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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475화 (468/1,404)

#475화 가면 벗기기 (5)

황제의 팔이 검게 변형되어 용격을 막는 모습을 본 귀족들에게서 놀란 음성이 튀어나왔다.

형태는 황제인데 한쪽 팔만 검게 변색되어 날카롭게 버려진 이질적인 모양이 눈에 띄었다.

전에는 변형된 팔을 금세 원래대로 돌려놨지만, 지금은 변형된 상태를 그대로 유지했다.

정체가 발각된 순간부터 숨기려 하지도 않았고.

“저 모습은 악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제국 안에 악마가!”

원래 제국은 하르 기둥으로 된 빛의 결계가 형성되어 어둠의 기운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딱 봐도 알 수 있는 것은 하르의 기운이 서린 곳만 밝은 하늘을 유지했으니까.

당연히 제국이나 왕국의 중심부 같은 곳은 악마가 활동하기에 부적절한 환경이었다.

물론,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마 반발력이 굉장히 심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황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제국 내부를 활보했다.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건가?

황제의 정체가 드러나자 가르시아 제국의 귀족들이 일제히 황제와 적대 관계를 형성했다.

그리고 우리의 가장 큰 문제로 남아 있던 제국과의 적대 관계가 풀어졌고.

아마 황제가 해놓았던 모든 결정이 황제가 가짜라는 것이 밝혀지자 바로 번복된 것 같았다.

예상했던 것 이상의 좋은 결과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괜찮네요.”

“그래, 잘 풀렸어.”

이로써 손발이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적대시하는 황제라는 족쇄가 사라졌으니까.

우리 입장에서는 지금이 최선의 결과였다.

다만, 제국의 입장에서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그야말로 개판.

한쪽에선 가짜 황제가.

다른 한쪽에선 드래곤이.

그러자 돌발 퀘스트가 다시 떠올랐다.

《 돌발 퀘스트 : 가르시아 제국 방어전 (특급) 》

- 드래곤을 퇴치하거나 제거.

- 퀘스트 보상.

:

돌발 퀘스트가 한 번에 두 개라…….

원래라면 따로 발동되어야 하는 퀘스트지만, 우리가 상황을 복잡하게 꼬아놓아서 퀘스트 역시 개판이 되어버렸다.

제국에 남아 있던 유저들도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드래곤을 잡으라고 했다가 갑자기 황제를 잡으라고 하니 갈피를 못 잡는 중이었다.

“지금 드래곤을 잡는 게 맞나?”

“가짜 황제는 또 뭐냐.”

“이거 뭐 어떻게 하라는 거야?”

하나만 나와도 어려운 돌발 퀘스트가 두 개가 열리니 이럴 수밖에.

그리고 채팅창 역시 불이 붙어버렸다.

-돌발 퀘스트가 두 개나?

-아, 그냥 제국으로 갈걸.

-가서 뭐 건질 수 있을까?

-쯧쯧, 잡을 수 있는가부터 걱정해야지. 드래곤을 무슨 수로 잡을래?

-황제는 잡을 수 있을지 누가 아냐?

-아직 늦지 않음. 가자!

-기껏 해봐야 NPC 아니냐. 몰아치면 가능할 듯.

드래곤은 이미 두 차례나 유저들을 물 먹인 이력이 있어서 쉽게 잡는다는 말은 못 했다.

하지만 가짜 황제는 달랐다.

어떻게든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샘솟은 것 같다.

그걸 보고는 바로 한숨을 쉬었다.

글쎄…….

사실 황제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아니, 오히려 황제가 더 어려울지도.

재중이 형도 어이가 없다는 듯 채팅창을 봤다.

“쟤들 지금 황제 잡겠다고 온다는 거냐?”

“그래 보이네요.”

“네 생각은 어때?”

“……와서 털리지 않으면 다행이죠.”

“크큭, 역시 그렇지?”

“네, 용격도 막아내던 놈인데.”

드래곤과 가짜 황제랑 동시에 붙어본 사람은 우리 팀 이외에는 전무하다.

객관적으로 비교가 가능한 사람도 우리가 전부고.

그리고 나와 재중이 형은 같은 판단을 내렸다.

가짜 황제가 드래곤과 동급이라고.

어쩌면 더 강할 수도 있고.

그때 가짜 황제가 전과 같은 굵고 낮은 말투로 말을 꺼냈다.

『 흐음, 재미없게 됐군. 』

재미없다라…….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데?

