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3화 가면 벗기기 (3)
“다시 온다!”
숨 돌릴 틈 없이 드래곤의 거대한 아귀가 우리를 덮쳐왔다.
【 비검! 】
그리고 이어지는 브랜디슈 블레이드의 정확한 공격.
오직 브랜디슈 블레이드의 궤적에 모든 심혈을 기울인 결과 다시 한 번 드래곤의 눈을 맞출 수 있었다.
크아아아!!
괴로운 듯 몸부림치며 제동이 걸린 드래곤이 시야 밖으로 멀리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둘 다 환호를 해야 정상이지만 나와 재중이 형의 표정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몇 개 남았어?”
“열 개요!”
“벌써?”
“네, 벌써.”
이 정도까지 몸빵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못 했는데…….
한 번쯤 다운이 되어 정비할 시간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거의 극한까지 쫓기면서 겨우 떨쳐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재중이 형도 어이가 없는지 외쳤다.
“저놈, 설마 경직 면역 아냐?”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이제까지 경직이 면역된 네임드는 단 하나도 없었다.
급소를 연속으로 치거나 크리티컬을 계속 누적시키면 어떤 네임드라도 반드시 경직이 왔다.
하지만 드래곤은 달랐다.
눈이라는 급소에 브랜디슈 블레이드를 날려가면서 계속 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경직되거나 다운되지 않았다.
방어력이 미친 듯이 높거나.
재중이 형 말대로 경직 면역이거나.
둘 중 뭐가 됐던 우리에게는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거리 얼마나 남았어요?”
“조금 더 가면 돼! 그 전에 브랜디슈가 먼저 떨어지려나?”
가장 큰 문제는 스킬.
썬더볼트도 가속 스킬이 내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드래곤 역시 가속이 존재했고.
“가속! 또 와요!”
드래곤의 쫙 펴졌던 날개가 일순간 접히면서 마치, 하나의 쐐기로 변해 우리에게 따라붙기 시작했다.
엄청난 가속으로.
경직은 아니더라도 급소를 맞추면 잠시 움츠러들기에 그 순간을 이용해 거리를 벌렸지만, 저 가속 스킬 하나 때문에 겨우 벌렸던 거리가 좁혀져 버렸다.
아슬아슬한 상황.
썬더볼트의 가속으로는 도저히 떨쳐낼 수 없을 정도의 가속에 재중이 형이 혀를 찼다.
“이건 성능 차이가 심해도 너무 심하잖아!!”
그동안 봐온 것만 해도 재중이 형의 탈것 컨트롤은 거의 신과 같은 경지에 닿아 있었다.
정말 최악의 위기에도 미스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비슷해야 가능한 일.
지금처럼 드래곤과 썬더볼트의 비행 성능이 극심하게 차이가 나서는 위기를 극복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내 쪽에서 브랜디슈 블레이드로 위험한 순간들을 계속 넘겨주지 않았다면 잡혀도 벌써 잡혔을 것이다.
“형! 브레스!”
“칫, 무슨 저놈의 브레스는 쿨도 없냐!”
드래곤의 브레스는 분명히 쿨이 존재했다.
그것도 꽤 긴.
재중이 형이 이렇게 말한 건 그만큼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었다.
“꽉 잡아! 돌린다!”
재중이 형이 외치자마자 바로 썬더볼트의 등의 비늘과 돌기를 강하게 잡았다.
그렇게 썬더볼트를 뒤집자 하늘이 빙글빙글 돌았다.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썬더볼트의 날개 끝을 스치듯 드래곤의 브레스가 지나가면서 후끈한 열기를 전해주고 사라져 버렸다.
물론, 썬더볼트가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내 눈은 드래곤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놓치면 끝이니까.
3.
2.
1.
【 비검! 】
회전에 휘어지면서도 정확한 궤적으로 드래곤의 급소를 맞춘 뒤, 튕겨 나가는 브랜디슈 블레이드를 보면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빗겨나갔으면 완전히 씹혀버렸을 것이다.
그렇게 따라잡히고 떨쳐내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감각이 극에 달할 정도로 날카로워졌다.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다니는.
그것도 시시각각 움직임이 변하는 물체의 단 한 부위만을 포착해서 맞춘다는 것은 말이 쉽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아마 나중에 영상을 돌려보면 나조차도 놀라지 않을까.
애초에 성능에서 한참 뒤처지는 썬더볼트로 드래곤을 끌고 온다는 발상부터가 미친 일이긴 하지.
그런 미친 일을 하면서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인벤을 보자 가지고 온 브랜디슈 블레이드가 모두 떨어져 버렸다.
