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6화 승자의 전리품 (4)
‘새 영지’라는 말에 테인 공작과 루젠 공작을 제외한 몇몇 귀족 NPC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영지’를 보상으로 받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지금 나올 수 없는 보상을 마리아 가르시아가 황제, 라는 힘으로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일단, 황제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절대 허언은 아닐 터.
가르시아 제국 수도인 이곳 같은 개념인가?
아니면 유적지?
혹은 거점?
아직 ‘영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 보니 약간의 혼란스러움이 생겼다.
슬쩍 재중이 형을 바라보니 형 역시 잘 모른다는 듯 그저 어깨만 으쓱거렸다.
그러고는 귓속말로 답변을 주었다.
<불멸> 일단 받아.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지.
<주호> 너무 큰 보상 아닌가요? 귀족들 분위기가 장난이 아닌데…….
<불멸> 우리가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어?
<주호> 뭐, 그렇죠. 그럼 일단 받을까요?
<불멸> 그래, 안 받으면 우리 마리아가 슬퍼할 거라고.
우리 마리아?
재중이 형의 어이없는 멘트에 헛웃음이 나왔다.
<주호> 황제 앞에서 그 말 했다가는 바로 목이 날아갈 겁니다.
<불멸> 크큭, 그래서 귓말로 하잖아. 나도 내 목은 소중하다고.
<주호> 어휴, 아무튼 영지를 거절했을 경우는요? 그에 상응하는 다른 뭔가를 줄까요?
<불멸> 글쎄, 내가 보기엔 저것도 무리해서 주는 것 같아 보이는데? 이제 갓 황제를 단 여황제가 자기 마음대로 영지를 막 주면 귀족들이 좋아하진 않겠지.
아무래도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결국, 결정해야 한다는 거군.
영지를 받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는 순간.
NPC 중 배가 산더미처럼 불룩한 이가 앞으로 나섰다.
하만 후작?
계급 표시에 대한 사항은 이미 알고 있기에 지금 나온 NPC가 후작이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예전에 테인 공작, 루젠 공작에 이은 세 번째로 가신에 들어온 NPC이기도 하고.
영향력이나 세력에 있어서는 테인 공작이나 루젠 공작의 뒤를 이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리고 1황녀의 가신이었기도 하고.
1황자는 무력의 테인 공작.
3황자는 마법의 루젠 공작.
그럼.
1황녀에게는…….
그때 재중이 형도 나와 비슷한 생각인지 조언을 해주었다.
<불멸> 저놈은 아마도 돈이겠지?
<주호> 네, 아마 그럴 것 같아요.
몸에 비싸 보이는 금색의 장신구를 덕지덕지 걸치고 있는 외향에서 그런 기운을 풀풀 풍겼다.
그런 하만 후작이 고개를 들어 마리아 가르시아에게 말을 올렸다.
『 하만 후작입니다. 아뢰옵기 송구하나 남작을 공작으로 올린 것도 과한 처사라고 생각되옵니다. 가르시아 역사에서 이렇게 급격히 작위를 올린 전례가 없습니다. 』
정작 우리와 맞붙었던 테인 공작과 루젠 공작이 가만히 있는데도 오히려 듣도 보도 못한 저 하만 후작이라는 녀석이 태클을 걸어왔다.
그러자 새 황제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던 귀족 NPC들이 같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 후작의 말이 아주 틀리진 않습니다. 』
『 모험가에게 공작은 너무 과한 자리입니다. 』
『 ……공작이라니…. 』
『 돌아가신 선황제가 아시면 크게 노하실지도 모릅니다. 』
『 이렇게 결정하는 일은 역사에 전혀 없는 일이지요. 』
『 공작 작위도 회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 거기다 영지까지 하사하시는 것은 너무…. 』
『 대체 누구의 영지를……. 』
『 이러다 우리 영지를 빼앗기는 것은……. 』
『 어디 모험가 나부랭이에게 귀중한 영지를……! 』
부러움.
시기와 질투.
불만과 모략.
아마도 마리아 가르시아가 기존에 전혀 세력이 없기에 나타나는 반응인 것 같았다.
만약, 1황자나 3황자, 혹은 1황녀가 올라섰다면 저런 불만을 억눌러줄 추종 세력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런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지들 멋대로 마리아 가르시아의 면전에 저런 말을 하는 거겠지.
막상 황제가 되긴 했지만, 힘이 없다는 말이기도 했고.
