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4화 다시 한 번 깽판 (2)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재중이 형은 재밌다는 듯 신나했고, 전사 형은 깜짝 놀라 내게 물었다.
“요새를 전부?”
“네, 가능하면요.”
처음엔 요새 하나를 소유하는 걸 목표로 했다.
그때 당시엔, 세 네임드 전부 살아 있고 다른 두 곳의 요새 역시 NPC와 그 요새를 선택한 유저들이 있었으니까.
거기다 요새 간 거리도 문제였다.
한 곳을 차지하고 난 뒤, 다른 요새까지 가려면 적어도 몇 시간은 걸린다.
가장 빠른 탈것을 타고 풀로 날아가더라도 이건 마찬가지.
다른 말로 하면 거리 때문에 하나의 요새를 차지하더라도 다른 쪽 요새로 날아가서 뭔가를 하려고 하면 분명 문제가 생길 것이다.
바로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지금 유저들이 각자 하나의 요새를 노리고 쫙 갈라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여기도 찝쩍대고 저기도 찝쩍대기에는 요새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한정된 인력으로 한 요새만을 노려야 그나마 성공할 확률이 높으니 자연스럽게 서로 갈라져 버렸다.
잠시 전사 형이 시스템에서 뭔가의 영상을 끌어와 우리 팀에게 보여주었다.
“지금 이 난리인데? 치겠다는 거냐?”
전사 형이 보여준 두 개의 영상.
각각 다른 풍경을 담고 있었는데 하나는 레티어스 요새였고, 다른 하나는 쿠론 요새의 영상이었다.
둘 다 배경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누가 누군지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치고받는 수많은 유저의 혈전.
몬스터가 아닌 유저들끼리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바이탄 요새와는 전혀 다른 풍경.
우리와 다르게 저쪽에선 저쪽대로의 전쟁이 한창이었다.
“너무 난잡하네요.”
“와, 끝도 안 보여요.”
챠밍은 영상 속의 풍경에 난잡하다는 표현을 사용했고, 이쁜소녀 말대로 수많은 유저가 몰려들어 전쟁을 벌였다.
누구의 말이 옳다고 할 것 없이 그냥 난잡하고 끝도 없었다.
“전투가 일어난 지 좀 됐나 보네요.”
내 질문에 전사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요새를 방어하는 동안 저쪽은 개판이었어. 보여주진 않았다만.”
전사 형의 말을 들으면서 영상을 바라보았다.
강력한 네임드와 몬스터가 사라진 요새의 왕은 유저인가?
옆에서 보고 있던 나르샤 누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혀를 찼다.
“네임드에게는 꼼짝도 못 하더니… 그 네임드가 사라지니까 아주 지들 세상이야.”
나르샤 누나의 말에 모두가 웃어버렸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고.
“흐음, 생각보다 훨씬 치열하네요.”
전투 규모를 보니 단순히 연합 한두 개가 더 끼어든다고 판도가 뒤집어지거나 할 수준은 아득히 넘어간 것 같았다.
옆에서 뭔가를 살펴보던 전사 형이 다시 몇 가지 정보를 얻어와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주요 길드들이 죄다 연합을 했어. 요새를 먹으려고.”
“그런가요?”
“어설프게 뭉치면 요새를 못 먹으니까. 우리가 아는 길드도 상당하다고?”
살펴보니 그간 이름을 들어본 연합도 많이 보이고 아닌 연합도 많았다.
“단순히 요새만 먹고 끝낼 생각은 아닌가 보네요.”
저렇게 모인 것은 요새를 먹기 위함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 규모가 컸다.
내 추측에 옆에 있던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벤트도 먹으려고 하겠지. 요새를 먹고 나면 그 뒤부터는 자금을 투입해서 얼마든지 요새를 강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이벤트요? 이미 포인트 면에서는 우리를 따라잡지 못할 텐데.”
세 마리의 네임드를 잡으면서 내 포인트가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미 1위를 뒤집기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
의문이 가득한 내 표정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어 보였다.
