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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444화 (437/1,404)

#444화 용을 먹는 검 (3)

경험치 트러블.

몬스터를 계속 잡고 있지만, 경험치가 오르지 않는 기이한 현상.

그렇다고 완전히 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쭉 살펴보니 우리 팀이 몬스터를 잡으면 곧장 경험치가 차올랐다.

그럼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내가 죽였을 경우 일단 경험치를 하나도 먹지 못한다.

여기서 끝나면 그런대로 괜찮다.

나 하나 경험치 못 먹는 것은 무기를 키우는 걸로 대신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건 단순히 나만 경험치를 못 먹는 걸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다.

확인이 필요해.

“형, 경험치 좀 확인해 보세요.”

그러고는 곧장 드레이크 한 마리를 그 자리에서 녹여 버렸다.

그리고 바로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헐, 안 올라.”

재중이 형이 경험치를 확인하더니 표정이 굳어지며 그대로 한숨을 쉬었다.

“이거 참, 정말 용을 먹어치우는 건가?”

재중이 형의 말을 듣자마자 나도 표정이 굳어졌다.

이건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

곧장 우리 팀을 쳐다보니 챠밍이나 이쁜소녀 할 것 없이 전부 고개를 저었다.

“오빠, 안 올라요.”

“저도요.”

일단, 다른 사람이 킬을 하면 경험치가 들어온다.

하지만 내가 킬을 했을 경우는 경험치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 사실이 가리키는 것은 딱 한 가지.

드래곤 슬레이어.

이놈으로 몬스터를 잡으면 경험치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 모두.

용족을 흡수한다는 것이 말만 흡수가 아니라 그냥 통째로 흡수하는 모양인데…….

그러면서 내 움직임에 큰 제약이 걸려 버렸다.

지금까진 최대 대미지로 계속 공격을 넣었는데 혹시 내가 죽일지 몰라 나가던 손이 자꾸 멈췄다.

내가 죽이면 우리 팀 전체의 경험치가 없다.

그리고 드랍템도 없다.

오직 킬 카운터 하나 뿐.

그때 재중이 형이 날 보고 외쳤다.

“야!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잡아!”

재중이 형의 외침에 순간 몸이 움찔했다.

“괜찮겠어요? 경험치가 하나도 없는데…….”

“아이고, 이놈 봐라.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해? 우리가 지금 이 짓을 왜 하고 있냐? 또 할 생각 아니면 집중해.”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내 손에 들린 드래곤 슬레이어를 바라봤다.

확실히.

이 드래곤 슬레이어를 빠르게 키우기 위해서였지.

물론, 지금 상황이 좀 문제가 많기는 한데 그렇다고 그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리곤 곧장 드레이크들을 다시 학살하기 시작했다.

용족 흡수 11/100

용족 흡수 12/100

:

용족 흡수 55/100

처음보다 몰려드는 숫자가 적지만 꾸준히 리젠이 되어 어디에선가 드레이크들이 날아들었다.

단순히 킬 카운트만 보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팀이 내가 막타를 칠 수 있도록 드레이크를 모아주고 있었고.

이 정도로 밀어주는데 제대로 못 하면 안 되겠지.

그렇게 몰려들었던 드레이크들을 한 번 싹 밀어내자 거점 주변의 압박감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우리 팀도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고.

한참의 시간이 더 지나 어느덧 킬 카운트는 87.

이걸 경험치로 환산하면 레벨 한두 개 정도는 가볍게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나 한 명뿐만 아니라 우리 팀 모두 레벨 업이 막혔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뼈아픈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팀은 내게 드레이크를 몰아주고 있었다.

재중이 형이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한마디 했다.

“오랜만에 비싼 것 좀 먹자.”

전사 형과 나르샤 누나도 마찬가지.

“언제냐? 하루 종일 굶고 간다.”

“미리 감사.”

끙.

간만에 지갑 털리겠는데.

챠밍과 이쁜소녀도 오랜만의 회식에 두 손을 벌리고 환영했다.

음, 나야 볼 기회를 만들 수 있으니 괜찮지.

그때 막내별이 순간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에, 저도 가야 하나요?”

아, 그러고 보니 막내별을 생각 못 했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막내별은 아직 본 적이 없었다.

