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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30화 (523/1,404)

#530화 일그러진 이벤트 (1)

살짝 찢어진 눈매가 묘하게 잘 어울리는 중년의 학자.

그게 라니에르 후작을 본 첫인상이었다.

온몸에 화려한 장신구를 걸쳐 누가 봐도 가르시아 제국의 대 귀족임을 알게끔 치장을 했고.

게다가 후엘 백작과 작위를 가진 내 앞에서 너무나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흐음, 라니에르 후작이라…….

전혀 예상치 등장인데.

거기다 옆에 있는 작스터 후작까지.

이쪽은 라니에르 후작에 비해 다소 키가 작고 살집이 적당히 올라 있고.

정말 잘 먹고, 잘 쉬면 나올 듯한 그런 몸.

두 명의 후작은 귀족을 나타내는 타이틀이 머리 위에 떠 있지 않더라도 누구나 ‘귀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면 후엘 백작은 전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갑옷을 여전히 입고 있는 모습.

이건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데?

그런 라니에르 후작이 내게 제안을 하자 시스템 알림이 떠올랐다.

《 돌발 퀘스트 : 레티어스 요새 수복 요청. 》

- 레티어스 요새 수복.

- 퀘스트 보상.

『 경계 수호자의 증표. / 거래 가능. 파괴 불가. 』

퀘스트 보상은 레티어스 요새 수복 기여도에 따라 지급됩니다.

단순히 자신이 참여한 요새를 지키거나, 혹은 함락된 요새를 수복하는 것과 다른 퀘스트가 생겨났다.

자신이 참여한 요새가 아닌 다른 요새에서 추가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점.

그런데 레티어스 요새 수복 퀘스트가 끝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작스터 후작 역시 똑같은 제안을 해왔다.

『 주호 공작. 쿠론 요새를 수복하는 데 먼저 힘을 합치는 것이 어떠한가. 그대에게 보다 많은 보상을 주겠네. 지금 따라나서게. 』

《 돌발 퀘스트 : 쿠론 요새 수복 요청. 》

- 작스터 후작의 쿠론 요새 수복.

- 퀘스트 보상.

『 경계 수호자의 증표. / 거래 가능. 파괴 불가. 』

퀘스트 보상은 쿠론 요새 수복 기여도에 따라 지급됩니다.

둘 다 대놓고 퀘스트인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속으로 피식 웃었다.

<주호> 이것들 재밌네요.

<불멸> 아니라고는 못 하겠다.

재중이 형 역시 입가를 올리면서 묘하게 웃어 보였다.

둘 다 웃은 것은 아마도 두 후작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마치 당연한 것처럼 자신들을 따라나서라고 하는 모습.

두 후작에게 퀘스트를 받고 난 뒤, 고개를 돌려 후엘 백작을 바라보며 물었다.

“후엘 백작님, 이건 어떤 상황인가요?”

다 알고 있지만 일단 모른다는 식으로.

내 질문에 굳게 닫혀 있던 후엘 백작의 입이 열렸다.

『 이번 전투에서 두 후작이 주둔하던 요새가 무너졌습니다. 끝까지 저항하던 후작들도 안타깝게도 전략상 후퇴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

전략상 후퇴?

내가 잘못 들은 건가?

고개를 돌려 두 후작을 바라봤는데 둘 다 떳떳하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와, 요것들 봐라?

이런 식으로 포장을 했다 이거지?

<주호> 후엘 백작이 왜 이곳에 들여보내 줬는지 알 것 같아요.

<불멸> 뭐, 일단 후작이니까. 거기다 저렇게 말하면 후엘 백작의 성향 상 받아줬을 테고.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후엘 백작은 전형적인 기사에 가까웠다.

요새를 끝까지 지키다가 어쩔 수 없이 나왔다는 말에 약할 수밖에.

이거 참.

답답하네.

확 영상을 보여줄 수도 없고.

NPC들과 달리 우린 이미 영상으로 확인을 다 한 상태였다.

두 후작이 요새를 버리고 도망가는 모습이 BJ들의 영상에 다 찍혀 있었다.

그걸 ‘전략상 후퇴’와 ‘끝까지 저항했다’는 말로 포장을 하다니…….

<주호> 안타깝네요. 영상을 보여주면 후작들이 개처럼 쫓겨날 텐데.

<불멸> 아니, 그 정도는 아닐 거야. 그래도 후작이 백작보다 높으니까. 좀 싫어하긴 할 테지만 딱 거기까지겠지.

흐음, 후엘 백작이 두 후작을 홀대할 수는 없다는 말인가.

