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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23화 (516/1,404)

#523화 경계 수호자 (5)

챠밍의 말을 들어보니 확실히 이상했다.

도대체 어떻게 버티고 있었던 거지?

밤이 며칠에 한 번 꼴로 오는 게 아니라면, 매일 고르곤이 성벽을 타고 넘어와서 난동을 부렸을 것이다.

얼핏 보긴 했지만, 이곳 NPC 수준으로는 고르곤을 절대 막을 수 없다.

NPC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이상했다.

“확실히 이상하네.”

“그렇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혹시 고르곤을 상대할 수 있는 특수한 무언가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후엘 백작 주변, 아니 이곳엔 그런 것이 발견되지 않았다.

흠, 그래도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만약 후엘 백작이 고르곤을 상대할 수 있거나, 가신 NPC 중 상대할 수 있는 NPC가 있다면?

예전에 왕국을 대표하던 기사 수준의 NPC라면······.

확인차 후엘 백작에게 바로 물어보았다.

“혹시 고르곤을 직접 상대하셨습니까?”

후엘 백작이 고르곤을 상대할 수 있다면 생각보다 쉽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을지도.

내 질문에 후엘 백작이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처음에 잘못 본 것이 아니었어.

전투 흔적이 가득한 갑옷은 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생각 이상으로 지금 눈앞에 있는 후엘 백작이 강하다는 말이기도 하고.

어쩌면 후엘 백작이 테인 공작과 비슷한 수준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이상 수준이면 이쪽이 고맙지.

적어도 바이탄 요새가 한 번에 무너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심이 되지 않았다.

후엘 백작과 병사 NPC만으로 막아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이런 식으로 이벤트를 열지도 않았을 테니.

그리고 후엘 백작의 부서진 갑옷이 얼마나 고전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유저들 손을 빌릴 수밖에 없는 상황.

그때, 후엘 백작을 보면서 뭔가가 떠올랐다.

다른 요새는 어떻지?

바이탄 요새는 후엘 백작이 고르곤을 잠시 막아줄 수 있다고는 하면······.

아마 다른 두 요새도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이 되지 않을까?

정체를 모를 네임드.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고위의 NPC.

고개를 돌려 전사 형에게 물었다.

“전사 형, 지금 다른 요새 상황은 어때요? 예를 들면 다른 요새에도 네임드나 강한 NPC가 있을 것 같은데.”

“잠시만.”

그러더니 전사 형이 곧장 게시판과 BJ들의 방송들을 검색해서 확인을 했다.

잠깐 쭉 훑어본 전사 형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유저들은 전혀 몰라.”

“그런가요.”

“우리야 백작과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전후 사정을 다 알 수 있지만 다른 유저들은 접촉조차 못 하니까. 병사 NPC들에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라.”

“당분간 다른 정보는 얻을 수 없겠네요. 그럼 이쪽만 신경 쓰죠. 우리 쪽 유저 상황은 어때요?”

그렇게 좀 더 살펴보던 전사 형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흐음, 상황이 썩 좋지는 않은데?”

“최악인가요?”

가정할 수 있는 최악은 북서쪽 요새인 바이탄으로 아무도 오지 않고 다른 요새로 전부 가버리는 일이다.

그럼 요새의 대부분을 소수의 인원으로 커버해야 하는데 이건 쉽지 않다.

바이탄 요새의 NPC 병력 규모가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더욱더 그렇고.

“아니, 최악까지는 아냐. 처음에는 북쪽 레티어스 요새와 동쪽 쿠론 요새에서 올린 영상 때문에 그쪽으로 많이 몰렸는데 우리 바이탄 요새도 꽤 오는 것 같다. 이쪽도 영상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요?”

“이유야 다양하지만,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는 모양인데?”

“이쪽이 경쟁이 적어서요?”

내 질문에 전사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는 거네.

“평범하게 생각하면 요새마다 같은 규모의 몬스터가 들이닥친다고 예상할 수 있잖아. 그럼 그만큼 바이탄 요새에서 기회가 생긴다는 거지. 감당할 수 있다면.”

옆에서 나르샤 누나가 추측하듯 한마디 거들었다.

“아예 어중이떠중이만 오거나 완전 고렙이 오거나 둘 중 하나겠네.”

“그렇지. 감당할 자신이 있거나 혹은 로또를 노리거나.”

기회의 땅인가?

두 요새에 비해 열등하게 떨어지는 조건이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유저가 적어서 포기할 상황은 오지 않는다는 말이네요. 그럼 우리도 준비를 하죠.”

모두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한 번으로 이벤트가 끝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모든 유저가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며칠에 걸쳐 진행이 될 테니 지금부터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요새 주변의 지형이나 NPC의 배치, 유저의 상황 등 알아볼 것도 많고 적절한 세팅도 맞춰야 하니까.

