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7화 희대의 사기꾼 (1)
르아 카르테를 방송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스칼렛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스칼렛> 생각보다 덤덤하시네요. 엄청 놀랄 줄 알고 기대했었는데…….
<주호> 그렇게 보이시나요? 저 지금 꽤 놀랐는데요?
놀랐다기보다는 어이가 없는 쪽에 가까웠다.
르아 카르테를 얻었다는 것만 해도 믿기 힘든데 그걸 공개했다고 하니까.
<스칼렛> 한 번 보실래요? 지금 게시판 터지기 직전이에요. 올라온 영상 때문에.
우리는 레비아탄을 잡는다고 정신이 없던 사이 다른 곳에서는 르아 카르테로 난리가 난 건가.
실제로 조회수가 300만이 넘어가고 있었다.
글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주호> 일단 한 번 보고 이야기하죠.
고개를 돌려 전사 형을 바라보자 이미 찾았는지 바로 게시판을 띄워주었다.
그리고 가장 상단에 우리가 찾던 글이 당당하게 올라와 있었다.
< 르반트 서버 유일 템 최초 공개! >
르반트 서버면 2서버인데?
직접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우리 서버 다음으로 유저 수가 많은 곳이라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2서버라 부르고 있는 중이고.
같은 시기에 오픈을 했으니까 실질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고 한다.
지금에 와서 보자면 네임드 공략 면에서 우리 필리언 서버보다 못한 것이 현실.
아니.
그냥 이건 모든 서버가 1서버에 밀린다고 보면 된다.
당장 레비아탄만 봐도 저쪽은 손도 못 대는 네임드인데 우리는 이미 잡아버렸다.
너무 차이가 나서 다른 서버에 딱히 큰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 시점에 르아 카르테를 얻었다라…….
다른 서버 수준도 많이 올라왔구나.
르아 카르테를 벌써 구할 수 있을 정도라니.
아마 한 곳만이 아니라 다른 곳도 소식이 들려올 것 같았다.
우리 서버를 빼고 다른 서버들의 진행 속도는 대부분 비슷비슷했으니까.
일단, 르아 카르테를 얻은 것까지는 우리와 전혀 상관없었다.
서버 당 ‘하나’지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가 얻게 될 것이다.
그러려고 만들어둔 유일 템이기도 하고.
문제는 유일하다는 사실과 함께 르아 카르테의 스펙을 공개했다는 점이다.
얻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보여주기까지.
로가슈 왕성에서 수여받는 장면은 겉으로 보기엔 굉장히 웅장했다.
『 +0 르아 카르테 (유일) / 출혈 0 타격 0
- 옵션 1
- 옵션 2
- 추가 봉인 / 미완성 』
딱 초기 형태의 르아 카르테.
여리여리한 외형의 한 여성이 르아 카르테를 수여받고는 흡족한 표정으로 투명에 가까운 검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그런 뒤에 곧장 다른 무기를 흡수시켜서 성장시키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무기 공격력과 무기 옵션을 그대로 흡수하는 영상을 보고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미친.
저걸 다 공개하면 어쩌자는 거야?
* 서버에 단 한 자루만 존재함.
그리고 서버에 딱 하나만 존재한다는 것만 공개한 채 다른 설명을 모두 모자이크 처리했다.
-오우야, 유일 템 지린다.
-다른 무기를 흡수해?
-미쳤네.
-저거 조합하기에 따라 정말 미친 검이 될 듯.
-근데 유일 템이면 정말 서버에 하나밖에 없다는 말이지?
-그런 듯. 설명 보니까 딱 적혀 있네.
-가지고 싶은데 이제 못 얻는 거?
-못 얻지.
-진짜 가지고 싶다아ㅏㅏ!
-혹시 저거 안 팜?
-너 같으면 팔겠냐? 거기다 성장 무기잖아.
-어후, 진짜 부럽네.
-그러고 보면 주호 들고 다니던 무기 저거 아냐? 전에 10강 만들었던….
-아, 맞네. 그때 분명히 그랬던 듯.
-주호는 과연 무슨 옵션 집어넣었을까?
-네임드 템 많이 먹어서 옵션 진짜 장난 아닐 듯.
-이러면 서버 애들 르아 카르테 드랍시키려고 죄다 덤벼드는 거 아냐?
-그럴지도. 단 한 자루밖에 없으면 나도 눈 돌아가겠다.
-주호가 죽어주려나? 죽는 거 한 번도 못 봄.
-ㅇㅇ. 하는 거 보면 사람 아님. 길드 사람들도 짱짱하고.
