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436화 (429/1,404)

#436화 깽판의 대가 (2)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말라버린 숲 안으로 뛰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자 막내별이 궁금한 표정을 잔뜩 지으며 물었다.

“저희 그냥 가요? 이제 한참 재밌을 것 같은데…….”

끙.

얘도 완전히 물들었다니까.

아니,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이랬던가?

천진난만.

이쁜소녀가 정말 맑은 쪽이라면 막내별은 좀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는 쪽에 가까웠다.

가끔은 힐러가 적성에 맞는지 모를 정도.

실력만 보면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런 막내별을 보면서 웃어 보였다.

“방송 보면 되죠. 어차피 여기 계속 있어 봐야 할 것도 없고.”

전이문이라는 것도 쿨타임이 있을 뿐.

한 번 소환하면 내가 미치광이 리치를 역소환하거나 접속을 종료하지 않는 이상 그 자리에서 그대로 유지가 된다.

물론, 지나가는 누군가가 전이문을 부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하지만 과연 전이문을 찾아낼 유저가 있을까?

이렇게 구석진 곳에 열어놨는데?

“일부러 이렇게 사람 없는 곳에서 연 거예요?”

“네, 아무도 찾으면 안 되니까.”

우리가 여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함도 있었지만, 누군가가 발견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더 컸다.

전사 형이 우리 둘의 대화를 듣다가 막내별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거 들키면 쌍욕 듣기 딱 좋습니다.”

전사 형의 말에 수긍하는지 막내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욕먹기 딱 좋네요. 악마도 이렇게는 안 할 텐데. 진짜 주호 씨가 적이었으면…… 으아, 소름!”

그러면서 막내별이 굉장한 무언가를 보듯 날 보는데 머쓱해서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냥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죠.”

“그 최선이 저 사람들한테는 최악의 날이잖아요!”

막내별이 이제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말라버린 숲을 가리켰다.

드디어 시작했나?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깽판을 좀 제대로 쳤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하나 더.

유저들을 최대한 잡아먹고 오버가 되어주면 더 좋고.

전에 확인했던 것 중 하나.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바깥으로 돌려놓고 고르곤을 잡으러 들어갔을 때.

생각 이상으로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빠르게 돌아왔었다.

문제의 역소환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고.

재중이 형이 그 상황을 분석하더니 내게 말해줬었다.

일정 시간 동안 상대할 유저가 없으면 역소환 되지 않느냐는 추측.

그래서 방어전을… 재중이 형의 추측이 완전히 맞아 들어갔다.

한참이 지나도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역소환되지 않고 난동을 부렸으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

적어도 저 말라버린 숲에 상대할, 아니 잡아먹을 먹이가 존재하는 이상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역소환되지 않고 난동을 피울 것이 확실했다.

우리가 여기를 떠난다고 해도 이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고.

준비는 끝났고.

“이제 가죠.”

* * * * *

용의 대지로 가는 동안 전사 형이 보여준 BJ들의 영상에는 그야말로 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

애초에 자리를 잡고 사냥한다는 것은 그 자리를 지켜낼 수 있는 전력으로 사냥을 한다는 거다.

그런데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자리를 위협할 유저들이 아닌 네임드라면?

말 그대로 재앙.

악마형 케르베로스에게 죽던가.

우왕좌왕하다가 상대하던 몬스터에게 죽던가.

혹은 도망.

딱 이런 패턴으로 유저들이 유지하던 흔히 말하는 ‘자리’가 순식간에 파탄이 났다.

밤잠 설쳐가며, 로테이션을 돌려가며, 다른 유저들과의 경쟁을 이겨가며 겨우 차지한 자리가 순식간에 박살이 나자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유저들이 많았다.

“저게 왜 여기에 있어?”

“튀어!”

“아씨, 미치겠네. 길마한테 빨리 연락 넣어!”

“나 여기 처음 왔다고!! 이제 겨우 내 차례였는데…….”

“아놔, 여기 들어오려고 얼마나 대기탔는데…….”

이것도 살아남은 유저들의 투정에 가까웠고 습격을 당한 유저 대부분이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손날에 녹아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

착용하던 아이템을 잔뜩 떨어뜨리고.

심지어 주 무기를 떨어뜨리고 죽은 유저들은 절규를 했다.

그러자 경보처럼 전체 채팅으로 글이 올라왔다.

-말라버린 숲, 악마형 케르베로스!!

-레알?

-지금 난리 남. 못 막음.

-누가 좀 잡아줘. 사냥을 못 하잖아.

개판이네.

양 떼 사이로 늑대 한 마리를 놓아두면 딱 저런 그림이 나올까?

당장 누군가가 나서서 막으면 또 모르겠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저 녀석은 강해진다.

그럼, 그때는?

곧 정말 답도 없는 상황이 올 것이다.

전사 형이 그걸 보고는 흥겹게 웃었다.

