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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17화 (510/1,404)

#517화 이상한 도망자들 (2)

거점에 도착하니, 다들 전투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재중이 형을 비롯한 우리 팀 역시.

“형, 상황이 어때요?”

해원 쪽 방송을 오면서 보긴 했지만, 소수로 쪼개져서 그런지 제대로 된 움직임을 포착할 수 없었다.

거점으로 돌아오는 길에 줄이려고 했는데…….

해원 연합도 바보는 아닌지, 이동 경로나 중요한 정보의 실마리조차 풀지 않았다.

그저 시시콜콜한 이야기만 가득할 뿐.

그래서 재중이 형에게 물어봤더니 어깨만 으쓱거렸다.

“그냥 수금 방송. 정예는 숨기고 별 볼 일 없는 애들만 자꾸 나와서 헛짓이고.”

“흠, 찾아다니면서 죽일 기회는 없어졌네요.”

“어차피 때가 되면 여기 나타날 거니까.”

재중이 형은 해원과 그 연합에 그렇게 연연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예 역으로 덫을 놓겠다고?”

“네, 우리가 눈치챈 것을 전혀 모르니까요.”

몰래 접근한 거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만약 눈치를 챘더라면 그런 식으로 해원과의 관계를 누설했을 리는 없겠지.

한 번 더 꼬았을 확률이 있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잊어버렸다.

그 정도로 용의주도했다면 쟁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한 곳에 몰아놓고 패자?”

재중이 형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숫자는 우리가 적지만 화력은 우리가 압도적이다.

장비도 그렇고 레벨도 그렇고.

거기다 우린 적을 한 번에 녹일 광역기도 다수 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모아놓고 패는 것이 좋겠지. 우린 숫자가 적으니까. NPC로 성벽 전체를 커버하는 건 무리고.”

아직 발전과 확장이 부족하지만 거점 성벽 둘레는 생각보다 넓었다.

반면, 이미 두 번 정도 찢어놓기는 했어도 여전히 적들의 수는 굉장히 많은 수준.

사방에서 덮쳐서 들어오면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중이떠중이만 잔뜩 모아뒀다면 또 모르겠지만 저기도 꽤 대인전을 많이 한 유저들이라 너무 쉽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변수는 최대한 줄여야죠.”

우리가 커버할 수 없는 변수를 줄인다.

그리고 분산된 적들의 시선을 한 곳으로 모아둘 방법을.

“피해는 줄이는 편이 좋겠지. 너무 피해를 보면 우리도 곤란하니까.”

재중이 형도 내 의견에 동조했다.

그러고는 공중을 바라봤다.

“할 거라면 저것들까지 속여야지.”

여전히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촬영을 하는 유저들.

“보여줄 것을 다 보여주고 속이자는 거네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도 필요하면 이용해야지. 자자, 그럼 길마들 모이고. 한 번 제대로 함정을 파보자. 사장님은요 배신자들한테 연락해서 거점 내로 들어오라고 해주세요. 받아준다고.”

그리고 스칼렛과 이슬두잔을 불러서 서로 뭔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성벽을 방어하는 척하다가 신호하면… 성문… 단체로… 광역, 원거리 전부…….”

우린 일부러 보여준다.

적들이 안심하도록.

이 형도 참 대단한 것이 내가 낸 의견을 순식간에 필요한 살을 붙여서 작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해원이 보고 있을 방송까지 이용해서.

거기다 인원 배치며, 화력을 어떤 식으로 집중하고 배분해야 하는 것까지 한 번에 정리를 해버렸다.

그러다가 재중이 형이 잠시 이야기를 끊고 내게 다시 왔다.

약간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흐음, 생각보다 화력이 부족할지도 몰라.”

“그래요?”

“아마 중간에 한 번쯤은 돌파당할 거다. 저쪽의 수를 고려하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실제로 맞춰보니 좀 부족한 것 같았다.

이거 참.

숫자가 적은 게 발목을 잡는 건가?

“뭐, 무리하면 어떻게든 다 잡을 순 있겠지만.”

“그런가요.”

숫자가 부족하다라…….

그 말에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순간 머릿속으로 먼가가 스쳐 지나갔다.

이거면 가능하지 않을까?

“형, 이거 괜찮은지 한 번 들어봐요.”

그렇게 잠시 내 말을 듣던 재중이 형이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거면 됐다.”

그러고는 곧장 사장님에게로 달려갔다.

이걸로 급한 불은 해결인가.

그러고 얼마 뒤, 하늘에서 비공정 다수가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안개화를 해서 몰래 봤던 길드의 비공정들.

