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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32화 (525/1,404)

#532화 지금 필요한 것은 스피드 (1)

점검 전에는 하나의 요새에 하나의 네임드와 다수의 몬스터를 방어하게끔 되어 있었다.

이것이 이번 이벤트의 내용.

하지만 레티어스와 쿠론 요새의 함락과 그 요새들을 소유했던 후작의 죽음이 만들어지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변경된 이벤트 내용을 확인한 사장님은 한껏 당황했고.

덩달아 우리 팀은 극도의 긴장감을 느꼈다.

고르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어 들떴던 기분이 한순간에 날아갈 만큼.

채팅창 또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심한가?

특히 레티어스 요새와 쿠론 요새를 예의 주시하던 유저들에게서.

-듀라한 움직인다!

-꼼짝없이 레티어스 요새 뚫어야 하나 했는데 방금 레티어스 요새에서 나왔음!

-대체 어디로 가는 거임? 설마 수정된 이벤트처럼 제국으로 가는 건가? 제국 방어전 열리나??

-그건 아닌 듯. 움직이는 방향이 제국이 아님.

-어? 서쪽! 서쪽으로 움직인다!

-서쪽이면 바이탄! 바이탄 요새!!!

-쿠론 쪽 몬스터들 움직이기 시작함!

-거기도?

-뭐야? 죄다 바이탄 요새로 가는 겨?

-조졌네… 네임드 세 마리를 어떻게 막으라고…….

-어? 이러면 레티어스랑 쿠론 빈다.

-개꿀ㅋㅋㅋㅋㅋ 우린 쿠론 요새로 간다! ㅅㄱ

-근데 챠밍 1등에서 왜 사라짐?

-진짜네. 챠밍부터 신화 길드 애들 다 순위 밖으로 사라졌어.

-신화 놈들 또 뭔 짓 한다. 막아야 해!

-대체 또 뭔 짓을…….

아, 네임드 세 마리가 동시에 바이탄 요새로 움직이다니…….

그동안 많은 상황을 만들거나, 겪었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다.

그 탓인지, 재중이 형에게 우리 팀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당황함과 긴장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이런 상황에선 경험이 가장 많은 사람에게 시선이 가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한껏 부담스러울 상황인데도 재중이 형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거 너무 무섭게 바라보는 것 아냐?”

“상황이 이러니까요.”

“아아, 뭐. 좋지 않지. 그래서 도망이라도 치자고?”

“그건 당연히 아니죠.”

“그럼 다들 왜 이래? 언제는 안 힘들었어? 어차피 상대할 놈들이라면 좋지 않아? 일일이 찾아갈 필요 없고, 심지어 보상도 좋은데 말야. 그냥 순서가 조금 앞당겨졌다고 생각하자. 이왕 이렇게 된 거.”

“뭐 그렇지만… 알겠어요. 다 부르면 되죠?”

“역시, 잘 알아듣네. 주호는.”

* * * * *

백작의 집무실로 연합의 길드장이 전부 모이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재중이 형이 설명을 시작했다.

“자, 모두 모이라고 한 이유는 다들 알고 계시죠?”

스칼렛이 먼저 대답했다.

“네임드 때문이죠?”

“잘 알고 계시네요. 그럼 지금 상황이 꽤 좋지 않다는 것도 알 테고.”

재중이 형 말에 스칼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만 난리죠. 괜히 왔다느니, 망했다느니… 다른 쪽은 아주 신나서 축제라도 열 기세던데…….”

“주인도 없고, 네임드도 없다고.”

“예, 그것 때문에 다들 견제도 하고, 임시지만 동맹도 맺고 아주 바쁘죠.”

쿠론과 레티어스 요새의 네임드와 다수의 몬스터가 이쪽으로 향하면서 그 두 곳의 요새는 지금 텅 비어버렸다.

뭐, 약간의 몬스터는 남아 있지만.

요새 소유자와 네임드가 있느냐 없느냐는 정말 큰 문제다.

빈집(?)을 차지하는 자가 곧 주인이라는 소리였으니까.

그것을 알고 있는 이슬두잔이 허탈한 듯 입을 열었다.

“후, 이건 뭐 남 좋은 일 시키는 것도 아니고.”

재중이 형은 아쉽다는 표정 없이 이슬두잔의 말에 대답해주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너무 아깝네요. 둘 중 하나만 차지해도 엄청 남는 장사인데.”

“그럼, 지금이라도 가실?”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묻자 이슬두잔이 고개만 저었다.

“아뇨, 간다고 해도 거리 때문에 힘들죠. 우리가 도착했을 땐 유저들이 바글바글할 거예요.”

거리의 문제.

현재 바이탄 요새에 주둔 중인 유저들이 떠나지 않고 있는 건 이런 이유였다.

