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6화 드래곤 슬레이어 (1)
가짜 황제가 사라지자 필드 전체를 속박하던 마법이 해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속박과 압력에 움직이지 못했던 유저들의 몸이 풀리며 깜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우왓! 이제 움직여진다.”
“안 움직여져서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대체 무슨 마법임?”
“범위 장난 아님. 한 번에 대체 몇백 명을 묶은 거야?”
“주호하고 불멸은 움직이던데?”
“뭔가 특별한 방법이 있나 보지.”
“재들 아니었으면 우리 다 죽었다. 황제 날아다니는 거 봐라.”
“난 솔직히 움직여졌어도 절대 못 막았을 듯. 그냥 안 보이던데 뭘.”
“움직임이 넘사벽…….”
“와, 진짜. 앞으로 저런 녀석을 잡아야 한다는 거지?”
가짜 황제는 그동안 경험했던 몬스터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일단, 움직임을 봐야 대처를 할 텐데 그런 수준은 아득히 넘어가 버렸으니까.
거기다 압박 마법 때문에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는 것도 한몫했고.
상대방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움직이는데 이쪽은 못 움직이면 상대를 해보나 마나다.
그냥 학살.
사람들 말대로 나와 재중이 형이 없었다면 유저들 대부분이 죽어버렸을 것이다.
나중에 어떻게 변경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유저들에게 압도적인 벽으로 느껴지는 게 당연했다.
“이건 따로 훈련이 필요하겠어요.”
“그러게. 나도 연구를 좀 해야겠다. 지금처럼 평범하게는 안 될 것 같으니.”
이번엔 르아 카르테 덕분에 어떻게 넘어갔지만 다음에도 이렇게 운이 좋으라는 법은 없다.
압박 마법에 대처할 방법.
황제의 움직임에 반응할 능력을 모두 키워야 했다.
둘이서만 레이드를 할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황제가 사라져 버리자 모두의 관심이 현재 제국 내에서 날뛰고 있는 드래곤으로 옮겨갔다.
“아무래도 저 녀석이 도움이 될 것 같죠?”
“잡을 수만 있다면 말이지.”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짜 황제와 스펙 차이가 여실히 드러난 상태라 그 어느 때보다도 드래곤을 잡는 일이 중요해졌다.
다만.
지금 잡을 수 있을까?
문득 드래곤 슬레이어를 내려다보았다.
아직은 드래곤 슬레이어가 미완성이라 조금 불안한데…….
재중이 형도 그런 나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말을 꺼냈다.
“항상 준비가 되어 있으면 좋겠지만 때론 준비가 덜 되어도 해야 하는 순간이 있지.”
“그게 지금이네요.”
“그래, 그리고 드래곤 슬레이어의 가장 중요한 옵션은 이미 가지고 있잖아.”
“확실히 그렇죠.”
용종 대상으로 크리티컬이 터졌을 때 확률적으로 전체 체력을 깎아내리는 옵션.
이 옵션 하나가 드래곤 슬레이어의 핵심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저렇게 판이 깔려 있는데 그냥 넘어가긴 아깝잖아. 거기다 돌발 퀘스트까지 걸려 있고.”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돌발 퀘스트의 보상.
그냥 잡는 것보다 돌발 퀘스트가 걸려 있는 지금이 보상을 뻥튀기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제국 황제를 몰아낸 이상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당장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최대한 다 챙겨야 했다.
해볼 만한 이유는 또 있었다.
일단, 가짜 황제로 인한 제국과의 적대 관계가 풀렸다는 것.
제국 병사들에 의해 방해를 받는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사방에서 점점 모여드는 유저들.
유미를 포함해 지금 BJ들이 온통 이 상황을 방송으로 내보내는 중이었다.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정도로 화제가 되면 한 번쯤 참여하고 싶어진다.
거기다 채팅창이 온통 드래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서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는 지경이고.
-황제는 벌써 잡힌 거야?
-그냥 공격 좀 하더니 사라짐.
-아씨, 돌발 퀘스트 하나 날아갔네.
-황제 잡을 생각은 꿈에도 안 하는 편이 좋을걸?
-황제도 그래 봐야 몬스터지.
-크크, 미친놈. 나중에 보고 오줌 싸지나 마라.
-그럼 드래곤은?
-말짱함.
-드래곤은 제국 병들하고 같이 싸우면 어떻게 잡을 수 있지 않음?
-ㅇㅇ. 제국 병들이 지금 드래곤 둘러싸고 레이드 중임.
-아, 진짜. 죽기 싫어서 안 하려고 했는데 참가해야겠네.
-드래곤 비늘이라도 하나 뜯으면 오늘 치킨 각!
-한 번 해보자. 당장 간다.
그렇게 방송을 보고 찾아왔는지 방어전에 참여하는 인원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거대 괴수 하나와 제국과 유저들의 싸움.