“나도 이건 좀 어이가 없긴 한데, 쟤들도 지금 속이 복잡할 걸?”
“네?”
무슨 말이지?
“네임드 말이야. 네가 잡아버린 네임드들.”
“그게 무슨?”
“쟤들은 네임드를 네가 다 잡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걸? 그것도 이렇게 빨리.”
“네임드를 잡은 게 문제가 되나요?”
“크큭, 당연하지. 바이탄 요새가 네임드에게 무너졌어야 시작점이 같아지는데 그걸 잡아버렸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시작부터가 완전히 틀어졌어. 아니지. 레티어스나 쿠론 요새를 먹어서 앞서가려던 것도 싹 무너진 셈이지.”
“바이탄 요새가 무너지길 기도하고 있었을 텐데 제가 완전히 뭉개버렸다는 거군요.”
“이제 슬슬 저놈들도 알 때가 됐을 텐데…….”
현재 바이탄 요새 방어전은 조금 전에 끝났다.
아니, 아직 몬스터 처리를 하고 있을 테니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닌가?
그래도 이미 소식은 전해졌는지 게시판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바이탄 요새 버텼다는데?
-개소리 사절. 그걸 어떻게 버텨?
-와, 세상에. 그 말도 안 되는 네임드 두 마리가 동시에 갔는데 버텼어? 거기다 두 요새에서 몰려간 몬스터들까지 다 잡았다고?
-미쳤네. 진짜.
-듀라한을 잡은 거야? 물러난 것도 아니고? 그 무식한 네임드를?
-쿠론 요새 작살낸 네임드도 잡음.
-주호 얘들이 잡음.
-어? 뭐야? 저 하얀 말은?
-흑장로가 거의 …밥 취급이네?
-하, 주호…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네?
-아마 은신인 듯?
-챠밍은 감염 스킬 쓰고… 대박이다. 저 많은 몬스터를 싹 녹임.
-주호 포인트 넘사벽.
-네임드를 세 마리나 잡았으니 당연한 거 아님?
-응, 1등 사라졌죠?
우리가 바이탄 요새에서 버텼다는 소식은 곧 서버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다른 때와 다르게 유저들 앞에서 네임드를 잡다 보니 네임드를 잡는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이 우후죽순 계속 게시판으로 올라왔다.
네임드를 잡을 때 죄다 촬영을 한 건가?
고르곤이야 형체가 안 보이니까 거의 정보가 없다시피 했지만 흑장로와 듀라한은 사정이 달랐다.
“이건 좀 아쉽네요. 잡는 방법을 좀 숨겼으면 했는데.”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안다고 따라 하지도 못 해.”
“하긴 그렇죠.”
흑장로를 잡으려면 페가수스가 있어야 하고.
듀라한을 잡으려면 은신과 감염이 있어야 한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정말 개떼처럼 몰려가서 잡아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잡힐 것 같았으면 이미 수십 번은 잡혔을 테지.
쪽수로는 안 되는 네임드라 애초에 무리였다.
“자, 영상은 이쯤 보고. 곧 어떻게든 정리가 되겠지. 우리도 슬슬 준비하자고. 계속 여기 있을 수는 없으니까.”
재중이 형이 손을 휘저어 영상을 모두 넘기면서 물어보자 인벤에서 네임드를 잡고 나온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먼저 듀라한을 잡은 아이템부터.
『 오러 블레이드 / 암속성 』
『 포스 쉴드 / 암속성 』
『 데스 버스트 』
『 +0 듀라한 쉴드 / 방어력 42
힘+15 / 마력+15
악마형 피해 감소 40%
악마형 치명타 피해 감소 50%
관통 불가 』
『 +0 듀라한 스피어 / 출혈 27 타격 27
힘+10 / 마력+10
오러 블레이드 시전 가능.
