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6화 테인 공작 (1)
‘죽어서만 지나갈 수 있다.’라…….
그 말은 결국 테인 공작을 꺾어야 이곳을 지나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나와 테인 공작이 대치하는 상황에 재중이 형이 레비아탄 스피어를 들고 옆으로 나오더니 물었다.
“붙어보니 어때?”
“이번엔 쉽지 않겠는데요.”
테인 공작에게는 보이지 않게 드래곤 슬레이어를 들고 있는 팔을 슬쩍 보여주었다.
단지 가볍게 네 합을 주고받았을 뿐인데,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걸 본 재중이 형의 눈빛이 바로 굳어졌다.
“장난 아닌데?”
“그렇죠?”
최대한 평정을 가지고 대답을 했으나 속으로는 잔뜩 긴장했다.
막상 붙어보니 힘 스탯 차이가 생각보다 훨씬 심했다.
“드래곤 플레이트로 보정을 했는데도?”
재중이 형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스탯 총량만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민첩에 많은 투자를 했음에도 드래곤 플레이트를 비롯해 각종 악세들로 부족한 스탯을 보정한 상태였으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테인 공작과 격돌하고 난 뒤에 팔이 저려왔다.
“공작을 딱지치기해서 얻은 건 아닌 모양이군.”
바로 재중이 형도 웨폰 기술을 걸고는 레비아탄 스피어를 앞으로 내밀었다.
“내가 좀 상대해 봐도 될까?”
“왠지 즐거워 보이네요.”
“아아, 간만에 몸을 풀 수 있을 것 같아서. 요즘엔 너무 괴수들만 상대했잖아.”
덩치가 크고 스킬로 밀어붙여야 하는 거대한 괴수들을 상대하다 보면 컨트롤의 여지가 많이 사라지게 된다.
반면에 이런 인간형은 이야기가 다르다.
어떻게 싸우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로 갈리니까.
컨트롤로 스탯이나 아이템을 극복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테인 공작을 보면서 씨익 웃는 재중이 형을 보고는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내려놓았다.
“먼저 가시죠.”
“땡큐.”
재중이 형이 내게 윙크를 해보이더니 바로 테인 공작을 향해 뛰어나갔다.
【 헤이스트! 】
속도를 잔뜩 끌어올린 다음 접근하자 테인 공작 역시 자세를 낮추더니 재중이 형을 향해 똑같이 달려 나왔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창에 능통한 사람은 재중이 형이었다.
그리고 지금껏 본 NPC나 네임드 중에 가장 강해 보이는 상대도 눈앞에 있었고.
첫 격돌부터 강렬한 파공음을 내면서 검과 창이 강하게 부딪혔다.
“힘은 이 정도인가…….”
바로 재중이 형의 창이 뒤로 튕겨 나왔으나 몸 전체로 창을 감아 돌리면서 테인 공작의 힘을 상쇄시켜 버렸다.
그만큼 얻는 반탄력과 회전력으로 창을 크게 돌리면서 테인 공작의 하단에서부터 쓸어 올리자 테인 공작이 그 자리에서 점프를 해 재중이 형의 창대를 밟으면서 타고 달려왔다.
저렇게 빠르게 휘두르는 창을 밟고 달려?
그렇게 창을 타고 달리며 재중이 형과의 거리를 완전히 줄여버린 뒤 발을 차 재중이 형의 머리를 노렸다.
그러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빠르게 옆으로 피함과 동시에 테인 공작의 발목을 한 손으로 잡아채서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동시에 창대를 짧게 잡아 테인 공작의 다리를 찍으려하자 테인 공작이 반대 발로 창을 차서 날린 뒤 재중이 형에게서 다시 떨어져나갔다.
보통의 NPC는 도저히 보여줄 수 없는 모습.
이건 이미 NPC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는데?
저런 식으로 전투를 하는 NPC는 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검을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팔과 다리를 모두 전투에 활용할 정도로 전투 센스가 높아 보였다.
“호오, 이것 봐라?!”
재중이 형도 첫 격돌에 재밌다는 듯 다시 창을 고쳐 잡고 테인 공작에게 뛰어들었다.
이어지는 검과 창의 대결.
보통은 창을 가진 이가 창의 긴 리치를 활용해서 간격을 재면서 싸우는 데 반해 이번에 보여주는 재중이 형의 스타일은 완전히 달랐다.
오히려 더욱 파고들었다.
거기다 수시로 창의 모든 부분을 활용해서 테인 공작을 치고 빠지길 반복했다.
힘과 스탯이 밀림에도 불구하고 창과 몸 전체를 쓰는 방법으로 그걸 극복하고 있었다.
덕분에 테인 공작과의 일전에서 밀리지 않고 격투를 이어갔다.
그리고 점점 더 몸의 속력을 올려갔다.
계속해서 공격속도가 빨라지는 모습이란…….