마치 언젠가는 이렇게 되리라 예상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에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차라리 들켰다고 발광을 하고 날뛰었다면 경계가 훨씬 풀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무게감.

이렇게 많은 유저와 NPC가 둘러싸고 있음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한순간 황제의 눈이 붉게 물드는 것이 보였다.

『 꿇어라. 』

순간 주위로 굉장한 압력이 생겨나면서 주변의 NPC와 유저들이 바닥에 우르르 무릎을 꿇었다.

이건…….

예전에 그 마법사가 쓰던 압력 마법인가?

그것도 엄청난 범위로 적용되는 마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규모 자체가 완전 다른데?

우리 역시 몸이 눌리려는데 갑자기 르아 카르테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뭐지?

그러자 나에게 걸린 압력 마법이 해제되어 버렸다.

나와 가까이 있던 우리 팀까지도.

설마?

상태 이상 마법도 먹어치우는 건가?

그 모습에 가짜 황제가 오히려 나른한 모습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탐식의 주인이라… 넌 날 재밌게 해줄 수 있을까? 』

흠칫.

지금 내게 말한 건가?

물론, 용격을 날렸으니까 어그로가 끌리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이건 르아 카르테와 관련된 시나리오다.

평온하게 자세를 잡고 있음에도 황제의 시선은 계속 내게 머물러 있었다.

그런 황제의 시선과 마주치자 감각이 바로 요동쳤다.

위기상황을 느낄 때만 발동되는 특유의 촉이 지금 내게 계속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앞으로 들어 올려 굳게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본 우리 팀 역시 긴장한 듯 역시 무기를 들어 올렸다.

『 잠깐 재미를 보지. 』

그 말과 함께 황제의 하체가 흔들리는가 싶더니 곧장 신형이 흐릿하게 사라져 버렸다.

시야에서 놓쳤어?

분명 눈으로 보고 있었음에도 사라지는 것을 보질 못했다.

그런데 뭔가 스물스물하고 꺼림칙한 느낌이 좌측에서부터 확 밀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눈으로 보지 못했는데 감각은 인식을 했다고 느끼는 순간.

온전히 감각을 믿고 바로 르아 카르테를 좌측으로 크게 베어 올렸다.

까가강!!

르아 카르테를 잡은 손아귀에서 찢어질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만큼 충격이 팔 전체를 타고 흘렀고.

이제껏 느껴본 적 없을 정도로 강력한 충격에 이를 꽉 깨물었다.

『 호오! 이걸 막은 건가? 』

공격이 막히자 가짜 황제의 신형이 그대로 드러났다.

내 르아 카르테를 내려치고 있는 모습으로.

이 정도 속도면 반응조차 힘들다.

바닥을 차는 소리는 딱 한 번.

그 말은 제자리에서 단 한 번의 도움닫기로 서로의 간격을 바로 좁혔다는 말이 된다.

근력과 민첩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단순히 막은 것만으로 저릿함을 느낄 때, 재중이 형의 레비아탄 스피어가 나와 가짜 황제 사이를 치고 들어왔다.

이미 내가 막기 전부터 공격을 했나?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재중이 형은 황제가 치고 들어오는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날카로운 일격에 황제의 표정이 살짝 굳더니 다른 팔을 변형시켜 재중이 형의 찌르기를 막아냈다.

카앙!

역시 이번에도 쇠와 쇠가 갈리는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팔이 변형되어 막았음에도 전혀 흠집조차 나지 않았고.

『 그 반응은 너도 용사의 혈인가. 』

그 말과 함께 재중이 형을 내려다  보는 황제의 변형된 두 팔에 검은 기운이 물씬 끓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막앗!”

재중이 형의 외침과 함께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교차하듯  올려 내 앞을 막았다.

동시에 가짜 황제의 팔에서 검은 기운이 폭사하면서 나와 재중이 형이 형편없이 튕겨져 나왔다.

크윽.

딜레이가 거의 없어.

패턴을 파악하고 말고 할 시간조차 없다.

기술이 걸리면 스킬 딜레이 없이 바로 터진다.

어지간한 반사 신경 없이는 반응도 힘들어 보였다.

튕겨져 날아가던 신형을 멈추려고 곧장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바닥에 찍어 내렸다.

카갸갹!

두 개의 긴 흔적을 내며 한참 뒤로 밀려나다가 겨우 몸을 멈춰 세웠다.

재중이 형도 마찬가지로 레비아탄 스피어를 바닥에 내려찍어서 겨우 버텨냈다.

