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426화 (419/1,404)

# 426

#426화 좋은 그림 (1)

용의 대지는 이곳의 다른 사냥터보다 컷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예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단 가르시아 왕성과 거리가 멀었다.

지하나 산맥 통로를 타고 한참을 건너와야 하는 곳.

기본 시작지에서 거리가 멀다는 것은 그만큼 몬스터들의 레벨이 높다는 증거.

거기다 재중이 형 말대로 그냥 필드에 걸어 다니고 있는 몬스터가 엘리트가 최소였다.

가장 자주 보이는 녀석이 엘리트 드레이크니 말 다했지.

문제가 이렇다 보니 지금 걸리는 것은 레벨 차이.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장비.

이곳에서 어느 정도 원활하게 사냥을 하려면 높은 레벨과 장비가 뒷받침되어야 했다.

다만 우리는 사냥터를 몇 개나 건너뛰어 버렸지.

그럼 억지로라도 그에 맞는 레벨이나 장비를 맞춰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돌아갈 게 아니라면.

지금 돌아가는 것도 물론 나쁘지 않았다.

그동안 원했던 르아 카르테의 봉인을 일부 풀었고, 아마 가르시아 제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면 꽤 빠른 시간대에 다른 유저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밖에 사냥할 수 없는 최고의 사냥터를 놔두고 다시 돌아가는 것은 꽤 불편한 일이다.

돌아가는 길도 멀고.

돌아오는 길도 멀고.

거기다 이미 자리 잡고 있는 다른 유저들과 사냥터를 차지하기 위해 아웅다웅하면서 싸우고 있다가는 치고 나갈 기회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각했다.

여기서 사냥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

물론, 드레이크를 계속 잡는 것도 나쁘지 않는 선택이기는 했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녀석이 있으니까.

무기를 업그레이드하자는 말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었다.

이미 내가 말을 꺼낼 때부터 눈치챈 모양.

“악마형 케르베로스 족치자는 거지?”

그 말에 나도 따라 웃었다.

“네, 마침 방해할 사람들도 없고. 무엇보다 제련 가능한 곳이 코앞에 있잖아요.”

드워프의 지하 왕국.

가르시아 제국과 다르게 일단 재료만 가져다주면 원하는 무기를 척척 만들어줄 것이다.

“나쁘지 않아. 다만 그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지하 왕국을 덮친다면?”

“으음, 그럼 좀 멀리 나가서 해야 할까요?”

지하 왕국의 방어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지하 왕국을 위태롭게 만들 필요가 전혀 없었다.

아직까지는 지하 왕국은 내게 필요하니까.

오히려 지하 왕국이 위험하다면 나서서 막아야 할 정도.

적어도 르아 카르테를 완성하기 전까지는.

그 말에 재중이 형이 멀리 있는 산맥을 바라봤다.

“그런데 그놈 암흑 지대로 다시 돌아가긴 했나 모르겠네.”

“아, 그 문제도 있었네요.”

도망간 이후로 한 번도 확인을 안 해봤다.

그때 당시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기도 하고.

“한번 슬쩍 보고 올까요?”

암흑 지대로 들어가서 싸우는 방법도 있지만 악마형 케르베로스나 고르곤을 동시에 마주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이것은 좋지 않았다.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전이문을 열었다.

【 미치광이 리치 소환! 】

【 전이문 오픈! 】

“잠깐 다녀올게요.”

“무리하지 말고. 너 죽으면 끝이야! 끝!”

“네, 정말 살짝 보고만 올게요.”

그렇게 다시 전이문에 발을 들였다.

여전히 주변이 컴컴한 주변 풍경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뭔가가 있으면 분명히 볼 수 있을 텐데…….

그게 없는 이상은 내 감각에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눈을 감자 내 몸이 서서히 바닥에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주변 공기 흐름이 스멀스멀 내 피부에 닿아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 감각도 참 신기하단 말이지.

아무리 봐도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은 절대 아니었다.

주변 정보가 공기 흐름을 타고 세세하게 전달되는 이런 방법을 쓰는 사람은 적어도 내가 알기엔 한 명도 없었다.

바닥의 감촉과 진동, 그리고 그런 감각이 계속 내 주변을 벗어나 주변을 훑기 시작했다.

1m.

5m.

10m.

거리를 넓혀가는 감각의 흐름이 거리가 멀어질수록 점점 희미해져 갔다.

분명 예전보다 더 좋아졌다.

감각은 흐릿했지만 꽤 먼 거리까지 인지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걸음을 걸으면서 주변을 살피자 어둠 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것이 잡혔다.

