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497화 (490/1,404)

#497화 승자의 전리품 (4)

고를 수 있는 영지가 많아졌다는 것.

의도한 결과와는 좀 다르기는 했지만.

마리아 가르시아에게 반하는 몇몇 귀족을 숙청했을 뿐인데, 부가적으로 선택의 폭이 확 넓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되면 원래 받기로 했던 영지 목록에 몇 개의 영지가 추가되지 않았을까?

나를 포함한 우리 팀 입장에선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기도 하고.

마리아 가르시아가 내게 한 손을 뻗자 곧 내 눈앞에 몇 개의 영지 위치가 시스템으로 떠올랐다.

이런 것은 자동으로 되는 모양이군.

그리고 시스템 메시지가 동시에 흘러나왔고.

《 황제 마리아 가르시아가 제안하는 영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

《 선택된 영지는 추후 변경할 수 없습니다. 》

《 해당 영지를 포기하거나 새 영지를 습득 시에 영지 변경이 가능합니다. 》

총 열 한 개의 영지 목록.

마리아 가르시아가 보상으로 준비했던 영지.

그리고 목이 날아간 하만 후작의 영지와 뒤늦게 끌려나간 귀족들의 영지까지 해서 선택할 수 있는 영지의 폭이 대폭 늘어난 것 같았다.

원래라면 마리아 가르시아가 주려던 영지가 몇 개 없었을 텐데…….

일단, 여기서 하나밖에 고를 수 없다는 건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영지 목록이 나왔기에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영지 목록 보여요?”

옆에 있던 재중이 형에게 물었더니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네.”

“휴, 다행이네요. 이런 건 선택하기 힘들어서.”

아마 파티로 되어 있거나 퀘스트를 같이 수행 중이라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혼자 고민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은 넘길 수 있었다.

“영지라…….”

재중이 형이 살펴보는 사이 전사 형을 비롯한 모두가 영지 목록에 시선이 쏠렸다.

그러는 사이 마리아 가르시아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혹시 당장 결정해야 합니까?”

내 물음에 마리아 가르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 시간을 주겠노라.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그대를 위한 영지이니. 』

우리 팀도 영지를 두고 고민을 하는 모양새라 물어봤더니 다행히 대답이 좋았다.

일단 시간은 벌었네.

영지라는 개념 자체가 기존에 봤던 유적지나 거점과는 많이 달랐다.

유적지는 일정 장소에 존재하는 옛 유물 도시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유적지를 지키고 있는 네임드가 존재하는 편이었고.

유적지의 근처엔 사냥터가 존재할 확률이 아주 높았다.

지금까지 쭉 그래왔으니.

이와 달리 거점은 귀족 작위를 가진 유저가 임의로 필드에 설치를 해서 점거하는 방법이었다.

위치 선정에 대해서는 이쪽이 훨씬 자유로웠다.

대신 거점을 지켜낼 수 있는 전력이 되어야겠지만.

수시로 철거했다가 다시 만들 수 있다는 점도 괜찮았고.

반면.

영지는 지금까지 봐왔던 두 가지 형식과는 완전 달랐다.

옛 유물 도시가 아니라 현재의 도시였다.

마치, 이전의 왕성과 현재의 제국 수도 같은 개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또 있었다.

“세금을 거둬들이네요?”

“어! 이건 미치도록 좋은 조건인데?”

로스트 스카이에선 절대 피해갈 수 없는 몇 가지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세금.

유적지, 그리고 거점은 세금을 왕가나 황가에 상당 부분 바쳐야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시스템에서 쓸어갔다.

하지만 영지는 달랐다.

오히려 세금을 거둬들이는 시스템.

만약, 영지 내 누군가가 거점이라도 설치하거나 유적지라도 활성화한다면 오히려 영지의 주인에게 세금을 가져다 바치는 형식이었다.

이른바 땅 주인.

이래서 영지를 준다고 하니까 귀족들이 그 난리를 친 건가?

모험가의 세력이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실 영지는 거점 하나 내주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물론, 황가에 어느 정도 세금을 바치긴 하지만 이전과 달리 이쪽도 거둬들이는 시스템이라…….