일반적으로 휘두르는 속도가 올라가면 컨트롤이 그에 상응할 정도로 힘들어지지만, 재중이 형의 컨트롤은 흔들림이 없었다.
마치 폭풍과도 같은 광경에 보고 있던 모든 사람이 감탄을 했다.
스칼렛은 이미 입이 벌어져서 눈만 재중이 형을 쫓고 있었다.
“엄청나네.”
그러더니 스칼렛이 고개를 돌려 칼을 보면서 물었다.
“저렇게 할 수 있겠어?”
“아마 저 혼자는 어려울 겁니다. 아니, 솔직히 버거울 것 같군요.”
이번엔 아로하를 보자 아로하가 눈빛을 반짝이면서 재중이 형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었다.
“넌? 어때?”
“…저 사람 진짜 강해. 내가 본 사람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그러면서 아로하가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눈을 빛냈다.
“저 사람도 강하고.”
움찔.
그렇게 말하면 부담스러운데…….
이슬두잔도 마찬가지로 넋 빠진 표정으로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역시 전직 프로인가요? 실력이 저 정도라니.”
그때, 재중이 형이 테인 공작과 한 번 크게 합을 주고받더니 다시 뒤로 튕겨 나왔다.
그리고 재중이 형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팔을 떨면서 가까스로 레비아탄 스피어를 잡고 버텨냈다.
재중이 형이 튕겨 나오는 것을 보자마자 수호 형과 전사 형이 동시에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중 수룡갑을 입어 장비가 더 좋은 전사 형이 메인을.
【 징벌의 사슬! 】
바로 사슬이 날아가 테인 공작을 잡자 테인 공작의 시선이 전사 형에게 돌아갔다.
옆으로는 수호 형이 커버를 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어때요?”
“크, 나도 안 되겠다. 겁나 강하네. 지금까지 본 NPC하고는 차원이 달라. 이건 거의 가짜 황제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겠는데? 어쩌면 시나리오 상에서 테인 공작이 가짜 황제가 제국에서 활개 치지 못한 원인이 될 수도 있겠어.”
재중이 형이 이 정도로 평가하면 정말 높은 점수를 준 것이었다.
“거기다 거울하고 싸우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실수가 전혀 없어.”
재중이 형 역시 내가 느낀 것과 동일한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떨어지는 와중에도 1황자가 살아 있는 건 아마 저 테인 공작의 능력이지 않을까?
결국, 저 테인 공작을 넘어야 1황자를 죽이든 살리든 할 수 있다.
테인 공작이 여기를 지키고 있다는 건 뒤에 1황자가 있다는 뜻일 테니.
“역시 쉽게는 안 된다는 건가. 꽤 준비를 많이 했잖아?”
“어쩔 수 없죠.”
다시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전사 형과 수호 형이 앞을 맡았는데 아주 잠깐 사이에 이미 둘 다 아이기스 방패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쾅!
쾅!
마치 한 발 한 발이 폭격과도 같은 테인 공작의 공격에 전사 형이 연신 밀려 나갔다.
“크윽! 이놈 완전 괴물이잖아!”
“최대한 버텨!”
전사 형이 혼자 도저히 버티지 못하자 그사이를 수호 형이 커버하면서 버텼는데 수호 형의 피해는 더 심했다.
방어구의 차이도 무시 못 하니까.
둘 다 이를 악물고 버티자 보다 못한 이쁜소녀도 뛰어들었다.
그와 함께 아로하도 긴 검을 빼 들고 달려들었고.
칼 역시 동시에 따라나섰다.
셋 모두 유저 사이에서는 상위 실력을 갖췄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인 공작의 빠른 공격에 동시에 뒤로 튕겨 나오더니 이를 악물고 다시 달려들었다.
한 번에 다섯이 달려드는데도 불구하고 테인 공작의 몸에 제대로 된 일격을 날리지 못했다.
공속도 공속이지만 마치 뒤에도 눈이 있는 듯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가면 모든 공격을 캐치해내고는 방어를 해버렸다.
“와, 저거 잡을 수는 있는 거야?”
최종병기 형도 어이없어하더니 결국 검을 빼어들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나도 간다.”
그 사이 챠밍과 스칼렛이 마법으로 지원을 하려고 틈을 봤지만 워낙 테인 공작이 빠르게 움직여서 차마 공격을 하지도 못하고 영창을 중지시켰다.
“너무 빨라요.”
막내별은 정신없이 전사 형과 수호 형에게 힐을 주면서 억지로 살려내는 중이었고.
이슬두잔도 활을 꺼내서 공격을 하려다가 결국 활을 내려놓았다.
“조준을 해도 이미 위치를 옮겨버리니까 잘못하다간 우리 편이 맞아요.”
NPC 하나에 전력이 다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공략이 불가능했다.
이건 오히려 드래곤이 더 쉽겠는데?
