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9화 용맥 (3)
이번에도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한 진행이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런 행동이 한두 번도 아니고….
또한, 그저 우리의 추측일 뿐이지만 우리를 물 먹이려고 했다면 우리도 똑같이 하면 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니까.
그리고 우리의 행동은 불법, 비정상적 진행, 버그가 아닌 정상적인 시스템을 이용해 몬스터를 유인하고 그 틈을 깔끔하게 파고든 것이라 문제될 것은 없다.
다른 유저들도 이런 방식을 이용해 좋은 사냥터와 자리를 찾곤 하니까.
용의 형상이 멋들어지게 양각된 거대한 문을 전사 형이 먼저 양손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그그극!
문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바닥이 끌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아주 조금씩 밀리다 멈춰 버렸다.
“크으! 더 이상 안 밀리네.”
전사 형이 낭패한 표정으로 우리를 돌아보자 나와 재중이 형이 옆으로 가서 같이 문을 밀었다.
그러자 문이 겨우 조금씩 밀리면서 안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전사 형의 힘 스탯도 결코 낮은 게 아닌데 문이 전혀 밀리지 않는다라…….
기본적으로 이 문을 통과할 때 가져야 할 최소 스탯에 훨씬 못 미친다는 소리인가?
전사 형의 표정이 굳은 것을 보면 아마도 정답인 것 같았다.
같이 문을 밀면서 전사 형의 긴장된 말소리가 들렸다.
“여기 레벨 장난 아니겠네. 이 정도로 안 밀릴 줄 몰랐는데…….”
꼼수와 요행으로 드래곤 둥지에서의 사냥 과정을 싹 무시하고 상위 던전 안에 들어온 상태라 주변 상황보다 레벨이 현저히 낮은 것이 문제였다.
문을 밀면서 주변을 살펴보던 전사 형이 무겁게 말을 꺼냈다.
“돌아온 몬스터들과 이대로 부딪치면 우리가 무조건 죽을 겁니다.”
전사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르아 카르테와 데몬 블레이드가 있기는 해도 방어력이 문제.
용의 던전 최하층에서 상층까지 통째로 치고 나가려면 결국 몸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물약이 한정적이라는 것.
적어도 몬스터들이 돌아오기 전에…….
“확실히 시간이 얼마 없죠. 최대한 빨리 털고 나가죠.”
일단 어떻게든 드래곤 레어를 털고 몬스터들이 돌아오기 전 빠져나간다.
셋이서도 잘 밀리지 않자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 챠밍, 막내별까지 달라붙어서 문을 열었다.
대체 여기 레벨이 얼마나 되는 거야?
겨우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웅장한 대전이 눈에 들어왔다.
황금으로 도배된 벽에 화려한 장식품이 공동을 가득 채운.
마치, 하나의 번쩍거리는 궁궐을 보는 것 같은 모습에 넋이 나가버렸다.
화려함.
딱 그 한 마디로 수식이 가능했다.
이건 상상하고 너무 다른데?
챠밍하고 이쁜소녀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지 감탄부터 했다.
“동굴… 아니었어요?”
“대박! 완전 반짝거려요!”
막내별도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진짜 여기가 드래곤 레어?”
나르샤 누나가 잠시 감탄을 하더니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워낙 대전이 커서 그런지 나르샤 누나가 다 살펴볼 때까지 잠시 입구에서 자리를 지켰다.
“아무것도 없어.”
“흐음, 이상하네요. 적어도 뭔가 있을 것 같았는데.”
분명히 들어올 땐, 입구의 문이 닫혀 있었다.
그렇다는 건 여기에 있던 무언가는 빠져나가지 않았다는 뜻.
재중이 형과 눈이 마주치자 재중이 형도 긴장한 눈빛으로 전방을 바라봤다.
“확실히 뭔가 있어. 긴장 늦추지 마.”
재중이 형의 말에 전사 형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그럼, 갑니다.”
분명 눈앞에 대전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무겁게 내리누르는 특유의 분위기가 존재했다.
전사 형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앞장서서 나가는데 대전의 중간까지 지나갔음에도 특별한 조짐은 없었다.
그냥 기우에 불과했던 건가?
대전을 가로질러 끝에 도착할 때쯤.
우리들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어?”
대전의 끝.
높게 위치한 왕좌 같은 곳에 꽂혀 있는 한 자루의 검.
검신과 손잡이가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그 검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한 발짝 앞으로 발이 나갔다.
그러자 재중이 형이 바로 내 팔을 잡아당겼다.
“혹하지 마.”
“아, 저도 모르게.”
사람을 유혹하는 그런 매력이 있는 검.
“보통 저런 건 함정이지.”