후엘 백작을 자세히 보니 두 후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떨떠름한 표정은 감추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게 나와 재중이 형이 빠지면 지금 당장에라도 바이탄 요새가 무너질지도 모른다.

아니, 거의 확실하게 무너진다고 봐야지.

그런 나와 재중이 형을 두 후작이 달라고 하는 모양새라.

후엘 백작 입장에서는 결코 좋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바이탄 요새에 참가한 우리가 이곳을 두고 함락된 요새를 수복하러 가는 일은 아무리 봐도 답이 아니다.

우리가 빠지면 이곳 역시 함락당할 테니까.

그런 멍청한 짓을 할 순 없지.

<주호> 당연히 거절하는 편이 낫겠죠?

<불멸> 아아, 이건 들어줄 수 없어. 두 후작과 거리가 멀어진다고 해도 말이지. 어디 유일 아이템이라도 하나씩 던져주면 또 몰라. 그게 아니면 이쪽이 너무 손해고 멍청한 짓이지.

이 돌발 퀘스트를 거절했을 시.

아마 높은 확률로 두 후작과의 친밀도가 떨어질 것이다.

뭐, 쌓아둔 친밀도라는 것 자체가 없어서 큰 상관없기는 하지만.

재중이 형과 의견을 맞춘 뒤 바로 두 후작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쉽게도 바이탄 요새를 지키기에도 벅찹니다. 다른 요새까지 신경 쓰기에는 부족한 것 같군요. 당장 우리가 자리를 이탈하면 바이탄 요새마저 무너질 겁니다.”

《 라니에르 후작이 제안한 돌발 퀘스트를 거절하셨습니다. 》

《 라니에르 후작과의 친밀도가 급격히 하락합니다. 》

《 작스터 후작이 제안한 돌발 퀘스트를 거절하셨습니다. 》

《 작스터 후작과의 친밀도가 급격히 하락합니다. 》

역시.

재중이 형 예상대로인가?

돌발 퀘스트를 거절하자마자 라니에르 후작에게서 바로 반응이 나왔다.

『 아니! 어떻게 나의 요새를 두고 고작 백작 나부랭이의 요새를 지키려 하는가? 그대는 제국의 공작이야, 공작. 몸소 모범을 보여 레티어스 요새를 도와도 모자랄 판에…… 레티어스 요새야말로 저 악의 근원들을 버텨내는 최후의 보루일세. 어찌 제국의 공작이라는 자가 그리 생각이 없는지… 쯧쯧. 다시 생각하게. 황제 폐하가 이를 알면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하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주호 공작. 』

거기다 작스터 후작은 한술 더 떴다.

『 공작의 자리에 있기에 동쪽의 패자인 이 작스터 후작이 직접 왔건만 내 제안을 무시하다니. 내 이번 한 번만 무례를 용서하겠네. 당장 쿠론 요새로 따라나서게. 후엘 백작, 주호 공작은 내가 직접 데리고 가겠네. 알겠는가? 』

작스터 후작이 후엘 백작을 노려보자 후엘 백작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분노를 참는 듯 손에 쥔 검에 힘을 꽈악, 쥐는 것이 보였다.

내 쪽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고.

하아, 이 새끼들 완전 개차반인데?

귀족이라는 놈들이 하나 같이 개념을 전부 밥 말아 처먹었는지 모르겠다.

속으로 한숨을 푹 쉬고는 재중이 형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주호> 형, 이 자식들 그냥 죽일까요?

이미 하만 후작을 죽여 본 경험도 있고.

귀족 한둘 더 죽인다고 큰 문제가 되진 않겠지.

이 두 녀석에게 무슨 퀘스트가 엮여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불멸> 흐음, 퀘스트가 아깝긴 해도. 어차피 이놈들 하는 꼴을 봐서는 그다지 좋은 보상도 안 줄 것 같네.

재중이 형은 크게 상관없다는 듯 어깨만 으쓱했다.

혹시 후엘 백작이 반대하지 않을까 싶어 바라봤더니 여전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우리와 다르게 후엘 백작은 두 후작이 자신들의 요새를 끝까지 지키다 왔다고 믿겠지.

딱 하나 걸리는 것.

두 후작을 눈앞에서 죽이기라도 하면 오히려 후엘 백작과의 친밀도가 낮아질지도 모른다.

흐음, 후엘 백작이 충분히 납득할…….

잠시 생각을 하다가 뭔가가 떠올라서 곧장 두 후작에게 물었다.

후엘 백작이 잘 들을 수 있도록.