제대로 된 사냥터에 거점과 유적지가 몇 개만 존재하면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닭이나 마찬가지였다.

전사 형이 그걸 보고는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일단 무조건 넓어야겠습니다.”

“아아, 그렇지. 그래야 범위에 들어갈 거점이 많아지지. 유적지도 하나 끼고 있으면 대박이고.”

핵심은 무조건 넓어야 한다.

영지가 넓으면 넓을수록 거둬들이는 세금이 늘어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방금 처리한 후작의 영지는 넓이가 상당했다.

심지어 영지 정보로 본 후작의 영지는 발전까지 잘 된 상태.

거둬들이는 세금이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마찬가지로 마리아 가르시아가 준비한 영지 역시 꽤 넓은 편에 속했고.

단순히 넓이만 보면 이쪽이 훨씬 넓은 편이었다.

다만, 후작의 영지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었고.

돈에 눈이 돌아간 하만 후작이 정성 들여 꾸민 영지와 그간 주인이 없던 영지와의 차이는 확실히 존재했다.

전사 형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아, 하나밖에 못 고른다는 거냐?”

발전 가능성이 있는 영지와 당장 괜찮은 영지.

어찌 됐든 둘 다 상급이라고 할 만큼 조건이 좋았다.

다른 영지들에 비해서는.

주변 몬스터들의 레벨 대가 굉장히 높거나 외지거나 사냥터가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 곳도 존재했고.

조건만 따지면 쓸 수 없는 영지가 너무 많았다.

그러다 영지를 살펴보던 챠밍이 한 영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나를 빤히 바라봤다.

“응? 그건 왜?”

“이 영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요?”

그리고 챠밍이 인벤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챠밍이 꺼내 든 것과 영지를 번갈아 보던 이쁜소녀가 어느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딱 한 마디로 외쳤다.

“언니, 완전 대박!”

* * * * *

『 그럼 여기서 포상을 끝내겠다. 모두 돌아가도록. 』

마리아 가르시아의 명이 떨어지자 살얼음 같던 대전에서 귀족들이 우르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생각 외로 괜찮은 반응.

일단, 마리아 가르시아를 제외해도 제국 내 몇몇 NPC는 꽤 자율적인 행동이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제국 내 일반 NPC는 제대로 된 대화조차 힘든데…….

몇 가지 선택밖에 할 수 없던 기존 NPC보다 훨씬 지능이 높아 보였다.

특이한 개체에 한해서는 뭔가의 롤이 해제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이 정도의 시스템을 몇몇 NPC에게만 집중해놓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가짜 황제 역시 비슷했지.

이제부터 상대하는 NPC들은 대하는 태도를 좀 바꿀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꽤 재밌는 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얼마 뒤, 테인 공작과 루젠 공작까지 대전을 비우고 나자 마리아 가르시아가 나를 흘깃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뭔가 할 말이 있는 건가?

그렇게 계속 머뭇거리던 마리아 가르시아가 내게 말을 꺼냈다.

『 주호 공작… 따라오세요. 』

나?

고개를 돌려 우리 팀과 마리아 가르시아를 번갈아 바라봤는데 다른 사람은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재중이 형이 그런 내 어깨를 툭 쳤다.

“아무래도 공작하고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모양인데?”

“그런가요?”

굳이 따로 해야 할 이유가 있나 싶기도 하고.

어차피 공적을 세운 것은 다 같은데.

공작이라는 작위를 달아서 독대해야 하는 상황이면 뭐 그것도 괜찮고.

황제와 친해져서 나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마 일반 유저들은 황제와 대화조차 힘들겠지.

“그럼 가시죠.”

그렇게 마리아 가르시아를 따라 황제의 집무실에 들어갔다.

전대 황제의 취향으로 잔뜩 꾸민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집무실의 모습.

뭐, 황제니까 이 정도면 괜찮은 거겠지.

그리고 내가 들어온 것을 확인한 마리아 가르시아가 깊게 심호흡을 해보였다.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 공작이 보기엔 어땠나요? 괜찮았나요? 』

귀족들이 있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온도 차.

일부러 황제의 위엄을 보이려고 무게를 잡고 있다가 지금은 진이 빠진 것 같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잘하셨습니다.”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단 말이야.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것 같던 마리아 가르시아가 다시 말을 꺼냈다.

