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8화 용맥 (2)
재중이 형의 입에서 감탄이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드래곤인가…….”
그리고 챠밍과 이쁜소녀, 막내별도 표정에 놀라움이 가득한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 멀리 산맥을 바라봤다.
“정말 크네요.”
“와, 대박! 완전 커요!”
“저렇게 큰 몬스터는 처음 봐요.”
그 모습을 본 전사 형도 표정에 긴장을 감추지 않고 역시 산맥 너머를 주시했다.
“그러게, 이건 상상 이상인데? 너무 크잖아?”
기존에 상대했던 그 어떤 몬스터들보다 컸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레비아탄 정도?
물론, 물속에 숨겨진 부분까지 친다면 레비아탄이 더 크기야 하겠지만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드래곤이 커 보였다.
일단 확장된 날개의 길이부터 압도적이었다.
한 번 펼치는 것만으로 사방의 공기를 압축해서 진동시켰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턱.
입 크기가 큰 만큼이나 날카롭게 뻗어 나온 수없이 많은 이빨의 형태가 무시무시했다.
추가로 무려 여섯 개나 되는 거대한 뿔까지.
거기다 흠집조차 나지 않을 비늘이 촘촘하게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냥 보기에도 공격, 방어.
어디 한쪽도 결코 빠지지 않았다.
나르샤 누나는 날아간 드래곤의 뒤를 바라보다가 안색이 확 굳어버린 상태로 말을 꺼냈다.
“단 한 방…….”
“한 방요? 아무리 그래도…….”
내 물음에 나르샤 누나가 고개를 저었다.
“브레스 딱 한 방.”
나르샤 누나의 그 말에 모두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무리 네임드라지만 한 방에 왕국 하나를 날리는 것이 말이 되나?
이건 기존에 인식했던 네임드라는 규격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드래곤이라…….
용의 대지로 들어서면서 사냥하다 보면 한 번쯤은 마주치리라 생각은 했었다.
다만 이런 식으로 만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사냥터에 익숙해지고.
좀 더 고강도의 장비를 걸치고 난 뒤.
녀석을 사냥할 준비가 된 다음 좀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사냥을 할 생각이었지 지금처럼 아무런 전조 없이 막무가내로 나타나다니.
“월드 네임드.”
재중이 형이 꺼낸 말에 다들 뭔가 생각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패치 내용 중에 월드 네임드라는 명칭이 있긴 했었다.
그땐 그냥 네임드 중에 좀 더 강한 네임드인가 하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 저 녀석을 보면 단순히 그런 식으로 판단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녀석의 패턴을 아직까진 파악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난데없이 등장해 드워프 지하 왕국을 공격했으니까.
그때, 뭔가를 발견한 나르샤 누나가 손을 들어 올려 드래곤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설마 저 녀석이 여기로 다시 날아오는 것은 아니겠지?
우리 모두 긴장을 한 채 나르샤 누나를 바라보는데 나르샤 누나가 들었던 손을 다시 내렸다.
“다들 긴장 풀어요. 다른 쪽으로 날아갔으니까.”
나르샤 누나의 말에 전사 형과 챠밍, 이쁜소녀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일단 멀어진 건가?”
“휴, 다행이네요.”
“너무 커요.”
몬스터가 어느 정도껏 커야 상대할 생각을 하지.
저 녀석이 지금 당장 여기로 날아와 난장판을 만들면 답도 없다.
심지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드래곤의 속도가 정말 빨랐다.
방금 우리 위를 날아간 속도만 봐도 그것은 명확한 사실이었고.
일단, 우리가 소유한 썬더볼트나 드레이크의 주력으로는 녀석을 떨쳐내지 못한다.
그럼 결국 무조건 싸워야하는데…….
이건 우리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 될 터.
아직 방어구를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상태로는 우리가 많이 불리했다.
물론, 방어구가 제대로 갖춰져 있다고 해도 힘든 싸움이 되겠지.
그때 드래곤이 날아간 방향을 본 막내별이 의아한 듯 우리에게 물었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날아간 걸까요?”
“응?”
“어?”
“흐음?”
순간 멈칫.
다들 그것에 대해선 생각한 적이 없는지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어디로 날아갔다라…….
날아간 방향도 문제지만 보통은 자기 본진을 지키기 위해서 돌아오지 않나?