재중이 형의 말에 바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쁜소녀도 그 황금빛 검을 보고 눈을 반짝이다가 재중이 형의 함정이라는 말에 실망한 눈빛을 보였다.
“힝, 진짜 이쁜데.”
재중이 형이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저거 잡으면 바로 슥.”
손으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하자 이쁜소녀가 놀라면서 고개를 붕붕 흔들었다.
“그럼, 안 잡을게요!”
저걸 잡으면 함정이 발동한다 이거지?
그때, 재중이 형이 품에서 단검을 하나 꺼내 들더니 그 황금색 검을 가리켰다.
“자, 보라고. 뭐가 튀어나오나.”
그러면서 단검을 황금색 검에 집어 던졌다.
팅!
그리곤 정확하게 황금색 검의 손잡이에 맞고는 떨어지는 단검.
동시에 대전이 어두워지면서 황금빛 검 주변으로 검은 스파크가 튀어나왔다.
“피해!”
다행히 멀리 있던 우리는 조금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그 스파크를 피해냈다.
그렇게 스파크가 훑고 지나간 대전을 보자 온통 시뻘겋게 끓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물체가 흐물흐물해질 정도로.
제일 앞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전사 형의 표정이 바로 핼쑥해졌다.
“이거 형님 말 안 듣고 잡았으면 지금쯤…….”
확실히 몸이 통째로 녹아내렸을 것 같기도 하네.
방어력이 높고 낮음을 떠나 저런 함정은 못 막겠지.
얼마 뒤, 스파크가 전부 사라지고 녹아내렸던 대전도 원상 복구가 되었다.
그리고 대전 끝에 있던 황금빛 검도 사라졌고.
“아깝다아….”
이쁜소녀의 작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주변을 살폈다.
“뭐가 너무 없네요.”
이건 예상하고 너무 다른데.
드래곤 레어 쯤 되면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나?
그때, 내 눈에 묘한 광경이 스치고 지나갔다.
응?
뭐지?
뭔가가….
뒤틀린 것 같은 그런 느낌?
대전을 살펴보려고 고개를 돌리는데 유독 한 방향이 계속 눈에 거슬렸다.
나 말고도 모두 주변을 살피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해 실망을 하는데 내가 계속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돌리자 모두 내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왜? 뭐 있어?”
재중이 형이 물어보자 다시 한 번 이상한 느낌이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냥 얼핏 보기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인데.
왜 자꾸 거슬리지?
묘한 이질감.
분명히 똑바로 보면 그냥 허공일 뿐이다.
“형, 제가 보는 쪽 이상한 것 안 느껴져요?”
“응? 뭐가?”
“으음, 그냥 흐물거리는 느낌 같은 느낌?”
내가 이상하다고 한 방향의 벽으로 모두 시선을 돌렸는데 아무도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했다.
아냐.
분명히 이상해.
묘하게 저곳으로만 시선이 간다.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바로 라이데인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전방으로 크게 라이데인을 휘둘렀다.
그렇게 라이데인으로 만든 풍압이 공기를 가르면서 쭉 지나가자 중간에 뭔가가 출렁거리는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호오?”
다들 그걸 보고는 깜짝 놀라 나를 돌아봤다.
막내별은 생각도 못 했다는 듯 놀라면서 내게 말했다.
“와, 진짜 야생동물 아니에요? 저런 게 만져보지도 않고 바로 느껴져요?”
“끙, 짐승은 아니고요. 그냥 피부로 와 닿는 그런 느낌?”
“사람이 아니야. 진짜.”
그 말에 모두가 웃어버렸다.
“자자, 감탄은 나중에 하고. 일단 확인해볼까?”
재중이 형이 먼저 나서 그 일렁이는 투명한 벽에 손을 집어넣었는데 그냥 쑥 하고 들어갔다.
“이런 식이라…….”
그러고는 그대로 몸까지 집어넣고 벽 너머로 아예 사라졌다.
역시 행동력 하나는 알아줘야겠네.
그렇게 잠시 기다리는데 재중이 형이 그대로 벽 바깥으로 다시 나왔다.
“왜 나와요?”
내 질문에 재중이 형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안에 좀 문제가 있어.”
문제?
그 말과 함께 재중이 형은 투명한 벽 바깥으로 도망치듯 벗어났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뭔가가 튀어나왔다.
저건?
분명히…….
용아병이라고 했던가?
용의 뼈로 만들어진 소환수.
용종 혹은 언데드, 아니면 다른 계열일 수도 있고.
그런데 밖에서 얼핏 본 용아병 하고는 모습 자체가 달랐다.
온몸이 드래곤 비늘과 비슷한 갑옷을 걸치고 있고 크기 역시 컸다.
