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화 이상한 도망자들 (1)
길드 혹은 연합을 배신하여 다른 세력에 합류하는 일은 드물긴 해도 종종 있는 일이었다.
로스 게시판의 지분을 일부 차지하는 일이기도 했고.
사장님의 말을 전달받자마자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평소라면 당황할 법도 했지만, 지금 상황은 전혀 달랐다.
손해 볼 수 없는 선택지가 눈앞에 놓여 있었으니까.
이것은 우리가 패를 주고 흔드는 게임.
받아줘도 좋고.
안 받아줘도 그렇게 나쁘지 않는 선택이 될 것이다.
옆에서 사장님과 영상을 지켜보던 막내별이 감탄했다.
“와, 태세전환이 엄청나네요? 연합에서 떨어져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정말 대단하다.”
막내별의 감탄에 그저 웃기만 했다.
상당수의 유저를 돌려보냈음에도 여전히 해원 연합의 숫자는 많았다.
잡고 있는 줄이 황금이라고 생각하는 저 많은 인원이 이곳에 도착하는 건 시간문제고.
늦든 빠르든 결국 한 번은 거점에서 부딪치게 되겠지.
그럼 해원 연합을 배신한 나와 우리 쪽에 붙으려는 유저들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반대로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해도 우리끼리 거점을 방벽 삼아 해원의 연합과 싸우는 방법도 있다.
이쪽도 딱히 나쁘진 않겠지만 싸우다 보면 우리 쪽도 생각 이상으로 피해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싸움을 이기려면 해원 연합을 배신한 사람들을 받는 것이 좋으려나?
확실히 나쁘진 않은데…….
왜 이렇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계속 들었다.
챠밍이 그런 나를 보고는 물었다.
“결정했어요?”
“으음, 잠시 고민 중이야. 양쪽 다 좋은 패라서.”
“하고 싶은 대로 해요.”
“……그런데 묘하게 이상하단 말이지.”
“네? 뭐가요?”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이렇게 빨리? 너무 이상하지 않아?”
내 물음에 옆에서 듣고 있던 막내별이 대답했다.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해원 연합을 무너뜨리는 데 도움을 줄 타이밍이 지금 밖에 없잖아요. 너무 늦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바로 연락했을 거예요.”
“물론, 그렇죠. 그런데 너무 타이밍이 좋아서 그래요. 딱 기다렸다는 듯 배신이라…….”
“뭔가 냄새가 난다는 건가요?”
막내별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확신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대답이었다.
챠밍도 내 표정을 보더니 역시 표정을 굳혔고.
“수를 썼을까요?”
“아직 모르겠어. 어쩌면 내가 너무 과민한 반응일 수도 있고.”
잠시의 침묵.
물론, 해원을 배신한 인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그냥 지나가는 해프닝 정도로 끝날 일이고.
어차피 거점에서 해원의 병력을 상대로 싸우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럼, 그냥 거절을…….”
챠밍이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뜩였다.
만약 이 찝찝한 기분이 옳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딱 한 가지만 확인할 수 있다면…….
꽤 재밌는 그림이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오빠, 또 이상한 거 생각하죠?”
“어, 어떻게 알았어?”
“눈빛에 다 보여요!”
“하하…….”
“말려도 할 거죠?”
“아, 이번엔 위험한 건 아니야. 걱정하지 마.”
“칫, 매번 그래 말하고 위험한 것만 하더라.”
끙.
“잠시 하나만 확인해 보면 돼. 일단 다 움직이자. 곧 뭔지 알 수 있을 거야.”
* * * * *
아퀼라스 주니어를 이동 시켜 해원 연합에서부터 좀 떨어진 지상에 착륙시킨 다음, 챠밍과 막내별은 올려보냈다.
“먼저 돌아가 있어.”
“정말… 무리하지 마요.”
“그래, 금방 끝내고 갈게.”
챠밍과 막내별이 아퀼라스 주니어에 올라타 하늘로 올라가자 곧장 심장을 교체했다.
미스트 윙의 심장으로.
【 안개화! 】
그리고 안개화를 사용해 몸을 흐릿하게 만들고는 그간 사용하지 않고 넣어만 두었던 미스트 윙도 꺼내 들어 역시 안개화를 시전했다.
그렇게 미스트 윙과 함께 전부 흐릿한 형상으로 변해 주변과 동화가 되어갔다.
