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9화 연합 낚시 (5)
몬스터의 포효에 주변 대지 전체가 진동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당장 여기 드워프 지하 왕국에서도 이런 위력이면 거점 주변은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이 초유의 사태에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돌발 퀘스트?
-드워프 지하 왕국은 또 어디야?
-어어?! 땅이 울린다!!
-와씨, 고함 소리 때문에 땅이 울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아놔, 한참 드레이크하고 싸우고 있었는데!
-근데 너희, 이 소리 어디서 많이 안 들어봤냐?
-설마?!
-드. 래. 곤!!
-미친, 무슨 드래곤이 이렇게 자주 나타나?
지금 용의 대지에서 사냥하는 유저 중 대다수가 말라버린 숲에서 사냥을 하다 넘어온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절대 모를 수 없다.
말라버린 숲 상공을 날아다니던 드래곤의 위엄을.
분명히 드래곤이 날아다니면서 포효도 몇 번 내질렀을 것이고.
거기다 포효에 이은 대지의 진동이 이곳에서만 일어났을 리는 없고.
당장 거리가 좀 있지만 분명히 가까이에서 들어본 유저들은 바로 구분할 수 있겠지.
채팅창만 봐도 드래곤임을 눈치채고 놀라는 모습들이 바로 보였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그리고 돌발 퀘스트가 단순히 우리에게만 주어지는 퀘스트는 아닌 것 같다.
전에 로가슈 왕성에서는 그러려니 했는데 아마도 이런 수복 퀘스트는 전체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닐까?
물론, 한참 뒤에 말이다.
누구 하나 돌발 퀘스트의 방아쇠를 당기면 일단 주변 유저는 다 함께해야 하는 그런 방식으로 되어 있었다.
드워프 지하 왕국을 알게 되는 것은 좀 아쉽지만.
그렇다고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어차피 알아봐야 당장 이용도 못 하고.
드워프 지하 왕국의 돌발 퀘스트를 받자마자 바로 드래곤이 포효를 한 방향과 반대 방향을 향해 썬더볼트를 몰았다.
그리고 우리 팀도 드레이크를 꺼내서 뒤를 따랐고.
드래곤과 전투?
아직은 이르지.
우리 쪽 준비가 덜 됐으니까.
지금은 멀리 벗어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삼십육계 줄행랑이라고.
그렇게 한참 거리를 벌리고 난 뒤, 먼 산맥 어느 곳에서 착지를 했다.
그리고 우리 팀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자, 다들 나가죠?”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입가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말했다.
“크큭, 아, 진짜. 일만 잔뜩 벌려놓고 나가자고?”
원래는 상황을 지켜보는 쪽으로 이야기가 나왔는데 생각해보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지만 좀 더 생생하게 보기 위해 싸움에 휘말리는 일은 사양이다.
그리고 더 생생하게 가까이서 볼 방법이 있으니까.
“딱히 남아 있어 봐야 할 일이 없잖아요? 괜히 여기 있다가 불똥 튀면 곤란하죠.”
“하긴 그쪽이 더 좋겠네. 구경이야 BJ들이 알아서 방송해줄 거고.”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이 초유의 사태도 좋다고 방송을 해줄 BJ가 있는데 굳이 불구덩이로 들어갈 필요는 전혀 없지.
챠밍이 옆에서 역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히잉, 팝콘은 여기서는 못 먹잖아요.”
심지어 이쁜소녀까지.
“전 치맥!”
그 말에 모두가 웃어버렸다.
“어서 가죠. 늦으면 정말 말려들지도 몰라요.”
드래곤의 공격 판정이 얼마나 멀리 나는지는 몰라도 괜히 전투 상태라도 걸리면 이쪽이 피곤해진다.
그렇게 하나둘 접속을 종료하고 아예 VRS 바깥으로 나와 버렸다.
접속 시간이 충분히 남음에도 이렇게 종료한 적이 언제더라?
근래에 전혀 없던 일이라 생소하기도 하고.
접속을 종료하자마자 바로 스마트폰으로 몇몇 BJ의 영상을 검색했고 적당한 시점의 BJ 방송을 열고는 시청을 했다.
화질 좋고.
시야 좋고.
각도 좋고.
심지어 BJ의 목소리도 나쁘지 않았다.
딱 팝콘 각이네.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드디어 먼 산맥에서 드래곤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산맥이 순간 까맣게 덮일 정도의 거대한 덩치가 날아다니는 모습은 언제 봐도 장관이다.
남성 BJ도 차분하지만 한편으로는 긴장된 목소리로 진행을 했다.
“설마 했지만, 정말 드래곤입니다. 말라버린 숲에서 유저들을 싸그리 태워 버린 바로 그 녀석이군요.”
처음에 봤을 땐,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드래곤 레어에서는 머리를 비롯한 목 부근까지 밖에 목격을 못 해서 아쉬운 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처음부터 녀석의 형체를 전부 감상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편안하게 앉아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영상에 절로 흥이 났다.
이 맛에 인터넷 방송을 보는 건가?