무엇보다 전체 뼈가 시커멓게 되어 있다는 점.
거기다 한 손에는 밖에서 보던 몬스터인 브랜디슈를 들고 있었고 반대 손에는 방패 몬스터인 아이기스를 장착하고 있었다.
다른 몬스터를 들어?
그것도 하나도 아닌 두 개나.
저걸 개별 몬스터로 봐야 하는지 아님 하나로 봐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다른 몬스터와는 달랐다.
대체 이 녀석은 뭐지?
심지어 이름조차 일반 용아병과 다르게 특유의 네임이 달려 있었고.
칠흑의 용아병.
레벨조차 높아 네임이 새빨갛게 보였다.
“네임드?”
보통 네임드 아래에 다른 네임드가 존재할 수 있나?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운데…….
“뭔지 몰라도 저길 지키는 녀석 같네.”
재중이 형이 난감해 한 이유를 알겠다.
확실히 저 녀석.
강하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는 정말 부담스러운 존재이기도 하고.
개별 몬스터가 전부 따로 적용된다고 하면 몬스터 셋과 동시에 상대하는 상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문제는.
시간이 별로 없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한정적이었다.
괜히 들어왔나 싶을 정도로….
또한, 뭔가를 획득하고 다시 빠져나가야 하는 시간에 저 녀석을 상대해야 하기까지.
“일단 하는 데까지 해보죠.”
전사 형이 먼저 앞으로 뛰어나가서 녀석의 어글을 끌었다.
크아아아!
그렇게 달려들자마자 칠흑의 용아병도 역시 전사 형과 정면에서 부딪쳐왔다.
쾅!
“크윽!”
전사 형의 8강 데몬 블레이드와 녀석이 들고 있던 브랜디슈가 부딪치자마자 전사 형의 몸이 뒤로 크게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체력이 순식간에 1/10이나 날아가 버렸다.
단순히 한 번 주고받았는데 저렇게 밀려?
데몬 블레이드가 8강이면 현재 상황에서도 밀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레벨, 스탯, 강화 모든 것에서 부족했다.
역시 내가 나설 수밖에.
“형, 저 들어가요.”
바로 3색 웨폰을 걸고 난 뒤, 튕겨 나간 전사 형과 칠흑의 용아병 사이로 파고들어 녀석의 검을 르아 카르테로 올려쳤다.
카앙!
강력한 반탄력과 함께 내 팔이 뒤로 튕겨 나가며 르아 카르테 역시 뒤로 밀려났다.
체력은?
바로 체력 바를 보자 다행히 체력이 거의 깎이지 않았다.
역시 무기와 강화빨인가?
최고 수준의 무기 공격력에 14강이라는 수치, 그리고 3색 웨폰과 심장의 대미지가 합쳐지자 녀석의 공격을 상쇄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적어도 공격력에서는 동급.
힘에서는 좀 많이 부족할지언정 내가 공격력에서 밀리지 않자 다들 환호를 했다.
힘이야 어떻게든 흘려서 버티면 되고.
그동안 모자란 힘으로도 잘 버텨왔으니까.
그렇게 다시 브랜디슈 공격을 르아 카르테로 흘려냈다.
반대로 데몬 블레이드로는 녀석의 빈틈을 노려가면서 휘둘렀는데 번번히 아이기스에 막혀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저 방패.
거슬려.
방어력이 얼마나 높은지 정면에서 쳐서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 더 치고받기를 반복하는데 갑자기 녀석의 속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큭.”
그러자 나도 역시 똑같이 속도를 올렸다.
【 헤이스트! 】
헤이스트를 쓰자 겨우 최고 속도를 맞춰서 대응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어글을 끌면.
우리 팀이 공격할…….
그런데 갑자기 녀석의 눈빛이 붉게 빛났다.
광역기?
특수 공격?
뭐지?
긴장된 상태로 녀석의 공격을 받아내는데 갑자기 르아 카르테를 휘두른 손에서 헛치는 것 같은 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허공에 손을 휘두른 그런 느낌.
이건?
순간 칠흑의 용아병이 브랜디슈로 내가 휘두른 르아 카르테의 검격을 빗겨내듯 흘려내면서 아이기스의 방패 면으로 내 몸을 그대로 후려쳤다.
콰앙!
설마 몬스터가 검을 흘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휘두른 검에 몸의 균형이 무너져 있다가 녀석의 공격을 제대로 맞아버렸다.
“크윽!”
그렇게 엄청난 힘과 압력에 몸이 튕겨 나가면서 바닥에 크게 굴러버렸다.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려 크게 포효하는 칠흑의 용아병을 노려봤다.
“미친, 무슨 몬스터가…… 흘리기를 써?!”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