드래곤은 때릴 곳이라도 많지.
거기다 아직 테인 공작은 스킬조차 쓰지 않았다.
그 말은 그냥 단순히 검을 휘두르는 기본기로만 모든 공격을 커팅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만약 저 상태에서 스킬이라도 쓰면?
그런 우려가 무섭게 갑자기 테인 공작에게서 전혀 다른 붉은 기운이 퍼져 나왔다.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스킬과도 다른.
광역기?
특수 기술?
스킬을 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다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형, 저건?”
“우리도 뛰어든다. 준비해.”
재중이 형도 뭔가 불길함을 느꼈는지 곧장 뛰어들 준비를 했다.
그때 테인 공작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 기운이 테인 공작이 들고 있는 잘 버려진 검으로 모두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넘실넘실 흐르던 기운이 검신 전체를 감싸더니 응축되어 하나의 검과 같은 형상을 띄었다.
광역기 같은 것은 아닌 건가?
다행히 드래곤처럼 사방을 타격하는 스킬은 아니라서 안도하려는 찰나.
전방에서 테인 공작의 검을 막고 있던 전사 형의 아이기스에 문제가 생겼다.
서걱!
응? 저게 무슨?
분명히 지금까지는 테인 공작의 검에 맞은 아이기스에서 폭탄 터지는 것 같은 굉음이 들려왔는데 이번엔 아예 달랐다.
그 어떤 타격 소리도 없이 오히려 종이가 갈라지는 것 같은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전사 형이 낭패한 표정으로 테인 공작에게서 떨어져 바로 뒤로 빠졌는데 전사 형이 들고 있었던 아이기스의 반쪽이 통째로 갈라져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쿵!
카앙!
어?
아이기스가 반쪽이 나?
순간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서 정적이 흘렀다.
관통 불가 옵션에다 방어력은 방패 중 최고를 자랑하는 아이기스가 갈라져 버린 일은 모두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말도 안 돼.”
“아이기스가…….”
다들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이게 뭘 뜻하는 건지.
아이기스가 갈라진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란 우리 팀을 비롯한 사람들 모두가 테인 공작에게서 급히 떨어져 나왔다.
이건 일부 방어력을 관통하는 옵션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했다.
테인 공작의 검을 감싸고 있는 정체 모를 붉은 기운.
저 기운이 아이기스를 갈라버렸다면 그보다 방어력이 낮은 다른 방어구는 무용지물이었다.
방어구가 버텨주지 못한다는 것은 곧 맨몸으로 싸워야 한다는 뜻과 동일했고.
아니, 방어구가 갈라진다면 방어구보다 약한 신체는 그냥 같이 썰린다고 봐야 했다.
그걸 본 재중이 형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산 넘어 산이군.”
그냥 싸워도 불리한데 저 이상한 스킬은 그냥 방어구 자체를 파괴해 버렸다.
물론, 수리야 되겠지만 당장 전투에 쓸 수가 없다는 것은 큰 문제로 다가왔다.
그렇게 앞에서 중심을 잡아줄 전사 형과 수호 형이 뒤로 빠지자 자연스럽게 진영이 무너졌다.
막고 싶어도 막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
거기다 아이기스만 잘리는 것이 아니라 무기마저 잘린다면…….
뭔가를 생각하던 재중이 형이 갑자기 인벤에서 여분의 브랜디슈 스피어를 하나 꺼내 들었다.
【 비창! 】
바로 비행 스킬을 쓰자 테인 공작에게 브랜디슈 스피어가 빠르게 날아갔다.
날아오는 스피어에 테인 공작이 붉은 기운이 감도는 검을 휘두르자마자 브랜디슈 스피어가 절반으로 뚝 부러지더니 바닥으로 형편없이 떨어져 내렸다.
“이거 참. 무기도?”
브랜디슈 계열 무기도 레비아탄이나 드래곤을 제외하면 최상위 무기에 속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 방이라니.
아니, 아이기스가 갈라지는 순간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다.
“레비아탄 무기는 버텨주려나…….”
재중이 형의 확신 없는 물음.
그때, 테인 공작의 시선이 후방에 머물러 있던 챠밍에게로 돌아가더니 순간 테인 공작의 검에 물든 붉은 기운이 크게 부풀기 시작했다.
저건!!
그걸 보는 순간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서 움직였다.
그리고 챠밍의 앞에 바로 뛰어들어 드래곤 슬레이어와 르아 카르테를 교차로 들어 올렸다.
“오빠?!”
“내 뒤에 딱 붙어!”
바로 뒤 테인 공작이 검을 휘두르자 마치 예전의 반월참과 같은 붉은 기운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그리고 붉은 기운과 르아 카르테, 드래곤 슬레이어가 서로 부딪치는 순간 엄청난 폭발을 일어나 우리를 덮쳐갔다.
큭, 제발 버텨라!
너희가 진짜 유일템이라면!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