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9화 무너지는 요새 (4)
-지금 이거 실화임?
-와, 쿠론 요새 손도 못 써보고 무너짐.
-난 …발 가만히 서 있었는데 죽었음.
-후작 보고 거기 간 건데, 후작놈 튄 듯.
-레티어스도 마찬가지임.
-ㅇㅈ. 네임드 개쩔더라. 한 번 공격할 때마다 슥슥 사라짐.
-장비 좀 되는 애들 다 들러붙었는데도 답도 없더라.
-그럼 바이탄 요새는?
-바이탄은 버팀ㅋㅋㅋㅋㅋㅋㅋ
-에? 거기가 버텼다고?!
-클립이랑, 다시 보기로 봤는데 장난 없더만.
-대박! 둘이서 아주…….
-세상에, 보이지도 않는 공격을 막고 있노. 이것들이 정말 똑같은 사람이가?
-에이, 뭔가 아이템을 썼겠지. 저게 어떻게 보여? 저러면 눈감고도 공격하겠다.
-쟤들 워낙 앞서나가니까 숨겨둔 아이템 있을 것 같음.
-이벤트 전에 아이템 미리 구해놨어야 했나?
-아무튼 부럽다. 바이탄 요새만 남은 거 아님? 저쪽에서 이벤트 다 해먹겠네.
-진짜. 무슨 이벤트를 이렇게 만들어놨냐. 깨지도 못하게.
-이벤트 한다고 겁나 죽고 개짜증.
-유일 아이템 하나 먹어보겠다고 투자한 게 얼만데 완전 손해만 봤네.
-그럼 이제 이벤트 참가 안 됨?
-그건 아님. 아직 이벤트 안 끝났던데? 퀘스트 그대로 떠 있더라.
-설마 알아서 요새를 수복하라는 말?
-ㅇㅇ. 이벤트 기간 동안 요새 다시 찾아오면 되는 듯.
-확실히 네임드도 아직 그대로고. 잡기만 하면……!
-지금 랭킹 1위 누구임?
-신화 길드 챠밍.
-아, 그 예쁜 마법사?
-나 전에 근처서 봤는데 완전 예쁘더라.
-후광이 진짜…….
-마법도 처음 보는 것들만 잔뜩 씀.
-부럽다, 부러워. 길드에서 왕창 밀어주는구만.
-외모, 능력. 다 가졌네. 진짜.
이벤트 1일 차가 끝나자 엄청난 말이 쏟아져 나왔다.
참가한 요새 이야기, 바이탄 요새의 건재, 그리고 챠밍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고, 거기에 이벤트 난이도가 미쳤다는 것까지.
어느 정도껏 깰 수 있게 만들어놔야 이벤트가 성립되는데 이번 이벤트는 그 정도를 넘어섰다.
특히 북쪽 레티어스 요새와 동쪽 쿠론 요새에 유저들이 집중적으로 몰려갔기에 허탈함이 더욱 심했고.
반면, 요새를 지켜낸 바이탄 쪽 유저들은 환호를 내지르는 중이었다.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북서쪽 바이탄 요새가 이번 이벤트의 최대 수혜자가 될 테니까.
성벽 위에서 정보를 모으던 전사 형에게 물었다.
“상황은 어때요?”
“흐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거기다 뒤늦게 접속한 유저들이 죄다 이쪽으로 몰려들고 있다는데?”
“그런가요?”
“어차피 다른 요새에 합류하려고 해도 요새가 무너졌으니 갈 곳도 없어.”
확실히 다른 곳은 전부 무너졌으니까.
새로 등록을 하려고 해도 바이탄 요새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현재로는.
“레티어스 요새하고 쿠론 요새는 어떻게 됐어요?”
“BJ들 방송 영상을 확인해 봤는데 예상대로 암흑 지대처럼 변해 있어. 자, 봐봐.”
이쪽에서 다른 요새를 확인하려면 이렇게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전사 형이 보여준 영상에는 레티어스 요새와 쿠론 요새였던 곳의 모습이 멀리서 찍혀 있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로스트 스카이 시간으로 낮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저 두 요새는 검은 안개에 휩싸여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저 안에 네임드와 몬스터가 있는 건가요?”
“아마도?”
“유저들 입장에서는 꽤 곤란하겠네요.”
