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4화 검의 비 (4)
“흡수된 거야?”
하늘에서 떨어져 죽은 레서 드래곤을 먹어치워서 그런지 재중이 형은 확인이 불가능한 것 같았다.
“카운터가 올라갔어요.”
“흠, 이렇게 잡아도 카운터가 오른다 이거지?”
레서 드래곤의 죽음에 제일 크게 기여를 한 것은 내가 아니다.
날개를 관통시켜 추락하게 만든 원인만 제공했을 뿐.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내가 잡은 것처럼 되어 버렸다.
“일단 눈앞에 녀석들부터 잡자.”
이미 눈을 시뻘겋게 뜬 세 마리의 레서 드래곤이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중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쉽게 잡았다고 해서 레서 드래곤이 쉬운 몬스터는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이곳에서는 ‘드래곤’을 제외하고는 가장 포악하고 강력한 존재다.
지금도 우리를 씹어 먹기 위해 커다란 입을 쩍, 벌리면서 날아오는 중이고.
드레이크는 레서 드래곤에 비하면 아기 새에 불과할 정도로 레서 드래곤의 크기는 컸다.
검은 광택으로 무장한 단단한 비늘.
좌우로 몇 미터나 쫙 펼쳐진 날개.
그보다 더욱더 긴 꼬리.
이미 크기만으로 드레이크는 완전히 압도한 상태.
몸의 형태 자체도 유선형으로 길게 쭉 빠져 있었고.
드레이크보다 전투에 훨씬 유리한 몸체를 가졌으며 드래곤에게서나 보던 두 개의 커다란 뿔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뿔은 절대 장식이 아니라는 듯 동시에 스파크가 일면서 레서 드래곤의 입가에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드래곤처럼 세 개의 마법진이 돌아가진 않고 한 개의 마법진만 나타났지만 저것만으로도 무엇을 하려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거죠?”
“그러게. 이것들도 브레스를 쓰냐?”
“전에 악마형 케르베로스와 싸울 땐 안 쓰던데, 바뀌었나 보네요.”
예전 거점을 만들어 몬스터들을 유인하고 악마형 케로베로스랑 서로 부딪치게 만들었을 때.
육탄전으로 싸웠기에 당연히 그런 식으로 싸울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모양이었다.
아니면 원래 이런 식으로 싸울 수도 있고.
세 마리의 레서 드래곤에게서 각각 브레스가 준비되면서 주변 공기를 모두 빨아들였다.
잠시의 차징 후, 온전하게 모인 브레스가 입가에서 터져 나오려는 순간.
“아무튼 우리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지. 꽉 잡아라.”
신호와 동시에 재중이 형의 허리를 꽉 잡자마자 몸이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속이 출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허공에 붕 뜨는 느낌.
아니나 다를까.
재중이 형이 썬더볼트의 머리를 수직으로 내려 급하게 하강하기 무섭게 우리 머리 위로 세 발의 미니 브레스가 주변 공기를 뜨겁게 태우면서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브레스의 속도.
타들어 가는 위력.
강력한 풍압.
단지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도 이 모든 것이 이제껏 보던 그 어떤 마법보다 강력했다.
그 증거로 브레스 중 한 발이 우리 팀이 있던 둥지 근처를 스치고 지나갔는데 그 부분의 땅이 완벽하게 증발해 버렸다.
완전히 녹아버렸나?
작다고는 해도 레서 드래곤도 드래곤.
미니 브레스 역시 절대 쉽게 볼 순 없었다.
그냥 맞으면 추락 좀 하겠구나, 하는 정도는 아득히 넘어갔다.
“형, 저거 스치면 죽겠는데요?”
“안 스치도록 해야지.”
아예 한 방에 죽지야 않겠지만 체력 스탯이 낮은 내가 맞으면 바로 아웃이 될 것 같았다.
전사 형은 두 방….
지금은 어쨌거나 맞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나와 재중이 형만큼 놀란 우리 팀이 바짝 긴장한 듯 경직된 모습이 보였다.
