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4
#424화 탐식 (3)
르아 카르테가 완성됐다는 소식에 우리 팀 모두 사냥을 멈추고 드워프 지하 성으로 다시 돌아왔다.
재중이 형이 얼굴 가득 궁금함을 내비치며 내게 물었다.
“드디어 완성?”
“네, 어떨 것 같아요?”
“일단 봐야지. 일주일이나 기다리게 만든 녀석이 어떤지.”
최상위 랭커가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정말 치명적이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후발 주자들은 밑에서 치고 올라올 테니까.
그런 페널티를 감수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알고 싶은 거겠지.
우리 팀도 모두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
다들 내 손에 들린 하얗고 투명한 검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동안 보던 검들과는 상당히 이질적이라 아마 어디를 가도 눈에 띌 것이다.
“여기요.”
검을 받아든 재중이 형의 눈에 이채가 맴돌았다.
“호오? 이건?”
『 +0 르아 카르테 / 출혈 0 타격 0
- 옵션 1
- 옵션 2
- 추가 봉인 / 미완성 』
“희한한 검이죠?”
“그러네.”
공격력 0.
거기다 옵션까지 없었다.
지금껏 로스트 스카이를 플레이하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형식의 아이템.
나도 처음엔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전사 형도 보더니 깜짝 놀란 듯 물었다.
“이거 쓸 수는 있는 거야?”
챠밍, 이쁜소녀도 마찬가지 표정.
“이런 아이템은 처음 봤어요.”
“정말 0이네요?”
둘 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르아 카르테를 바라봤다.
맞다.
공격력이 그냥 0이다.
이걸로는 수천, 수만 대를 치더라도 대미지를 1도 줄 수 없다.
차라리 주먹으로 치는 게이 좋을 정도.
나르샤 누나와 막내별도 신기한 듯 계속 르아 카르테를 살펴봤다.
“옵션은 대체 뭐야?”
“거기다 미완성이네요.”
비어 있는 옵션에 미완성.
누가 봐도 이질적인 아이템이다.
그리고 어쩌면 정말 전무후무한 아이템이 나올지도 모른다.
쓰기에 따라.
드워프의 왕 카르바할에게서 들은 설명에 따르면 이렇게 하라고 했던가.
공용 창고는 도시나 유적이라면 언제든 쓸 수 있다.
그래서 여분으로 창고에 넣어둔 아이템 몇 개를 가지고 왔다.
공용 창고에서 아이템을 계속 꺼내 들자 다들 궁금한 듯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자, 이제 보여줄게요.”
일단은.
혹시 몰라 남겨두었던 +0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를 인벤에서 꺼내서 왼손에 쥐었다.
『 +0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 / 출혈 20 타격 12
회복 불가, 상처 저주+1 』
반대로 오른손엔 르아 카르테를.
그리고 르아 카르테 위에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를 겹쳐 올렸다.
그러자 시스템 음이 바로 울렸다.
《 르아 카르테가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에 반응합니다. 》
《 르아 카르테에 흡수시키겠습니까? 》
이거다.
드워프의 왕에게 들은 이야기가.
시스템 음이 선택지를 주자 곧장 YES를 눌렀다.
《 르아 카르테가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를 먹어치웁니다. 》
르아 카르테에서 검붉은 빛이 흘러나오더니 곧장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를 흡수하는 듯한 이펙트가 생겼고.
그렇게 조금씩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는 르아 카르테 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어머?”
“우와.”
챠밍과 이쁜소녀가 깜짝 놀란 듯 눈을 깜빡거렸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이제껏 아이템을 이런 식으로 강화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으니까.
물론, 나 역시 놀라 르아 카르테를 손에서 놓칠 뻔했다.
《 르아 카르테가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를 탐식합니다. 》
《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가 소실됩니다. 》
《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의 옵션 중 하나가 르아 카르테에 랜덤 포획됩니다. 》
『 +0 르아 카르테 / 출혈 20 타격 12
- 회복 불가.
- 옵션 2
- 추가 봉인 / 미완성 』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가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남은 르아 카르테의 옵션.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의 공격력을 그대로 흡수함과 동시에 회복 불가 옵션을 가져왔다.
“허? 이게 대체!”
전사 형이 화들짝 놀라서 르아 카르테를 바라봤다.
