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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28화 (521/1,404)

#528화 무너지는 요새 (3)

우리가 가장 우려했던 상황.

고르곤이 요새 내부를 제멋대로 돌아다니면서 난장판을 피우는 딱 그런 장면이 지금 눈앞에서 펼쳐졌다.

“저것 좀 어떻게 해 봐!”

“우악! 튀어! 몹들 성벽에 올라온다!”

“막으란 말이야!”

“성벽 포기하지 마!”

“여기 밀리면 끝이야!”

“어떻게든 버티라고!”

혼란이 가득한 성벽 위에선 버티는 자, 싸우는 자, 도망가려는 자가 서로 얽히면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몬스터 수준을 보면 유저들이 어떻게든 막을 수 있는 난이도였는데 딱 하나의 변수.

바로, ‘고르곤’ 때문에 상황이 어렵게 돌아갔다.

동쪽 쿠론 요새가 무너진 것도 네임드 하나 때문이었으니 난이도는 비슷하다고 보면 억울하지 않겠지만.

그런다고 여기서 밀리면 절대 안 된다.

지금 밀리면 뒤가 없다.

고르곤이 날뛰는 성벽 위를 바라보다가 무심코 눈이 인터페이스의 시계를 스쳐 지나갔다.

이건…?

어쩌면 승산이 있을 지도?

순간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면서 바로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형, 고르곤이 햇빛 속에서 활동을 할 것 같아요?”

내 질문에 재중이 형도 알아들었는지 눈빛이 바로 번뜩였다.

그리고 듣자마자 나와 같이 인터페이스의 시계 쪽으로 눈이 돌아갔다.

“버텨보자 이거냐?”

“네, 당장 녀석을 몰아낼 방법은 이것밖에는 없어요.”

암흑 지대.

혹은 검은 안개 지역.

녀석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은 딱 그곳밖에 없다.

그리고 그건 고르곤이 전이문 너머의 햇빛 속으로 넘어오지 못하는 것으로 이미 확인을 했었고.

고르곤을 여기서 몰아내려면 어떻게든 버티기만 하면 된다.

“과연 유저들이 버텨줄까?”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성벽 위를 바라보는데 이미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조금만 시간을 지체해도 성벽 너머로 몬스터들이 넘어올 것이다.

그럼 그때 가서는 무슨 짓을 해도 저 웨이브를 막아내지 못한다.

“하는 데까지 해보죠.”

“좋아. 승산이 있는데 내빼는 것은 너무 아쉽지.”

일단은 버틴다.

그리고 그 뒤는 나중에 생각한다.

동쪽이 무너지든 북서쪽이 무너지든.

그건 그쪽 사정이고.

내가 있는 한.

적어도 바이탄 요새는 오늘 이대로 끝나진 않는다.

“유저들에게 그냥 알려주세요. 아침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고르곤의 약점을 알려주는 것은 아깝긴 한데 지금 그걸 따질 때는 아니겠네.”

재중이 형도 동의를 하면서 바로 사장님에게 전달했다.

<카이저> 흠, 정말 그때까지 버티면 되는 거냐?

<불멸> 네, 확실한 정보니까 성벽 위 길드들에게 전부 알려주세요.

<카이저> 알았다. 한 번 해보마. 그리고 최대한 성벽 위에서 외쳐도 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단순히 외치는 것 정도로는 안 된다.

지금 채팅창이 엉망진창이라 뭘 말하더라도 묻히기 일쑤라.

정신없는 와중에 채팅창을 바라보는 유저도 거의 없을 테고.

그리고 성벽 위에서 중심을 잡아줄 상위 길드들이 포기하지 않고 버텨줘야 성벽을 사수할 수 있다.

그런 길드들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사장님이었고.

동시에 두 가지를 다 해야 겨우 진정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다시 고르곤을 막으러 가죠.”

“그래. 결국 저놈을 묶어야 끝이 나.”

우리가 고르곤이 난장판을 피우는 성벽 위로 올라가는 동안 채팅창에 우리 길드와 연합에서 올리는 채팅이 보이기 시작했다.