“저놈들 당분간 사냥은 물 건너갔군요.”

그 말에 재중이 형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주 못하진 않을 거야. 멀리서 자리 잡으면 어떻게든 가능하겠지. 뭐, 자리가 엉망이 되니까 지들끼리 좀 많이 다투려나?”

“혹시 잡아버리면 어쩝니까?”

전사 형의 말에 재중이 형이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저 상태면 우리가 나서도 못 잡을걸? 계속 레벨이 오르는데 무슨 수로 잡아. 공격력은 그렇다 쳐도 무지막지한 체력은? 끔찍하네.”

질색하며 너스레를 떠는 재중이 형의 표정에 다들 웃음을 지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뭔가를 발견한 챠밍이 우리에게 영상을 하나 보여줬다.

“오빠. 연합들 모였어요!”

상위 길드들인가?

챠밍이 보여준 영상에는 한 BJ가 엄청나게 모인 여러 연합의 유저들을 비춰주고 있었다.

얼핏 보니까 자주 보던 연합도 보이고.

내로라하는 길드는 다 모인 것 같은데…….

재중이 형이 영상을 보고는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재밌겠네.”

“이렇게 빨리 모일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행동이 빠르네요.”

“쟤들도 머리가 있으니까. 이대로 가만히 놔두면 절대 못 막는다고 생각했을걸? 어디 보자. 골고루도 나섰네.”

“프로들이 나서면 잡을 수도 있을까요?”

딱 하나의 변수.

프로가 다수 포함되거나 프로로 이루어진 길드들.

초월, 영혼, 페가수스, 유니콘, 천사 같은…….

그리고 화련의 헤라.

“아니, 못 잡아.”

“역시 그런가요?”

“그래, 음, 이건 그놈들 능력이 부족하기 보다는…… 근처에 유저가 너무 많으니까. 거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지.”

재중이 형의 그런 예측은 시간이 지나 완전히 적중되었다.

정말 수많은 길드가 초기에 진화를 하고자 나섰음에도 번번이 블링크로 빠져나가면서 유저들을 죽이고 레벨이 올라 체력을 몽땅 채우고 나타났다.

저래서야…….

얼마 후, 프로들도 난색을 표하면서 결국 손을 떼니 그때부터는 완전히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세상이 되었다.

“물러나네요?”

“차라리 레벨이 다 차고 난 뒤에 잡아보자는 거겠지.”

그리고 재중이 형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뭐 생각만큼 쉽진 않겠지만.”

당분간 이 상태라…….

그렇게 걱정했던 변수가 사라지자 홀가분하게 용의 지대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악마형 케르베로스 손날로 아이템을 만드는 것.

제일 먼저 전사 형의 블레이드를 만들어주었다.

아무래도 딜량이 밀리면 어글이 계속 털리니 전사 형 무기를 맞춰주는 게 제일 좋았다.

다음으로 재중이 형과 이쁜소녀를 위해 무기를 제작했다.

재중이 형이 들고 있는 라이데인도 물론 좋다.

다만 관통 확률의 사기성을 알고 난 뒤부터는 이쪽에 손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라이데인의 마력 파괴 옵션은 물리 계열인 용의 지대 몹들 상대로는 그렇게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이쁜소녀 역시 마찬가지.

데스 나이트 무기의 대미지가 너무 떨어져서 제대로 대미지가 박히지 않으니 문제.

『 +0 데몬 스피어 / 출혈 26 타격 26

치명타 대미지 200% / 관통 확률 15%

악마형 피해 100% 추가 』

『 +0 데몬 배틀 액스 / 출혈 23 타격 29

치명타 대미지 300% / 관통 확률 10%

악마형 피해 100% 추가 』

“어? 무기 옵션이 좀 다르네요?”

막상 만들고 나니 스피어는 관통 확률이 블레이드보다 더 높게 나왔다.

배틀 액스는 관통 확률은 같은데 치명타 대미지가 더 높게 나왔고.

무기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건가?

확실히 재료가 더 들어가는 이유가 있네.

이쁜소녀가 날카롭게 버려진 검은 광택의 배틀 액스를 보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액스의 날에 뺨을 가져다 부벼 댔다.

“그렇게 좋아?”

“네! 전에는 너무…… 빨리 써보고 싶어요!”

“그래, 올라가자.”

각자 방어전 보상으로 받은 강화석을 써 재중이 형은 9강, 전사 형과 이쁜소녀는 8강으로 강화를 한 뒤 바로 사냥터로 나섰다.

먼저 전사 형이 날아다니는 드레이크를 끌어와 어글을 잡는데 확실히 무기가 좋아져서 그런지 순식간에 어글을 잡고 버텼다.

그 뒤로 이쁜소녀가 달려들어 데몬 배틀 액스로 드레이크의 다리를 후려쳤는데 바로 휘청거리는 것이 보였다.