네임드면 일정 영역 정도는 가지고 있을 텐데.
혹시 월드 네임드는 다른 건가?
패턴은?
아니, 그런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왜 이렇게 갑자기 녀석이 튀어나온 걸까?
아무런 전조도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나?
모든 게 의문이지만 답이 나오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재중이 형이 몇 가지 예상을 내놓았다.
“용맥 쪽으로 누군가 접근하면 무조건 발동하는 이벤트일지도 모르겠는데? 지금 우리가 건드린 것은 그 정도 밖에 없으니까.”
“확실히 그럴 수 있겠네요.”
우리가 접근함으로써 뭔가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혹은 다른 이유가 있던가.
그때, 전사 형이 좀 더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말을 꺼냈다.
“당장 날아간 저 드래곤보다 급한 건 물약입니다.”
그 말을 들은 재중이 형이 손으로 이마를 짚더니 긴 한숨을 쉬었다.
“아아, 그렇지. 보급.”
드워프 지하 왕국을 박살을 낸 일 때문에 우리가 물약을 수급할 장소가 아예 증발해 버렸다.
물약이 없다는 건 더 이상 사냥할 수 없다는 사실로 수렴된다.
드래곤보다 오히려 이쪽이 더 문제지.
“흐음, 물약이라… 꽤 고약해.”
재중이 형이 뭔가를 떠올린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 말에 전사 형도 눈치챘는지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 이상으로 우리가 여기서 사냥하는 것을 원치 않는 모양입니다.”
“다른 사냥터를 악마형 케르베로스로 난장판을 쳐놨으니. 꽤 당황한 것 같기도 하고.”
둘의 말을 들어보니 이제 이해가 된다.
상식에 어긋난 깽판.
다른 유저들의 사냥을 전부 방해해놓고 우리만 사냥하는 것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아무리 개입한다고 해도 유저를 직접적으로 죽이는 짓은 못할 테니까……. 이 정도가 한계려나?”
재중이 형 말대로라면 설명이 된다.
드래곤이 등장해서 우리 위를 스쳐 그냥 날아가 버린 사실이.
인위적으로 개입을 하되, 물약을 수급하지 못 하게끔 만드는 선에서 스톱.
전사 형이 주먹을 불끈 쥐고 화를 냈다.
“우리가 추측한 게 맞다면, 확실히 따져야겠습니다!”
다들 마찬가지인지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이 정도로 눈에 띄는 개입이라면?
화가 안 나면 사람이 아니지.
그때, 챠밍이 곰곰이 뭔가를 생각하다가 말을 꺼냈다.
“저기, 오빠. 혹시 드래곤이 날아간 방향이 말라버린 숲 쪽이 아닐까요?”
그걸 듣자마자 떠오르는 생각.
“응? 설마 악마형 케르베로스도?”
내 말에 챠밍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을 꺼낸 김에 그쪽도 정리하려는 것 같아요.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이곳에 와서 활동을…….”
챠밍의 말에 여기 있는 누구 한 명 아니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드래곤이 굳이 이곳 용의 대지를 두고 멀리까지 날아갈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뭐 원래 이곳저곳 날아다니는 월드 네임드라고 하면 할 말이 없겠지만.
“심적인 증거는 넘쳐나는데 물증이 없는 경우….”
그런 재중이 형의 말에 화가 났지만, 그럴수록 머리가 차갑게 식으면서 뭔가가 계속 뇌리에 스쳐 갔다.
드래곤.
브레스.
드워프 지하 왕국.
말라버림 숲.
악마형 케르베로스.
챠밍의 예측대로 드래곤이 정말 말라버린 숲까지 날아갔다면…….
이건 꽤 재밌는 그림이 나올 수도 있지 않나?
이 대륙은 사냥터와 사냥터 사이의 간격이 굉장히 먼 편이라…….
아무리 저 드래곤이 빠르다지만.
말라버린 숲까지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오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
“형, 이건 오히려 기회 같은데요?”
내가 씨익, 웃으면서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도 굳은 표정을 풀고 날 보면서 미소 지었다.
“너, 또 뭔가 생각해냈구나?”
“네, 다시는 없을 그런 기회요!”
내가 그 말을 끝으로 멀리 있는 산맥들을 바라보자 다들 시선이 그쪽으로 옮겨갔다.