-버텨! 아침까지만 버티면 된다!

-아침? 무슨 개소리야?

-햇빛 나오면 고르곤 돌아간다니까!

-미친, 그 말을 어떻게 믿어?

-아놔, 일단 버텨보라고! 고르곤 약점이 햇빛이다.

-그걸 믿으라고? 우리 놔두고 니들끼리 튀려는 거 아냐?

우리 소속 인원들이 주변에 외치면서까지 묶어두려고 했지만 성벽을 오르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면서 계속 외치는 것만으로는 주변에 있는 몇 명만을 묶어둘 뿐이었다.

역시 채팅창과 외침으로는 한계가 있네.

이제 사장님이 잘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믿을만한 길드장들을 포섭해야 순식간에 라인을 잡을 수 있다.

성벽에 오르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난전에 난전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키에에엑!”

임프?

마치, 예전에 봤던 가고일을 작게 축소 시켜둔 것 같은 악마 형 몬스터가 내게 뛰어들자 곧장 르아 카르테로 팔을 쳐내고 데몬 블레이드로 머리통을 깨부셨다.

퍽!

파각!

단 두 방에 형편없이 튕겨 나간 임프를 본 주변 유저들이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고.

옆에서는 또 다른 임프를 재중이 형이 데몬 스피어의 날카로운 날로 관통시켜서 그대로 침묵시켜 버렸다.

“허, 그렇게 안 죽던 임프를 단 두 방에?”

“어?! 주호다!”

“불멸도 있어!”

“쟤들 후퇴한 것 아닌가?”

“설마 고르곤 막으러 온 건가?!”

순간, 우리를 바라보는 유저들의 눈에 희망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나마 여기는 성벽이 몬스터에 잠식당하지 않아 버티는 중이고.

그때.

주변에 있던 유저 중 누군가 크게 외쳤다.

“암흑 골렘이 성벽 타고 올라온다!”

“젠장! 저건 못 막는다고!”

“이익, 어떻게 사수한 성벽인데……!”

“마법사들 마법 퍼부어!”

“우리 마법 잘 안 통해! 상성 최악이라고!”

아마 지금 유저들 대부분의 무기가 드래곤에 관련된 무기일 확률이 높았다.

현재 제일 높은 사냥터가 그쪽이기도 했고.

그냥 옵션 적용을 못 받고 깡뎀으로만 싸우자니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올 리가 없었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악마 형에 관련된 무기가 없는 편이니.

그나마 데스 나이트 세트가 있기는 해도 거의 다 저주 관련 옵션이라…….

여기서는 그렇게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암흑 골렘이라…….

저런 녀석이 올라오면 이쪽이 곤란하지.

레벨은 몰라도 일단 덩치가 4m에 육박했다.

어지간한 중형 몬스터는 깔아뭉개고도 남을 몬스터가 성벽 위에 올라오는 것 자체가 재앙.

“형, 저지할게요.”

여기서는 최대한 간결하게.

괜히 시간을 끌 여유도 없었다.

바로 데몬 블레이드를 집어넣고 드래곤 슬레이어를 꺼내 들었다.

한쪽에 드래곤 슬레이어를 든다고 해도 여전히 르아 카르테의 옵션이 주를 이루었다.

어지간한 공격은 다 악마형 추가 대미지가 먹힌다는 말이고.

이 상태로.

“크어어억!”

암흑 골렘이 성벽을 올라오려고 발악하자 유저들이 정신없이 달라붙어 녀석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방어가 워낙 높아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해 결국 암흑 골렘의 상체 전부가 성벽 위로 올라와 버렸다.

“다들 비켜요!”

내 외침에 깜짝 놀란 유저들이 돌아봤다가 나인 것을 확인하고는 주저 없이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이럴 땐 이름 빨이 좋다니까.

암흑 골렘이고 뭐고 일단 짜져 있어!