어글이 이리저리 튀어서 다소 난잡했지만 이건 이것대로 하나의 그림이 되어갔다.
스케일 큰 레이드만큼이나 유저들의 관심을 끄는 게 있을까.
“유미 씨는 계 탔네요. 오늘 아마 좋은 그림 나올 겁니다.”
전사 형의 말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몸을 풀었다.
“그러게, 오랜만에 방송 제대로 타겠는데?”
그렇게 드래곤을 잡을 방법을 모의했다.
“전사 네가 특히 중요해. 드래곤 슬레이어의 옵션이 터지면 주호에게 어글이 미친 듯이 몰릴 거다. 어글 스킬로 바로 떼어내서 최대한 버텨줘야 해. 할 수 있지?”
재중이 형의 말에 전사 형이 가슴을 탕탕 쳤다.
“이 수룡갑이 있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확실히 수룡갑의 방어력이 넘사벽이긴 했다.
특히 드래곤 종족에 대한 피해 방어가.
그 미친 가짜 황제라면 몰라도 드래곤에 대항해서는 전사 형의 몸빵은 강이었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전부 수룡갑을 맞춰 입고 싸웠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으니까.
전사 형에게 모든 방어를 맡길 수밖에.
“막내별은 주호 체력에 특히 신경 쓰고. 스치기라도 하면 바로 끌어올려놔야 해.”
“맡겨주세요.”
“챠밍은 레비아탄에게 얻은 마법들 잘 활용해봐. 오직 주호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용도로.”
“네, 알았어요.”
“소녀하고 나르샤는 나와 함께 주호 보조에 나선다. 여차하면 대신 죽을 생각으로 덤벼들어.”
재중이 형의 낮게 깔린 말에 흠칫 놀랐다.
“형, 그건 좀…….”
“아니, 어차피 전부 살아서 드래곤을 잡는다는 생각은 버려. 그렇게 쉽게 잡을 수 있는 녀석도 아니고. 레비아탄 때와는 달라. 그리고 지금 여기 모여 있는 유저 대부분은 다 죽는다고 생각해야 할 거다.”
모두들 잔뜩 굳은 표정으로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드래곤의 브레스에 유저들과 NPC가 함께 녹아서 수없이 많은 죽음의 빛을 남기고 사라져갔다.
역시 드래곤은 드래곤인가.
황제가 도저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면 드래곤은 대부분의 공격이 광역기라 치명적이었다.
얼핏 보면 레비아탄과 유사한 패턴이었는데 레비아탄과 드래곤은 가장 큰 차이가 있었다.
그것도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차이가.
“우왁! 또 날아오른다!”
“……발! 누가 좀 끌어 내려!”
“대체 어쩌라는 거야!”
지상에서 유저와 NPC들의 집중포화를 맞던 드래곤이 거대한 날개를 펼치면서 떠오르자 원거리 공격이 되는 유저들을 제외하고는 손가락만 빨게 되었다.
그렇다고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유저들의 공격이 잘 먹히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날아오르자 공중에서의 이동속도는 너무 빨랐다.
대부분의 원거리 공격이 허공에서 빗나간 뒤 드래곤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브레스다! 피해!”
“무슨 브레스를 이렇게 자주 쏴!”
“젠장! 옆으로 좀 비키라고!”
드래곤을 잡으려고 우르르 원을 그리며 몰려 있었던 유저와 NPC들이 드래곤이 날아오르자 서로 엉키면서 동선이 엉망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드래곤에게 먹잇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화아악!
공중에서 날아다니면서 지상을 향해 뿌려대는 브레스는 생각 이상으로 치명적이었다.
드래곤의 엄청난 이동속도 때문에 브레스가 훑고 지나가는 면적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만큼 많은 유저와 NPC가 녹아 사라졌고.
지상에 있는 드래곤과 하늘에 있는 드래곤은 그야말로 천지 차이였다.
일단 저걸 떨어뜨려야 한다는 건데…….
물론, 하늘에서도 제국의 비공정이 날아다니기는 했다.
그것도 상당히 많은 숫자가 드래곤을 잡기 위해 날아오른 모습은 장관이었다.
다만 그런 비공정도 드래곤에게 큰 위협이 되지는 못했다.
기동력 면에서 너무 밀렸기에.
전사 형도 어이없다는 듯 하늘을 올려다봤다.
“처음 보는 비공정인데도 저렇게 밀리네.”
“그만큼 드래곤이 빠르다는 거겠죠.”
제국 쪽에서도 좀 더 상위의 좋은 비공정이 나왔지만 드래곤은 드래곤.
현 날아다니는 네임드 중 끝판왕이라…….
결국 공중에서도 안 된다.
썬더볼트조차 떨쳐내는 것이 고작인데.