“다 떨어졌어요! 얼마나 남았어요?!”
“칫, 아직 좀 남았는데!”
“할 수 없어요. 용격 씁니다!”
이젠 스킬을 아끼고 어쩌고 할 여유가 없었다.
일단, 무조건 살아서 이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 최선.
결국 다시 인벤에서 드래곤 슬레이어를 꺼내 들었다.
용격을 써도 저지가 안 되면 진짜 답이 없는데…….
진(眞) 썬더볼트까지 불러내야 겨우 버틸 수 있으려나.
그런 걱정을 하면서 금세 회복을 하고 날아드는 드래곤을 노려봤다.
그때, 갑자기 귓속말이 들어왔다.
<이쁜소녀> 위를 봐요!!
소녀?!
위을 보라고?!
급하게 고개를 올려 위를 보자 챠밍이 몰고 있는 트리스탄이 우리 위를 빠르게 날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쁜소녀가 뒤에 앉아 우리를 보면서 반갑게 손짓했고.
여길 대체 어떻게?
그 순간 트리스탄의 주포가 우리를 씹으려던 드래곤을 향해 쏘아져 내렸다.
물론, 정확하게 급소를 맞추지 못해 잠시 멈추게 만드는 정도에 그쳤지만 잠시 시간을 벌어주기에는 충분했다.
<챠밍> 배달 왔어요!!
배달?
<이쁜소녀> 그럼 지금 떨어뜨려욧!
이쁜소녀의 말과 함께 하늘에서 브랜디슈 블레이드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우리의 비행 궤적 위로.
재중이 형이 그걸 보더니 미친 듯이 웃어댔다.
“크큭, 역시 배달의 나라. 안 가는 곳이 없어.”
나 역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택배도 아니고.
진짜 여기까지 가지고 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렇게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브랜디슈 블레이드들을 썬더볼트를 이동해 하나씩 모두 주워 담았다.
<주호> 덕분에 살았다.
<이쁜소녀> 헤헷, 잘 쓰세요.
<주호> 땡큐. 이제 이탈해. 위험해.
<챠밍> 네, 그럼 우린 먼저 가 있을게요. 조심해서 와요.
그 말과 함께 트리스탄이 급격히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떠나가는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씨익 웃었다.
“이것이 진정한 공중 급유지.”
연료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한 힘을 얻었다.
드래곤을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는 힘을.
“그럼, 2차전 갑시다!”
* * * * *
“꽉 잡아! 하강한다!”
“네!”
하강한다는 재중이 형의 말에 두 손으로 썬더볼트를 꽉 붙들었다.
더 이상 브랜디슈 블레이드를 날릴 필요가 없었기에.
정말 와버렸다.
가르시아 제국으로.
그렇게 구름을 한참 가로질러 통과하자 가르시아 제국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성벽을 따라 많은 NPC가 지키고 있었지만 지금은 조금 사정이 달랐다.
평소보다 병력이 확연히 빠져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럼 빅 엿을 주러 가볼까요? 집 안에 꽁꽁 숨어계신 황제에게.”
“크큭, 가자!”
우리 하강하자 자연스럽게 드래곤도 우리를 따라 가르시아 제국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와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급하게 울려 퍼졌다.
《 돌발 퀘스트 : 가르시아 제국 방어전(특급). 》
- 드래곤을 퇴치하거나 제거.
- 퀘스트 보상.
:
예전에 우리가 풀어놓은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가르시아 제국으로 공격해 들어간 적이 있었다.
바로 방어전이 발동되었는데 지금 역시 마찬가지.
그때와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돌발 퀘스트에 특급이 붙었다는 점.
그만큼 드래곤이 위협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퀘스트 보상은 굳이 살펴보지 않았다.
우리에게 드래곤은 1순위 퇴치 대상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잡으려고 해서 쉽게 잡힐 것 같았으면 이 고생도 안 했다.
그렇게 드래곤이 나타나 돌발 퀘스트가 생기자 채팅창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비상! 돌발 퀘스트 또 나옴!
-미친, 지금 제국에 드래곤 떴는데?!
-뭐야? 왜 제국에 드래곤이 나타나?
채팅창에 올라오는 글들은 모두 다 의문으로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보통 드래곤이 나타나면 거점을 향해 날아가야 정상인데 지금은 전혀 다른 곳에서 나타나 버렸다.
바로 가르시아 제국에.
-아놔, 제국까지 가야 해?
-이제 가기엔 너무 늦은 것 같은데…….
-솔까 용의 대지에서 너무 멀다.
-못 가지. 이번엔.
-에이, 설마 제국이 털리겠어?
-모르지. 드래곤인데.