“아, 저도 처음 해보는 거라…….”
드워프의 왕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정말 그럴 수가 있을까 하고.
흡수된다는 말을 하기는 했는데 이런 방식인 줄은 처음 알았고.
챠밍이 뭔가를 생각하더니 깜짝 놀라 내게 물었다.
“설마 옵션 2가?”
“어,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아.”
“대박.”
얼마나 놀랐으면 챠밍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와 르아 카르테를 번갈아 쳐다봤다.
다른 무기의 옵션을 강제로 가져오는 것.
그게 르아 카르테다.
드워프 왕의 말로는 탐식이라고 하고.
물론, 가져온 아이템은 분해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랜덤이긴 해도 옵션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었다.
여기서 하나 더.
흡수시키면 어떻게 변할까?
“하나 더 갈게요.”
과연 스탯 옵션만 달린 무기는 어떻게 흡수할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번엔 하르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 하르 블레이드 / 출혈 15 타격 7
마력 +5 / 신성력 +5 』
《 르아 카르테가 하르 블레이드를 탐식합니다. 》
《 하르 블레이드가 소실됩니다. 》
《 하르 블레이드의 옵션 중 하나가 르아 카르테에 랜덤으로 추가 포획됩니다. 》
『 +0 르아 카르테 / 출혈 15 타격 7
- 회복 불가.
- 신성력+7
- 추가 봉인 / 미완성 』
흐음, 이번엔 이상하게 변했는데?
남은 옵션 슬롯에 신성력이 옵션으로 들어간 것까지는 이해를 했다.
그런데 공격력이 하르 블레이드의 공격력으로 바뀌어 버렸다.
단순히 공격력 측면에서만 보면 다운 그레이드 된 셈.
재중이 형이 그걸 보더니 신기한 듯 말했다.
“이거 꽤 까다로운데? 나중에 흡수시킨 놈을 따라가는 건지, 아님 랜덤으로 바뀌는 건지 모르겠네.”
“몇 개 더 해보죠.”
만약 나중에 흡수하는 무기의 공격력을 따라간다면 최대한 공격력이 높은 무기를 나중에 흡수 시킬 필요가 있었다.
랜덤이라면 굳이 순서에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게 창고에 있던 몇 개의 아이템을 분해해서 르아 카르테에 흡수시켰다.
몇 번 더 연습해보자 대략적인 특성을 알게 되었다.
일단 공격력.
이건 나중에 흡수시킨 무기의 공격력을 따라간다.
먼저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를 집어넣고 뒤에 하르 블레이드를 집어넣으면 하르 블레이드의 공격력이 적용된다.
뒤에 아이템이 앞의 아이템의 공격력을 덮어버리는 방식인가?
이러면 무조건 공격력이 높은 아이템을 뒤에 넣어야 한다.
그리고 옵션은 각 무기에서 랜덤하게 하나만 빼올 수 있었다.
무기에 달린 옵션이 하나뿐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두 개 이상이라면 원하는 옵션을 빼오기 위해 몇 번은 시도해야 할 것이다.
딱히 횟수에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물론, 그만큼 엄청난 돈이 소모되겠지.
네임드 무기 하나의 가격을 생각해본다면…….
그리고 같은 옵션을 똑같이 빼올 수는 없다는 것.
전사 형이 그걸 보고는 말했다.
“이건 좀 아쉽네.”
“역시 그렇죠?”
“카스카라만 줄줄이 흡수시켜서 괴물 아이템을 만들 수 있었는데 말이지.”
전사 형 말대로 카스카라의 마력 흡수 옵션만 주구장창 배치하면?
카스카라를 몇 개나 지니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쉽지만 이쪽은 포기.
그리고 강화.
강화를 해놓고 변경을 해도 딱히 강화 수치가 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옵션을 바꿀 때마다 강화 수치가 초기화되면 그것만큼 빡치는 일이 없으니까.
예를 들어 10강을 했는데 옵션 하나 바꾼다고 강화가 0이 되거나 하면 욕을 저절로 나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검이 아닌 무기는 흡수를 못 한다는 것.
창, 도끼, 활 종류도 되면 좋았을 것을.
그럼 더욱 다양한 옵션을 낼 수 있었을 텐데…….
