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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22화 (515/1,404)

#522화 경계 수호자 (4)

내 말에 챠밍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고르곤요?”

“응, 아마 맞을 거야. 특유의 발 울림이 있거든.”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내게 느껴진 감각은 고르곤, 이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재중이 형이 정면을 바라보면서 말을 꺼냈다.

“그러면 저곳이 암흑 지대인가?”

육안으로도 확인이 불가한 검은 안개가 짙게 낀 지역.

멀리서 봤을 땐, 그저 짙은 안개라 생각했는데 고르곤이 있는 것을 봐선 확실하다고 생각되었다.

“네, 이전에 미치광이 리치로 돌아다녔던 그 암흑 지대가 맞는 것 같아요.”

“흐음, 이거 참. 여기서 고르곤을 보게 되다니.”

그러면서 다시 산맥을 둘러싼 검은 안개를 바라보더니 뭔가를 생각하는 듯 입을 닫아버렸다.

그렇게 가만히 있길 잠시.

채팅과 게시판을 번갈아 체크하던 재중이 형의 입이 열렸다.

“다른 경계 주둔지에도 고르곤이 있을까? 아님 저놈 하나뿐일까?”

같은 네임드가 여러 마리라······.

지금까지 그런 경우가 없던 것은 아니기에 확신을 가지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재중이 형이 채팅창과 게시판을 확인한 것 같았다.

다른 경계 주둔지의 활동을 확인하기 위해서.

-북쪽 레티어스 요새 도착!

-우린 동쪽. 쿠론 요새. 성벽 완전 높다.

-여기 사람들 개떼처럼 몰렸는데?

-와, 역시 후작 쪽 오길 잘한 듯. NPC 병력 빠방함.

-서북쪽은 미침. 요새가 아니라 어디 시골 성벽이다. NPC도 죄다 엉망이고. 아무래도 잘못 온 것 같아.

-그러게 누가 백작한테 가래?

-에라이, 시작하기 전에 옮겨야지.

-아직 시작 안 하는 건가?

-필드 나가보신 분?

-ㄴㄴ. 여기서 못 나가게 함. 이벤트 시작해야 싸울 수 있는 모양임.

-그런데 싸울 수나 있겠음? 성벽 너머 산맥 쪽으로는 거의 안 보이던데.

-이벤트라 그런 것 아님? 몬스터 숨긴다고 저러는 것 같기도 하고.

-곧 보여주겠지.

-성벽 위에서만 싸우면 원거리가 유리할 것 같은데.

-에이, 설마. 시작하면 정신없이 성벽 타고 올라올 건데 걱정 안 해도 됨.

게시판을 대충 살펴보니 아직 다른 경계 주둔지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것만 봐서는 모르겠어요.”

아직 이벤트가 시작되지 않아서 그런지 암흑 지대로 직접 들어간 유저들은 없어 보였다.

대부분 우리처럼 경계 주둔지 성벽 위로 올라가 반대편을 확인하는 것 정도가 끝.

당연히 반대편에 무슨 몬스터가 있고, 얼마나 있는지 파악조차 못 했을 것이다.

요새 NPC들을 통해 확인하는 방법도 있지만 기여도나 친밀도가 낮아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을 터.

흐음.

정말 요새 밖으로는 못 나가는 건가?

잠시 성벽 위에서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를 해보았는데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 이벤트 시작 전입니다. 》

《 바이탄 요새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

“역시 밖으로 못 나가네요.”

주변을 보니 우리보다 일찍 도착한 다른 길드 유저들도 나가보려고 시도를 했다가 똑같이 고개를 젓는 모습이 보였다.

이벤트 시스템 때문에 유저들도 움직이지 못하고, 산맥 쪽에 있는 몬스터들도 아직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시작 전에 후엘 백작에게 자세한 정보를 얻어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우리만은 아닌 듯 요새 지휘관인 후엘 백작이 성벽으로 올라오자 유저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곳 바이탄 요새에서 가장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NPC가 후엘 백작이기도 하고.

