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420화 (413/1,404)

# 420

#420화 부위 파괴 (3)

내 외침에 깜짝 놀란 우리 팀을 비롯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나를 따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다들 사색이 되어 외쳤다.

“피해!”

하지만 성벽 위에서 공격하던 수많은 사람이 이미 그쪽에 정신이 팔려 우리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여전히 공격만 집중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

더 이상 대피시킬 시간이 없으니까.

그 사이 하늘에 떠 있던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두 발을 아래를 향해 휘둘렀다.

【 헬 라이팅! 】

스킬의 외형도 그렇지만, 확실히 처음 들어보는 기술이었다.

마치 타오르는 것처럼 이글거리는 수십 개의 검은 구가 성벽 곳곳에 떨어져 내렸다.

지나는 주변 공기를 모두 일그러뜨리면서 태우는 모습.

전에 봐왔던 스킬들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 쪽 근처로 날아오는 것만 무려 세 개.

그중 하나는 완전히 우리에게 직격으로 떨어졌다.

성벽 끝에 있었다면 또 모르겠으나 지금은 완전히 중앙이었고,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지체할 시간 없이 검투사 블레이드와 카스카라를 바로 꺼내 들었다.

지금은 숨기고 말고 할 여유 자체가 없었다.

이 자리에서 쓰지 않으면 죽는다.

【 트리플 캐스팅! 】

【 라이트 웨폰! 】

【 라이트닝 웨폰! 】

【 아쿠아 웨폰! 】

네 개의 스킬을 사용해 화려한 빛의 검들을 만들어냈다.

“전사 형. 저 좀 뛰어야겠어요!”

“알았다!”

저게 성벽에 닫고 나면 늦는다.

적어도 우리에게 직격으로 날아오는 하나 정도는 막아야…….

나보다 힘이 좋은 전사 형이 두 손을 깍지 껴서 발판을 만들어주자 그걸 밟고 그대로 하늘로 뛰어올랐다.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것 때문에 서로가 닿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지근거리에 근접하자마자 헬 라이팅의 옆면을 있는 힘껏 검투사 블레이드로 쳐냈다.

그렇게 부딪치는 마지막 순간까지 감각을 끌어올리며 두 눈은 집요하게 검투사 블레이드의 날과 헬 라이팅의 경계를 주시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끝이다.

검투사 블레이드와 헬라이팅이 닿는 순간.

엄청난 반탄력과 함께 검투사 블레이드가 옆으로 튕겨 나가 버렸다.

손과 팔을 뒤틀 정도의 엄청난 충격을 주면서.

거기다 트리플 캐스팅으로 걸어둔 웨폰 기술들이 한 번에 벗겨지듯 사라져 버렸다.

체력이 역시 거의 3분의 1 가까이 사라졌고.

고작 쳐내는 것에.

다행히 경로가 옆으로 밀려나는 것을 보고는 바로 몸을 틀어 다시 한 번 카스카라를 빠르게 휘둘렀다.

그렇게 원래 궤적에서 밀린 헬 라이팅의 끝이 다시 한 번 강하게 부딪치면서 카스카라 역시 거세게 튕겨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헬 라이팅의 궤적이 확 꺾이면서 원래 떨어지려던 장소보다 훨씬 먼 장소로 튕겨 나갔다.

후, 성공한건가?

다행스럽게도 우리 팀이 서 있는 자리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쳐낼 수 있었다.

이 정도의 고배율을 가진 스킬 조합이 겨우 평수를 이루다니…….

아니, 반대로 말하면 이 정도의 스킬이 없었다면 직격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상태를 확인하니 체력은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있었고 반면에 마력은 순식간에 풀로 차올랐다.

이제 확실히 알겠다.

저 스킬.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마력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간 기술이다.

악마형 케스베로스가 빠르게 공격할 수 있었음에도 허공에서 긴 시간 차징을 했던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성벽에선 사람들이 헬 라이팅을 향해 수없이 많은 공격을 쏟아냈지만 그걸 비웃듯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헬 라이팅 수십 개가 성벽 곳곳에 떨어져 내렸다.

콰앙!

콰아아앙!

헬 라이팅이 성벽에 맞으면서 지축을 흔들 정도의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 견고할 것 같았던 제국 성벽을 그대로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스킬 단 한 방에.

헬 라이팅 하나하나가 미친 듯한 폭발 반경을 내면서 터지자 그사이에 존재하던 유저들은 어떤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음의 빛으로 사라져 버렸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유저들을 데리고.

직격으로 당한 유저들을 제외하더라도 성벽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비산하는 잔해에 휩쓸려 죽은 유저의 수도 상상을 초월했다.

그 많던 유저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몇 초에 불과했다.

미친.

손에 느껴진 반탄력으로 볼 때, 저건 완벽히 규격 외다.

오히려 저런 스킬을 튕겨낸 내 자신이 신기할 정도로.

순간 눈을 돌려 우리 팀의 체력 상태부터 확인했다.

휴.

다행인가?

우리 팀의 체력 상태가 전부 바닥이긴 했지만 그래도 살아 있었다.

그렇게 난 폭발의 잔해로 엉망인 무너진 성벽 사이로 착지하여 뿌옇게 날리는 주변을 살폈다.

그렇게 성벽 잔해 아래 우리 팀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는 바로 달려갔다.

“괜찮아요?”

내 물음에 데스 나이트 라지 쉴드를 위로 들고 그대로 굳어있는 전사 형이 날 보곤 긴장이 풀렸는지 맥없이 웃었다.

“와, 이번엔 진짜 죽을 뻔했다. 이거 아니었으면.”

그렇게 말하면서 한 손으론 누더기가 된 망토를 쥐고 흔들었다.

