미르 길드가 지배력이 상당히 좋은 모양이에요. 저런 식의 작전도 구사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상당한 보상을 약속했겠지. 이득 없이 막 죽어줄 유저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 유저에게도 마찬가지겠죠.”

어떻게 한 건지 몰라도 막 들어온 프로 유저가 하는 작전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꽤 놀라운 일이었다.

우리 쪽 연합으로 생각해 보면 신입이 들어와서 작전을 꺼내 들자 그걸 그대로 한다는 말과 같으니까.

미르 길드 쪽 길마가 도박을 많이 좋아하는 성향이거나 아니면 뭔가 친분이 있거나.

지금은 그 정도밖에 생각나지는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재중이 형이 말한 프로 유저를 내세운 미르 쪽 연합이 쿠론 요새를 정말 지켜 버리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가서 훼방을 놓아야겠네요.”

“아아, 기대하고 있어. 녀석도 신고식은 거하게 하겠군.”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우리 쪽 연합 사람들이 상대하고 있는 고르곤을 바라보았다.

아마, 아주 높은 확률로 흑장로를 상대하기 위한 작전을 짜놓았을 것이다.

불새 길드가 그랬던 것처럼.

그럼 고르곤에 대한 대비는 거의 없다고 보는 편이 좋을 터.

재중이 형이 말한 프로 유저 때문에 약간 불안했지만 이쪽 확률이 확실히 높았다.

내가 고르곤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이 재밌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거 던져놓고 오게?”

“지금 상황에선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요.”

잿빛의 듀라한까지 던져주고 오면 더 좋겠지만, 그 녀석은 레티어스 요새를 박살 내는 중이라.

“뭐 이것까지 대비했을지는 모르겠다만……. 일단은 괜찮겠지. 아니라면 그때 다른 방법을 찾아도 되고.”

재중이 형도 딱히 문제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와 의논을 마친 재중이 형이 곧장 사장님에게 다가가더니 뭔가를 이야기하자 곧 사장님과 스칼렛, 이슬두잔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챠밍을 옆으로 불러냈다.

“좀 해줘야 할 게 있어.”

그리고 챠밍에게 축복받은 페가수스의 소유권을 넘겨주었다.

“아, 워프 초기화시키면 되는 거죠?”

“응, 부탁해.”

【 시간의 서! 】

챠밍이 시간의 서로 페가수스의 워프를 초기화시키고 난 뒤 다시 한 번 둘 다 페가수스에 올라탔다.

“그럼 다녀올게요.”

그대로 페가수스를 몰아서 날아가 전사 형이 붙들고 있던 고르곤의 몸을 한 손으로 건드렸다.

위험하지만 일단 손만 대고 있으면 된다는 것을 듀라한 때 해봐서 잘 알고 있으니까.

“지금!”

내 신호에 챠밍이 곧장 워프를 시전했다.

【 워프! 】

그렇게 시야가 한 번에 싹 변하면서 나와 챠밍, 고르곤이 동시에 한 장소로 워프가 되어 나타났다.

바로 주변을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께 얻은 좌표는 확실하네.

혹여나 잘못 오면 어쩌나 했는데.

그렇게 손을 떼자마자 고르곤의 육중한 몸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쿠웅!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강력한 지진을 주변에 일으키면서 밑에 있던 수많은 몬스터를 눌러 버렸다.

“정말 괜찮아요?”

“응, 더 들어가면 네가 위험해져.”

전처럼 혼자였다면 또 모르겠는데 이번에는 챠밍이 없으면 워프 자체를 못 하니까.

은신이 안 되는 챠밍이 쿠론 요새에 있는 유저들에게 발각되면 일이 많이 꼬여 버린다.

나중에, 라면 몰라도.

아직까지는 우리가 한 일로 보이면 안 되니까.

고개를 돌려 멀리 바라보자 쿠론 요새가 아주 작게 눈에 들어왔다.