챠밍이 그걸 보고는 말했다.

“드디어 오네요.”

“그래, 표정 관리 잘하고.”

“으음?! 저 연기도 잘해요. 한번 볼래요?”

챠밍이 장난치듯 미소 짓자 나도 웃어 보였다.

“너보다는 얘가 걱정이지.”

이쁜소녀를 바라보자 표정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음! 아! 그러니까!”

아무래도 연기가 꽤 힘든 것 같은데?

그러자 나르샤 누나가 이쁜소녀를 잡고는 곧장 자신의 뒤로 숨겨 버렸다.

“이러면 되잖아.”

그 모습을 보고는 우리 둘 다 웃었다.

그 사이, ‘배신자’ 길드들이 차례대로 거점 내부로 내려섰다.

제일 앞에 선두로 걸어오는 사람은 눈이 선해 보이는 유저.

정말 외모로만 보면 옆집 친절한 형 같이 생겼는데?

얼핏 보기에는 그냥 속아 넘어가기에 딱 좋은 그런 첫 인상이었다.

그 남자와 사장님이 악수를 하면서 서로 인사를 나눴다.

“받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도 마침 동맹이 필요한 시점이라. 적의 적은 아군 아니겠습니까.”

“네, 해원만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안 풀리는군요. 우리를 완전히 자기 노예처럼 부려먹어서. 약속한 보상도 하나도 없고.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해원을 잡는데 저희도 한 팔 거들고 싶습니다.”

표정 연기 하나는 끝내주는군.

배신자 그룹에게 표정 관리를 하라고 한 사람인데 말야.

하지만 이미 내막을 다 알고 있는 내게는 그런 모습조차 다 연기로 보였다.

저 선해 보이는 표정으로 얼마나 뒤를 치고 다녔을까?

그러다 갑자기 눈빛이 변했다.

본론인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의 그런 표정.

미리 알고 살피니 확실히 다 보이네.

“그럼 저희는 어디를 맡으면 됩니까?”

사장님이 그 질문에 잠시 고민하는 척하더니 대답을 해주었다.

마치 엄청나게 고심한 것처럼.

사실 먼저 다 짜놓은 거지만.

“음, 오시면서 생각하셨겠지만 조직력의 문제로 성문 안쪽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쪽이 있어서요. 별동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쪽이 더 편하시지 않겠습니까?”

“성문 안쪽… 입니까?”

성문이라는 말에 눈가를 가늘게 떠는 모습.

저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런 표정인가?

표정 숨긴다고 애쓴다.

애써.

“그렇습니다. 성벽 위가 아니라서 당분간 공적을 쌓기는 좀 힘들겠지만 혹여나 성문이 돌파된다면 2선에서 저지를 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저희를 앞장세우실 줄 알았는데 의외입니다. 해원 같으면 우리를 먼저 방패로 써서 싸웠을 텐데요.”

저것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네.

“하하, 해원 같은 놈하고 우리는 다르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성문이 돌파되면 정말 위험하니까요.”

그렇게 사장님과 배신자 그룹의 리더가 서로 인사를 나누고는 서로의 위치로 이동하자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사장님도 연기 잘하시네요.”

“관록 아니겠냐. 길드장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니까.”

“우리도 준비하죠.”

“그래, 너도 잘하고.”

성문 안쪽으로 배신자 그룹을 싹 밀어놓고 모든 인원의 배치가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 해원의 연합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시작으로 수풀이나 산맥을 넘어 점점 많은 유저가 나타나 자리를 채웠다.

한참 전에 도착해서 기다리는 유저도 있고.

이제 겨우 들어서는 유저도 있고.

각개격파를 각오하고 서로 떨어져서 이동하다 보니 도착 시작이 전부 달랐다.

그렇게 하나둘 모이더니 어느새 성벽 근처로 수백에 달하는 유저가 몰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사장님이 일제히 사격 명령을 내렸다.

비공정을 떨어뜨리기 위한 성벽의 방어포도 전부 아래를 향해 내려놓았다.

이미 우리가 비공정을 대부분 다 터뜨려서 해원 쪽에서는 더 꺼내놓을 여력이 없을 테니.

궁수들은 일제히 활을 꺼내 들었고.

마법 계열도 마법을 차징하면서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해원 연합 유저들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보통 같으면 넓게 벌어진 성벽을 따라 병력을 배치해야 정상이었다.

그렇게 돌파하는 쪽이 공성에 조금이나마 유리하니까.

그런데 그런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말 한 치의 오차 없이 예상대로 움직이네요.”