물론,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서 잘못했다가는 들킬 염려는 있지만.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으니까.
원하는 것을 확인하려면 조금은 무리를 해야겠지.
그대로 날아올라 해원 연합을 배신하고 도망간 비공정들을 쫓기 시작했다.
<주호> 사장님, 그 끼워달라던 길드들 어디쯤 있는지 확인 가능해요? 이왕이면 좌표로 부탁드려요!
<카이저> 아마 아까 전투 지역에서 동쪽으로 빠져 있을 텐데.
<불멸> 너 무슨 생각이야? 찾아가려고?
<주호> 아, 형. 지금 확인할 게 하나 있어서요.
<불멸> 흐음, 그래? 좌표 알아내서 보내줄게. 이쪽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하면 좌표를 불러줄 거다.
얼마 뒤, 재중이 형에게서 좌표가 날아오자 그대로 따라갔더니 전에 도망을 갔던 비공정이 착륙해서 한 곳에 모여 있었다.
다 있는 것은 아닌가?
아까 빠져나간 비공정 중에 절반 정도는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착륙해 미스트 윙을 집어넣고 살펴보니 대부분의 유저가 편안하게 퍼져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흐음.
역시 뭔가 수상해.
배신을 하고 나온 마당에 저렇게 편안하다고?
마치 해원 연합에서 보복이 절대 오지 않을 것처럼 정말 편안한 포즈로 누워있는 녀석들도 보였다.
<주호> 사장님. 배신자 그룹에 지금 연락 한 번 해보세요. 반응을 봐야겠어요.
<카이저> 반응 말이냐? 뭔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알았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녀석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안개화가 들키지 않을 정도로.
이것도 은폐에 완벽한 스킬은 아니니까.
혹여나 일렁이는 것을 눈치 채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싸워야…….
그때 사장님에게서 연락이 제대로 갔는지 녀석들에게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연락 왔네?”
“크크크, 아, 해원이 말한 그대로잖아?!”
“아놔, 이걸 문다고?”
“해원, 이 새끼도 알고 보면 진짜 똑똑해. 질 수 밖에 없는 쟁을 이런 식으로 설계하고”
“거기다 돈도 많고?”
“그게 핵심이지. 돈 안 주면 이 일을 왜 하냐?”
“킬킬, 오늘 신화 연합 애들ㅋㅋㅋ”
“이거 잘 되면 알지? 그러니까 다들 표정 관리 잘하라고! 절대 티 내지 말고.”
“아이고, 압니다! 알아요! 거점 안에 들어가서 성문만 열면 되는 거 아님까! 그 정도야 가뿐하죠.”
“그런데 따로 도망간 애들은 어쩝니까? 걔들은 진짜 빠진 것 같은데? 한둘도 아니고 듣기로 길드 열 개가 넘게 빠졌다고 합니다.”
“냅둬. 해원이 나중에 알아서 하겠지. 어차피 이기고 나면 걔들은 다 죽었어. 해원 그 새끼 완전 치졸하잖아. 절대 안 잊어먹는다니까.”
안개화를 눈치채지 못해 누가 옆에서 듣고 있다고는 생각도 못 한 채 자기들끼리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누군가 이야기를 엿듣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한 채.
이것들 봐라?
그렇단 말이지.
좀 전의 전투에서는 아주 처음부터 작정하고 도망간 것이다.
그리고 해원 연합과 떨어지자 사장님에게 바로 합류하고 싶다고 뻥카를 날렸고.
겉으로 보기에는 명분은 충분했다.
그동안 해원 밑에서 보상을 못 받고 굴렀다든지와 같은.
배신할 이유는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거기다 우리 쪽에 붙으면 제국과 더 이상 안 싸워도 된다는 이점까지 있어 숙이고 들어오는 것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정말 여차하면 속았겠어.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이 녀석들의 계획대로 흘러갔을 것이다.
조금 더 지켜보는데 더 이상의 중요한 내용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뭐, 일단 이 녀석들이 계략을 꾸미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졌으니.
더 이상 들을 필요는 없어 보이고.
대략 살펴본 바로 길드 다섯 개 분량의 인원이 모여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빼돌린 유저가 많은 것 같은데.
이 녀석들을 여기서 다 죽여 버리면…….
순간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에 손이 갔다.
죽이려고 하면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시간의 문제인가?
몇백의 유저를 혼자 상대하고 있다가는 제때 맞춰서 돌아가지 못할 수 있고.