거리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

이 정도라면 아무리 눈이 좋은 유저라도 쉽게 우리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성벽에서 싸움이 한참이라 이렇게 먼 곳까지 바라볼만한 여유 자체도 없을 거고.

“고르곤이 잘 찾아갈까요?”

“아마도 갈 거야, 이 근처에서는 공격할만한 곳이 저 요새 밖에 없으니. 안 되면 내가 좀 몰아서 움직여도 되고.”

하려면 방법은 많지.

그렇게 챠밍과 둘이서 하늘 위에서 페가수스를 탄 채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얼마 뒤, 어글이 풀린 고르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이내 쿠론 요새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말 가요!”

챠밍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피곤한 일 하나는 피했네.

저 몬스터들 사이를 뚫고 고르곤을 끌고 가는 건 정말 어려우니까.

쿠오오오!

몬스터 대군과 섞였지만, 딱히 고르곤을 적대하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몬스터들이 길을 터주는 모습까지 보였고.

확실히 상위 개체라 이거지.

그렇게 쿠론 요새의 성벽에 다다른 고르곤이 뿔에서 강력한 뇌전을 끌어모아 그대로 성벽에 날려 버렸다.

콰지지직!

쿠아앙!

흑장로와 또 다른 강력한 공격에 쿠론 요새의 성벽이 크게 박살 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가 라이트닝인가?

시작부터 화려하게 해주네.

고르곤의 뇌전 공격에 한쪽 성벽이 박살이 나더니 크게 기우는 모습이 보였다.

성벽에 돈을 들여놔서 그런지 완벽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 일격만 해도 엄청난 타격이었다.

“우왁! 대체 머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성벽이 부서졌어!”

“젠장, 어디서 공격한 거야?”

흑장로의 감염만 생각하고 있었지 고르곤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어 버렸다.

그리고 고르곤에게는 성벽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능력도 있었고.

그렇게 성벽을 반파시킨 뒤 고르곤이 곧장 성벽로 블링크를 사용해 사라졌다.

챠밍이 그 모습을 보고는 바로 감탄을 했다.

“고르곤이 정말 사기였어요.”

그 뒤로는 확인할 수가 없어 곧장 쿠론 요새를 찍고 있는 BJ의 영상을 틀었다.

안 봐도 훤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고르곤이 쿠론 요새 안쪽에 나타나 유저들을 사정없이 학살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네임드의 위력이란…….

그 자체만으로 재앙이었다.

그때 한쪽에서 급하게 뛰어나온 미르 길드의 길드장으로 보이는 황금빛으로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은 유저가 나서서 수습을 해보려고 하는데 답이 없는지 혀를 차는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는 황금색인가…….

다들 코스튬에 혼을 담은 느낌인데?

“젠장! 바이탄 요새에 있어야 할 고르곤이 여기에 왜 나타난 거야!”

이미 방송을 탔기에 안 보이는 네임드가 고르곤이라는 것 정도는 다 알고 있었다.

대처 방법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때, 하얀 로브를 입은 한 유저가 후드를 뒤집어쓴 채 미르 길드장의 옆으로 다가와 뭔가를 속삭이는 모습이 보였다.

저건…….

혹시 재중이 형이 말했던 그 사람이려나?

그리고 그 뒤, 곧장 변화가 생겨났다.

미르 길드의 길드장이 바로 길드원들에게 지시를 내려 뭔가를 요새 바닥에 잔뜩 깔기 시작했다.

챠밍이 궁금한 듯 물었다.

“저게 대체 뭐예요?”

“나도 모르겠네. 잠시만.”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았는데 곧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하르 조각?

바닥에 왜 저걸…?

요새 곳곳에 반짝이는 하르 조각을 뿌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챠밍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세상에, 저런 방법을!”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러고는 미르 길드장 옆에 하얀 로브를 입고 있는 유저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하, 이건 상상 이상이잖아?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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