오러 블레이드 사용 시 마력 소모 30% 감소
치명타 대미지 200%
관통 확률 25%
악마형 피해 200% 추가 』
『 듀라한의 갑옷 조각 (x100) 』
『 정제 무기 강화석 (x100) 』
『 정제 방어구 강화석 (x200) 』
『 일반 강화석 (x100) 』
『 고대의 봉인 지도 A 』
『 지도 퍼즐 조각4 』
『 지도 퍼즐 조각2 』
나온 아이템을 보고는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른 무엇보다 한 가지 스킬.
『 오러 블레이드 / 암속성 』
전사 형이 눈빛을 빛내면서 물었다.
“이게 그거 맞지?”
“네, 아마도요.”
테인 공작과 잿빛의 듀라한이 쓰던 그 강력한 웨폰 기술.
기존의 속성 웨폰을 몇 중첩해야 비슷한 결과가 나왔던 그 기술이 손에 들어왔다.
“아, 이거 막는다고 진짜 개고생했는데 말이지.”
특히 전사 형은 최전방에서 대놓고 부딪쳤으니 이 스킬의 무서움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잠시 오러 블레이드 스킬북을 들고 쳐다보던 전사 형이 바로 내게 스킬북을 들이밀었다.
“이건 당연히 네가 써야지.”
다른 사람들도 당연하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확실히 이 스킬만 있다면 잿빛의 듀라한이나 테인 공작과 정면에서 무기를 부딪치는 일이 가능해진다.
그럼 운신의 폭이 훨씬 커질 터.
“괜찮겠어요? 앞으로 탱하려면 수시로 부딪쳐야 할 텐데.”
“곧 또 얻어지겠지. 어차피 마력 부족해서 제대로 쓰지도 못하잖아. 그리고 난 이거면 돼.”
그러면서 전사 형의 온 시선이 듀라한 쉴드에 가 있었다.
듀라한이 들고 있던 으스스한 문양의 방패도 전사 형에게는 더없이 좋은 것 같았다.
“그 검은색 해골 방패네요.”
아이기스를 능가하는 방어력에 악마형 피해 감소가 달린 방패.
이거라면 앞으로 탱에 큰 도움이 되겠지.
그리고 포스 쉴드라는 스킬 역시 전사 형에게 밀어주었다.
듀라한에게 크리티컬이 그렇게 안 들어갔던 이유가 이 스킬 때문이었다.
자체적으로 크리티컬 방어 확률을 높여주는 미친 스킬.
아마 이것만 있으면 쉽게 다운되지도 않을 것이다.
무기 중 유일하게 완제가 나온 듀라한 스피어는 재중이 형이 가져갔다.
곳곳에 해골이 양각된 음산한 검은 창.
그 창끝을 따라 검은 기운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오러 블레이드가 내장되어 있네. 좋은데?”
그걸 보자 재중이 형이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딱히 스킬이 없어도 저 무기만 있다면 오러 블레이드를 쓸 수 있다.
오히려 마력 효율로 보면 저쪽이 더 좋을지도.
마력 소모 옵션이 붙어 있으니까.
“데스 버스트는요?”
이건 아마도 듀라한이 최종적으로 썼던 바로 그 스킬일 것이다.
단일 위력으로는 거의 최강 수준.
얼마나 위력이 응축될지는 모르겠는데 나중에 써봐야겠지.
재중이 형이 잠시 이쁜소녀를 바라봤다가 물었다.
“네가 쓸래?”
그 말에 이쁜소녀가 아니라는 듯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전 다음에. 그냥 오빠가 써요.”
이쁜소녀는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내게 집중해주려는 생각인 모양인데?
조만간 듀라한을 다시 잡아야겠다.
그리고 듀라한 갑옷 조각은 제작 템이었다.
“전사 형, 먼저 세팅하세요.”
“이거 너무 다 가져가는 거 아닌지 몰라.”
“그만큼 탱 하시잖아요. 듀라한 하고 또 붙어야 할 테니 미리 준비하세요.”
그러자 전사 형이 제작 재료를 받아서 품에 넣었다.