이쪽은 아마 공격력의 차이 때문인지 안 되는 것 같았다.
“이젠 배치를 잘해야겠네요.”
내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가급적 두 슬롯 중 첫 번째에 옵션이 좋은 쪽을.
두 번째는 공격력이 좋으면서 괜찮은 무기를 녹여 내야 했다.
그동안 스쳐 간 아이템들을 쭉 생각해 봤다.
뭐를 합치면 좋을까?
너무 오래된 네임드 템들은 스탯 수치가 낮아서 그렇게 큰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공격력 자체도 낮았고.
그럼 지금까지 쓸 만한 옵션이 붙어 있는 녀석을 택해야 하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카스카라.
이건 빼놓을 수 없다.
마력 흡수는 무조건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그럼 나머지 하나가 문제인데.
“블러디아와 검투사 블레이드가 문제네요.”
블러디아는 체력 흡수 옵션.
그리고 검투사 블레이드는 옵션이 무려 세 개가 있었다.
치명타 대미지, 카운터 대미지, 대인 피해 추가.
이 옵션 중 하나만 가져오는 것은 좀 많이 아쉬…….
굳이 하나를 가져오자면 치명타 대미지.
전방에서 카운터 치는 전사 형보다 직접 치명타를 넣을 일이 더 많으니까.
어쩐다….
여기서 딜을 더 올리는 쪽을 선택할 것인가.
아님 블러디아로 안정적인 쪽을 택할 것인가.
“형, 어때요?”
재중이 형에게 물어보니 생각 외로 답이 빠르게 나왔다.
“혼자 싸울 게 아니라면 딜이 좋겠지. 그리고 블러디아나 카스카라 보다는 검투사 블레이드가 공격력이 훨씬 높으니까. 놈들을 다운시키려면 그 정도 공격력은 필요할 거다. 라이데인으로도 겨우 눕히는 중이야.”
“덕분에 결정이 쉬워졌네요.”
크리티컬을 최대한 더 끌어올리는 쪽으로.
문제는 검투사 블레이드.
여분이 없었다.
콜로세움을 하지 않아서 구할 곳도 없었고.
그때, 전사 형이 의외의 말을 했다.
“대전 때 못 구한 유저들 때문에 제작 템에 들어가 있다. 제국으로 가면 구할 수 있지. 교환도 가능해졌고.”
“그건 정말 다행이네요.”
다만 귀환지를 여기로 해놓더라도 왕복하려면 제법 긴 시간이 걸릴 텐데.
오가는 길이 쉬운 것도 아니고.
“그리고 굳이 갈 필요는 없어.”
전사 형이 잠시 사장님과 연락을 주고받더니 길드 창고에서 검투사 블레이드를 몇 개 꺼내왔다.
덕분에 굳이 제국까지 갈 필요는 없어졌다.
“고마워요.”
먼저 첫 번째 슬롯에 카스카라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두 번째 슬롯에 검투사 블레이드를 흡수시켰다.
옵션이 세 개나 되기 때문에 잘못했다가는 몇 개를 날려 먹을지 모른다.
그렇게 두 번 연속 꽝이 걸리고 세 번째가 되어서야 원하는 옵션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이것도 돈이 너무 드는데?
그나마 돈으로라도 구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
여분이 없는 무기를 집어넣었다가는…….
《 르아 카르테가 검투사 블레이드를 탐식합니다. 》
《 검투사 블레이드가 소실됩니다. 》
《 검투사 블레이드의 옵션 중 하나가 르아 카르테에 랜덤으로 추가 포획됩니다. 》
『 +0 르아 카르테 / 출혈 20 타격 12
- 마력 흡수 1%
- 치명타 대미지 200%
- 추가 봉인 / 미완성 』
이걸로 로스트 스카이에 단 하나뿐인 무기가 만들어졌다.
“그럼, 강화할게요.”
먼저 아껴두었던 10강 정제 강화석을 질렀다.
《 주호 님이 【 +10 르아 카르테 】 인챈트에 성공했습니다! 》
역시나 전 서버에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갔다.
다만 이번엔 좀 달랐다.
챠밍이 먼저 발견해서 놀란 듯 말했다.
“오빠? 아이템 정보가 안 보여요.”
“정말?”