적당히 죽이고 갈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그 생각과 함께 발을 빼내 다시 녀석들과 멀어졌다.
이 녀석들을 써먹을 곳은 따로 있지.
조금만 기다려라.
곧 그 웃음을 싹 없애 줄 테니.
충분히 떨어진 뒤 녀석들이 보이지 않자 재중이 형에게 다시 연락을 넣었다.
<주호> 형, 지금 제가 보내준 영상 한 번 보세요.
그리고 방금 촬영한 영상을 보내주었다.
영상을 확인한 재중이 형이 어이가 없는지 웃어버렸다.
<불멸> 하, 이 새끼들 봐라? 재미난 짓을 하네?
<주호> 정확히는 거점을 박살 낼 작전이죠.
<불멸> 아군인 척 합류한 뒤 거점 안으로 들어와서 깽판?
<주호> 네, 아마 몰랐으면 크게 당했을 거예요.
한창 싸우고 있는데 내부에서 저 녀석들이 배신을 하면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어느새 도착해 있던 막내별이 깜짝 놀라 외쳤다.
챠밍도 마찬가지.
<막내별> 세상에…! 쟤들도 머리를 쓰잖아?!
<챠밍> 오빠 아니었으면 완전히 속을 뻔했어요.
<주호> 잘 도착했네.
<챠밍> 네, 오빠도 얼른 와요.
<주호> 금방 갈게. 형, 녀석들 진격하려면 얼마나 남았죠?
<불멸> 이제 곧. 두 시간도 채 안 될 거야. 녀석들 진격 속도를 올리고 있어.
<주호> 그럼 한 번 더 찢어놓을까요?
<불멸> 그건 어렵다.
<주호> 네? 그게 무슨?
<불멸> 너 없는 사이에 이 새끼들 작게 쪼개져서 따로 움직이는 중이다.
<주호> 각개격파 당할 위험이…….
뭉쳐 있어도 당할 판에 전부 다 갈라져?
해원 이 녀석 무슨 생각…….
그때 머릿속에 바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
그렇게 나온다는 거지?
<주호> 어차피 정면 힘 싸움으로는 안 되니까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건가요?
<불멸> 아마도. 뭉쳐 있으면 메테오에 몰살이니까. 이미 몇 번 당하기도 했고. 해원 이놈 아주 멍청이는 아닌 모양이야. 그러니까 승산도 없는…….
연합 유저가 아무리 많아도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한 번 떨어지면 그 자리는 그대로 녹아버렸다.
범위 안에 있는 유저들과 함께.
그래서 해원이 정반대의 발상을 한 것 같았고.
거기다.
<주호> 몇몇은 미끼인가요?
<불멸> 아아, 네가 전부를 쫓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죽을 놈들은 죽고 나머지는 다 살려서 거점까지 간다는 작전이겠지. 해원 이놈도 보통은 아니야. 속전속결로 승부를 내려고 진격 속도까지 올렸어.
<주호> 재밌네요.
그래.
너무 맞기만 하면 재미없겠지.
샌드백도 좀 움직여줘야 때리는 맛이 있다.
그리고 이쪽에서도 준비가 좀 할 필요가 있었다.
가만히 당해줄 순 없으니까.
옆에서 같이 듣고 있었는지 스칼렛과 이슬두잔도 참여했다.
<스칼렛> 알아낸다고 고생하셨어요. 하마터면 정말 눈 뜨고 코 베일 뻔 했네요. 어차피 우리끼리 싸울 생각이었으니까 그냥 처음부터 없었다고 생각하면 되겠죠.
<이슬두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덕분에 큰 위기를 넘겼어요.
스칼렛과 이슬두잔은 미리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입장이었다.
<주호> 사장님, 듣고 있어요?
<카이저> 그래, 옆에 있다. 배신한척 도망간 녀석들은 의도를 아는 이상 받을 이유가 없지. 그쪽은 잊어버리고…….
<주호> 그 배신한 녀석들. 받아주세요.
내 뜻밖의 말에 다들 화들짝 놀라서 외쳤다.
<카이저> 뭐?
<스칼렛> 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이슬두잔> 방금 제대로 들은 것 맞아요?
<주호> 네, 제대로 들으신 것 맞습니다. 저 녀석들 소망대로 성문. 열어주죠. 아주 개떼처럼 들어올 수 있도록.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