【 용격! 】

순간 드래곤 슬레이어에서 환한 빛을 내며 일자로 쭉 뻗어 나간 용격이 암흑 골렘의 머리를 강력하게 터뜨렸다.

쿠아앙!

암흑 골렘의 머리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것으로도 모자라 위력이 남은 용격이 성벽 아래의 몬스터들을 일자로 쭉 밀어내며 죄다 녹여 버리고 지나갔다.

거기다 용격에 직격타를 맞은 암흑 골렘의 머리가 완전히 박살이 나 형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암흑 형 몬스터들을 일자로 갈라 버리자 순간 유저들의 눈이 전부 용격이 쓸고 지나간 자리로 돌아갔다가 내게 시선이 쏠렸다.

그간 밀리기만 했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

무려 악마형 피해 추가가 400%다.

통상적인 대미지에서 그 정도로 위력을 더 낼 수 있다면.

저런 위력을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우와?!”

“저 암흑 골렘을 한 방에?”

“대박!!”

“주호가 돌아왔다!”

“이거 승산 있는 거 아냐?!”

“하긴 저놈이 지는 싸움에 이렇게 열 올리진 않잖아!”

유저들 역시 이 한 방의 공격에 정신을 다잡았다.

성벽 아래로 도망가려던 유저들까지 멈칫할 정도로.

이 기세를 놓치기는 아깝다는 기분이 드는 순간 나도 모르고 사방을 바라보면서 외쳤다.

-전부 아침까지만 버팁시다! 아침까지 버티면 고르곤 없앨 수 있어요!

내 외침이 쩌렁쩌렁 울리자 유저들의 눈빛이 확연히 달라졌다.

“고르곤 정말 사라지나 봐.”

“주호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아침까지 얼마 안 남았어!”

“……발. 어차피 이대로 밀리면 이벤트 끝이야. 그냥 버티자.”

“내려갔던 길드 애들 다시 불러! 한번 버텨 보자고.”

“다른 요새 다 무너졌던데 버티면 무조건 우리가 상위다!”

암울했던 상황 속에서 용격 단 한 방에 분위기를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크큭, 이젠 알아서 잘하는데? 기특해.”

재중이 형이 옆에서 웃자 순간 부끄러움이 막 몰려왔다.

“좋은 분위기였잖아요. 무심결에.”

“좋아, 좋아. 그런 면도 있어야지.”

거기다 사장님이 몇몇 중요 길드를 붙잡아두는 데 성공하면서 라인이 무너지지 않고 다시 밀집 형으로 뭉치는 것도 보였다.

처음 시작할 때만큼 견고해진 방어벽에 재중이 형이 만족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이 일을 잘해주셨네.”

“고맙죠.”

“자, 그럼 우리는 할 일을 하러 가자고.”

결국 이 모든 일은 저 고르곤을 막아내는 데 있다.

저 녀석을 막아내지 못하면 이 모든 수고가 물거품이 될 테니.

빠르게 나와 재중이 형이 고르곤이 난동 부리는 곳으로 뛰어들자 주변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유저들이 바로 길을 터주었다.

도망가지 않고 버텨준 것만 해도 고맙네.

“지금부터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부탁해. 역시 저놈은 못 막겠어.”

바로 유저들과 바톤 터치를 하고는 고르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내려치는 고르곤의 앞발을 르아 카르테와 데몬 블레이드로 갉아내듯 쳐내자 고르곤이 비명을 질렀다.

“카아악!”

아프냐?

너 때문에 우리 망할 뻔한 걸 생각하면 반쯤 죽여 놓고 싶은데?

나와 재중이 형이 번갈아 가면서 고르곤의 앞길을 막자 고르곤이 연신 짜증을 내면서 성벽 위에서 나뒹굴었다.

그렇다고 아예 도망을 가지 않는 것을 봐서는 블링크를 연속적으로 쓰진 못하는 것 같았고.

그때 우리가 있는 곳으로 챠밍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응?

지금 챠밍이 왜?

성벽을 막고 있어야 하지 않나?

“아, 불멸 오빠가 불러서 왔어요.”

