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9화 드래곤의 유물 (2)
동시다발적인 공격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일은 랜덤으로 움직이는 유저들의 모든 동선과 속도를 빠짐없이 한꺼번에 파악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한 작업을 하자 순간 머리가 삐-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이런 방법은 쉽지 않네.
난이도로 치면 어둠 지역 속에서 싸우는 것보다 좋겠지만 이쪽도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물론, 이걸로 끝이 아니다.
단순히 브랜디슈 블레이드로 적을 맞추기만 하는 거라면 어느 정도 흉내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진 못하지.
무엇보다 정확한 급소를 맞추는 일이 중요했다.
목과 머리를 포함한 무릎 뒤편의 관절 같은 부위를 맞춰야 달려나가던 유저들을 경직시킬 수 있으니까.
관통이 있기에 다른 부위를 맞추더라도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이건 빗나갔을 때 요행을 바라야 하는 일이고.
다행히 모든 브랜디슈 블레이드가 달려나간 적들의 급소를 파고들며 단체로 바닥에 뒹굴게 만들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내자 주변에선 경악하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일단은 관심에서 끊어냈다.
지금은 쓰러진 유저들을 완벽하게 끝내야 했다.
곧장 가장 가까운 유저에게 달려나가 등과 목에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박아 넣었다.
“커억!”
“좀 빌린다.”
이번에도 크리티컬이 터지면서 쓰러졌던 유저가 바로 죽음의 빛으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르아 카르테가 바로 체력과 마력을 빨아들여 내게 넘겨주었다.
마력이 차는 순간 지체하지 않고 적에게 박혀 있던 브랜디슈 블레이드를 허공으로 띄웠다.
【 비검! 】
그렇게 계속 달려나가며 쓰러져 있던 적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 번 내려찍을 때마다 한 명씩 죽음의 빛으로 사라지는 것은 그 자체로 적들에게는 공포가 아닐까.
달려나갔던 유저들이 전부 쓰러져 아무런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하나둘 죽어가자 쓰러져 있던 유저들이 입으로만 공허하게 외쳐댔다.
“오지 마!”
“대체 뭐야 이게!”
“안 돼!”
“무슨 저런 괴물이 다 있어!”
고였다, 말할 수 있는 유저들조차 상상할 수 없는 스펙과 그 스펙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는 컨트롤.
이 두 가지가 만나자 로스트 스카이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대학살이 일어났다.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정도 수준의 유저들은 손쉽게 잡을 자신은 있었다.
마치 폭풍이 몰아친 듯 필드에 쓰러져 있던 유저들을 정리하고 나자 내 머리 위로 브랜디슈 블레이드들이 잔뜩 떠다녔다.
마력은 유저들을 잡으면서 이미 충분한 상태였고.
그리고 죽은 유저들이 떨어뜨린 아이템까지.
아이템을 먹고 튀려다가 오히려 아이템을 뱉고 가는 기묘한 상황.
이 이상하고도 말이 안 되는 그림에 적이고 구경하던 길드 사람들이고 할 것 없이 모두 굳어버렸다.
너무 어이가 없으면 할 말을 잃어버린다고 지금이 딱 그런 모습.
두 손에는 유저들을 한 번에 눌러버릴 수 있는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
그리고 머리 위에는 빼곡하게 날아다니는 브랜디슈 블레이드까지.
상대는 나 혼자였지만 적들을 기겁하게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 베스트겠지만…….
브랜디슈 블레이드는 띄우는 것만으로 마력을 소비하니까.
이걸 유지하려면 남은 적들에게 마력을 죄다 끌어들여야 한다.
확실하게 여기서 끝을 봐야 하려나?
얼핏 둘러보니 방금 쓰러뜨린 유저들의 네 배 정도 되는 유저들이 남아 있었다.
멀리서 구경하고 있는 유저들은 제외하고.
드래곤과 싸웠던 이곳 산맥으로 넘어오는 큰길은 총 세 곳.
그중 다른 두 곳은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와야 하니까 유저들이 올 리가 없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한 장소만 완전히 커버하면 된다.
여기서 시간을 끌어?
아니면 그냥 다 쓸어버릴까?
얼핏 화룡화의 남은 시간을 보자 거의 시간이 다 되었다.
지금 같은 묘기를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 말이고.
확인해 보니 용격을 포함한 큰 스킬들은 아직 쿨이 돌고 있었다.
결국, 대인전으로 잡아야 한다는 말인데…….
물약은 드래곤과 싸우고 난 뒤라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화룡화가 풀리면 이쪽도 곤란한 정도.