다만, 그 누구도 후엘 백작과 제대로 된 말을 나눌 수가 없었다.

후엘 백작 주변에 대기하던 병사 NPC들이 유저들을 막아섰기 때문에.

『 물러나십시오! 』

“아, 진짜. 뭐야? 말도 못 해?”

“백작이면 다야?”

“NPC 주제에 정말 비싸게 구네.”

“쳇, 그놈의 친밀도!”

NPC 친밀도 시스템은 다들 어느 정도 적응이 된 터라 대화가 안 된다고 그렇게까지 당황하거나 욕을 하는 유저들은 없었다.

좀 아쉬워하는 정도.

다만 나는 다르다.

친밀도와 상관없이 후엘 백작과 단독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힘이 있었다.

후엘 백작에게 다가가자 좀 전까지 유저들을 막던 병사 NPC들이 이번에는 전혀 제지를 하지 않았다.

“후엘 백작님, 잠시 저와 이야기 좀?”

『 주호 공작님, 알겠습니다. 』

후엘 백작을 데리고 그대로 성벽을 내려가자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자신들은 말조차 걸 수 없는 귀족을 데리고 나갈 수 있는 권력.

부러워하는 그런 표정들을 뒤로하고 우리 팀과 함께 백작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저 검은 안개는 대체 뭔가요?”

일단, 활동하는 데 문제가 되는 저 검은 안개에 대해서 정보를 얻어낼 필요가 있었다.

왜 저런 검은 안개가 경계 너머로 펼쳐져 있는지.

내 질문에 후엘 백작에게서 의외의 답이 흘러나왔다.

『 저 검은 안개는 타르가 변형된 암흑 물질입니다. 보통의 방법으로는 제거할 방법이 없습니다. 』

타르?

어디서 많이 들어본······?!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과 전사 형을 보는데 전사 형이 바로 답해주었다.

“전에 하르가 오염되면 타르로 변한다고 했어.”

“그 타르인가요.”

여기서 갑자기 왜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사 형이 뭔가가 또 생각나는 듯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면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왕국을 차지했을 때도 주변이 까맣게 변했지.”

“인위적으로 암흑 지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네요.”

“아마도?”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기다리다가 후엘 백작이 다시 말을 꺼냈다.

『 예전 대륙은 전부 인간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고대 괴물들이 갑자기 나타나면서 왕국과 제국들이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힘겹게 저항했지만······ 결국 인류는 대륙 끝으로 쫓겨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사람이 살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를 겨우 지켜냈습니다. 』

고대 괴물이라면?

네임드를 말하는 것일까?

계속 말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후엘 백작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 성마 전쟁. 정확히는 인류와 고대 괴물들과의 전쟁이었습니다. ······인류가 패배한 뒤 대륙이 괴물들에게 먹힌 지 벌써 백 년도 지난 이야기군요. 』

예전에도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성마 전쟁.

유일 아이템을 가진 영웅들이 존재했었다고.

지금 내가 들고 있는 르아 카르테도 그중 하나.

영웅들이 들고 있던 무기 중에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아마 드래곤 슬레이어 역시 포함이 될 것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딱히 다른 언급은 없어 짐작만 할 뿐이었다.

『 이곳 요새는 괴물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막는 최후의 보루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이 뚫리면······ 제국이 위협을 받기 때문에 반드시 사수해야 합니다. 』

이번 이벤트의 중요한 부분.

아니,

로스트 스카이의 핵심적인 스토리 라인에 근접해 있었다.

영웅들의 무기를 더 찾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고.

옆에서 듣고 있던 재중이 형이 후엘 백작에게 물었다.

“지금은 괜찮습니까? 이미 코앞까지 검은 안개가 들어와 있던데. 검은 안개가 조금만 더 늘어나면 이곳도 힘들겠군요.”