방송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언제 한 번 방송을 해봐?
방송도 나름 재밌을 것 같기는 한데…….
핵심 정보를 푸는 영상만 아니면 이것도 괜찮을 것 같기는 하고.
“갑자기 드래곤이 왜 나타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군요. 과연 저 녀석을 잡을 수 있을까요?! 아! 지금! 비공정들이 하늘 위로 잔뜩 떠오르고 있습니다!”
BJ가 지금은 거대한 성처럼 변해 버린 거점 안에서 영상을 돌려 하늘로 시야를 올리자 수백 대의 비공정이 하늘로 일제히 날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흐음.
썬더볼트보다 더 빠른 드래곤을 상대로 저런 비공정이라…….
저거 다 죽겠는데?
비공정도 예전 구섬에서 쓰던 녀석들이었다.
느리고 장갑도 변변찮은.
베록 급이 있어도 힘들 텐데 그 아래 급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니나 다를까.
드래곤의 거대한 날갯짓의 풍압만으로도 비공정들이 한쪽으로 쓸려나가면서 서로 부딪쳐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거기다 드래곤은 비공정들을 통째로 씹어 삼키면서 그 자리에서 끝장을 내버렸다.
그 모습을 본 비공정들은 일제히 하르포를 동원하여 드래곤을 공격했고.
하르포 정도면 통하려나?
이건 좀 기대해 볼…….
생각이 채 끝나기 전, 붉은 입자들이 드래곤 비늘 위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음?
일제히 발포된 하르포의 포격은 전부 드래곤의 비늘에 튕겨 나가는 모습은 가히 장관…….
아니, 무 쓸모.
저 비늘들이 일정 이하의 대미지를 무시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튕겨 내는 건지 모르겠지만 저런 식이라면 하르포가 아무리 많아도 절대 대미지를 줄 수 없어 보였다.
일반 하르포의 상위인 압축 하르포라면 혹시 한두 번 정도 타격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압축 하르포는 한 번 사용하면 재장전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리고 포대 수도 너무 적고.
하르포가 전혀 통하지 않자 거점에서 구경하던 사람들까지 웅성대기 시작했다.
“거봐. 안 되잖아.”
“씨알도 안 먹히네.”
“여기 있다가 죽겠는데?”
“이거 빨리 튀어야 하는 거 아냐?”
한쪽은 공격이 전혀 안 통하는데 다른 한쪽은 건재하면 이야기의 끝은 뻔하다.
드래곤이 거점 상공을 날아다니면서 휘저어대자 비공정들이 추풍낙엽처럼 바닥에 추락하기 시작했다.
역시.
드래곤은 저런 허접한 비공정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아직 브레스는커녕 스킬 하나 쓰지 않은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단순히 육체적인 능력을 이기지 못해 공중을 내줘버렸다.
이걸 본 사람들이 거점을 포기하고 로그아웃으로 빠져나가려는 듯 허공으로 손을 저었는데 바로 낭패한 표정으로 변했다.
“젠장, 못 나가.”
“벌써 못 나간다고?”
“여기도 전투 범위에 들어가나 봄.”
“아! 빨리 튈걸!”
“꼼짝없이 저놈을 상대해야 하나. 미치겠네.”
우리가 걱정한 점.
혹여나 전투 범위 안에 들어가서 빼도 박도 못 하고 싸워야 하는 사태.
아무리 드래곤 슬레이어와 르아 카르테가 있다지만, 죽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
이 아이템들이 증발하면 당장 곤란한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계획하고 있던 모든 일을 모두 스톱 시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참 전의 시점부터 다시 거슬러 올라와야 한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후퇴하게 되면 선두로 올라서는 이들과의 격차를 메우거나 벌리지 못한다.
시간.
돈.
레벨.
모든 것이 후퇴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지.
비공정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자 거점에 있던 유저들의 표정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이제 믿을만한 것은 거점의 방어 시설.
그리고 방어 NPC들인데…….
“아, 저기 거점의 주인인 해원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남성 BJ가 상공에서 활개를 치는 드래곤을 찍다가 시야를 내려 거점 중앙의 한 높은 건물에 있는 해원을 비춰주었다.
그곳엔 해원이 고개를 들어 드래곤을 올려다보면서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는 모습이 보였다.
한참 똥줄 타겠네.
거점을 넘기기 전, 거점에 들어갈 돈을 계산한 적이 있다.
지금의 거점 발전도를 보면.
엄청난 규모의 돈이 투자된 상태다.
해원의 밑천이 얼마나 되는지 확실히 모르지만, 이 거점을 이대로 잃게 되면 당분간 정말 손가락만 빨아야 할지도.
뭐, 내가 해원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고.
좀 아깝다는 생각은 들었다.
이 거점을 홀라당 먹어치울 수 있다면 베스트겠지만.
아쉽게도 그건 정말 욕 처먹을 일이라 차마 실행하진 못 했다.
비싼 값에 팔아놓고 바로 다시 공격해서 뺏는다?