전사 형이 과연 저걸 막을 수 있을까?
브레스가 우리 팀이 서 있는 둥지 위로 날아간다면 어찌 됐든 전사 형이 막아내야 할 텐데.
일단, 아이기스의 방어력이 워낙 사기라 어쩌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만약 아이기스가 없었다면 벌써 우리 팀을 내려보냈을 것이다.
“저쪽 걱정은 나중에 하고. 일단 우리부터 살고 보자고.”
네임드인 드래곤의 브레스와 다르게 레서 드래곤의 브레스는 쿨이 돌아오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미니 브레스를 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입을 벌리면서 브레스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육탄전이 전부인 드레이크와는 완전히 다르다.
지금까지 한 공격이 전부 브레스인 걸 보면.
이쪽은 육체형이 아닌 오히려 마법형에 가까워 보였다.
물론, 드레이크와 몸으로 싸워서 이쪽이 질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체급 차이가 있으니까.
“꽉 잡아. 다시 떨어진다.”
순식간에 브레스가 차징되어 쏘아지자 재중이 형이 공중 곡예를 하듯 썬더볼트를 롤링시키면서 다시 급하강시켰다.
크윽.
이번에는 각기 다른 방향에서 날아온 브레스를 피하기 위해 억지로 무리를 해가면서 썬더볼트를 좌우로 비틀어대니 뒤에 매달려 있는 것만 해도 힘이 들었다.
그렇게 레서 드래곤이 연속으로 쏜 브레스를 피하자 잠시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세 마리의 레서 드래곤에게 뒤를 잡혀서 도망을 다녔다.
저 브레스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그런데 저 세 마리 틈으로 뛰어들기가 참 난해했다.
마치, 서로를 지켜주듯 적당한 거리를 벌리고 날아다녔으니까.
혹시라도 하나가 공격당하면 바로 다른 녀석들이 대응하기 딱 좋은 그 정도의 거리를 계속 유지하자 재중이 형도 녀석들 사이로 파고들기 버거워하는 모습이었다.
뒤를 한 번씩 돌아보면서 거리를 재던 재중이 형이 난처하단 표정을 지었다.
“이놈들 봐라? 제법 하잖아?”
“거리를 안 주네요. 한 마리만 시선을 끌어주면 쉽게 갈 것 같은데…….”
그때 전사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방패전사> 나르샤가 시선을 끌 거다. 그럼 바로 파고들어.
<주호> 가능해요?
<방패전사> 나르샤가 맞출 수 있다고 하네. 방어는 내가 하고. 여차하면 소녀도 있고.
<주호> 그럼, 부탁 좀 할게요.
연락이 끝나자 재중이 형이 물어왔다.
“전사냐?”
“네. 지금 시선 끌어준다네요.”
“호오? 그럼 고맙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팀이 있던 둥지에서부터 강력한 파공음이 한 번 들려오더니 곧장 레서 드래곤 중 한 마리에게 화살이 날아갔다.
쒜엑!
브랜디슈 롱보우가 워낙 좋아서 그런지 거리가 꽤 떨어져 있음에도 힘을 잃지 않고 계속 쏘아져 갔다.
그렇게 날아간 화살이 빠르게 날아다니던 레서 드래곤의 몸체 비늘에 가서 그대로 꽂혔다.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는 레서 드래곤을 연속으로 정확하게 맞췄다는 것만 해도 진짜 대단하네.
어지간한 센스로는 녀석의 근처도 스치지 못할 텐데 나르샤 누나는 당연하다는 듯 해냈다.
다만.
캉!
분명히 비늘에 화살이 튕겼는데 오히려 쇠에 부딪힌 것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화살은 당연하게도 관통이 되지 않은 채 옆으로 튕겨 나갔고.