-근데 유일 템이라면 다른 템도 있는 거 아닐까? 드래곤 슬레이어도 유일 템 아님?
-진짜 나긴 난 놈이네.
게시판 글들을 읽어보니 엉뚱한 불똥이 내게 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부 스펙만 공개되지 않았지,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동시에 들고 있는 유일한 유저였으니까.
그냥 다른 검보다 좀 좋은 검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을 텐데 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스펙을 공개함으로써 내 쪽이 굉장히 불편하게 되어버렸다.
“피곤하게 됐네요.”
전사 형도 옆에서 한숨을 쉬었다.
“저 미친놈 때문에 고생길이 열리는 기분이야. 아, 놈은 아닌가.”
반면에 우리 옆에서 팔짱을 끼고 구경하던 재중이 형은 웃음을 지었다.
“뭐, 재미는 있겠네. 그동안 좀 너무 심심한 것도 있고. 예전엔 하루가 멀다하고 쟁이었는데 말이지.”
그 모습을 본 우리 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보니 이 형 싸우는 거 꽤 좋아했지.
요즘은 너무 벌어져서 싸울 일 자체가 없었는데 이젠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저 르반테 서버의 여성 유저가 잔잔하던 수면 위에 돌을 던진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영상을 좀 더 보다가 이상하게 낯익은 느낌이 자꾸 들기 시작했다.
뭐지?
르아 카르테를 들고 있는 여성 유저의 미소가 어디서 본 것 같은 미묘한…….
어디서 봤더라?
잠시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스칼렛이 날 불렀다.
<스칼렛>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르아 카르테나 드래곤 슬레이어 팔 생각은 없으시죠?
스칼렛도 딱히 정말 사려고 물어본 것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 예상은 했다.
르아 카르테의 스펙이 공개되는 그 순간부터.
바로 스칼렛에게 고개를 저었다.
<주호> 아뇨, 팔 수도 없고. 팔아서도 안 되는 물건이라서요.
<스칼렛> 팔 수 없다는 말은 알아듣겠는데 팔아서는 안 된다니요?
<주호> 이건 비밀이라, 알려드리긴 좀 그래요. 아무래도 저쪽에서도 모자이크로 가려놔서.
유일 템은 팔아서는 안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있었다.
스펙적인 문제를 떠나서.
<스칼렛> 흐음, 그렇군요? 알았어요.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다리를 좀 놓아달라고 해서 이야기한 거예요.
<주호> 관심이라…… 전에 말한 그 사람들?
<스칼렛> 뭐, 그렇죠? 거절했다고 잘 알아듣게 설명할게요.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라 좀 귀찮긴 한데.
이쪽도 좀 피곤하겠는데…….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이 어깨만 살짝 들어 올릴 뿐.
딱히 불만 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리고 스칼렛에게 한마디를 했다.
<불멸> 뒤에서 그만 놀고 앞으로 좀 나와 보시라고 해. 언제 제대로 한 번 깨드린다고.
그 말에 스칼렛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스칼렛> 그랬으면 얼마나 편하겠어요.
저쪽도 나름 고충이 있는 것 같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써줄 필요는 없고.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자 이번엔 뜻밖의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설?
<전설> 오랜만입니다.
<주호> 안 팔아요.
설마 이렇게 빨리 대답을 듣게 될지 몰랐다는 듯 전설이 헛웃음을 지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전설> ……조건은 한 번 들어보시죠.
<주호> 판매 불가에요. 만약 팔았다고 해도 욕먹을 게 뻔해서. 팔 수도 없어요.
<전설> 그게 무슨…….
<주호> 아무튼 안 됩니다.
그 뒤로도 좀 옷깃이라도 스쳤던 대부분의 길드에서 연락이 와서 가격을 제시했다가 대차게 까이고 갔다.
그중에서 정말 혹할 만큼 크게 부른 곳이 있긴 했지만…….
정말로 혹했다.
거래만 성립됐다면 역대급 거래가 됐을지도 모르고.
게임사에 길이 남을 역사라…….
“이거 팔았다가는 정말 개욕에 쌍욕까지 먹죠.”
재중이 형도 다 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죽으면 날아간다는 걸 모르니까 저렇게 덤비지.”
이게 핵심이었다.
사망 시 분해되어 사라진다.
기껏 사 갔는데 실수로 바로 죽기라도 하면 그땐 정말 피곤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사간 쪽이나 판 쪽이나.
둘 다.