“이건 완전 괴물이잖아?!”

재중이 형은 어이없어하면서도 그 눈빛만큼은 강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저걸 꼭 잡겠다는 듯.

물론 그렇다고 막 달려들고 그럴 사람은 아니라 자세를 고쳐 잡고 노려보는 중이었다.

우리 둘이 동시에 튕겨 나가자 전사 형도 표정이 확 굳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와 재중이 형 말고는 반응할 사람이 없어 보이는 것이 문제다.

민첩을 한참 더 끌어올리면 억지로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아는지 재중이 형이 오랜만에 인상을 썼다.

“애들은 못 막아. 다시 가자.”

“네.”

【 헤이스트! 】

둘 다 헤이스트를 쓰고는 속도를 확 끌어올린 다음 황제에게 달려들었다.

『 용 처단자. 드래곤 슬레이어까지 가지고 있는 건가! 재밌군. 오거라. 』

그리고 신형이 확 사라지는 황제.

역시.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지금으로는 녀석을 못 잡는다.

가짜 황제의 이동속도가 거의 극에 달해 있었다.

순간 저릿저릿한 것을 느끼고는 드래곤 슬레이어를 들어 오른쪽을 막아서자 가짜 황제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튀어나오듯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가짜 황제도 놀란 눈빛이었다.

그리고 재중이 형도 마찬가지로 내가 막았던 방향 그대로 공격해 들어왔다.

가짜 황제가 재중이 형의 공격을 막더니 이번엔 완전히 뒤로 빠져나갔다.

『 흐음, 정말 내가 보이는 건가. 굉장하군. 』

어떻게 재중이 형은 이걸 잘 아는 거지?

나도 겨우 감으로만 잡아채는 중인데.

“형 저게 보여요?!”

재중이 형이 신기해하는 날 보더니 시선을 살짝 낮추고 아래를 보았다.

“사라지기 전에 발을 끝까지 봐. 발이 틀어지는 방향. 저 녀석 이속은 미친 듯이 빠른데 공속은 그렇게 빠르지 않아. 일단 저 괴상한 이동을 멈춰 세우기만 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

그 잠깐 사이에 가짜 황제의 패턴을 완벽하게 파악해냈다.

역시 최강의 프로게이머.

“그렇다고 방심하지 말고. 연속으로 사라지면 나도 답 없어.”

“알았어요.”

둘 다 바싹 긴장한 채로 무기를 들어 올렸는데 의외로 황제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 흠, 시간 오버인가. 인간의 몸은 한없이 약하군. 이 정도도 버텨내지 못하다니. 』

그러더니 한 팔을 뻗어 바로 옆에 검은 전이문을 하나 만들어냈다.

저건?

색과 형태, 크기가 좀 다르다는 것만 빼면 흡사 미치광이 리치가 만들어내던 전이문과 거의 비슷해 보였다.

『 우리 대결은 다음 기회로 하지. 이 몸은 너무 약해서 말이야. 기대하고 있겠다. 본신의 몸으로 붙는 그날을. 』

그렇게 말하고는 가짜 황제가 검은 전이문을 통해 사라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황제라는 껍데기를 쓰고 있는 중이라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황제가 사라지자 휘하의 기사와 마법사들이 눈에 빛을 잃고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돌발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

《 보상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

《 제국 황제가 사라짐에 새로운 시나리오가 열립니다. 》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지만 이미 그쪽은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오직 지금 사라진 가짜 황제에게만 시선이 갔다.

지금이 베스트가 아니라면…….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대체 저걸 무슨 수로 잡지?

손을 내려다보자 몇 번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양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중이다.

레벨에서 너무 밀렸다.

지금 막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이 시나리오.

도대체 몇 레벨 대의 시나리오인지도 모르겠다.

진짜 운영자가 이를 갈아도 할 말이 없겠는데.

재중이 형도 마찬가지인 듯 양손이 떨리는 중이었다.

“조금 오래 싸웠으면 이쪽이 곤란했겠는데.”

그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고개를 돌아보자 우리 팀도 잔뜩 긴장한 채 검은 문이 사라진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가짜 황제의 그 미친 이동속도를 직접 모두 봤으니까.

다음에도 이렇게 운이 좋을 수는 없겠지.

급하게 레벨을 올려야 하는 이유가 생겼네.

혹은 스탯을 더 끌어올릴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가짜 황제가 사라진 제국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저기 있네요. 레벨과 장비를 올려줄 만한 녀석이.”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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