처음엔 크리티컬과 함께 관통 추가가 되어 레서 드래곤을 떨어뜨린 모양인데 이번엔 그렇게까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화살이 맞자마자 나르샤 누나 쪽으로 레서 드래곤의 어글이 바로 돌아서더니 곧장 우리를 포기하고 둥지를 향해 날아가 버렸다.
확실히 우리 쪽에서는 제대로 공격을 넣은 적이 없으니까.
지금은 조금만 대미지를 주더라도 어글이 쉽게 넘어간다.
그렇게 날아간 레서 드래곤들이 둥지와 거리를 좁히자마자 바로 브레스를 뿜어냈다.
그때, 브레스가 쏘아짐과 동시에 전사 형이 앞으로 뛰쳐나오더니 아이기스를 앞으로 내밀면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브레스가 날아들자 아이기스를 절묘한 각도로 기울여서 하나씩 막아내기 시작했다.
물론, 하나를 막을 때마다 전사 형이 뒤로 쭉 밀려 나가긴 했지만 아이기스의 면의 기울기로 브레스의 궤적을 아슬아슬하게 꺾어버린 것은 대단한 기술이었다.
거기다 밀려나는 전사 형의 뒤에선 이쁜소녀가 등을 받치면서 둥지 바깥으로 튕겨 나가지 않게 버텨주고 챠밍과 막내별이 타이밍 좋게 힐을 계속 난사해주면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체력을 계속 끌어올려 주었다.
한 발.
두 발.
세 발.
그렇게 모든 브레스를 각기 다른 각도에서 아이기스를 기울여 허공 위로 날려 보냈다.
그 덕분에 뒤에 있던 우리 팀이 모두 무사할 수 있었고.
아마 전사 형이 아니었으면 이미 둥지 위가 초토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재중이 형이 그 광경을 보더니 눈을 껌뻑거리면서 놀라워했다.
“어우야, 그걸 전부 버텼어?”
“아이기스 각도를 꺾어서 반사해냈네요.”
온전한 반사는 아니지만, 아이기스를 수직으로 세워 정면에서 맞는 것보다 대미지를 훨씬 적게 먹었다.
그런 기술이 있기에 브레스를 세 발이나 막을 수 있었고.
일단 아이기스 차제가 워낙 방어력이 높다.
기존 방어구와는 차원이 다른 방어력을 가져서 대미지 감소를 많이 해주었다.
아이기스에 달린 옵션들 덕분에 피통이 잔뜩 늘어서 브레스를 버틸 체력이 되었고, 무거운 아이기스를 드는 것도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드래곤형 피해 감소가 30%, 치명타 피해 감소가 50%나 붙어 있어서 브레스의 피해가 대폭 감소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브레스를 완벽하게 막아낸 뒤 전사 형이 바로 어글 스킬을 사용해 나르샤 누나에게 가는 레서 드래곤의 시선을 다시 붙잡아두었다.
이제 레서 드래곤들이 우리 뒤를 따라다니면서 공격을 할 때보다 훨씬 난이도가 줄어들었는데?
나르샤 누나의 원거리 저격.
전사 형의 버티기.
이쁜소녀의 도움.
챠밍과 막내별의 회복.
다섯이서 둥지를 전진 기지 삼아 확고하게 버텨주자 사냥이 바로 안정감을 찾아갔다.
“시선을 끌어 줬으니 처리하죠.”
내가 말하기 무섭게 재중이 형이 썬더볼트를 몰아 레서 드래곤 중 하나의 등 위로 바싹 붙여주었다.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바로 레서 드래곤의 등 뒤로 뛰어내리며 르아 카르테를 강하게 틀어박았다.
콰직!
등 뒤 비늘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크리티컬이 터졌는지 잠시 주춤하더니 레서 드래곤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그 상태로 팔을 뻗어 녀석의 몸과 날개가 이어지는 관절 부분을 드래곤 슬레이어로 빠르게 내려찍었다.
콰득!
이번엔 좀 더 타격감 있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날개가 곧장 틀어지면서 옆으로 뒤틀렸다.