“네, 아이템 이름만 나와요.”
그 말에 다들 한 번씩 르아 카르테를 클릭해보고는 맞다고 확인해줬다.
전사 형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유일 템이라고 신경 좀 써줬나 보네.”
“으음, 확실히 고맙죠. 이러면.”
르아 카르테에 무슨 옵션이 뜨는지 알게 된다면 전력의 반이 노출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건 고마워해야겠는데.
그리고 아마 다른 유일 템도 옵션이 뜨지 않을 확률이 높겠지.
물론, 10강이 뜨면서 서버 채팅창이 한 번 더 뒤집어졌다.
-주호 잠잠하다 싶더니 또 사고 치네.
-접은 거 아니었어?
-갑자기 10강이라니…….
-르아 카르테? 저건 또 무슨 템이냐.
-거봐, 어디선가 혼자 딴짓 하고 있다니까.
-그동안 레벨 안 올리고 네임드만 찾아다닌 모양인데?
-미친놈. 제국 넘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네임드를 잡냐.
-10강 부럽다. 주호 대체 10강이 몇 개야.
-어? 무기 정보 안 보이는데?
-진짜네. 패치된 건가?
-전에 검투사 블레이드는 보였잖아. 저건 왜 저래?
-주호 예측 글, 성지 순례 간다. ㅅㄱ
죽은 듯 침묵하던 내가 10강 무기를 들고 나타나자 게시판이며 게임이며 난리가 났다.
물론, 여기서 끝낼 생각은 없고.
그간 모아둔 +1 확정 정제 강화석 세 개.
방어전.
수복전.
PVP 대전에서 각각 얻은 확정석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 주호 님이 【 +11 르아 카르테 】 인챈트에 성공했습니다! 》
《 주호 님이 【 +12 르아 카르테 】 인챈트에 성공했습니다! 》
《 주호 님이 【 +13 르아 카르테 】 인챈트에 성공했습니다! 》
-미친?!
-오우야. 진짜 미쳤네. 13강?
-연속으로?
『 +13 르아 카르테 / 출혈 36(20+16) 타격 28(12+16)
- 마력 흡수 11%
- 치명타 대미지 450%
- 추가 봉인 / 미완성 』
검투사 블레이드의 공격력과 치명타.
카스카라의 마력 흡수.
거기에 13강이라는 양념이 올라가자 미친 무기가 탄생해 버렸다.
이 정도면 거의 엔드 무기인데?
재중이 형이 르아 카르테를 보고 나서 바로 감상을 말했다.
“검투사 블레이드하고 같이 들면 치명타만 도합 750%… 미쳤네.”
“마력이 부족하면 카스카라와 같이 들어도 되고요.”
일주일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이거라면!
“우리 오랜만에 햇빛 좀 보죠. 그간 좀이 쑤셨는데!”
그렇게 우리 팀과 함께 지하 왕국을 벗어나 지상으로 나왔다.
그리고 근처에 혼자 돌아다니던 드레이크를 발견했다.
전사 형이 녀석을 보더니 어글 스킬을 써 동굴 앞으로 끌어당겨 탱킹을 시작했다.
“가라! 주호!”
“네, 갑니다!”
【 트리플 캐스팅! 】
【 라이트 웨폰! 】
【 라이트닝 웨폰! 】
【 아쿠아 웨폰! 】
일단 삼색 웨폰을 불러냈다.
이게 붉은색 몹을 상대로 얼마나 통할지 모르겠지만.
드레이크의 후방으로 들어가서 13강 르아 카르테와 10강 검투사 블레이드로 녀석의 뒷다리 무릎 부분을 강하게 연속으로 후려쳤다.
【 더블 크래쉬! 】
혹시 몰라 배율도 두 배로 끌어 올렸고.
순간 드레이크의 굵고 튼실한 뒷다리가 찢겨나가며 무릎이 뒤틀리면서 한 번에 터져나갔다.
“꾸어어어!”
단 두 방.
완벽한 크리티컬에 더블 크래쉬와 트리플 캐스팅의 조합을 맞자 시뻘건 네임을 가진 드레이크가 중심도 잡지 못하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렙 차이가 이 정도로 나는 몹을 한 방에 주저앉힐 줄이야.
그래,
진짜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