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화 경계 수호자 (1)
‘돈’을 매개로 했던 해원의 연합도 이번만은 버틸 수 없었던 모양이다.
“무너지는 데는 정말 얼마 걸리지 않네요.”
재중이 형은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더 이상 잡고 있을 명분이 없으니까. 아니, 그것보다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져서 답이 없겠지.”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죠?”
드래곤이 해원 연합을 찢어놓고 그 이후엔 우리와 붙으면서 또 찢겨나갔다.
그 와중에 어마어마한 수의 아이템을 드랍했고.
우리가 얻은 이득이 결코 적지 않다.
단기간에 얻은 아이템 숫자만 보면 역대급에 해당할 정도로.
그중 다수를 아퀼라스 주니어가 먹어 치우긴 했지만 그럼에도 연합 사람들에게 나눠줄 충분한 아이템이 쌓여 있었다.
사장님과 스칼렛, 이슬두잔이 사냥터에 얼굴도 비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
아이템 값어치를 개별로 산정하고 그걸 또 연합 유저들의 기여도에 따라 나누는 일은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일이 아니었다.
엄청난 작업 강도지만, 그래도 다 싱글벙글한 표정을 지으면서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한참 달콤한 과실을 수확하고 있으니 불평이 있을 수가 없지.
“저쪽 연합?”
“네, 피해가 장난이 아닐 건데.”
“크크, 지금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는 거냐?”
“뭐, 딱히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궁금해서요.”
“흐음, 일단 연합이 해체되었으니 끝났지.”
“그게 끝인가요?”
“그럼 어떻게 할까? 해원 집 앞에 찾아가서 떨어뜨린 아이템을 돌려달라고 시위라도 해?”
“그건 아니죠.”
“해원 쪽에 줄 선 놈들만 병신 된 거야. 아이템도 아이템이지만, 아직 제국과 적대 관계도 풀리지 않았지.”
“진짜 최악인데요?”
그나마 악세나 방어구 정도 한두 개 떨어뜨렸다면 그나마 괜찮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주력으로 쓰는 강화된 무기가 떨어진 상황이라면?
거기다 비공정이 떨어진 길드는 사태가 심각하고.
비공정이 한두 푼 하는 물건은 아니니까.
피해를 책임져야 하는 윗대가리가 날라버린 지금.
죄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동안 옆에서 게시판을 살펴보던 전사 형이 말을 꺼냈다.
“해원, 완전히 날랐답니다. 흔적도 없이.”
그 말을 들은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놈이 부자라고 해도 일을 너무 키웠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냐. 아니, 감당할 수 있다고 해도 할 놈도 아니고. 그걸 다 복구해주고 무너져가는 연합을 억지로 유지하느니 그냥 공중분해하는 걸 택한 거겠지.”
역대급 줄행량.
전 서버를 뒤져봐도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고 튄 경우는 아마 처음일 것이다.
“저렇게 튀어도 아이디와 모습을 바꿔오면 아무도 모르니까요.”
전사 형의 말에 모두 공감했다.
가지고 있던 것을 다 포기해야 하지만 그만큼 신분 세탁도 쉬웠다.
특히 다른 서버로 가버리거나 하면 다시 찾는 일은 절대 불가능했고.
본인이 정체를 밝히지 않는 이상.
그냥 남겨진 유저들만 완전히 새된 상황이었다.
“게시판에 해원 욕하는 글만 바글바글하군요.”
전사 형 말대로 게시판은 온통 해원에 대한 욕뿐이었다.
-아이, 개……!! 완전 날랐어!
-해원 ……놈!
-이 새끼 내가 끝까지 찾아낸다.
-이미 아이디 지운 듯. 귓말 하면 없는 사람으로 나옴.
-주호 잡으면 끝난다고 참으라더니 지가 튀네…….
-아놔, 미친 새끼. 내 무기 돌려내란 말이다.
-우리 길드 비공정 세 대 날아감. 길마 지금 소송 건다고 난리다.
-해원 이놈 어디 사는지 아는 분? 찾아가서 뚝배기 깨버린다. 진짜.
-그런데 이 빌어먹을 적대는 어떻게 푸는 거야?
-그거 길드 해체하면 됨. 우리 해체하니까 풀리더라.