“어떻게 떨어뜨릴 수 없을까요?”
내 물음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그때, 챠밍이 뭔가를 영창했다.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볼게요.”
챠밍이 마법을 시전하자 챠밍 주위로 하얀색 마법진 두 개가 연속으로 돌아가며 어마어마한 광풍이 몰려들었다.
이건?
레비아탄의 그건가?
한참 동안 풀차징을 한 챠밍이 때를 기다렸다가 두 팔을 크게 들어 올려 마법을 풀어놓았다.
【 토네이도 월! 】
그리고 마치 레비아탄이 했던 것처럼 거대한 소용돌이가 하늘로 뻗어 올라가며 드래곤을 토네이도 속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땅과 하늘을 잇는 바람의 기둥이라…….
보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그 환상적인 마법에 다들 입을 쩍 벌리고 구경만 했다.
아마 이 마법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방송거리가 나오지 않을까?
키에에엑!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날개를 크게 펼치면서 발버둥 치는 커다란 덩치의 드래곤이 토네이도로 점점 끌려 들어오자 사람들이 환호를 질렀다.
거기다 드래곤의 날개가 뒤틀어지면서 점점 균형을 잃어가고 있었다.
“우와! 대박!”
“진심 미쳤다.”
“세상에, 드래곤을 끌어당기네.”
그리고 그런 환호가 절정에 달할 때쯤 드래곤이 비행 능력을 잃고 토네이도에 끌려 내려와 바닥에 억지로 처박혔다.
쿵!
대미지는 둘째로 치더라도 효과와 퍼포먼스 면에서는 이미 더할 나위가 없었다.
드래곤이 땅에 떨어지자 다들 이 마법을 쓴 유저를 쫓아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이런 마법을?!”
“쟤들은 하나 같이 인간이 아니네.”
“부럽다, 진짜.”
“거기다 예쁘잖아!”
듣도 보도 못한 규모의 마법이 터지니 챠밍을 향한 부러움이 가득한 외침이 들렸다.
챠밍은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의외로 담담히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이런 일에는 익숙해요.”
하긴.
나와는 다르게 이런 쪽으로는 익숙하겠네.
전사 형이 옆에서 웃음을 지었다.
“오늘부터 일약 스타네. 무려 드래곤을 하늘에서 떨어뜨린 마법사잖아. 그것도 혼자서.”
“아, 그런 거 아니에요.”
그 말에는 조금 부끄러운지 챠밍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때 재중이 형이 우리에게 크게 외쳤다.
“방심하지 마! 이제 시작이야!”
스킬 효과가 다 되었는지 드래곤을 억제하고 있던 토네이도가 사라지자 바닥에 형편없이 떨어졌던 드래곤이 바로 자세를 뒤집으면서 두 날개로 바닥을 짚고 우리 쪽을 향해 목을 돌렸다.
입 앞으로 삼중으로 된 마법진을 돌리면서.
그것도 차징이 완전히 된 상태였다.
설마 브레스를 계속 준비했던 건가?
드래곤은 경직 저항이 된다는 것을 이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충격을 받아도 경직이 안 될 정도면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경직이 안 된다고 보면 된다.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고.
브레스가 터지고 나면 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바로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앞으로 들고 뛰어나갈 준비를 했다.
여차하면 용격으로 브레스를 흡수하면서 최대한 옆으로 빗겨내야 했다.
시작부터 체력이 바닥나겠는데!
“회복 좀 부탁해요!”
막내별에게 외치며 바로 앞으로 뛰쳐나가려는데 챠밍이 달려나가려는 날 붙들었다.
“오빠! 잠시만!”
“응?!”
그리곤 챠밍이 뭔가를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마치 유리 같은 투명한 뭔가가 챠밍의 정면에 일렁거리면서 계속 생성되어 갔다.
“그건?”
얼마 지나지 않아 드래곤의 브레스가 쏘아져 우리에게 쇄도하자 챠밍이 브레스가 날아오는 정면으로 마법을 시전했다.
【 스케일 미러! 】
스킬이 시전되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레비아탄이 썬더볼트와의 일전에서 썼던 그 마법이라는 것을.
일렁거리는 수십 장의 푸른빛 비늘들이 생성되어 우리 앞을 막았고 드래곤의 브레스가 닿자마자 충격에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기적같이 브레스를 죄다 반사시켜 버렸다.
그것도 정확하게 드래곤에게로.
설마 브레스까지 반사할 줄이야.
당연히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드래곤의 입으로 다시 브레스가 처박히면서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쿠아앙!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브레스가 자기 입안에서 터지는데 버틸 수 있을까?
거대했던 폭발이 사그라들고 난 뒤 머리가 축쳐져 있는 드래곤을 확인한 유저들이 전부 대지가 떠나가라 환호를 했다.
챠밍의 이름을 외치면서.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