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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31화 (524/1,404)

#531화 일그러진 이벤트 (2)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있을 때, 다른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경계 수호자 이벤트 시스템이 변경됨에 따라 5분 뒤, 긴급 임시 점검이 있을 예정입니다. 안전한 곳에서 로그아웃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

재중이 형이 그걸 보고는 피식 웃어버렸다.

“큭, 그냥 임시 점검도 아닌 긴급 임시 점검이냐?”

어지간해서는 긴급 임시 점검을 하지 않는데 지금은 상황이 묘하게 흘러갔다.

“형, 아무래도 제가 뭘 좀 건드려 버린 것 같죠?”

“어, 보아하니까 뭔가가 제대로 꼬인 거 같은데?”

그러고는 둘 다 고개를 내려 쓰러져 있는 라니에르 후작과 작스터 후작을 바라봤다.

지금 죽으면 안 되는 두 후작이 이렇게 되어 버렸다.

앞으로 방해가 될 소지가 너무나 다분한 후작을 치우기 위해 죽여 버린 건데…….

거기다 후작 나부랭이가 무시한 것도 아주 살짝 있었고.

점검까지 할 줄이야.

난감함보다 앞으로의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가 궁금해졌다.

“설마 되살리지는 않겠죠?”

“뭐, 그럴 수 있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뒤집거나 하진 않을걸? 하만 후작도 그랬으니.”

일단, 이 상황은 그대로 간다는 건데.

두 후작이 죽어서 어떤 파장이 미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긴급 임시 점검을 한다고 하자 채팅창이 난리가 났는데 딱히 중요해 보이는 말은 없었다.

대부분 왜 점검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뿐.

“일단 나가자. 잠도 좀 자두고. 내일이 더 힘들 거야.”

“네, 인사하고 나가죠.”

그렇게 우리 팀과 인사를 하고 난 뒤 바로 VRS 밖으로 나왔다.

별일은 없어야 할 텐데…….

변수가 계속 생기는 것은 원하지 않으니까.

* * * * *

긴급 임시 점검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영문도 모른 채, 기다리던 유저들은 게시판이란 게시판마다 좋지 않은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걸 보자마자 유저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생각보다 길어진 점검에 당황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이 정도로 문제가 될 사안이었나?

무심코 라니에르 후작과 작스터 후작을 죽이자는 생각을 했을 뿐인데 그 파장이 생각 이상으로 커진 것 같았다.

기다리는 동안 은하와 연락을 하다 보니 서버가 열렸다.

장작 15시간에 가까운 점검.

그럼 뭐가 바뀌었는지 한 번 볼까?

<은하> 접속해요.

<승호> 그래, 들어가서 봐.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136.

> 로딩 중…….

고르곤을 상대한다고 다른 사람들처럼 경험치는 얻지 못해 레벨은 그대로.

대신 증표라도 많이 얻었으니 일단은 된 건가.

접속을 하자 마지막으로 접속을 끊었던 후엘 백작의 집무실에 그대로 접속이 되었다.

후엘 백작 역시 그 자리 그대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시간대는 딱히 바뀐 것이 없구나.

재중이 형 역시 접속을 해서 옆에 나타났다.

“오셨어요?”

“아아, 오랜만에 푹 잤네. 공지 봤어?”

“아직요.”

그러고는 둘 다 공지사항부터 챙겨봤다.

일을 저지른 것은 우리 둘이기에 가장 궁금하기도 했고.

* * *

[ 공지사항 ]

▷ 레티어스 요새를 유저가 임시 소유할 수 있도록 변경됩니다.

▷ 쿠론 요새를 유저가 임시 소유할 수 있도록 변경됩니다.

▷ 기존과 동일하게 가르시아 제국 이벤트 NPC에게서 레티어스 요새와 쿠론 요새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 네임드 몬스터의 활동 범위가 넓어집니다.

▷ 요새에 머무르던 몬스터가 경계를 넘어 가르시아 제국이나 다른 요새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가르시아 제국을 수호하는 추가 이벤트가 생성됩니다.

▷ 추가 이벤트 역시 경계 수호자의 증표가 수여 됩니다.

▷ 경계 수호자 이벤트 종료 시점에 요새를 소유한 유저에게 후작 작위를 수여 합니다.

* * *

재중이 형이 공지사항을 쭉 둘러보더니 혀를 찼다.

“이거 참. 전선이 확대된 건가?”

기존엔 네임드와 몬스터에게 각 요새를 지키거나 탈환하는 이벤트였는데, 점검 이후 완전히 변해 버렸다.

“이건 네임드가 마음대로 돌아다닌다는 말이죠?”