지도 같은 경우는 A~D까지 랜덤으로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현재 나올만한 유일템이 네 개라는 말인가?
추가로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
『 인펙션 / 암속성 』
『 블링크 』
『 데몬 터치 』
『 데몬 비전 』
『 트리플 베리어 』
『 데몬 플레어 』
『 데몬 익스플로전 / 암속성 』
『 인펙션 큐어 』
『 아마겟돈 』
『 +0 타리안 스태프 / 마법 증폭 27
지력+15, 마력+15 마력 회복+10
감염 스킬 시전 시 마력 소모 1/2.
감염 스킬 시전 시 지속 시간 2배.
감염 스킬 시전 시 지속 대미지 2배.
치명타 확률 10%
치명타 대미지 400%
악마형 피해 300% 추가 』
『 +0 타리안 로브 / 방어력 34
지력+10, 마력+15 마력 회복+15
감염 스킬 쿨타임 1/2.
감염 스킬 최대 범위 2배.
악마형 피해 감소 20%
악마형 치명타 피해 감소 30% 』
:
흑장로를 잡고 나온 아이템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좋은 아이템이었다.
재중이 형이 그걸 보고는 잠시 사장님과 스칼렛, 이슬두잔과 영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곧 확답을 받아왔다.
“이건 일단 우리가 다 쓰기로 했다. 다른 건 둘째 치고 저 스태프하고 로브는 우리가 써야 하니까.”
확실히 저 스태프와 로브만 있으면 지금도 사기인 감염 스킬이 정말 끝판왕급 스킬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해준데요?”
흑장로는 다 같이 잡았기에 경매라도 할 줄 알았는데…….
“증표 포인트. 꽤 넘겨주기로 했어. 이번에 출혈이 클 거야.”
“그런 거라면 충분하죠. 네임드야 또 잡으면 되니까. 전 또 요새라도 넘겨줘야 하나 했어요.”
“요새 지분도 좀 넘겨줘야 하고. 다른 요새도 먹으러 간다니까 아무 말 안 하고 다 가지라던데?”
추가적인 내용이지만 다들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이 정도 선에서 빠르게 정리가 된 것이 다행일 정도.
흑장로에게서 나온 아이템들은 챠밍과 막내별이 의논해서 나눠 가지기로 했다.
이쪽은 어떻게 해결이 되었나.
아이템 정리가 끝난 뒤 재중이 형이 내게 물었다.
“그래, 이제 큰소리도 쳐놨겠다. 요새는 꼭 먹어야겠는데 어떻게 할 생각이야?”
재중이 형의 물음에 씨익 웃어 보이면서 우리 팀을 모이게 했다.
“그럼, 다들 모여보세요.”
이어지는 설명.
그 설명을 다 듣고는 다들 역시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막내별이 참다못해 결국 한마디를 했다.
“와, 진심 악마.”
* * * * *
바이탄 요새 방어전이 끝나고 하루가 흘렀다.
다른 두 요새의 주인도 결정이 되었고.
그 중 레티어스 요새 앞.
멀리서 새로 만들어진 요새를 바라보자 얼마나 돈을 많이 들였는지 요새가 휘황찬란하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부활한 잿빛의 듀라한이 몬스터들을 이끌고 더욱 두터워진 요새를 공격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듀라한이 타고 있어야 할 검은 말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페가수스 이것도 유일 탈것이었나?
페가수스가 없는 듀라한이 더욱 높고 두터워진 성벽을 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는 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 안 되지.
【 은신! 】
그리고 잽싸게 다가가 듀라한을 잡아채고는 페가수스를 불러내자마자 스킬을 걸었다.
【 워프! 】
시야가 변한 곳은 다름 아닌 레티어스 요새 안.
누가 볼까 바로 페가수스를 소환 해제 시킨 뒤, 듀라한과 요새 안을 분주히 뛰어다니는 유저들을 바라보고는 씨익 웃었다.
“그럼 다들 잘 싸워보라고.”
레벨업이 되는 듀라한과 함께 말이지.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