정말 자기들끼리 죽을 각오를 하고 광역 마법을 쏴대면 피해를 입긴 할 것이다.
마법사 먼저 쓸어버렸어야 했나.
아니, 그러기엔 중간에 다른 유저가 너무 많았다.
다행히 궁수나 발이 빠른 유저들 중심으로 대부분 쓸어버렸기에 그나마 상황이 나쁘진 않다.
이곳을 사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어깨를 강하게 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여차하면 혼자 몸을 빼는 게 좋은데…….
할 수 있는 상황까지 해보고 정 안 되면 그때 결정을 하는 편이 좋겠지.
아직은 버틸 여력이 있다.
그렇다면 일단 여기서는 강하게 가볼까.
“계속해야지?”
그러면서 앞으로 발을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러자 백 단위가 넘어가는 적들이 무의식적으로 전부 한발씩 뒷걸음질 쳤다.
단 한 명에게 밀려서 저러는 모습들이 조금 우습기도 하고.
기고만장했던 표정은 지금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리고 제일 앞에 있던 탱커 한 명이 잔뜩 긴장한 채 외쳤다.
“오, 오지 마!”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지들이 먼저 올 때는 언제고 지금은 오지 말라고 하다니.
“난 혼자인데? 정말 안 와?”
드래곤 슬레이어와 르아 카르테를 바닥으로 내린 채, 앞으로 걸어가자 내가 걸어간 만큼 적들이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구경하던 몇몇 길드 사람이 감탄의 말을 쏟아냈다.
“포스 쩌, 쩐다!”
“쟤들 뒷걸음치는 거 봐!”
“와, 혼자서 저 많은 유저들을.”
“뛰어들었으면 우리도 저 꼴 났을걸?”
“이거 올리면 바로 화제의 게시물 되겠는데?”
“주호 레벨 우리하고 비슷하지 않나? 대체 어떻게 이 정도로 차이가 나냐.”
“저 무기들 덕분이겠지. 둘 다 유일템 아님?”
“아서라, 넌 무기 좋다고 브랜디슈 블레이드를 그렇게 컨트롤 할 수 있냐?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수십 개를?”
“솔직히… 그건 에바지.”
이제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갔나?
하지만 포기가 쉽지 않은지 적 유저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이거 시간이 끌리면 곤란한데…….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녀석들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때 녀석들의 뒤쪽에서부터 알 수 없는 폭발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연속으로.
뭐지?
저 상황은?
나와 어쩔 수 없는 대치 상태에 있던 적들도 갑작스럽게 울리는 폭발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
“대체 무슨 일이야?”
“뭐야 지금?”
“누가 좀 알아봐!”
웅성웅성.
가뜩이나 상황이 안 좋은데 의문의 폭발까지 계속 일어나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중간에 껴서 혼란이 왔다.
그리고 그 상황은 의외로 내가 더 빨리 알게 되었다.
<불멸> 우리 왔다.
<챠밍> 오빠, 괜찮아요?!
<이쁜소녀> 저희 지금 왔어요!
그 귓속말에 속으로 안도의 숨을 쉬었다.
몸을 누르던 긴장감과 부담감이 한 번에 내려가는 느낌.
<주호> 딱 좋을 때 오셨네요.
뒤쪽에서부터 우리 팀과 최강 길드와 달 길드, 치맥 길드가 밀고 들어오자 순식간에 적들의 상황이 나빠졌다.
우왕좌왕하더니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 한눈에 보였고.
애초에 머리라고 할 만한 컨트롤 타워가 없으니까 이런 돌발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오더를 내리지도 못 했다.
“우린 망했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싸웠어야 했는데!”
“덤벼서 이 꼴이잖아!”
“주호 저게 저렇게 강할 줄 누가 알았냐!”
“이익! 죽더라도 뭐라도 먹고 죽어야겠어!”
“그냥 달려들어!”
“비공정만 어떻게!”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
내가 지키고 있는 관문을 통과하려고 적이 전부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런.
내가 보유한 브랜디슈 숫자보다 많은 적이 달려들면 이쪽도 곤란한데.
그런데 그때.
<챠밍> 오빠! 뒤로 뛰어요!!
챠밍에게 귓속말이 오자마자 대답할 틈도 없이 바로 뒤로 돌아 뛰었다.
급하게 연락이 와서 뛰라고 하면 다 이유가 있어서 뛰라는 거니까.
그러자 하늘에서 구름이 갈리면서 거대한 운석 두 방이 동시에 떨어져 내렸다.
정확히 내가 서 있었던 딱 그 장소로.