테인 공작과 루젠 공작을 보자 딱 두 사람도 그런 귀족 NPC들의 만행을 막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니, 그냥 관심에 없다는 표정에 가까웠고.
한 패거리는 아닌데 끼어들기는 또 싫다 이건가?
아마 딱히 본인들이 나서서 뭔가를 하지는 않을 생각 같았다.
재중이 형도 그런 분위기를 느꼈는지 내게 말했다.
<불멸> 이것들 완전 콩가루잖아?
<주호> 그러게요.
마리아 가르시아가 있는 쪽을 바라보니 그동안 담담하게 버티곤 있지만 귀족들의 이런 반응에는 상당히 당혹함을 느끼는 듯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아.
확실히 아군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상황이지.
마리아 가르시아도 어린 황녀가 이제 막 황제를 달았을 뿐이다.
거기다 우리를 위해 상당히 무리를 한 것 같기도 하고.
그걸 생각하자 무언가 부글 끓어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주호> 형, 공작이라는 자리요.
<불멸> 응? 갑자기 공작은 왜?
<주호> 공작이 후작보다는 높은 것 맞죠?
<불멸> 음, 일단 공작이 높겠지?
<주호> 그럼 괜찮겠네요.
바로 눈빛을 반짝이면서 어딘가를 바라봤다.
<불멸> 너 대체 뭘 하려고?
<주호> 그냥 제가 좀 어린가 봐요. 이런 상황은 속이 별로 안 좋아서. 그럼 뒷수습 부탁할게요.
처음에는 웅성거리기만 했던 귀족 NPC들이 이제는 대놓고 마리아 가르시아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떠들어댄다고 대전이 시끄러워졌다.
그런 와중에 내 발걸음이 옮겨졌다.
정확하게 하만 후작이 있는 방향으로.
저벅저벅.
워낙 귀족 NPC들이 목청껏 떠들어댄다고 내 발걸음 소리가 묻혀 버렸다.
그러다 점점 내가 걸어 나가자 주변의 몇몇 귀족 NPC가 내 쪽을 바라보기는 했으나 딱히 신경을 쓰는 것 같진 않았다.
자기들 할 일을 한다고 더 바쁠 뿐.
그렇게 살이 바짝 오른 하만 후작의 앞까지 걸어갔다.
하만 후작은 이미 귀족 NPC들을 선동해놓고 자신은 뒤로 슬쩍 빠진 모양새였다.
이 정도 모략을 구사할 수 있는 NPC라…….
재밌네.
그동안 반응이 밋밋하고 정해진 대사만 읊던 NPC만 보다가 자유로운 대사를 내뱉는 NPC를 보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물론, 좋은 기분은 아니고.
하만 후작의 바로 앞까지 가서 서자 곧 하만 후작이 움찔하더니 내게 반응했다.
『 모험가가 내게는 무슨 일이더냐? 』
확실히 이 하만 후작이라는 녀석은 날 공작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가슴에 공작의 휘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내가 테인 공작과 뜬 걸 봤다면 이런 식으로는 못 대할 텐데…….
바로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소환했다.
내 손에 두 개의 검이 쥐어질 때도 역시 멀뚱멀뚱한 표정이었다.
“그냥 오늘 재수 없었다고 생각해.”
딱히 인챈트를 할 것도 없이 르아 카르테를 휘둘러 하만 후작의 어깻죽지를 그어 올렸다.
그러자 왼팔이 그대로 깔끔하게 잘려나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 어어?! 』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지도 모르던 하만 후작이 자신의 팔을 보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비명을 질렀다.
『 끄아아악! 』
옆에 있던 다른 귀족 NPC들도 놀라서 소리치더니 몇몇은 놀랐는지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찍어버렸다.
『 꺄아악! 』
『 헉!! 』
『 우와악! 』
자신의 팔이 떨어져 나가고 난 뒤에야 하만 후작이 나를 흔들리는 눈빛으로 노려봤다.
『 끄아악!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
혼란.
아픔.
당황스러움이 가득한 눈빛에 다시 한 번 피식 웃었다.
“내가 말했잖아. 오늘 하루 재수 없는 날이라고 생각하라고.”
그러고는 바로 드래곤 슬레이어를 휘둘러 하만 후작의 목을 날려 버렸다.
스악!
툭!