-우린 길마 날라서 그냥 나옴.
-그냥 길드 새로 파라. 그게 속 편하다.
-나는 두 번 다시 길드랑 연합은 안 들어감. 길마가 해원한테 돈 처먹고 구르다가 이게 뭐냐니까.
-하아, 진짜 줄을 잘못 서서 완전 폭망했네.
-크크크크, 꼬시다. 누가 그쪽으로 줄 서래?
-그냥 주호랑 불멸 정도만 잡으면 이길 줄 알고 해골물 겁나 마신 니들 잘못이지 그걸 누굴 탓해! 지능 보소. ㅉㅉ.
그야말로 개판이네.
해원과 연합 간부들에게 소송을 건다는 유저를 시작으로 찾아가서 뚝배기를 깔끔하게 부순다는 유저까지.
그것을 기점으로 우리와 싸웠던 길드들이 해체되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일종의 꼼수인가?
개인으로 걸려 있는 줄 알았는데 길드를 해체시켜 버리면 적대 관계도 풀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해체 러쉬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해원 이놈이 서버의 판도를 확 바꿔났네.
이번 일을 계기로 길드와 개인 랭킹 전부가 심하게 뒤집힐 것이 분명했다.
뭐, 거기까지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고.
그보다는 내 쪽이 더 문제였다.
이 일전이 끝나고 난 뒤 귓속말이 그야말로 폭주했으니까.
바로 아퀼라스 주니어 때문에.
이번에 싸우면서 아퀼라스 주니어가 제대로 영상에 잡혀 방송되었다.
그러다보니 관심 있어 하는 유저들에게서 미친 듯한 귓속말이 날아오는 중이었다.
특히 화련.
<화련> 좀 팔아!!!!!!!!
<주호> 안 팔아요!
<화련> 아, 진짜! 달라는 거 다 준다니까! 팔아 좀!!
<주호> 그만 끊습니다.
화련만 이런 게 아니라 알 만한 사람 중 돈 좀 있다 싶은 사람들은 죄다 이랬다.
거기다 전혀 모르는 몇몇 유저가 헉, 소리 나는 금액을 제시하면서 아퀼라스 주니어를 팔라고 난리였다.
우리 서버에 부자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
그래서 결국 귓속말을 차단해 버렸다.
“하아, 이 사람들 좀 눈이 돌아간 것 같아요. 전에 유일 아이템보다 훨씬 심한 것 같은데.”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에 옆에서 웃으면서 재밌어했다.
“무려 드래곤이잖아. 게임하는 사람들에게는 드래곤 타는 게 로망이지. 레서 드래곤하곤 차원이 달라. 이미 몇 번 드래곤이 휘젓고 다니는 걸 보기도 했고.”
“정말 백지수표를 들이민 사람도 있었어요.”
“좋겠다. 난 팔았을 텐데.”
“맘에도 없는 소릴 하시네요.”
“들켰나?”
이 형도 좋은 걸 남 주는 스타일은 아닌지라.
“드래곤 잡아달라고 제의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능력 되면 지들이 직접 잡지…….”
“아, 액수가 얼마냐면…….”
그 말을 했더니 재중이 형의 눈빛이 확 바뀌었다.
“우리 당장 드래곤부터 테이밍 하자.”
“하아,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아마 펫과 테이밍하는 탈것은 좀 차이가 있을 것 같았다.
펫은 성장형인 데 반해 테이밍한 탈것은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뭐 같다면 좋은 거고.
어차피 드래곤이 다시 생성되려면 기다려야 하니 확인은 다음 날 해야 하려나.
《 5분 뒤 긴급 점검이 시작됩니다. 유저분들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
긴급 점검?
왜 갑자기 점검을 한다는 거지?
이번에는 특별히 건든 것이 없는데?
재중이 형과 우리 팀을 바라봤는데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아무래도 비공정 때문인가?”
“고작 비공정으로 폭격한 걸로요?”
“다른 것도 있겠다만. 그쪽이 유력하네.”
비록 함정에 몰아넣고 팼다지만 함포 자체가 유저들 상대로는 거의 사기에 가까우니까.
이번엔 정말 발 빠르게 대처를 하는 것 같았다.
“요즘 잠잠하더니 쓸데없이 빠릅니다. 내버려두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전사 형도 아쉬워하기는 했다.