“정말 큰 실수를 한 겁니다.”
* * * * *
일단, 기다렸다.
이 일을 하려면 확신이 있어야 했기에.
적어도 챠밍이 예측한 그 일이 정말 벌어져야 우리가 움직일 수 있다.
전사 형은 특정 BJ들의 방송을 켜놓은 상태로 계속 대기.
그리고 채팅 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분명히.
반응이 올 것이다.
챠밍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 아직까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드래곤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지는 않았으니까.
이미 반쯤은 들어맞았다는 소리고.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채팅창과 BJ의 방송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우! ……발! 저게 뭐야!
-어? 그, 그림자!
-뭐가 저렇게 커?!
-드, 드래곤?!
-갑자기 드래곤이 여기 왜 나타나?
-하, 개 한 마리로 모자라서….
-대박! 진짜 드래곤이야!
-지금 감탄할 때냐? 다들 비공정 띄워!
-이벤트 같은데 잡으러 가자!
-전부 올라가!
영상을 확인하자마자 챠밍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BJ들이 보여주는 영상에서는 말라버린 숲 한 편에 그늘이 생길 정도로 거대한 드래곤이 등장해 하늘을 뒤덮었다.
그리고 난데없는 네임드의 등장에 유저들이 감탄과 환호를 지르며 비공정과 비행 탈것을 타고 차례차례 공중으로 떠올랐다.
전사 형이 그 모습을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피식거리면서 웃었다.
“설마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려나?”
그도 그럴 게 우린 이미 왕국 하나가 브레스 한 방에 날아가는 장면을 봤으니까.
지금 떠오르는 저 사람들이 그 광경을 봤다면 과연 덤빌 생각이나 했겠는가.
결과는 안 봐도 뻔하겠고.
《 용의 대지에 가르시아 제국 남작 주호 님의 새 거점이 설치됩니다. 》
《 거점 : 신화가 설치되었습니다. 》
자싱에서 거점 설치.
그리고 바로 썬더볼트와 드레이크를 타고 최대 고도까지 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개떼처럼 주변 몬스터가 몰려들면서 거점 주변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완벽한 어그로.
이러면 이제 움직이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그럼, 가죠.”
* * * * *
지상의 거점으로 모인 몬스터들을 내려다보면서 유유히 썬더볼트와 드레이크로 비행해 바로 산맥을 넘어갔다.
정확히 드래곤이 날아왔던 딱 그 방향으로.
그리고 산맥을 몇 개 넘어가자 우리가 원하는 그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 드래곤의 둥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꼭 우리가 확인하지 않더라도.
시스템 음이 모든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좋아.
“내려가죠.”
먼저 하강을 하자 우리 팀이 모두 따라서 나를 따라 하강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용맥이 흐르는 산맥 한가운데 위치한 던전.
용의 날개 형상을 한 거대한 던전 입구가 우리를 맞이했다.
그런데 심지어 그 입구마저 열려 있었다.
아마 안에 있던 몬스터들이 바깥으로 빠져나간 것 같은데…….
지금 거점으로 몰려간 몬스터들 사이에 끼어 있는 거려나?
“전사 형, 지금부터는 달려주셔야 해요.”
내 말에 전사 형이 굳은 표정을 지으면서 라지 쉴드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잘 따라와라. 그럼 간다.”
전사 형이 용의 던전 속으로 들어가 앞으로 달리자 우리 모두 그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지하 1층.
지하 2층.
지하 3층.
계속 달려내려 가는데 몬스터가 모두 빠져나갔는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나쁘지 않아.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상황이 좋았다.
예전 리치의 던전을 방문했던 것처럼.
“형! 더 빨리요! 나갔던 몬스터들 돌아오기 전에 끝까지 도착해야 해요!”
“그래, 속도 더 올린다!”
이제는 그냥 대놓고 달렸다.
몬스터가 없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달려 내려간 후에야 원하던 그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마지막 층.
드래곤 레어.
원래는 드래곤이 존재했어야 하는 바로 그 장소.
온전히 레어에 도착하고 난 뒤, 천장을 바라보면서 웃었다.
드래곤으로 우리를 엿 먹여?
그럼 너희도 한 번 엿 먹어 봐.
안에 있는 걸 다 쓸어가 줄 테니까.
뭐, 아니면 말고.
“그럼, 들어가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