현재 우리가 드래곤을 끌고 온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혹여나 소문이 퍼지면 절대 안 되는 일이라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쪽 사람들도 대부분 모르는 상태였고.
용의 대지에 있는 유저들은 용의 대지에 그대로 있어 줘야지.
괜히 나서서 방해라도 했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 있기에 아무 정보도 흘리지 않았다.
물론, 가르시아 제국에도 유저가 상당히 많이 있다.
하지만 이 유저들은 아직까지 레벨이나 장비가 높은 수준이 아니어서 드래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 유저들의 방해를 거의 받지 않고 드래곤과 함께 가르시아 제국 성벽까지 날아올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가르시아 제국 성벽 근처로 날아가자 성벽 위에 위치한 NPC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드래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우리 역시 가르시아 제국에게 적대적인 존재니까.
보통 같으면 절대 들어갈 일이 없겠지만 지금 우리는 가르시아 제국 내로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드래곤을 가르시아 제국 안으로 배달하려면.
“형! 조금만 더 파고들어요!”
“꼭 그럴 필요는 없겠는데?”
“네?!”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씨익 웃더니 썬더볼트를 급격하게 위로 상승시켰다.
그리고 우리가 있던 자리로 드래곤의 강력한 브레스가 뿜어져 지나가더니 가르시아 성벽 한쪽을 완전히 증발시켜 버렸다.
“적의 적은 같은 편 아닌가?”
“이럴 때 쓰는 표현은 아닌 것 같은데요.”
“뭐, 결과만 좋으면 됐지.”
우리를 노렸던 드래곤의 브레스가 빗나가면서 오히려 방어 시설이 있는 제국의 성벽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지나가기 딱 좋게.
이걸 같은 편이라고 억지로 우기면 가능하려나.
드래곤 덕분에 너무 쉽게 부서진 성벽을 넘어 가르시아 내로 비행해 들어갔으니까.
당연히 우리를 따라 드래곤도 들어왔고.
드래곤을 막아주리라 생각했던 성벽이 너무 허무하게 뚫리자 유저고 NPC고 할 것이 없이 난리가 나버렸다.
애초에 성벽의 방어 시설 정도로 드래곤을 막는다는 것이 웃기는 일이지.
성내로 들어오자마자 방어 NPC들의 반응을 제일 먼저 살폈다.
우리는 적대 길드.
드래곤은 퀘스트 상에 명시된 적대 네임드.
과연 어느 쪽을 우선시할까?
순간 우리와 눈이 마주친 대다수 방어 NPC들에게서 혼란이 온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혼란도 잠시.
다시 한 번 드래곤이 우리에게 브레스를 뿜어내다가 가르시아 성내의 시설물들을 죄다 녹여버리자 NPC들의 태도가 바로 돌변했다.
그리고 드래곤 주변에 있던 모든 방어 NPC가 일제히 드래곤을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어 NPC는 NPC일 뿐.
드래곤에게 어떤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다.
당연히 우리에게 붙어 있던 드래곤의 어글이 전혀 넘어가지 못해서 계속 우리를 따라왔고.
거기다 멀리서 달려오는 NPC들은 우리를 공격하기 일쑤였다.
“이거 너무 우릴 좋아하잖아?”
“정확히는 저겠죠.”
이미 날아오면서 어글을 먹을 데까지 먹어둔 상태다.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드래곤이 다른 유저나 NPC들을 돌아보지도 않을 터.
랜덤으로 어글이 튀는 경우야 있겠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결국, 드래곤이 내게 오게 되어 있었다.
멀리 중앙에 위치한 제국 본성을 바라보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녀석들은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고.
거기다 일부 방어 NPC는 우리를 공격하기까지.
“음, 플랜 B로 가죠.”
“역시 그래야 하나? 좀 아까운데.”
“떼어줄 만한 녀석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간 우리가 먼저 퍼지겠어요.”
“할 수 없지. 가자.”
재중이 형의 동의가 떨어지자 바로 미치광이 리치를 불러냈다.
【 미치광이 리치 소환! 】
그리고.
【 전이문 오픈! 】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재중이 형과 함께 바로 전이문으로 내뺐다.
쿠오오오오!!
전이문 너머로 드래곤의 어마어마한 괴성이 들려오는 것을 들으면서 전이문을 닫아버렸다.
어글을 잡고 있던 내가 빠지면 어떻게 될까?
답은 뻔하다.
드래곤을 공격하고 있는 수많은 NPC와 유저에게 어글이 넘어가게 되겠지.
“자, 이제 감상이나 해볼까요?”
드래곤아 날뛰어라.
제국이 폭삭 망가질 때까지.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