후엘 백작에게 이야기를 하고 바로 집무실을 나왔다.

재중이 형이 각자에게 이야기를 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다들 세팅 좀 하고, 물약 꽉 채워놔. 전사는 나하고 주변 돌아다니면서 분위기 좀 파악하자.”

“가시죠. 형님.”

그렇게 각자의 시간이 주어지자 무기부터 꺼내 들었다.

“전 세팅 좀 할게요. 아무래도 르아 카르테의 옵션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지금 르아 카르테의 옵션은 전부 대인 피해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걸 사냥터에 맞게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고르곤은 악마형 몬스터.

도움이 될 만한 옵션이······.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잡고 만든 데몬 블레이드.

여기에 달린 악마형 피해 옵션을.

곧장 르아 카르테 위에 데몬 블레이드를 올려놓고 먹였다.

《 르아 카르테가 데몬 블레이드를 탐식합니다. 》

《 데몬 블레이드가 소실됩니다. 》

《 데몬 블레이드의 옵션 중 하나가 르아 카르테에 랜덤으로 추가 포획됩니다. 》

몇 번의 시도 끝에 악마형 피해를 르아 카르테의 옵션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당분간 유저들을 상대로 싸울 일이 없어 대인 피해는 지금 굳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브랜디슈 블레이드를 넣어서 고정 대미지를 올려놓았고.

레비아탄 블레이드의 고정 대미지가 더 높긴 했지만 이쪽은 무기 자체가 별로 없어서 잘못 집어넣었다가 드래곤형 옵션이 붙으면 그때는 피곤해지기에 고려하지 않았다.

『 +15 르아 카르테 / 출혈 50(30+20) 타격 42(22+20)

- 마력 흡수 15%

- 치명타 대미지 550%

- 관통 확률 35%

- 회복 불가

- 체력 흡수 15%

- 악마형 피해 400% 추가 』

사냥터에 맞는 최적의 세팅.

좀 더 대미지를 올릴 수 있는 옵션이 있으면 좋겠지만 이 정도가 지금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옵션이었다.

막내별이 옆에서 이걸 보고는 경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임드 템을 몇 개나······.”

“좀 그렇죠? 이거 옵션 한 번 바꿀 때마다 적어도 몇 개는 먹여야 해요.”

“알고는 있지만 볼 때마다 심장이 덜컥하네요.”

말이 옵션 변경이지.

그냥 네임드 무기를 허공에 녹이는 것과 다름없다.

이쁜소녀도 옆에서 보다가 감탄하면서 한마디 했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무기!”

“정말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

르아 카르테에 들어간 돈만 생각하면 이미 평범은 아득하게 넘어가 버렸다.

절대 죽으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렇게 르아 카르테를 완성시켜놓고 다른 손에 쥔 드래곤 슬레이어를 바라보았다.

이건 이번에 도움이 안 되려나?

옵션 자체가 죄다 드래곤형에 대한 피해, 체력 감소, 관통 등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깡 대미지가 월등히 높다고는 하나, 옵션이 적용되지 않으면 반쪽짜리 무기나 마찬가지.

어쩔 수 없이 드래곤 슬레이어를 인벤으로 집어넣었다.

결국 이걸 써야겠는데?

그렇게 아까 르아 카르테에 먹이고 남은 데몬 블레이드 중 한 자루를 꺼냈다.

미리 좀 만들어놔서 다행인가.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이럴 땐 도움이 되네.

잘하면 이번에 다시 볼 수 있으려나?

이 녀석도 좀 더 잡아야 할 텐데······.

그리고 인벤에서 강화석도 하나 꺼내 들었다.

『 10강 무기 정제 강화석. 』

아무래도 여분이 몇 개 있으니까.

연이은 돌발 퀘스트를 해결해서 하나 정도를 쓴다고 그렇게까지 부담스럽진 않았다.

강화석을 아낀다고 필요할 때 쓰지 않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지.

지금은 무조건.

바로 데몬 블레이드에 10강 무기 정제 강화석을 올려놓았다.

《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

『 +10 데몬 블레이드 / 출혈 40(27+13) 타격 32(19+13)

치명타 대미지 300% / 관통 확률 15%

악마형 피해 200% 추가 』

매번 드래곤 슬레이어나 르아 카르테만 봐오다가 데몬 블레이드를 보니 부족함 감이 확 느껴졌다.

역시 유일 아이템하고는 게임이 안 돼.

다른 한쪽에 들 수 있는 유일 아이템을 구해야······.

그렇게 아쉬움을 느끼는 와중에 시스템 메시지가 머리 위에 떠올랐다.

《 주호 님이 【 +10 데몬 블레이드 】 인챈트에 성공했습니다! 》

-억. 뭐야?