“그래, 골치 아프게 됐는데?”

바이탄 요새 하나만 신경 쓰면 되는 문제가 제대로 꼬이게 되었다.

그리고 뭔가를 떠올린 재중이 형이 재밌다는 듯 미소 지었다.

“거기다 아주 유저끼리 싸우라고 판을 깔아버렸잖아?”

“작위 말이죠?”

“빙고. 자리를 굳게 잡고 있던 네임드가 요새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정말 개판이 될 거다.”

“어떻게든 참여한 요새에 눌러앉으려고 하겠네요.”

“어, 눈치 싸움이 치열할 거야. 결국, 마지막에 차지하는 자가 웃을 테니까. 요새도 먹고, 후작 자리도 먹고. 오히려 이쪽이 더 큰가?”

마침 채팅창도 그 이야기로 난리가 났다.

-와, 장난 없네. 설마 요새가 매물로?

-요새 진짜 크던데 먹기만 하면!

-사냥터도 코앞이잖아. 위치도 죽임.

-작위도 준다는데?

-미쳤네. 근데 네임드 때문에 어차피 못 먹지 않나?

-ㄴㄴ. 공지 좀 제대로 읽어봐라. 네임드 움직이면 그냥 무주공산임.

-아, 그렇네. 그럼 마지막에 요새 먹는 자가 장땡이겠는데?

-그런데 이벤트 보니까 가르시아 제국도 들어가잖아. 설마 가르시아 제국도 무너지는 거 아니겠지?

-잘하면 제국도 먹을 수 있으려나? 네임드가 싹 쓸어주면…!

-쌀먹들 신났죠?

채팅창을 보니 예상했던 반응이 올라오기 시작 했다.

그중 제국을 먹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도 간혹 보였고.

두 요새야 어떻게 한다지만 제국은 아니지.

거긴 괴물 같은 NPC가 둘이나 존재하니까.

속으로 잠시 웃다가 옆에 있던 후엘 백작을 바라봤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다.

<주호> 형, 만약에 후엘 백작을 죽이면 어떻게 될까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불멸> 크큭, 아주 다 죽여라, 죽여.

놀리듯 말하는 재중이 형을 보면서 그저 따라 웃어버렸다.

후엘 백작을 지금 죽이면 바이탄 요새도 주인이 없어지게 된다.

그럼 자연스럽게 요새를 차지할 수 있을 테니.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후엘 백작이 죽으면 곤란하지.

다른 후작들과 달리 후엘 백작을 죽이는 건 이쪽에서도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후엘 백작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쓸모가 있는 패였다.

아직까지는.

그런 후엘 백작이 쓰러져 있는 라니에르 후작과 작스터 후작의 시신을 본 뒤, 우리를 바라보고는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후엘 백작이 저렇게 난감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상위 작위인 후작 목을 하나도 아닌 두 개나 날려 버렸으니.

『 황실에는 어떻게 전해야 할지……. 』

대부분의 유저들은 작위를 얻는 순간, 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귀족 NPC에게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하니까.

물론, 작위에 맞게 인정과 대우를 해주는 귀족 NPC도 있긴 했다.

뭐, 이건 시스템 상 그렇게 설정이 된 것일 수도 있고.

예상이긴 하지만 제대로 된 요새, 영지를 갖추면 태도가 변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하만 후작과 요새의 두 후작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했고 그것을 빌미 삼아 상황을 만들기도 했으니…….

물론, 목을 그냥 날렸다가는 오히려 쫓겨나겠지.

그래서 좋은 구실을 찾아냈다.

두 후작이 요새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구실.

만약 이런 걸 찾아내지 못했다면 두 후작의 목을 날리는 무리수는 두지 않았을 것이다.

“적당히 둘러대 주세요.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까.”

『 알겠습니다. 그럼 라니에르 후작의 병력과 작스터 후작의 병력은 이쪽에서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

후엘 백작을 지금 죽이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

라니에르 후작과 작스터 후작의 병력이 지금 이 요새에 들어와 있으니까.

아마도 후엘 백작은 그들을 통솔할 수 있겠지.

만약 후엘 백작이 일을 제대로 못 해줘서 세 개의 NPC 세력이 서로 싸우기라도 하면 그때부터는 완전 개판이 된다.

그럼 당연히 요새를 지키기 힘들어지고.

어떻게든 후엘 백작이 남아 그들을 우리 편으로 끌고 들어올 필요가 있었다.

그런 내 예상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얼마 뒤, 라니에르 후작의 기사단장과 작스터 후작의 기사단장이 딱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요새 방어 병력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집무실 밖을 나오면서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병력이 몇 배는 늘었는데? 후엘 백작 아니었으면 고생할 뻔했어.”