『 불멸 백작님이군요. 원래라면 제국에서 하르가 지원되었어야 하는데 얼마 전부터 뚝 끊겨 버렸습니다. 공급받는 하르로 넘어오는 타르를 겨우 중화시키고 있었는데 말이죠. 』

후엘 백작의 그 말에 집무실에 들어와 있던 우리 팀 모두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다들 머쓱한지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살짝 웃기만 했고.

모두가 저 하르 공급 부족의 원인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얼마 전 가짜 황제의 정체를 밝히면서 제국이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무려 드래곤을 제국에 끌어다 놓기도 했었고.

그때, 제국이 드래곤에게 완전히 불타서 잿더미가 됐었지.

거기다 황위 쟁탈전을 한다고 황궁을 메테오 스트라이크로 날려 버렸다.

그 기간 동안, 제국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부수고 재건하고. 다시 부수고.

심지어 황위는 계속 비어 있었지.

밑에 귀족들은 제 밥그릇 챙긴다고 개판이었다.

이러니 제대로 물자가 공급될 리가.

후작 정도였으면 알아서 자체적으로 해결을 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이 바이탄 요새의 물자 부족에는 우리가 어느 정도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주호> 말하진 말죠.

<불멸> 말했다간 당장 쫓겨날걸?

다행히 속사정까지는 모르는지 우리를 보는 후엘 백작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찌 됐건 저 검은 안개 너머의 몬스터들을 잡아야 한다는 사실은 같았다.

그때, 뭔가 생각났는지 재중이 형이 후엘 백작에게 물었다.

“검은 안개 속의 몬스터들과 언제 전투를 치룹니까?”

이벤트는 열렸지만 당장 언제 해야 하는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예상하기로는 참여하는 유저가 많아지면 할 것 같기도 하고.

후엘 백작에게서 확실한 정보를 알아두면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겠지.

“그리고 지금 바이탄 요새가 왜 이렇게 엉망이 된 겁니까?”

확실히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게시판을 보면 후작들의 두 요새는 병력이 많고 요새도 더 견고했다.

반대로 바이탄 요새는 성벽이 부서지고 NPC 상태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후작들의 요새와 달리 이미 몇 번의 전투를 한 것 같은 느낌.

우리말을 듣자 후엘 백작이 바로 한숨을 쉬었다.

『 검은 안개 속에 그 녀석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고대 괴물이죠. 』

역시 고르곤이 맞다.

그런데 순간 이상한 점이 보였다.

“고르곤은 어둠에서 절대 나오지 않을 텐데요?”

『 그 괴물을 아십니까? 』

알다마다.

“이미 한 번 상대한 적도 있습니다.”

『 흐음, 대단하군요! 』

《 후엘 백작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후엘 백작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단순히 고르곤을 상대해봤다는 말 한마디로 후엘 백작과의 친밀도를 엄청나게 올려버렸다.

그만큼 시달렸다는 뜻이려나?

후엘 백작이 눈빛을 빛내면서 다시 설명을 했다.

『 확실히 녀석은 어두운 곳이 아니면 나오지를 않습니다. 다만 밤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

밤?

밤이라는 말에 모두의 표정이 변했다.

확실히, 밤이라면······!

완벽한 어둠은 아니더라도 고르곤이 활동하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창을 통해 바깥을 보자 서서히 어두워지려는 모습이 보였다.

“서둘러야겠어요.”

아마 무리를 하면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걱정되는 한 가지가 있었다.

유저들은 어둠 속에서 그 녀석을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보이지도 않는 고르곤에게 걸리는 족족 죽어 나갈 것이다.

그럼 분명히 성벽 수비에 문제가 생기게 되겠지.

단순히 고르곤만 상대하라고 저 많은 유저를 모이게 한 것은 아닐 테니까.

잘못하다가는 바이탄 요새를 그냥 내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럼 애써 이곳에 온 이유가 없게 된다.

밤이 될 때까지 시간이 별로 없는데 방법이 없나?

그때, 챠밍이 뭔가가 생각났는지 내게 물었다.

“오빠,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 있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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