“와! 된다!”

이쁜소녀가 펄쩍 뛰면서 기뻐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으면.

재중이 형도 드레이크의 목에 데몬 스피어를 찍어 넣자 관통이 터지면서 드레이크가 바로 주저 않았다.

무기만 바뀌었을 뿐인데 굳이 내가 나서지 않더라도 전사 형, 재중이 형, 이쁜소녀 셋이서 드레이크 하나를 잡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그럼, 좀 더 모아온다.”

전사 형이 먼저 신이 나서 뛰어나가더니 근처에 있는 드레이크를 싹 몰아서 가지고 왔다.

물론, 이것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막내별이 먼저 몰려오는 드레이크들을 향해 마법을 시전했다.

【 그라운드 핸즈! 】

그러자 땅에서 검은 손들이 잔뜩 올라와 달려들던 드레이크들의 다리를 붙들고 땅으로 끌고 들어갔다.

마치 늪에 빠진 듯.

아직은 랭크가 낮아서 범위가 좁지만 전사 형이 워낙 알뜰히 모아 와서 그런지 한 자리에 완전히 묶여버렸다.

그리고 챠밍.

【 트리플 캐스팅! 】

【 블랙 클라우드! 】

【 헬 라이팅! 】

머리 위로 구름이 잔뜩 생성되며 검은 비가 쏟아졌는데 그 범위 안에 있는 드레이크들의 단단한 피부를 바로 녹여내기 시작했다.

“크에엑!”

블랙 클라우드는 사실상 크게 위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다만 하나의 큰 장점이 있었다.

바로 방어력 감소.

방어구를 녹이면서 관통 효과와 비슷한 효과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위로 떨어지는 헬 라이팅.

이글거리는 검붉은 구가 떨어져 내리면서 드레이크들의 몸체를 강하게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강력한 폭발과 함께 드레이크들이 한꺼번에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저건 거의 관통을 동시에 거는 것과 마찬가지라 헬 라이팅의 위력이 제대로 들어간 것 같았다.

여기서 좀 도와줘볼까.

【 마력 전이! 】

마력 전이로 내 마력을 챠밍에게 전달해주자 바로 챠밍의 마력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오빠!”

그리곤 다시.

【 시간의 서! 】

【 트리플 캐스팅! 】

【 본 레인! 】

【 토네이도! 】

【 익스플로전! 】

동시에 세 가지 스킬이 시전되면서 드레이크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집중 강타했다.

특히 블랙 클라우드 효과가 아직 있어서 그런지 대미지가 엄청나게 들어가는 듯했고.

어지간하면 다운되지 않는 드레이크들이 완전히 주저앉아 버렸다.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전사 형이 어글 스킬로 잠시 시선을 묶어두면 나와 재중이 형, 이쁜소녀가 달려들어 마무리를 했다.

그렇게 모든 드레이크를 잡고 나자 바로 우리 팀 모두에게 환한 빛이 비치며 레벨이 올랐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110.

좋아.

속도가 붙었어.

혼자 잡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드레이크를 녹여댔다.

아껴놓지 않고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잡은 일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문제는 너무 빨리 잡으니까 주변이 횡하네.

그때 나르샤 누나가 달려나갔다.

“나도 밥값은 해야지.”

그동안 우리는 체력과 마력을 채우면서 마치 어미 새가 모이를 모아오듯 입만 벌리고 기다렸다.

그렇게 산을 뛰어다니며 멀리 있어 잘 안 보이는 드레이크들까지 싹 다 맞춰서 우리에게 끌고 오자 재중이 형이 감탄을 했다.

“휘유. 역시 몹몰이 최강.”

이어지는 사냥에 레벨이 점점 가속을 붙여서 오르기 시작했다.

레벨 순위를 보니 점점 선두권과의 격차가 좁혀져 가는 것이 보였다.

이대로 며칠 지나면 따라잡겠어.

그렇게 한참 사냥을 하는데 갑자기 귓속말이 울려댔다.

누구지?

사장님 쪽은 당분간 피해 있으라고 했으니 아직 연락 올 때는 아닌데…….

그런데 연락 온 사람은 의외의 사람이었다.

<화련> 대체 어디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보이지가 않잖아.

<주호> 네? 그게 무슨?

<화련> 악마형 케르베로스. 어떻게 할 거야? 잡을 거야?

이건 앞뒤 다 짤라 먹고 대놓고 본론인가?

<주호> 음, 사실 별로 생각이 없는데요?

<화련> 아! 왜! 네임드 나오면 다 잡고 다녔잖아. 저것도 좀 잡아 봐!

이거 아무래도 곤란한 상황이 생긴 것 같은데?

<화련> 칫, 갑자기 저게 왜 튀어나와서는! 어떻게 안 돼?

화련의 투정 아닌 투정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사실 그거 내가 불러냈단 말이야.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