전사 형이 막내별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지갑 두고 편하게 몸만 오시면 됩니다.”

“네, 그럼 편안하게 갈게요. 사실 전부터 궁금했어요. 어떤 분들일지.”

그리고 막내별이 눈빛을 반짝거리면서 나를 바라봤다.

으음?

왜 갑자기 날 보는 거지?

마치 먹이를 노리는 것 같은 그런 눈빛이 순간 생겼다가 사라졌다.

“특히 주호 씨, 로스트 스카이의 악당이 실제로 어떨지 너무 궁금해요.”

“음, 제가 악당인가요?”

“에, 악당은 좀 약하려나? 그럼 악마?”

“하하, 보고 실망하지 않으셨음 좋겠네요.”

“우훗, 정말 기대되네요.”

악당 같은 모습을 기대하고 오면 곤란하지.

난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반 시민이라고.

그렇게 계속 드레이크 사냥을 하다 보니 어느덧 드래곤 슬레이어의 용족 흡수가 최고치에 다다랐다.

용족 흡수 100/100

드디어.

용종 흡수가 100이 되자 바로 드래곤 슬레이어에서 반응이 왔다.

그동안 흡수했던 붉은 기운들이 일시에 뿜어져 나오며 드래곤 슬레이어의 검신을 한 차례 휘몰아치며 타오르더니 다시 검신으로 모두 흡수되면서 눈부신 빛을 발산했다.

《 드래곤 슬레이어가 1단계에서 2단계로 진화합니다. 》

『 +10 드래곤 슬레이어 (유일)

/ 출혈 40 (30+10) 타격 32 (22+10)

- 브랜디슈 흡수 1/500 - 2단계

- 드래곤형 피해 300%

- 크리티컬 시 낮은 확률로 드래곤형 체력 1/100 감소

- 추가 봉인 / 미완성 』

옵션이 늘었어?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옵션.

기존의 옵션에서 한 가지 옵션이 추가로 늘어나 있었다.

그런데 그 추가 된 옵션이 그동안 봐왔던 것들하고는 뭔가 좀 차이가 있었다.

내가 드래곤 슬레이어를 살펴보는 동안 계속 날아오는 드레이크는 전사 형과 우리 팀이 맡아서 처리를 해주었다.

그러면서도 다들 한 번씩 날 바라보고는 궁금하다는 표시를 했다.

르아 카르테는 옵션 수만 늘어나고 그곳은 빈 슬롯이라 예측이 된다.

옵션 부분만 본다면 완전히 정직하다고 봐야겠지.

어떻게 보면 하얀 종이라고 해야 하나?

덧칠하면 덧칠하는 대로 성질이 변하는 매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 드래곤 슬레이어는 또 달랐다.

성장할수록 추가 봉인에서 전혀 다른 옵션이 나올 확률이 있었으니까.

그것도 정말 이상한 옵션이.

한 번 써봐야 하려나?

곧장 전사 형이 붙들고 있던 드레이크로 달려가 공격을 했다.

그런데 한참을 공격했는데도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이거 사기당한 거 아냐?

분명히 단계가 하나 올라갔으면 뭔가 폭발적인 공격력이 나올 줄 알았는데 체감하기론 이전과 거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 후, 드레이크가 쓰러지고 잠시 주변에 공백이 생기는 사이 우리 팀이 우르르 내게 달려왔다.

전사 형이 총알 같이 달려와서 눈을 반짝였다.

“어떻게 변했어?”

궁금해 죽으려는 그 눈빛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거 사기당한 거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아, 그게 좀… 너무 차이가 없어요.”

무려 드레이크 백 마리의 경험치를 희생하고 키운 드래곤 슬레이어인데 나온 옵션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차라리 치명타 대미지나 관통 확률 이런 것이 붙었으면 대미지가 확 뛰어올랐을 텐데…….

아니,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스탯이라도 좀 붙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건 꽝이다. 꽝.

“어휴, 보세요.”

드레이크 백 마리분의 경험치가 날아갔다는 걸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이렇게 옵션이 안 좋으면 다음 옵션을 바라면서 같이 또 희생하자는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다음은 무려 브랜디슈가 오백 마리다.

그다음은 또 뭐가 나올지…….

이젠 미안해서 말을 못 꺼내겠어.