“라니에르 후작, 레티어스 요새가 여기서 반나절 거리죠?”

『 그렇소만? 』

“작스터 후작, 쿠론 요새도 마찬가지죠?”

『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것이오? 』

작스터 후작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답했다.

맵을 열어보면 바로 답이 나오니까.

“몬스터들의 공격을 버티다, 버티다 어쩔 수 없이 후퇴하셨다고 말하신 걸로 기억합니다만.”

『 그렇지. 정말 끝까지 힘든 전투였다. 더 많은 몬스터를 죽이지 못해서 황제 폐하께 죄송할 뿐. 』

『 아쉽게도 요새를 지키지 못 했지만 마지막까지 남아 사람들을 살렸지. 』

그렇게 대답하는 라니에르 후작과 작스터 후작을 보고는 씨익, 웃었다.

대답을 들었으니 마지막 한 방을 날려야겠네.

“그럼 어떻게 지금 이 시간에 두 분이 여기에 계실까요?”

『 으흠! 』

『 큽! 』

내 돌발 질문에 두 후작의 표정이 더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엘 백작도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런 후엘 백작에게 다시 물었다.

“후엘 백작, 레티어스 요새와 쿠론 요새의 전투가 언제 끝났죠?”

『 ……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며 대답을 하는 후엘 백작을 보는 두 후작의 얼굴이 완전히 뭐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 그게 아니네! 』

『 우린 요새가 함락됐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급하게 비공정을 타고 왔을 뿐이야! 』

변명을 해보았지만 이미 많이 늦었다.

후엘 백작이 두 후작을 보면서 다시 물었다.

『 비공정이 아무리 빠르다고 한들 전투가 끝나고선 도저히 이 시간에 여기 도착할 수 없습니다. 대체 왜 도망친 겁니까? 』

『 허어! 이 사람이! 누가 도망을 쳤다고! 』

『 우린 절대 도망치지 않네. 전략적으로 후퇴를 했을 뿐이야! 』

그런 두 후작과 후엘 백작을 보던 재중이 형이 나를 보면서 웃었다.

“핵심을 잘 찔렀는데?”

“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이 시점에 저 두 후작이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절대.”

그다음 후엘 백작에게 말했다.

“전시에 아군을 죄다 버리고 도망간 귀족이라… 거기다 ‘공작’을 아주 지들 쫄로 보고 부리려고 하는 후작도 문제고. 공작의 말을 무시하는 후작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정도면 내 뜻대로 해도 상관없겠죠? 후엘 백작?”

『 공작께서 원하시는 대로. 』

내 말뜻을 잘 알아들었는지 후엘 백작이 곧장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후엘 백작은 지금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확실히 잘 알고 있었다.

이러면 이야기가 쉬워진다

후엘 백작과 바이탄 요새의 이벤트에 대해서 어떤 불이익도 없을 테니.

결정이 되자 품에서 곧장 르아 카르테와 데몬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에 라니에르 후작과 작스터 후작이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 무, 무슨 짓인가? 검을 왜?! 』

『 주호 공작! 』

“아, 복잡한 건 모르겠고. 일단 너희가 죽어야 앞으로가 편해질 것 같거든.”

이벤트?

퀘스트?

당장 눈앞에 있는 것도 해결하기에도 벅차다.

그리고 이런 변수가 있으면 가뜩이나 힘든데 상황이 복잡해진다.

“그러니까. 그냥 죽어.”

『 감히, 나를 죽이겠다는……. 』

『 호…. 』

두 후작이 뭐라고 하든 이미 늦었다.

곧장 앞으로 달려 나가 라니에르 후작과 작스터 후작의 목을 두 검으로 그어냈다.

『 커컥! 』

『 크억! 』

역시 전투 NPC가 아니네.

단순히 목을 긋는 것만으로 두 후작의 신형이 그대로 풀썩 쓰러져 내렸다.

《 주호 공작이 라니에르 후작을 죽였습니다. 》

《 주호 공작이 작스터 후작을 죽였습니다. 》

《 레티어스와 쿠론 요새의 주인이 전사하였습니다. 》

《 라니에르 후작이 소유한 레티어스 요새의 소유권이 사라집니다. 》

《 작스터 후작이 소유한 쿠론 요새의 소유권이 사라집니다. 》

《 레티어스 요새를 유저가 소유할 수 있도록 변경됩니다. 》

《 쿠론 요새를 유저가 소유할 수 있도록 변경됩니다. 》

응?

이건…….

처음 보는 건데?

유저가 요새를 소유할 수 있어?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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