내 말에 전사 형이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벤트를 끝내려면 요새를 다시 수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성벽을 넘어 네임드와 몬스터를 몰아내야 한다는 말이 되고.
유저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 될 터.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결코 이벤트를 끝내지 못할 것이다.
“설마, 이대로 이벤트가 허무하게 끝나진 않겠죠?”
“그렇지. 아직 변수도 존재하니까.”
변수.
레티어스의 라니에르 후작과 쿠론 요새의 작스터 후작, 북서쪽의 후엘 백작은 전투에 아예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르시아 제국이라는 본진도 남아 있었고.
거기다 테인 공작과 루젠 공작 같은 괴물들이 합류한다면 상황이 바뀔 확률은 얼마든지 존재했다.
벌써부터 결과를 확신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후, 요새를 지켜냈다는 것 빼고는 사실 얻은 것도 없어요.”
“이벤트 포인트 말이지?”
“네, 끝나고 보니까 저랑 재중이 형은 아예 포인트가 없던데요?”
아직 정산이 안 된 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재중이 형은 0포인트에 머물러 있었다.
* 요새 이벤트 개인 랭킹
1위 챠밍 - 4549점. / 신화 길드.
2위 막내별 - 1125점. / 신화 길드.
:
개인 랭킹에선 챠밍과 막내별이 압도적으로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상 챠밍이 다른 유저들을 씹어 먹는 중이었고.
3위 포인트가 300점도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거의 게임이 끝났다고도 볼 수 있는 격차였다.
악마 형에 대비한 무기가 있고, 챠밍이 보유한 광역 마법이 하나 같이 사기라 쏘는 족족 포인트를 얻어냈다.
잘 키운 마법사 열 딜러 부럽지 않다더니.
아마 특별한 변수가 없는 이상 챠밍이 1위를 고수할 것이다.
막내별 역시 사기라 불릴 수 있는 광역 마법으로 좋은 포인트를 얻어내었고.
“챠밍을 1위로 만들어주는 편이 좋을까요?”
내 말에 전사 형이 잠시 고민을 하다가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고르곤을 시간 내에 잡지 못하면 그 방법밖엔 없을 것 같은데?”
“네, 저하고 재중이 형은 고르곤을 붙들고 있어야 하니까요.”
나와 재중이 형이 포인트를 올릴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고르곤이었다.
이벤트 종료 후, 기여도에 따라 포인트가 오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이라.
“다른 네임드는 어때요?”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것들.
바이탄 요새에는 고르곤.
쿠론 요새에는 정체 모를 마법사 네임드.
그리고 레티어스 요새.
이쪽은 아직 어떤 종류인지 확인을 못 했다.
“이거 봐봐. 레티어스 요새 영상이다.”
전사 형이 몇 개의 영상을 보여주자 곧바로 영상에 빠져들었다.
이건…….
“전투 타입이네요.”
“어, 거대한 말을 타고 있는 기사지.”
온몸을 가릴 정도의 해골 방패를 들고 기다란 붉은 창을 들고 있는 기사.
문제는…….
“머리가 없군요.”
“아아, 너한테는 꽤 까다로운 놈이겠네.”
이 네임드는 목 위가 아예 비어 있었다.
주로 목이나 머리, 혹은 급소를 노려서 포인트를 얻는 내게는 타격 부위의 절반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
“거기다 온몸에 틈도 없어. 저런 풀 플레이트 갑옷은 또 처음 보는데?”
날카로운 라인으로 빠진 진한 검은색 갑옷에 전혀 틈이 보이지 않았다.
이러면 정말 급소를 노릴 수조차 없었다.
“마치 널 상대하려고 만들어둔 것 같지 않냐?”
“네, 이놈은 정말 실력으로 눌러야겠어요.”
저런 갑옷이라면 아마 크리티컬을 띄우기 위한 그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완전히 대미지로 찍어 누르지 않는 이상에야…….
하지만 저 정도 네임드를 압도할 아이템은 지금 존재하지도 않고.
레티어스 요새에서 BJ들이 찍어놓은 영상을 찾아 전부 돌려보았다.
저 네임드를 공략할만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나온 판단.
고르곤보다 이쪽이 더 까다롭겠는데.
속도, 위력, 스킬.
모든 면에서 이쪽이 압도적이었다.