그리고 팔 수도 없는 것이 우리 팀 전력의 상당 부분이 르아 카르테와 드래곤 슬레이어에 몰려 있었다.
이걸 판다는 건 게임을 접겠다는 말과 동일하니까.
팔 수도 없고.
팔아서도 안 되는 그런 템이다.
내가 쭉 끌고 가야 하는.
“설마 화련보다 더 부르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아아, 그건 나도 좀 놀랬다.”
중간에 화련도 연락이 왔었고… 심지어 화련보다 더 높게 부른 유저가 무려 다섯 명이나 존재했다.
단 하나밖에 없다는 템의 값어치가 이 정도였나 싶기도 하고.
숨겨진 재력가들이 아직 많다는 것에 더 놀랐다.
돈의 잔치에 놀란 막내별이 누군가 볼까 봐 낮게 목소리를 낮추고는 우리를 보면서 말했다.
“요즘 회장님들이 취미로 하신다던데 혹시 그쪽 아닐까요?!”
“설마요.”
그 말에 잠시 이쁜소녀를 바라봤는데 이쁜소녀는 뜻을 알 수 없는 미소만 해맑게 지어 보였다.
확실히 저쪽 회장님이 참전하시면 피라미들은 그냥 다 아웃이다.
휘두르는 돈의 단위가 다르니까.
설마하니 그렇게까지 하시려고…….
머릿속에서 그런 상상을 지운 뒤, 길드 건물을 나설 준비를 했다.
“제국? 아이템 제작? 어느 쪽 먼저 할까요?”
내가 재중이 형에게 묻자 잠시 생각을 하던 재중이 형이 한쪽을 정해줬다.
“일단 제작 템부터 먼저 하자. 제국 쪽 보상이야 언제든 받을 수 있지만 이쪽은 드워프 왕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까.”
“네, 그럼 가죠.”
인벤에 레비아탄의 비늘을 모두 챙긴 뒤 바로 일어났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옛 드워프 지하 왕국이 있던 곳.
전에처럼 뛰어내릴 필요는 없어서 천천히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보아하니 듬성듬성 드워프가 한 명씩 보이는 것을 봐서는 완전히 사라지고 한 것 같진 않았다.
그렇게 최하층에 도착하자 드워프의 왕이 기다렸다는 듯 우리는 반겨주었다.
정확히는 우리가 아닌 레비아탄의 비늘을.
『 진귀한 재료구나. 이것만 있다면 다시 드워프 왕국 재건을……. 』
말은 저렇게 하는데 결국은 드래곤을 잡아야 하는 문제라…….
나중에 꼭 재건해드릴게요.
“제작 목록.”
친밀도가 높아서 그런지 드워프의 왕 카르바할이 아무렇지도 않게 레비아탄 비늘로 만들 수 있는 무기와 방어구들을 보여주었다.
방어구도?
무기만 생각하고 왔는데 생각 이상이다.
방어구는 이미 한 번 봤던 수룡갑.
재중이 형이 그걸 보더니 씨익 웃었다.
“레비아탄 또 털러 가야겠네. 비늘이 잔뜩 필요하겠어.”
풀셋을 만들려면 정말 많은 비늘이 필요했다.
“다음 리젠 쿨 좀 알아봐 주세요.”
전사 형에게 말했더니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 팀이 무기 제작 목록을 보면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전사 형이 뭔가를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잠깐만. 지금 난리 났다.”
“네?”
우리 팀이 모두 고개를 돌려 전사 형을 바라봤다.
“르반테 서버 지금 난리 났어.”
그러면서 우리에게 한 BJ 방송을 돌려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방송 한가운데 사람들을 잔뜩 모아놓고 높은 상단에서 연설을 하는 누군가가 보였다.
동시에 우리 쪽 서버 채팅창도 갑자기 엄청 빠른 속도로 글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무슨…….
그런데 방송 한가운데 나오는 여인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거 어디서 한 번 봤던 장면인데?
-자, 여러분 총알들 두둑하게 들고 오셨죠? 그럼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할게요!
그 여성의 미묘한 웃음을 한참 봤더니 누군지 이제 기억났다.
기억 속 누군가와 완전히 겹치는…….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먹튀 길마!”
예전에 유적지를 통째로 팔아넘긴 그 여자.
머리 색, 얼굴, 체형, 생김새는 전혀 다르지만 표정과 입가의 미소가 완전히 닮은 여자가 크게 외쳤다.
-르아 카르테! 최초의 유일 템 경매를 시작합니다!
르아 카르테를 판다고?
저 여자.
완전 미쳤어.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