역시.

원리는 모르겠지만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돌아와 있었다.

확실히.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날 감지하는 것보다 내가 더 멀리서 녀석을 감지했다.

전보다 이 능력이 한층 좋아졌다는 소리고.

고르곤은 느껴지지 않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여기도 한 번 멀리까지 나가서 확인해 봐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로 다시 전이문을 타고 바깥으로 나왔다.

【 전이문 해제! 】

나와 전이문을 닫자 날 기다리고 있던 재중이 형이 물었다.

“생각보다 일찍 나온다?”

“아, 녀석이 있었어요.”

“그래?”

내가 확실히 말하자 더 이상은 물어보진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하는 정도.

전이문이 안전하게 닫히자 우리 팀의 시선이 그제야 돌아섰다.

녀석이 확실하게 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젠 장소를 택해야 한다.

적어도 여기서는 꽤 먼 곳으로.

그때 챠밍이 의견을 꺼내놓았다.

“오빠, 예전에 그곳은 어때요?”

“어디?”

“우리 거점 만들었다가 실패했던 곳요. 거기라면 넓어서 괜찮을 것 같은데.”

“으음? 확실히 그 근처가 넓긴 한데.”

문제는 그 근처에 있던 수많은 몬스터가 문제였다.

바실리스크, 용아병, 레서 드래곤, 각종 색의 드레이크 등 엘리트로 추정되는 몬스터가 즐비했다.

녀석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방해받지 않고 부위 파괴를 할 수 있으려나…….

조금 소란을 피우면 바로 몰려들지도 모르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른 곳을 찾자고 말하려고 할 때 머릿속에 먼가가 스쳐 지나갔다.

이거.

생각보다 꽤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나?

넘쳐나는 강한 몬스터.

그리고 그보다 더 넘치게 강한 몬스터.

“챠밍 잘했어!”

“네?”

“네 덕에 최적의 그림이 나올 것 같다.”

갑작스러운 내 칭찬에 챠밍의 볼이 빨개졌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것을 조심스럽게 말하자 다들 처음에는 의아한 듯 듣더니 곧장 흥미로운 표정으로 변했다.

그중 막내별이 싱글벙글 웃더니 날 보면서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역시 꼼수 대마왕!”

쟤도 애들한테 물들었어…….

전사 형도 내 말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그놈 상대한다고 또 고생하나 했는데 말이야.”

“네, 거기다 우리가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는 게임입니다.”

“진짜 뭘 먹고 살면 그런 생각이 나오냐. 나도 좀 줘봐라.”

전사 형의 말에 그저 웃기만 했다.

보고 있던 재중이 형이 손뼉을 쳤다.

아주 재밌어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자자, 결정됐으면 움직이자고.”

* * * * *

우리가 거점을 설치한 곳까지 오는 일은 어렵지는 않았다.

왔던 방법을 정확히 반대로 해서 오면 됐으니까.

“이 방법을 또 쓰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전에 사냥꾼이 알려준 방법.

그리고 그만큼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 막내별의 표정이 찌푸려져 있었다.

“……VRS 나가서도 냄새가 날 것 같아.”

“힝, 이거 싫어요.”

“나도 안 하고 싶네.”

“으으, 저도 싫어요.”

솔직히 나도 싫은데 저들은 오죽할까.

전사 형과 재중이 형은 그러려니 하면서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장비만 맞추면 드레이크고 뭐고 다 몰살시켜 버릴 테다.”

전사 형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재중이 형이 그런 우리 팀을 다독였다.

“자,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인상들 풀고.”

그렇게 가르시아 제국으로 가는 통로까지 와서 드레이크들을 모두 떼어낸 다음 다시 통로를 나왔다.

그리고 예의 그 거점을 만들었던 지점까지 이동했다.

챠밍이 주변을 살펴보고는 감상평을 말했다.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요. 정말 그땐 아무것도 몰랐는데.”

“그래서 그런 무모한 짓을 했었지.”

반면에 이제는 안다.

거점을 만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할 일의 핵심은 바로.

“일단 모두 이동해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우리 팀을 데리고 모두 몬스터가 없는 아주 멀리까지 이동해서 언덕 아래로 숨어 들어갔다.

<주호> 잘 숨었어요?

<불멸> 오케이, 머리카락 하나 안 보이게 숨었다. 주변에 몬스터가 다니는 길도 아니고. 여긴 안전해.

<주호> 그럼 시작합니다.

일단.