-뭐지?

-10강? 데몬 블레이드?

-저건 또 무슨 무기야?

-허, 옵션 봐. 악마형 무기!

-미쳤네.

-관통 확률도 있잖아?

-무기 대미지는 좀 낮기는 한데··· 필요한 옵션은 다 있네.

-대체 어디서 이런걸?

-설마 주호 이놈, 벌써 뭔가 잡은 거 아냐?

-바이탄 요새 아직 못 나가던데?

-공작이니까 뭔가 꼼수가 있겠지.

-와, 이벤트 시작하기도 전에 지고 들어가네.

-그냥 북서쪽 요새로 갈까?

-ㅇㅇ. 주호 분명히 한 건 할 것 같음. 적어도 요새가 무너지진 않을 듯.

-아놔, 진짜 바이탄 요새는 도박인데.

유저가 당황하는 모습이 이해가 갔다.

데몬 블레이드를 10강 한 것은 이번이 처음.

서버에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온 것 역시 처음이었다.

그동안 가지고 있었지만 드래곤 지역으로 넘어가면서 딱히 쓸 일이 없어 인벤에 고이 모셔만 놓았었다.

유저들 앞에 내놓은 적도 없고.

아니, 왕국이 멸망했을 때 꺼내든 적은 있었으나 그때 사방이 보이지 않아 제대로 본 사람은 없었다.

더욱이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잡아 본 사람이 없으니까.

다른 서버에서도 아직 악마형 케르베로스는 한 번도 잡히지 않았다.

이런 무기가 있다는 걸 유저들은 알 수가 없는 노릇.

또 귓속말이 빗발칠까 봐 미리 차단해두었다.

“전 준비 끝났어요.”

* * * * *

필요한 아이템 세팅을 마치고 챠밍과 막내별의 마법 세팅을 기다렸다가 다시 요새로 나오자 생각보다 꽤 많은 유저가 도착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늘을 보니 슬슬 어둠이 지는 중이었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완전히 밤으로 넘어갈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하늘 위에서 다수의 비공정이 계속 내려앉는 게 보였다.

나쁘진 않네.

처음 우리가 도착했을 땐, 삭막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성벽을 띄엄띄엄 막을 수준으로 유저들이 요새에 들어왔다.

얼마 뒤, 주변을 살펴보던 재중이 형과 전사 형이 돌아오자 다시 성벽 위로 올라갔다.

대략 중앙에 자리를 잡고는 재중이 형에게 바로 물었다.

“어때요?”

“조금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성벽이 부서질 것 같진 않아. 생각보다 훨씬 두껍더라고.”

그 말에 무심코 성벽 위를 쭉 둘러보니 아직 유저들이 그렇게 긴장하거나 한 것 같진 않았다.

“밤이 되어야 시작한다는 걸 모르죠?”

“뭐, 곧 알게 되겠지.”

재중이 형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경계에 어둠이 찾아옵니다. 》

《 경계 수호자 이벤트가 시작됩니다. 》

《 전투에 대비하세요. 》

《 이벤트 기간 내 공적을 올린 유저에게 보상이 돌아갑니다. 》

“드디어 시작인가?”

산맥 너머에서부터 어둠의 안개가 퍼지더니 곧 바이탄 요새의 하르 보호막을 침투하듯 녹이면서 들어와 곧 주변이 깜깜하게 변했다.

“뭐! 뭐야?!”

“잘 안 보여!”

“마법사들 라이트 써!”

“최대한 주변 밝히라고!”

“NPC는 대체 뭐 하는 거야?!”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주변이 깜깜해지자 유저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이 상황을 알고 있는 우리는 바로 대비를 했고.

우리 모두 바로 웨폰을 켜자 주변에 빛이 돌기 시작했다.

그걸 본 다른 유저들이 빠르게 웨폰을 켜면서 따라 했고.

서로의 웨폰과 미세한 마법들이 모여 주변을 비추자 그나마 사물 정도는 분간할 수 있었다.

“키에에엑!”

“카아아가!

그동안 산맥의 어둠 속에 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수많은 몬스터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성벽 멀리 들리는 기괴한 음성에 성벽 위에 있던 모두가 긴장한 듯 몸이 굳는 것이 보였다.

솔직히 저 몬스터들은 그렇게 관심이 없었다.

주 관심사는 고르곤.

어디에 있냐······.

녀석을 놓치고 잡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다.

감각을 넓게 퍼트려 녀석의 발걸음을 잡으려고 집중했는데 순간 등에 소름이 돋았다.

뭐야?

대체 어떻게?

바로 성벽 바깥이 아닌 성벽 안쪽으로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녀석을 발견했다.

요새 내부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녀석을.

“고르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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