그런 전사 형을 보면서 웃으면서 재중이 형이 마무리 지었다.
“자자, 모두 오늘 하루 고생했다. 어차피 내일은 정기점검이니까 다들 푹 쉬고.”
“고생하셨어요.”
다들 인사를 나눈 뒤 하나둘 밖으로 빠져나왔다.
VRS의 커버를 밀고 나오자 선선한 바람이 낸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벌써 밤인가?
하루 종일 정말 정신없이 싸워댔더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네.
드래곤과의 전투.
아퀼라스 주니어를 얻은 것부터 해서 해원의 연합과 부딪힌 일까지.
긴장이 풀리자 자연스럽게 몸이 축 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진짜 이렇게 며칠만 하면 쓰러지겠군.
천장이 노랗게 변하는 것 같은 아찔함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 * * * *
당연히 일어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접속을 하리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상황에 손이 멈추었다.
<승호> 형, 이거 뭐에요?
<재중> 아, 이제 일어났냐? 너 되게 오래 잔다?
<승호> 피곤했나 봐요. 거의 기절했거든요. 점검 시간이 대체 왜 이래요?
<재중> 정기점검?
<승호> 네, 점검을 하루 종일 하는 것도 아니고.
<재중> 이벤트를 크게 한다는 것 같던데? 아직 공지는 안 올라왔고.
<승호> 흐음, 그런가요?
<재중> 아무래도 조만간 방학 시즌이니까.
<승호> 아, 이제 곧 풀리죠?
이제는 그동안 막아두었던 학생들의 접속이 가능해지도록 바뀌게 된다.
새로운 서버를 연다는 말도 있고.
신규 유저가 늘어나면 그만큼 이벤트도 많이 할 테지.
이건 그 시작점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았다.
기다리는 동안 챠밍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서버가 열렸다.
<승호> 들어와. 먼저 들어갈게.
<은하> 네, 들어갈게요.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136.
> 로딩 중…….
이번에 아퀼라스를 잡으면서 최대치인 5레벨이 단숨에 올라갔다.
개인 랭킹을 확인했는데 100위권 바깥이었던 순위가 이제야 겨우 순위권에 따라붙을 수 있었다.
드래곤 슬레이어와 르아 카르테를 키운다고 보낸 시간이 적지 않았으니.
그 시간 동안 못 먹은 경험치를 고려했을 때 이 정도 따라붙은 것도 정말 빠르게 따라붙은 셈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시간이 주어지면 더 따라붙을 자신도 있었고.
랭킹은 문제가 아니었다.
자, 이제 뭐가 바뀌었나 봐야…….
이벤트에 앞서 공지사항을 빠르게 훑어봤다.
이쪽은 아무래도 민감하니까.
그러다가 잠시 인상을 찡그렸다.
칫, 역시 비공정을 손댔나?
지상에서 비공정의 함포를 쏘면 대미지가 반감되도록 패치가 되어 있었다.
대놓고 비공정으로 몰이사냥을 못하게끔 막아둔 모양.
이쪽은 아쉽네.
밸런스 때문인지 급하게 패치를 한 것 같은데…….
그리고 몇 가지 더 있었는데 이쪽도 역시 비슷한 경우였다.
메테오 스트라이크의 대미지가 감소되어 있었다.
초기 대미지가 너무 높게 나온 것을 수정한다라…….
다만 단순한 감소가 아니라 자주 사용해 스킬 경험치가 오르면 더 높은 대미지를 낼 수 있게끔 바뀌었다.
진(眞) 화염 브레스 역시 마찬가지.
아퀼라스 주니어가 성장함에 따라 대미지가 올라가도록 변경되었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더한 대미지가 나오기는 하는데 당장은 대미지 감소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거군.
우리가 유저들을 대량으로 학살하고 다니는 것을 그렇게 좋게 보지 않은 것 같았다.
중요한 건 이 정도였다.
그것을 끝으로 이벤트 페이지로 눈을 돌렸다.
궁금했던 건 전부 확인했으니까.
신규 맵?
경계 수호자?
그리고 보상을 확인하고는 패치 내용 따위는 머릿속에서 바로 사라져 버렸다.
이 이벤트.
반드시 먹어야 해!
꼭.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