“형이 불렀어요?”

“어, 도움이 좀 필요하거든.”

그리고 달려온 챠밍이 곧장 마법을 하나 영창 하기 시작했다.

저건…….

아쿠아 브레스?

단순히 위력만으로는 괜찮긴 한데 굳이 고르곤에게 쓸 필요가 있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오빠, 고르곤 위치!”

챠밍이 물어보자 얼떨결에 챠밍에게 방향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내 지시에 따라 정확하게 고르곤의 위치로 아쿠아 브레스를 쏘아내었다.

【 아쿠아 브레스! 】

콰아아!

아쿠아 브레스가 쭉 날아가 고르곤의 신체에 닿아 터지면서 순간적으로 고르곤의 전체 형체가 잠시나마 드러났다.

이건 유저들이 광역기를 날려서 고르곤의 형체를 알아보려 했던 방법과 유사한 방법이었고.

내가 알려준 방향에 따라 정확하게 맞추기도 했고, 위력이 강한 아쿠아 브레스는 유저들의 그것보다는 확연하게 고르곤의 모습을 모두에게 비추었다.

메테오보다는 떨어지는 위력이지만, 확실히 아쿠아 브레스도 상위에 속하는 마법이라 고르곤이 순간 휘청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단순히 이것만 하려고 챠밍을 부른 것은 아닐 텐데?

그때, 재중이 형이 인벤에서 무기를 하나 꺼내 들었다.

저건?

설마…….

재중이 형이 아쿠아 브레스를 뒤집어서 축축하게 젖어 있는 고르곤을 보더니 곧장 한 가지 스킬을 시전했다.

【 라이데인! 】

그러자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하늘에서 거대한 낙뢰가 연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지지직!

그리고 그런 낙뢰들이 고르곤의 신체를 적시던 물기들을 타고 흘러 끝없이 고르곤을 지져대기 시작했다.

고르곤 역시 고통스러운지 온몸을 비틀어댔고.

심지어 고르곤을 감싼 뇌전이 사라지지 않고 쭉 몸에 남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걸 지켜본 재중이 형이 씨익 웃었다.

“이렇게 하면 뇌전이 굉장히 오래 가. 그리고 이거면 저 녀석 블링크 전혀 못 쓴다고.”

재중이 형 말대로 뭔가 스킬을 써서 자리를 벗어나려던 고르곤의 스킬이 캔슬 되면서 그 자리에서 멈춰 버렸다.

아예 스킬 자체를 못 쓰는 건가?

물 속성 최강의 마법과 전기 속성의 최강 스킬을 엮어서 고르곤을 오가지도 못하는 신세로 만들어두었다.

거기다 저렇게 하면 고르곤의 모습까지 유저들이 온전히 볼 수 있었고.

효과가 끝날 때쯤엔 시간의 서를 써서 다시 한 번 고르곤을 묶어두었다.

그렇게 가장 까다로웠던 고르곤의 움직임이 봉쇄되자 성벽이 눈에 보일 정도로 안정되어갔다.

얼마 후.

하늘에서 구름이 열리면서 점점 빛이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빛에 고르곤의 신체가 닫는 순간 고르곤의 신체가 타들어 가면서 크게 울부짖었다.

“쿠오오!”

역시.

고르곤은 빛에 약해.

그러더니 정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성벽 바깥으로 뛰어 도망가 버렸다.

고르곤이 패퇴하자 남은 몬스터들 역시 고개를 돌려 다시 어두운 산맥으로 돌아갔고.

“어?! 고르곤이 도망간다!”

“몬스터들 다 돌아가!”

“우와! 살았다!”

“됐어! 우리 버텼어!”

“이겼다아!”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환호하는 사람들 틈에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우리 이겼죠?”

“그래, 우리가 이겼다.”

이벤트 1일 차.

레티어스 요새 패퇴.

쿠론 요새 패퇴.

바이탄 요새 생존.

이벤트 중 유일하게 버텨낸 요새로 남게 되었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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