아무리 해원이 유저들에게 욕을 먹고 있다고는 하나 그런 짓을 하면 오히려 이쪽이 욕을 먹게 될 것이다.
돈 좀 아껴보자고 서버 전체의 욕을 들어먹을 필요는 없지.
지금은 저 거점이 증발해 버리는 것이 베스트.
해원도 나름 준비를 잘 했는지 성벽 위에 각종 방어 시설이 잔뜩 구비되어 있었다.
전의 가르시아 제국 성벽에 설치되어 있던 이레이저를 수십 포나 준비할 줄이야.
드래곤을 상정하고 방어를 꾸민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 정도면 훌륭했다.
해원의 손짓에 이레이저가 일제히 공중으로 방향을 틀었다.
저 정도면 확실히 드래곤이라도 타격을 입겠지.
일반 하르포와 질적인 차이가 있으니까.
비공정들을 줄줄이 패퇴시킨 드래곤이 더 이상 먹잇감이 없자 지상으로 고개를 숙였다.
“크아아아아!!”
다시 한 번 울려 퍼지는 강렬한 포효에 지상의 유저들의 움직임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저 피어는 앞으로도 문제가 되겠네.
확실히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강렬하게 울려 퍼지는 포효를 기점으로 수십의 이레이저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강렬한 빛들이 거점 성벽 위에서 터져 나와 순식간에 드래곤의 동체를 향해 쏘아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드래곤이 저 이레이저를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응?
이레이저가 아무리 빠르다고는 해도 드래곤의 민첩성이면 순식간에 피할 텐데?
그때, 드래곤의 주변으로 투명한 거울 같은 마법진 몇 개가 생성되어 드래곤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저건?
처음 보는 스킬이라 더 눈이 갔다.
그리고 저 스킬이 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레이저들이 저 투명한 마법진에 닿자마자 궤적이 180도 반전되더니 오히려 성벽을 향해 다시 쏘아졌다.
마법 반사?
그것도 하나가 아닌 전부를?
예전에 비슷한 아이템이 있었지만 한 번 반사하면 못 쓰는 아이템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모든 스킬을 반사해 버렸다.
심지어 저 마법진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드래곤 주변을 돌아다녔고.
일회용이 아니라는 소리.
그렇게 반사되어 원래 위치로 날아간 이레이저들이 성벽을 박살내는 데는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쾅!
쾅!
그렇게 성벽 위에 있던 NPC가 증발하고 이레이저 포탑들이 부서지자 더 이상 방어벽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가뜩이나 강한데…….
저건 완전 사기잖아?
저러면 앞으로 아무리 다수가 덤벼들어도 저 드래곤을 어떻게 잡지는 못한다.
드래곤을 잡기 위해 개떼처럼 몰려가 마법을 난사했다가는 그걸 전부 유저들이 뒤집어써야 할지도.
방어벽이 완전히 박살나자 해원의 표정이 바로 똥 씹는 표정으로 변했다.
저것 이상의 방어 시설?
지금은 없다고 봐야겠지.
이미 거점은 끝났다.
더 이상 방해하는 뭔가가 없자 드래곤의 주변으로 공기가 급하게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팬 서비스인가?
마무리도 화려하게 해주시네.
드래곤의 입에서 마법진 여러 개가 생성되어 서로 역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어마어마한 기운이 뭉치더니 얼마 뒤 강렬한 브레스가 거점을 향해 터져 나왔다.
그 뒤는 볼 것도 없었다.
딱 한 방에 거점 한가운데가 뻥 뚫려버렸다.
그리고 그 땅이 끓어올라 용암이 되어버렸으니…….
거점 안에 있던 수많은 유저가 죽음의 빛으로 변해 사라져 버린 것은 덤이었다.
운 좋게 피했다고 해도 용암 대미지 때문에 차례대로 죽음의 빛으로 변해갔고.
수백 개가 넘어 보이는 아이템만이 용암 속에 남아 반짝이고 있었다.
방송을 해주던 BJ도 결국 죽어서 시야가 까맣게 사라졌다.
《 크루아 대륙에서 거점 『 천상 』 이 사라집니다. 》
《 부활 포인트가 리셋됩니다. 》
돈 쓴다고 고생했다. 해원.
그간 투자했던 투자금이 용암에 샤르르 녹는 것을 구경하다가 이내 방송을 꺼버렸다.
이제부터 할 일은 따로 있지.
<승호> 형, 봤어요?
<재중> 크큭, 봤지. 아주 활활 타오르는구나.
형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나도 즐겁네.
돈도 시원하게 벌고 해원도 물 먹이고 나쁘지 않았다.
물론, 우리가 받은 돈도, 해원이 거점에 쓴 돈도 전부 해원의 돈이었다.
손해 본 것 하나 없는 최상의 그림.
그리고 여기서 그림을 하나 더 그려야지.
<승호> 당분간… 거점 만들지 말죠.
<재중> 흐음? 그건 또 무슨 생각이냐?
<승호> 매달리게 할 거예요.
목마른 사람들이 우물을 판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림을 그린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매달리게 될 그런 그림을.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