“좋은 게 좋은 거죠.”

거기다 라니에르 후작과 작스터 후작이 병력을 고스란히 남겨서 가져왔기에 전력이 한껏 더 올라갔다.

이제 NPC만으로도 어느 정도 방어가 될 수준.

“그럼, 제대로 고르곤을 잡아 봐요.”

그렇게 늘어난 NPC 병력 덕분에 전사 형이나 우리 팀이 성벽에 붙어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또한 유저 역시 엄청나게 늘었고.

이후, 우리 팀은 후엘 백작이 내게 넘겨준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고르곤을 잡을 준비를 시작했다.

“형, 이번에 녀석을 꼭 잡아야 해요.”

내 말에 전사 형이 눈빛을 반짝였다.

“당연히 잡아야지. 근데 난 너처럼 안 보고 싸우기엔 힘들겠는데?”

“아…! 으음.”

철저하게 감각에 의존해서 싸우는 나와 재중이 형에 비해 전사 형은 그 정도까지 감각을 끌어낼 수 없었다.

특히 실수를 하면 바로 표시가 나는 포지션이라 더욱 힘들고.

“발목 잡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 이번엔 무리겠어.”

단순히 전사 형뿐만 아니라 우리 팀의 사정은 비슷했다.

이거 고르곤을 볼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야겠는데….

매번 공격이 어디로 날아오는지 알려주면서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리고 그건 전사 형이나 이쁜소녀가 원하는 그림도 아닌 것이다.

반드시 뭔가 있어.

이런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대처가 가능한 뭔가가 있을 텐데.

그때, 챠밍이 뭔가 생각났는지 내게 말했다.

“오빠, 후엘 백작이 전에 고르곤을 상대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럼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요?”

“아! 후엘 백작!”

챠밍의 말을 듣고 잠시 잊고 있던 후엘 백작이 떠올랐다.

분명히 그랬지.

이전에 상대를 했다고.

만약, 후엘 백작까지 죽였다면 진짜 후회했을지도.

“얼른 가 봐요.”

챠밍의 말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후엘 백작이 있는 집무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후엘 백작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 고르곤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아이템이 있습니다. 』

역시.

후엘 백작이 답이야.

갑자기 후엘 백작이 서재를 열어 뭔가의 아이템을 가지고 나왔다.

『 진실의 눈 / 특수 제작 아이템.

-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볼 수 있다. 』

응?

제작 아이템인가?

처음 보는 아이템에 신기한 듯 다들 시선을 모았다.

얼핏 보기엔 한쪽 눈에 걸쳐서 쓸 수 있는 투명한 재질의 아이템이었다.

“이건 어디서 만드는 거죠? 재료는?”

제작 아이템이니 분명히 요새 내에서 만들 수 있다고 생각되어 물었더니 후엘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의외의 말을 했다.

『 저도 드워프들에게서 얻은 것이라… 한 번 찾아가 보시겠습니까? 』

드워프?

그 말에 우리 모두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놀랍게도 드워프들은 바이탄 요새 지하의 용광로 옆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거 참.

설마 여기서 드워프를 만나게 될 줄은….

꼼짝없이 산맥을 다 뒤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가까이 있는 드워프에게 다가가서 진실의 눈을 보여주며 물었다.

“이걸 좀 더 얻고 싶은데 가능합니까?”

그러자 드워프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큰 덩치의 드워프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 증표를 가져다주면 교환해주지. 』

증표?

그건 어렵지 않은데.

요구하는 개수를 보고는 바로 인상을 썼다.

“하나에 천 개?”

그때 챠밍이 품에서 망설임 없이 증표를 모두 꺼내들었다.

“전부 바꿔주세요.”

“너…!”

“전혀 아깝지 않아요.”

그러면서 챠밍이 증표를 모두 진실의 눈으로 바꾸더니 우리에게 나눠주면서 환하게 미소 지었다.

“이러면 이제 진짜 싸울 수 있겠죠?”

“고마워. 정말 기대해도 좋아.”

그렇게 증표를 교환 뒤, 드워프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려는 순간 사장님에게 연락이 들어왔다.

<카이저> 빨리 올라와라.

<주호> 네? 무슨 일 있어요?

<카이저> 다른 요새의 네임드들. 지금 전부 몬스터들을 이끌고 여기로 오고 있다. 자칫 잘못하다간 네임드 세 마리와 동시에 싸워야 할지도 몰라.

세 요새의 네임드가 전부?

이건…….

최악이잖아?

미리 예측했던 패 중 가장 안 좋은 패가 지금 오픈되었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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