왜 후작이 지키는 레티어스 요새 쪽에 나온 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이벤트 때문에 사장님과 회의를 하러 갔던 재중이 형이 어느새 돌아와 내가 보고 있던 영상을 바라봤다.
“이거… 테인 공작 급인데?”
“역시 그렇죠?”
“쓰는 스킬 하며… 공속. 이속. 하나 같이 빠지지 않아. 차라리 고르곤이 더 쉽겠다.”
재중이 형도 나와 똑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레티어스 요새가 무너진 것도 무리는 아닌 모양.
“검은 안개로 이루어진 말이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요새 내부에서부터 학살을 하는데 버텨낼 수가 없지.”
“그래도 잡아보고 싶어요.”
재중이 형의 눈빛이 진하게 변했다.
“아아, 나도 동감. 이 녀석은 진짜다.”
지금까지 나온 전투형 몬스터 중 이 녀석이 가장 빠르고 강하다.
분명 잡기만 한다면…….
물론, 그러기에 앞서 고르곤을 잡아낼 필요가 있다.
전사 형이나 다른 사람들이 조금 더 도와주면 고르곤도 가능할 텐데.
한정된 시간 속에서 녀석의 체력을 둘이서 빼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드래곤 슬레이어처럼 체력을 퍼센트로 깎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음에 뿔 좀 노려봐야겠어요.”
“재료로 쓰게?”
“네, 그래야 방법이 나올 것 같아요.”
지금보다 전력을 올릴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이벤트든 아니든.
“그나저나 후엘 백작은요?”
후엘 백작은 북쪽과 동쪽의 후작들과 달랐다.
성벽 위에서 NPC 병사들과 함께 몬스터를 상대하다 위험하다 싶으면 유저에겐 구원을 성벽에겐 방어를 주었다.
고르곤을 우리가 상대해서 그런지 성벽을 사수하는 쪽에 사활을 건 것 같았고.
그간 전투에서 살아남은 게 결코 운이 아니라는 걸 몸소 보여주었다.
“살아 있어.”
“하, 다행이네요.”
후엘 백작이 전사하면 당장 바이탄 요새의 방어에 큰 문제가 생기게 된다.
“안 그래도 한 번 봐야겠던데?”
“네?”
“너 찾더라고.”
“저를요?”
“이거 한 번 봐라.”
『 경계 수호자의 증표. / 거래 가능. 파괴 불가. 』
재중이 형이 그 증표를 하나도 아닌 무려 1,000개나 들고 있었다.
“이건?”
“보상. 아마도 고르곤을 상대한 것만으로도 기여도가 올라간 모양이다.”
뜻밖인데?
개인 랭킹을 보니 재중이 형이 3위로 올라가 있었다.
“으음, 한 번 가보죠.”
* * * * *
후엘 백작의 집무실에 들어가자 전의 전투로 초췌하게 변한 후엘 백작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 덕분에 이 바이탄 요새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엄청난 실력이더군요. 소문이 결코 과장되지 않았습니다. 』
“과찬이십니다.”
『 고르곤을 막아주신 답례로 이 증표를 드리겠습니다. 』
《 후엘 백작에게서 경계 수호자의 증표 1,000개를 습득했습니다. 》
《 개인 랭킹 공동 3위에 랭크됩니다. 》
“이렇다니까?”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웃어 보였다.
“보상은 확실하네요.”
단순히 저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보상이라.
나쁘지 않아.
후엘 백작이 포인트를 못 올렸던 아쉬움을 한 번에 날려주었다.
그리고 그때 후엘 백작의 의외의 손님을 불러들였다.
『 들어오라 하시게. 』
응?
누가 올 사람이 있나?
그리고 고개를 돌려 들어온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처음 보는 NPC였지만, 어깨에 달린 휘장과 머리 위에 뜬 네임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라, 라니에르 후작…?”
그리고 또 한 명.
작스터 후작까지.
두 명의 후작이 다른 곳도 아닌 이 바이탄 요새에 와 있었다.
듣기로 요새를 버리고 도망을 갔다고 하던데…….
여기에 있을지는 생각도 못 했네.
그리고 그중 눈이 착 가라앉아 있는 레티어스 후작이 내게 말을 꺼냈다.
『 그대의 소문은 익히 들었네. 레티어스 요새를 수복하는 데 그대의 힘을 빌려주었으면 하는군. 당장 나와 함께 가세나. 』
뭐?
지금 어딜 가자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