“아아, 제대로 먹힌 모양이다.”

우리와 해원 연합의 싸움을 구경 온 수많은 유저의 채팅도 의아함으로 바뀌었다.

-어? 왜 저런 식으로 공성을 해?

-미친 거 아님? 약한 곳을 노려야지.

-워낙 숫자가 많아서 그냥 뚫으려는 건가?

-그것도 나쁘진 않은데 정석은 아니잖아.

-어차피 멀리서는 공격도 제대로 못 하지 않나? 저러면 수성 쪽이 몇 배는 좋지.

-거의 자살 행위 아님?

-능지…….

:

해원의 진형은 최악에 가까운 형태였다.

그러니 구경하던 유저들이 전부 의문을 표했고.

반대로 해원은 지금쯤 속으로 웃음을 참고 있지 않을까?

자신의 생각대로 첩자들을 잔뜩 집어 넣어놨으니.

거기다 사장님이 배신자들에게 아예 성문까지 맡겨 버렸다.

그 소식을 전해 들었을 해원이니 안 웃고는 못 배길 터.

이미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거점의 거대한 성문의 틈이 조금씩 벌어지더니 서서히 바깥을 향해 열리기 시작했다.

“어? 무슨 일이야?”

“성문이 왜 열려?!”

“대체 누구야?”

“빨리 닫아!”

성벽 위에서 아군들이 우왕좌왕하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생각보다 다들 연기 잘하잖아? 배우여 배우!”

재중이 형이 놀리듯 말하자 나도 피식 웃어버렸다.

그것과 정반대로 각 성벽을 맡고 있던 아군은 일제히 한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리 약속되어 있던 움직임이라 전혀 망설임이 없었고.

성문이 점점 열리자 해원 측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성문 열렸다! 다들 뛰어 들어가!”

“우와! 전진하라!”

“거점을 함락해!”

그러고는 개떼처럼 성문에 몰려와 꾸역꾸역 성문을 통과해 버렸다.

성문 안쪽에서는 배신자 그룹들이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런 그들을 맞이했다.

“반갑다! 이 새끼들!”

“크크크크, 너희 진짜로 열었잖아?!”

“온다고 고생했다! 이제 쓸어버리자!”

누가 봐도 한통속.

서로 주먹을 부딪치며 웃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싹 퍼져나갔다.

아마 지금쯤 영상을 보고는 다들 놀라고 있을 테지.

그렇게 수십, 수백의 해원 연합 유저가 일제히 거점 내로 들어왔다.

좁은 곳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들어와서 발조차 디디기 힘든 상황.

이제 시내로 뛰어들면 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런 반격이 없다.

심지어 성벽 위를 지키던 우리 편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고.

“뭐야?! 왜 아무도 없어?”

“왜 반격을 안 함?”

“이 새끼들 거점 포기한 거 아냐?”

“쫄았나 본데?”

“잘 됐네. 안 싸워도 되고. 또 죽나 했더만.”

“성문 열었더니 다 쫄아서 튀었잖아!”

아무런 반격이 없자 처음에는 잔뜩 긴장했던 유저들도 서서히 긴장을 늦추면서 주변을 향해 뛰어나갈 준비를 했다.

이미 수많은 유저가 따라 들어온 상태라 움직이지 않으면 자신들이 밟힐 지경이라.

그렇게 더 밀고 들어오다가 어느 순간 선두에 있던 유저들의 발걸음이 딱 멈췄다.

“왁! ……발!

“정지! 정지!”

“야! 새끼들아! 밀지 마!”

“악! 너희 뭐하는 거야?! 왜 갑자기? 어? 저건?!”

“젠장! 뒤로 튀어!”

아니나 다를까.

시가지로 들어서는 골목마다 뭔가가 잔뜩 세워져 있었다.

그것도 빽빽하게.

누구도 절대 지나갈 수 없도록.

“미친! 비공정을 이런 데다 세워놔!”

바로 비공정.

거대한 비공정으로 마치 성벽을 쌓듯 시가지를 전부 막아버렸다.

해원 쪽에서 뺏은 비공정을 포함해 가지고 있던 전부를.

거기다.

비공정의 함포가 일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정확하게는 성문을 지나 우르르 들어오고 있는 유저들을 향해.

수백에 달하는 함포가 한곳을 향해 집중되어 있었다.

그 비공정 중 가장 큰 베록 위에서 해원 연합 유저들을 노려보며 외쳤다.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모든 함포! 일제히 발사!”

너흰.

오늘 여기서.

아무도 못 살아나간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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