이쪽부터.

【 미치광이 리치 소환! 】

【 전이문 오픈! 】

전이문을 오픈하는 것까지는 이전과 똑같았다.

그 후에 전처럼 전이문을 통해 암흑지대로 넘어갔다.

어디 보자.

녀석이…….

어둠 속에서 감각을 훑어 돌아다니면서 녀석의 시야에 들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조금 돌아다니자 곧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날 발견하고는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오케이.

녀석이 날 감지했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바로 전이문 반대편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바로 품에서 하르 원석을 꺼냈다.

“거점 설치.”

《 이곳에 거점 설치하시겠습니까? 》

YES를 선택하자 하르 원석이 반응하면서 곧장 내 발밑으로 거점 활성화를 위한 마법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 용의 대지에 가르시아 제국 남작 주호 님의 새 거점이 설치됩니다. 》

《 거점 명은 길드 명으로 대체 됩니다. 》

《 거점 : 신화가 설치되었습니다. 》

전과 다르게 이번엔 가르시아 제국 남작으로 거점이 설치되었다.

뭔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지.

《 거점을 설치하고부터 주변 모든 몬스터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

바로 이 시스템.

거점을 설치하는 순간부터 주변의 온갖 몬스터가 개떼처럼 몰려들게 된다.

거점을 설치하자마자 바로 몸부터 날렸다.

【 헤이스트! 】

【 백스탭! 】

【 대쉬! 】

튈 수 있는 최대한 빨리.

이곳을 튀어야 한다.

몸이 쭈욱, 늘어나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순식간에 내가 설치해놓은 거점에서부터 몸이 멀어졌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우리 팀이 숨어 있는 장소로 뛰었다.

<챠밍> 오빠! 몬스터들 나오기 시작했어요!

<이쁜소녀> 빨리!

생각보다 빠른데?

얼마나 떡밥이 좋은지 주변에 몬스터가 떼로 움직이면서 주변 땅을 온통 진동시켰다.

물론, 내게도 그 진동이 아주 잘 느껴졌고.

올라간 민첩과 헤이스트의 가속으로 겨우 은신처에 도착해 우리 팀의 엎드려있는 언덕 아래로 뛰어들었다.

“오빠, 왔어요!”

다들 내가 오길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환영했다.

“헉헉! 이처럼 뒤도 안 보고 달려보긴 또 오랜만이네. 따라붙은 놈 있어요?”

얼마나 달렸으면 체력이 주르륵 깎여 있었다.

“아니, 없어.”

나르샤 누나가 제3의 눈을 켜고 주변을 살펴봤는데 다행히 붙은 녀석은 없는 것 같았다.

“상황은?”

“여기서도 보여, 한 번 봐.”

그렇게 다른 사람들처럼 언덕 위로 고개를 슬쩍 들어 올리자 내가 만들어둔 거점이 깨알같이 작게 보였다.

그리고 사방에서 몬스터 떼가 거점을 파괴하기 위해 몰려드는 모습도 보였고.

거기다.

“크어어어!”

악마형 케르베로스.

녀석이 전이문을 통과해 거점이 만들어진 장소 코앞에 나와 포효를 했다.

물론, 녀석을 반겨주는 것은 우리가 아니고 다른 녀석들이지만.

엘리트 몬스터 떼가 거점으로 달려들다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보고는 잠시 멈칫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일제히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캬아아악!”

“케에에엑!”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포효를 하면서 달려드는 드레이크의 머리를 팔로 강하게 내려쳤다.

둔기로 내려치는 것 같은 격타음이 들리면서 드레이크가 튕겨 나갔는데 바로 그 자리를 다른 드레이크가 메우면서 케르베로스의 허벅지를 물어뜯었다.

“크아악!”

그러자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팔이 검은 날로 변해 드레이크의 날개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그 뒤로 바실리스크가 달려들어서 온몸으로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차징해 쓰러뜨리고 발로 녀석을 뭉개는 모습.

그런 바실리스크의 배를 갈라 옆으로 쳐내면서 다시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일어났다.

하늘에서는 레서 드래곤과 드레이크가 날아들어 입으로 브레스를 뿜어냈고 그걸 맞은 녀석이 검은 마법진을 소환하더니 공중에 뜬 몬스터들을 일제히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개판이네.

서로 한 치의 양보가 없는 몬스터 대전에 입꼬리가 쭉 올라갔다.

부담스런 적들이 있으면 굳이 싸울 필요가 있나.

서로 저렇게 정다운데.

“그림 완전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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