그리고 지금은 내게 달려들던 적 유저가 가득한 장소이기도 했고.
“우왁! 저게 대체 뭐야!”
“어어어?!”
“운석이다!!”
“미친, 무슨 운석이 떨어져!”
“더 뛰어!”
“앞에 빨리 뛰란 말이야!”
“흩어져!”
혼비백산.
거기다 적 유저들이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보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더블 메테오 스트라이크.
챠밍의 주력 스킬.
드래곤도 다운시킬 수 있는 최강의 기술인데 유저들이 맞으면?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콰강!
콰콰쾅!
몰려 있던 것 때문에 운석 두 방을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사방으로 불길이 끓어오르고 대지가 불타올랐으며 폭발한 바위들이 비산하는 가운데 그 중심에 있던 이들이 찍소리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죄다 증발해 버렸다.
범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던 유저들도 폭발의 충격에 전부 경직되어 그 자리에서 튕겨 나갔고.
역시!
완벽한 타이밍에 완벽한 장소로 떨어진 메테오는 최강이었다.
“오빠! 괜찮아요?!”
어느새 전사 형의 호위를 받으면서 챠밍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 나이스 타이밍! 마침 화룡화가 풀릴 시간이었거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화룡화가 풀리면서 원래의 신체로 되돌아갔다.
만약, 우리 쪽 연합 사람들과 챠밍이 제때 오지 않았으면 꽤 곤란했을지도.
“정말 다행이다!”
전사 형이 그런 챠밍과 나를 보고는 놀리듯이 말했다.
“어휴, 얘가 얼마나 빨리 가자고 닦달하는데…….”
“하하. 고마워요. 덕분에 쉽게 끝났어요.”
“그래, 오면서 영상 봤는데 혼자 잘 버티더라? 다들 깜짝 놀랐어. 솔직히 연합 사람들 모두가 털렸다고 생각했거든.”
“뭐, 요행이죠. 다시 하라면 못 할 지도 몰라요.”
“흐흐, 그게 요행이냐… 아무튼 연합 길마들이 다 고마워하더라.”
전사 형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막말로 발 달린 재산을 지켜준 셈이라.
고개를 돌려 상황을 보니 재중이 형을 비롯해 연합 사람들은 이미 잔당들을 처리하고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더블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대부분의 적들을 쓸어버려서 더 수월하게 처리를 했고.
“뒤처리는 사장님께 맡길게요.”
“말해놓을게, 그리고 길마들이 따로 보상도 해줄 거다.”
이쪽은 알아서 해줄 것 같고.
드래곤만 잡으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방해로 굉장히 피곤함이 느껴졌다.
“정말 고생했다.”
“다들 고생했죠. 이거 받으시죠.”
연합 사람들의 아이템들을 전사 형에게 넘겨주었다.
우리 팀이 흘렸던 아이템들도 포함해서.
이제 원위치인가.
지금의 이 전투는 주변에 지켜보고 있는 많은 길드 사람들의 영상을 통해 사방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이미 숨기기에는 너무 늦었고.
“괜찮겠죠?”
내 말뜻을 아는지 전사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히 문제는 되지 않을 거야. 조금 귀찮아지긴 하겠다만.”
“뭐 그 정도라면.”
그렇게 인벤을 보는데 토글했던 드래곤 템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제일 먼저 이걸 확인했어야 하는데 상황이 복잡해서 이제야 하네.
대부분의 아이템은 이전에 나왔던 템들과 동일하기에 빠르게 넘기다가 두 개의 아이템에서 손이 멈추었다.
『 드래곤 하트 』
『 ?? 』
뭐지?
드래곤 하트까지는 비슷한 것을 많이 봐서 유추를 하겠는데 이건 처음 보는 상자였다.
물음표만 있는 붉은색 크리스탈이라니…….
그것도 크기가 꽤 컸다.
팔 하나 정도는 들어갈 정도로.
“흐음, 이건 대체.”
물음표로 되어 있는 붉은색 크리스탈에 손을 가져다 대자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봉인된 크리스탈을 열기 위해서는 특수한 재료가 필요합니다. 》
특수한 재료?
재료.
재료라…….
순간 옆에 있는 드래곤 하트에 눈이 돌아갔다.
서, 설마 이건 아니겠지?
그런 마음과 달리 드래곤 하트를 들어서 봉인된 크리스탈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자 환한 붉은 빛과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다시 울려 퍼졌다.
《 봉인된 크리스탈이 드래곤 하트를 흡수합니다! 》
뭐?
안 돼.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