어차피 지금 가봐야 늦으니까.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고.

스칼렛이 한숨을 쉬더니 말을 꺼냈다.

“생각 외로 이탈자가 많아요. 벌써부터 바이탄 요새를 포기하고 다른 요새를 먹으러 이동한 세력이 있을 정도니까요.”

이슬두잔도 옆에서 덧붙였다.

“주로 소규모 연합과 중급 길드들이 움직였어요. 세 네임드를 동시에 막아야 하는 것을 알고 계산기를 두들긴 모양이에요. 사실 그게 더 합리적이기도 하고. 쳇, 다른 서버처럼 어느 정도라도 균등했으면 괜찮은데… 우린 상황이 다르니…….”

듣고 있던 전사 형이 바로 인상을 구겼다.

“하아, 이것들 봐라? 겨우 살려놨더니. 한다는 짓이……!”

이쁜소녀도 마찬가지고.

“맞아! 같이 방어할 생각은 안 하고!”

그런 전사 형과 이쁜소녀를 본 스칼렛이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네임드가 하나였어도 같았을 걸? 네임드를 상대하느니 약간의 출혈을 감수하고 빈집을 터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가만히 듣던 재중이 형도 뭔가를 잠시 생각하더니 곧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그래, 아마도… 바이탄 요새는 함락 당할 거야.”

“역시 그렇겠죠?”

스칼렛 역시 알고 있었다는 듯 똑같은 뉘앙스로 답변을 했고.

“단순히 유저들이 빠져나가는 문제는 크게 의미가 없어. 정작 중요한 건 이 녀석들이다.”

재중이 형이 몇 가지 영상을 시스템으로 가져왔다.

그 안에 보이는 네임드들.

일단, 고르곤.

이쪽은 그나마 사정이 좋지.

고르곤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니까.

그리고 레티어스 요새를 무너뜨린 네임드.

잿빛의 듀라한.

흡사 테인 공작이 쓰던 것과 유사한 공격 방식으로 유저들을 죄다 갈라 버렸다.

아마 이쪽은 순수하게 힘으로 막아야 하지 않을까?

세 네임드의 영상을 각각 보여준 재중이 형의 표정이 변했다.

“유저들이 철저하게 준비하고 우리가 잘 버텨준다고 해도 동시에 네임드 세 마리는 무리야. 앞에 두 마리까지는 어떻게 된다고 쳐도 이 녀석이 문제다.”

그러고는 보여주지 않았던 영상 하나를 사장님을 포함한 길드장들에게 보여주었다.

얼핏 보기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그저 악마형 몬스터들이 우르르 모여서 공격하는 영상이었으니까.

그런데 중간에 뭔가가 나타나고부터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질병을 유발하는 대단위 광역기.

그 광역기가 퍼져나가는 속도와 범위가 상상을 초월했다.

쿠론 요새의 성벽이 찰나에 초토화될 정도로.

가만히 서서 샤르르 녹아나가는 유저들.

물약 이펙트가 수시로 터지고, 힐이 난무함에도 불구하고 그 위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사장님이 침을 꼴깍 삼키면서 말을 이었다.

“아마 이건 우리가 걸려도 마찬가지겠지.”

“네,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이것만큼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일단 걸리면 죽어요. 거기다 유저가 많이 몰려 있으면 몰려 있을수록 더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아무리 본인이 조심해도 주변 유저들에게서 옮겨와 중첩되기 시작하면 답도 없죠.”

저건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특히 나 같은 경우는 체력이 다른 유저들보다 턱없이 낮은 편에 속했다.

저런 광역기에 걸렸다가는 오히려 다른 유저보다 빨리 녹는 상황이 올 것이다.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나를 바라봤다.

“특히 이 녀석은 죽으면 안 되니까. 이 바이탄 요새를 살리겠다고 남아 있으면 곤란해.”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옮겨왔다.

“전 무조건 저 네임드는 피해야 한다는 소리죠?”

“그래, 넌 패스. 저 네임드는 너랑 완전 상극이야. 주변에 유저가 많으면 많을수록.”

“혹시 발견해서 미리 잡을 수 있다면요? 마법사 계열이면 어떻게든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저 악마형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한가운데에 들어가서 찾아내자고?”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다시 영상을 가리키자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저곳으로 들어갔다가는 몬스터들에게 집중포화를 맞게 될 것이다.

몬스터들에게 전혀 들키지 않고 다가갈 수 있다면 또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와 이야기를 마친 재중이 형이 사장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사장님께서 여기 전체 통솔을 맡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재중이 형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사장님 역시 표정이 굳어졌다.

“알았다. 여기는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해보지. 다만 유저들이 잘 버텨줄 수 있을지 모르겠군.”

“절대 우리가 돌아오기 전까지 함락되면 안 됩니다.”