『 하만 후작은 언니가 황제가 되길 원했을 거예요. 』

이건 집사를 통해 이전부터 알던 사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한 점도 있었다.

굉장히 모순되어 있는 내용들이기도 하고.

“왜 하만 후작이 황제의 의견에 반대를 했죠?”

일단은 유일한 황제다.

다른 경쟁자가 모두 죽어버린 이상 하만 후작은 좋든 싫든 충성을 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반역을 꿈꾸고 있지 않다면 말이지.

그런 극단적인 선택지가 없다면 하만 후작의 행동은 꽤 모순되어 있었다.

아니면…….

마리아 가르시아가 아직 황위에 미숙하다는 점을 들어서 권력을 잡으려고 했을 수도 있고.

역시 이쪽이 타당하려나?

『 하만 후작은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1황자나 3황자를 도울 수 있음에도 보다 움직이기 쉬운 언니를 택한 것을 보면. 』

저 말로 확실해졌다.

아마 그대로 시스템이 흘러갔다면…….

2황녀가 황제가 되는 시나리오도 극히 희박한 확률인데 거기에 하만 후작이 반역을 일으키는 시나리오까지 언제가 됐든 일어났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말이지.

공작의 힘을 갖고 있다지만, 대놓고 후작을 죽이는 일은 쉽게 용납이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후작의 목을 날려 버린 일은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 그리고 제가 하만 후작을 꽤 싫어했어요. 여러 가지 이유로……. 』

무슨 말이지?

하만 후작과의 어떤 연관성이 있었나?

잠시 머뭇거리던 마리아 가르시아가 한숨을 쉬면서 말을 했다.

『 사실 하만 후작과 연을 맺어야 했거든요. 』

마리아 가르시아의 그 말에는 놀라움을 감추기 힘들었다.

정말 그 후작한테?

일단 안 어울리는 것은 둘째 치고…….

아니, 그냥 정말 안 어울린다.

제국의 미녀를 하만 후작하고?

이건 꽤 충격적인 일인데?

『 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거든요. 』

아마도 질투인가?

1황녀도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2황녀인 마리아 가르시아가 월등히 더 좋다.

“그래서 하만 후작에게 시집을 보내겠다고 한 겁니까?”

이건 아무리 봐도 1황녀가 마리아 가르시아를 자신의 황위를 위해 당시 아무 힘도 없던 2황녀를 이용한 것이었다.

팔아넘기다시피 해서.

내 말에 마리아 가르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 하만 후작은 자신의 가문에 황실의 피를 원했거든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거죠. 언니는 자금과 황위를. 하만 후작은 황실과의 혈연과 권력을. 』

시나리오 참 걸작이네.

내가 있는 한 일어나지 않았을 시나리오이기는 한데…….

그래도 화가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그리고 아마 큰 오빠나 셋째 오빠가 황위를 잡았어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힘없는 황녀의 마지막은……. 』

그 말에는 내가 한숨을 쉬었다.

정상적인 시나리오였다면 어떻게든 그렇게 되는 운명이라 이건가?

지금은 황제가 되어 있지만 이걸 제외한 모든 시나리오에서 팔려가는 이야기가 된다니.

대체 누가 이따위로…….

내가 화가 나는 듯하자 마리아 가르시아가 조금은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숙연해진 그 모습에 어떻게 반응할 수가 없었고.

그런 마리아 가르시아가 잠시 후 고개를 들더니 다시 보기 힘들 밝은 미소를 내게 보여주었다.

『 그래서 더 고마워요. 제가 짊어졌던 절망에서 해방시켜 주셔서. 』

뭐라고 해야 하나?

순간 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른 서버에서는 앞으로도 없을 유일한 시나리오.

그리고 유일한 웃음인 건가?

비록 내 목적을 위해 마리아 가르시아를 황제로 올린 것이지만, 지금만큼 목적을 떠나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게 마리아 가르시아가 뭔가를 말하려다 계속 머뭇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다 결국 결심했는지 길게 숨을 들이신 다음, 마리아 가르시아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마리아 가르시아의 말을 듣고 난 뒤 순간 머리가 멍하게 변했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