“응? 옵션이… 호오?”

그런 내 생각과 다르게 전사 형의 눈빛은 열기에 휩싸여서 불이 붙었다.

뭐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아니지, 옵션이 너무 거지같아서 화를 내는 걸지도.

전사 형이 재중이 형을 바로 불렀다.

“형님, 이거 좀 와서 보세요. 미쳤습니다.”

확실히 미치긴 했다.

안 좋은 쪽으로.

전사 형의 미쳤다는 말에 재중이 형도 한달음에 넘어와 드래곤 슬레이어를 살펴봤다.

“오호? 이건?”

그리고 그건 나르샤 누나도 마찬가지.

2단계의 드래곤 슬레이어를 보자마자 헉, 소리를 내면서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안 좋아요?”

경력이 풍부한 세 사람이 다 저러니…….

그때, 나르샤 누나가 정말 놀란 듯 목소리가 확 올라갔다.

“세상에. 정말 이런 옵션이 나와? 이거 진짜 용 잡는 칼이잖아?”

전사 형도 나르샤 누나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미쳤네. 미쳤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옵션을 집어넣은 거지?”

내 어리둥절한 표정만큼이나 이쁜소녀와 챠밍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드래곤 슬레이어를 바라봤다.

“신기한 옵션이다아.”

“이 옵션이 그렇게 좋은 거예요?”

반면 막내별은 보자마자 역시 헉 소리를 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이상한 옵션이고 아는 사람들에게는 완전 다른가 본데?

재중이 형이 드래곤 슬레이어를 내 손에 쥐여주고 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리고는 한껏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야, 더 볼 것도 없다. 당장 드래곤 잡으러 가자!”

“……농담이죠?”

“아니, 진심. 이거 있으면 진짜 비벼볼 만도 한데?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네.”

“하아, 방금 전까진 전혀 도움이 안 됐어요. 그런데 무슨 수로…….”

내 말에 재중이 형이 바로 웃었다.

“드레이크 따위 잡을 땐 전혀 도움이 안 돼. 애초에 체력 100짜리를 1/100해봐야 1깎이는 수준이니까. 그런데 드래곤이라면?”

“아?!”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이 확 깨어났다.

이거 진짜 미친 옵션이었잖아?

옵션에 나온 설명 그대로라면 드래곤의 체력이 백만이라고 가정했을 때 한 번에 만 단위로 깎아버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원래 크리티컬 시 낮은 확률로 터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쓰면 거의 터질 일이 없는 옵션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내 주특기가 크리티컬을 터뜨리는 거다.

내겐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이 드래곤 슬레이어를 잘 써낼 수 있는 감각이 있었다.

어쩌면 이보다 내게 어울리는 옵션은 없을 지도…….

이 정도면 정말 이름값에 걸 맞는 위력이 나올 것이다.

순수하게 용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검.

“내가 미쳤다고 한 이유를 이제 알겠지?”

“정말 드래곤 슬레이어였네요.”

“어, 솔직히 지금 이런 옵션이 튀어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네. 운영자들은 드래곤을 잡고 나서 나오는 보상이라 이 옵션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겠지만…….”

“상징적인 보상일 거라는 소리죠?”

“아마 원래라면 우르르 몰려가서 드래곤을 잡고 누군가에게 상징적인 보상으로 쥐여줬을 거야. 드래곤을 잡았다는 상징. 그리고 그때가 되면 드래곤은 어떻게든 잡힐 테니까 드래곤 슬레이어의 이 옵션이 그저 도움이 된다는 정도에 그칠 테고.”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이상하게 변해 버렸다.

드래곤을 잡지 않고 이 드래곤 슬레이어만 빼오는 바람에.

이거 운영자들이 기절할만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겠는데?

그때 옆에서 있던 전사 형이 다가와 다시 드래곤 슬레이어를 쳐다봤다.

“형님, 이거 아직 더 키울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전사 형이 내뱉은 말에 다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도 재중이 형은 예상했다.

드래곤 상대로 비벼볼 수 있을 거라고.

물론,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겠지만 충분한 희망을 봤다.

거기다 만약 저 옵션이 더 좋아지거나 다른 옵션이 추가된다면?

이거…….

드래곤 잡는 일이 꿈은 아닌데?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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