그리곤 날개가 뻣뻣하게 굳기 시작했다.
드래곤 슬레이어와 르아 카르테가 있는데 굳이 브랜디슈를 쓸 필요는 없지.
오히려 관통 옵션이라면 이쪽이 훨씬 위다.
둘의 옵션을 합쳐 드래곤 대상으로 한정하면 80프로나 되는 관통 확률을 가지고 있었다.
드래곤 슬레이어로 내려찍은 것만 해도 레서 드래곤을 추락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걸로 끝이 아니지.
바로 손을 뻗어 브랜디슈 블레이드를 전사 형에게 시선이 끌린 또 다른 레서 드래곤 쪽으로 쏘아 보냈다.
퍼퍼퍽!
열 자루의 브랜디슈 블레이드가 빠르게 날아가더니 레서 드래곤의 옆구리와 날개에 연속으로 가서 틀어박혔다.
몇 개는 튕겨 나왔지만, 30%의 확률이 있다 보니 하나의 블레이드의 날이 정확하게 날개를 관통해서 찢어냈다.
케에엑!
크에엑!
내가 올라타고 있던 레서 드래곤과 브랜디슈 블레이드를 맞은 레서 드래곤이 동시에 추락하자 바로 발을 박차고 뛰어 옆에 날아든 재중이 형의 썬더볼트로 옮겨 탔다.
그리고 다시 손을 뻗어 브랜디슈 블레이드를 회수해 마지막 남은 레서 드래곤까지 지상으로 추락시켜 버렸다.
그렇게 주변에 레서 드래곤이 모두 떨어지자 둥지로 내려왔다.
- 레서 드래곤 흡수 2/1000 - 3단계
- 레서 드래곤 흡수 3/1000 - 3단계
- 레서 드래곤 흡수 4/1000 - 3단계
좋아.
이로써 확실해졌다.
이건 통한다.
“전사 형, 고마워요. 덕분에 쉽게 했어요.”
전사 형이 자신감 있게 웃으면서 양쪽으로 날개가 붙어 있는 아이기스를 들어보였다.
“여기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계속 떨어뜨려.”
“네, 그럼 고생 좀 해주세요.”
“어디 보자, 여기서 보이는 둥지가 네 개니까…….”
전사 형 말대로 우리가 서 있는 둥지 근처로 보이는 다른 둥지가 총 네 개였다.
통상 네다섯 마리 정도가 한 둥지에 붙어 있다고 생각했을 때, 쉬지 않고 계속 사냥한다면 얼추 리젠 속도에 맞출 수 있겠는데?
“그럼 계속 끌어올게.”
나르샤 누나가 브랜디슈 롱보우로 주변 둥지에 있는 레서 드래곤들을 끌고 오면 전사 형이 막아주고 나와 재중이 형이 날아다니면서 계속 격추시켰다.
검의 비.
브랜디슈가 온종일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검의 비로 레서 드래곤을 끝없이 낙하시키며 물약이 다 떨어지면 몇 번이나 거점을 오가기를 반복해 기어코 드래곤 슬레이어의 요구 조건을 모두 채워 넣었다.
이 불가능할 것만 같던 미션을 다 끝내자 다들 자리에 퍼져버렸다.
누가 이런 조건을 걸어놨는지 몰라도 사람이 할 짓은 아니지 진짜.
검의 비가 없었으면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 레서 드래곤 흡수 1000/1000 - 3단계
《 드래곤 슬레이어가 3단계에서 4단계로 진화합니다. 》
그리고 또 한 번 진화한 드래곤 슬레이어에 새로운 옵션이 붙어 있었다.
“용격?”
뭔가 스킬이 붙어서 기대를 했지만 기대했던 것보단 이름이 너무 단순한 느낌이 들었다.
드래곤 슬레이어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름을 보다가 설명을 읽어보고는 그만 납득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브레스를 흡수하다니.
이건 정말 용 잡는 검이 확실하구나.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