그때 스칼렛이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설마, 요새 밖으로 나가겠다는 말인가요?”

“잘 이해했네.”

“그럼, 고르곤은 대체 누가 막아요?”

스칼렛의 질문에 이슬두잔도 궁금한지 재중이 형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재중이 형이 내게 어깨동무를 하고는 씨익 웃어 보였다.

“막기는 왜 막아. 이놈이랑 같이 가장 먼저 목 딸 건데.”

“네?!”

“정말요?!”

스칼렛과 이슬두잔이 서로 놀라 나와 재중이 형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 형.

어깨에 부담감을 아주 잔뜩 올려주잖아?

“후, 지금부터 우리는 고르곤 사냥하러 갑니다.”

* * * * *

요새 내부 분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바닥으로 치닫고 있었다.

“야! 너희 남을 거야? 이미 괜찮은 길드들 다 떴다고.”

“안 그러면 방법 있어? 어차피 우린 못 먹어.”

“쳇, 좀 큰 길드에 들어갈걸.”

“누가 받아는 준다냐.”

“그래도 그나마 여기 남아 있어야 이벤트 보상이라도 받지.”

“차라리 제국으로 가서 미리 준비할까? 여기 함락되면 제국밖에 안 남잖아.”

단 한 마리의 네임드로 요새가 무너지니 마니 하는데 무려 네임드 세 마리가 동시에 쳐들어온다니까 분위기가 이럴 수밖에.

이거 불안하네.

사장님이 주변 길드들을 잘 통합한다고 해도 부족한 감이 느껴졌다.

그런 모습을 보다가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무너지진 않겠죠?”

“금방 무너지진 않을 거야. 일단 동쪽은 여기서 멀기도 하고.”

“적어도 정체 모를 네임드는 나중에 도착하겠네요.”

고르곤은 밤이 되어야 움직일 수 있다.

반면, 다른 네임드들은 딱히 제한은 없어 보였고.

당장의 문제는 잿빛의 듀라한.

동쪽과 달리 북쪽과 북서쪽이다 보니 도착하는 시간이 훨씬 빠를 것이다.

이쪽을 사장님이 잘 막아준다면야…….

“자, 이제부터는 시간문제다. 우리가 고르곤을 먼저 잡느냐. 아님 먼저 요새가 무너지느냐.”

재중이 형의 말에 모두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네임드를 잡을 때 시간에 쫓기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반면 이번엔 정말 빠르게 잡아내야 한다.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고.

준비가 끝나자 바로 미치광이 리치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이쁜소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우리 요새 밖으로 나가는 거 아니었어요?”

“응, 이번엔 아니야. 우린 녀석의 뒤를 칠 거니까.”

밤이 되고 난 뒤라면 너무 늦다.

그때쯤이면 고르곤과 잿빛의 듀라한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고르곤과 싸우고 있는 편이 우리에게 유리할 터.

그리고 몬스터들의 눈을 피해 녀석들의 뒤로 빠져들어 갈 방법은 이게 최선이었다.

우리의 예상이 맞다면.

【 전이문 오픈! 】

“그럼 갑니다!”

진실의 눈을 꺼내서 착용한 뒤 바로 전이문을 넘었다.

그러자 전에는 보이지 않던 암흑 지대가 내 주변 정도는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보다 멀리는 흐릿했고.

아주 멀리까지 보이지 않더라도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해.

그리고 챠밍과 이쁜소녀 역시 차례대로 건너와 사방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이젠 보이네요.”

“와! 됐다!”

우리 팀이 모두 건너오자 곧장 감각을 퍼뜨렸다.

분명히.

여기 어딘가 있을 터.

그렇게 한참을 찾아다니자 곧 뭔가 묵직한 녀석이 감각에 걸려들었다.

“고르곤 발견!”

우리의 예상이 맞았다.

내 신호에 다들 분주하게 장비를 점검하고 고르곤 근처로 달려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고르곤 주변으로 꽤 다수의 몬스터가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이건 곤란한데?

좀 전만 해도 느껴지지 않던 악마형 몬스터가 이렇게 많이 있을 줄은.

당황한 내게 나르샤 누나가 손을 내밀었다.

“누나?”

“저건 내게 맡겨둬.”

그러더니 갑자기 나르샤 누나가 고르곤과 몬스터들 사이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르곤을 뺀 나머지 몬스터들을 죄다 화살로 맞춰서 줄줄이 매달고는 암흑 지대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나르샤> 오래는 못 버텨. 그러니까 그 전에 열심히 잡아!

하, 이런 식으로도 가능한 거였나.

바로 르아 카르테와 데몬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가죠, 나르샤 누나가 만들어준 기회를 헛되이 보낼 순 없으니까!”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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