데구르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서 있던 하만 후작의 팔이 잘리고 목이 날아가자 순간 대전에 적막으로 가득 찼다.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은 모습.
차마 그 누구도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설마하니 후작의 목이 이렇게 날아갈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후작의 뒷배만 믿고 마리아 가르시아에게 불만을 토로하던 목소리들까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제 좀 조용하네. 어디 더 떠드실 분?”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슬쩍 들어 올리면서 귀족 NPC들에게 겨누자 그쪽 방향의 귀족 NPC들이 도망가려고 옆의 귀족들을 밀고 난리가 났다.
“조용히 좀 하지? 안 그러면 또 뭔가를 벨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내 말과 동시에 다시 대전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변해 버렸다.
<불멸> 크크, 이 골 때리는 녀석 같으니라고. 후작 목을 날려 버릴 줄은 몰랐네.
<주호> 그냥 기분이 되게 더러워서요.
<불멸> 아냐, 잘했다. 지금 하만 후작에게 분위기가 넘어갔으면 앞으로도 계속 태클이 걸렸을 거야. 우리가 하려는 일도 마찬가지고. 슬슬 제한 풀린 NPC가 나오는 거 같았으니까.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난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테인 공작과 루젠 공작은 하만 후작의 머리가 날아갔음에도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전혀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데?
저 둘의 속은 정말 알 수가 없네.
황제만 보호하면 된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테인 공작과 루젠 공작이 끼어들지 않으면 이야기는 쉽다.
주변에 당황과 공포가 가득한 귀족 NPC들을 둘러보면서 외쳤다.
“그대들은 2황녀가 황제가 되기까지 어디에 있었나?”
그 말을 하자 모든 귀족 NPC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변했다.
“다들 다른 황자와 황녀에게 붙어서 2황녀를 적대했음에도 지금 황제는 그대들을 용서하고 휘하로 받아주었다. 영지와 작위를 모두 보전해주면서.”
워낙 세력이 없어 미처 처리를 못한 쪽에 가까웠지만, 뭐 어떤가.
현재의 상황이 그러니까.
“그런데도 지금 너희는 황제의 명에 반발하고 반기를 드는 것이냐? 그럼 좋다. 황제가 직접 임명한 공작인 내가! 지금부터 너희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보내 주겠다. 저 후작과 똑같이.”
그러면서 하만 후작을 가리키자 모든 귀족 NPC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러더니 누가 먼저라는 것 없이 앞 다투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 잘못했습니다! 』
『 저희는 그저 하만 후작이…! 』
『 저 가증스러운 반역자가 선동을 해서……. 』
『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
『 황제께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
『 제발 살려주십시오! 』
본보기로 하만 후작의 목을 날렸더니 기세등등했던 귀족 NPC들의 기세가 한 번에 꺾여버렸다.
물론, 버티는 귀족들도 있었지만.
아마 하만 후작이나 황제에 반하는 진영 쪽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시스템 상으로 황제에게 반대를 해야 하는 세력 같기도 한데…….
뭐, 지들만 손해지.
시스템이 어떻든.
난 저런 걸 일절 봐줄 생각이 없었다.
“공작의 이름으로 명한다. 가드. 끌고 가라.”
주변에 서 있던 가드들이 내 명에 바로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일단 황제의 명이 우선이니까.
그러자 마리아 가르시아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 끌고 가라. 』
황제의 명이 떨어지자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귀족 NPC들이 모조리 끌려 나갔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귀족 NPC가 끌려 나가자 제법 북적였던 대전이 반으로 텅 비어버렸다.
아마 이번에 잘라내지 못했다면 이 절반의 귀족 NPC들이 앞으로 계속 반기를 일으켰을지도.
그 모습에 마리아 가르시아도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마리아 가르시아의 세력이 부족해?
그럼 내가 그 세력이 되어주면 된다.
반대하는 모든 녀석의 목을 쳐서라도.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마리아 가르시아도 미소를 지으면서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았다.
『 고맙구나. 』
“황제의 검으로써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적어도 내가 있는 이상.
그 누구도 반기를 들 수 없게 만들어주겠다.
그렇게 분위기가 넘어온 대전을 한 번 슥 둘러본 마리아 가르시아가 다시 말을 꺼냈다.
『 주호 공작. 이제 그대가 고를 수 있는 영지가 아주 많아졌구나. 어디 한 번 마음껏 골라보도록. 』
하.
역시 이 여자도 보통은 아니야.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