본 쉴드였나?

라지 쉴드에 다크 쉴드의 방어력과 본 쉴드까지 써도 이 모양이라니.

궤적을 틀어놓지 않았다면 우리 팀도 위험할 뻔했다.

“여차하면 내가 나섰을 거야.”

옆에 숯덩이가 된 재중이 형이 라이데인을 들고 흔들어 보였다.

확실히 라이데인이면 한 번은 밀어낼 수 있겠지.

헬 라이팅을 직접 경험한 내가 보기에도 라이데인은 그 정도다.

스킬 한 방에 초토화된 주변을 둘러본 재중이 형이 어이없다는 듯 미소 지었다.

“저 새끼 생각보다 훨씬 쎈 놈이었네.”

“네, 차원이 달라요.”

예전과 정말 달라졌다.

지금 위력과 비교해 보면.

아무리 성벽 위에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고는 해도 그 많은 유저들을 한 번에 녹여 버릴 저력이라니.

덕분에 성벽이 통째로 무너져 휑하게 변했다.

이전에 왕국이 그렇게 빨리 털린 것이 우연은 아니었다는 거고.

전사 형이 죽겠다는 엄살을 부리며 입을 열었다.

사실 진짜 죽을 뻔했지만.

“다들 스탯을 조절해서 그럴 겁니다. 저도 이번엔 아슬했으니까.”

“으음, 확실히 그렇네. 자, 이제 저 녀석을 어쩐다…….”

헬 라이팅을 던진 녀석은 어느새 성벽을 통과해 제국 시내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시내 곳곳이 불타오르면서 NPC가 죽어 나가고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벽을 끼고 녀석을 막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스토리였구나…….

주변을 보자 죽은 사람이 많은 만큼 아이템 역시 성벽 잔해를 따라 번쩍거리면서 도처에 깔려 있었다.

너무 많아서 수를 세기도 힘들 정도로.

그런 보기 힘든 진풍경을 뒤로 하니, 역시는 역시였던가?

운이 좋아 겨우 살아남은 유저들이 아이템들을 서로 주워 먹겠다고 칼부림을 벌이며 죽어가는 모습까지.

“또 이곳저곳에서 쟁 일어나겠네요.”

전사 형이 내 말에 혀를 내둘렀다.

“이번엔 좀 심할 것 같긴 해.”

사람들의 욕망이란.

눈앞의 적을 놔두고도 아이템을 챙기기 급급했다.

물론, 아이템에 높은 값어치가 있으니 뭐라고 말하기엔 애매하기도 했고.

“생각 있어?”

“아뇨, 굳이.”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저런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

악마형 케르베로스.

저 아수라장에 끼어 심력을 쏟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가죠.”

다들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장비를 챙겨서 곧장 제국 시내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는 대로마다 NPC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역시 일반 NPC들로는 상대가 안 되는 모양이다.

애초에 성벽에 모여 있었으니 제지할만한 유저가 있던 것도 아니고.

진로를 방해할 사람이 없다 보니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시내를 돌파하는 것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늦겠어요. 따라붙죠.”

내가 달리기 시작하자 우리 팀도 따라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려갔을까.

귓가로 들려오는 전투 소리에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앞인가 보네요.”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멈출 만한 병력이 있었나?

조금 더 다가서자 수백의 유저가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둘러싸고 공격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중 우리가 아는 사람도 제법 있었고.

화련 쪽 길드는 벌써 반 이상 죽은 모양.

초월 쪽도 그렇고 프로들이 소속된 곳조차 온전히 숫자를 유지하는 길드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다시 전장으로 복귀해서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진격을 막아냈다.

대체 언제?

우리보다 빨리 올 수는 없었을 건데.

그걸 본 전사 형이 한 곳을 가리켰다.

“다들 한 번씩 죽었네. 귀환석에서 뛰어온 모양이다.”

“아까 폭발에 다 죽었군요.”

하긴 그 정도로 밀집되어 있던 상황이라면 재난과 같은 폭격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드문드문 장비가 하나씩 빠진 것을 보면 성벽에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바로 이 녀석을 잡으러 온 것 같았다.

스폰이 있으니 할 수 있는 짓인가?

화련이 공격하다 말고 접근하는 우리를 슬쩍 보더니 전장에서 빠져서 내게 달려왔다.

“하, 설마 거기서 살았어? 전부?”

우리가 온 방향이 성벽 쪽이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화련이 한숨을 쉬었다.

“우린 대부분 죽었는데 진짜. 운도 좋지.”

내가 생각해도 그 상황에선 운이 좋아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뭐 딱히 운으로 살아남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 여기서 굳이 할 이야기는 아니라 입을 다물었다.

“낄 거야?”

“으음, 글쎄요.”

화련의 말에 전장을 바라봤는데 잘 싸우기는 하지만 버티는 유저보다 죽어 나가는 유저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확실히 프로라고 해도 레벨과 장비가 밀리면 어렵긴 하나 보네.

솔직히 전부 사라져주는 게 가장 베스트이긴 한데…….

이렇게 오픈된 필드에서 그것도 귀환석으로 계속 유저가 복귀하는 상황에서는 그걸 바라긴 어려워 보였다.

물론, 어중이떠중이가 다시 찾아올 것 같진 않지만.

아까의 그 폭격을 보고도 덤빌 수 있는 유저들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죽을 때마다 장비를 툭툭 떨어뜨릴 확률이 높은 이 전장에 끼는 것은 어렵지.

지금도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블링크로 후방의 딜러진을 휩쓸고 다니는데 멀리서 공격만 한다고 절대 안전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꽤 많은 유저가 사방에 몰려들어 공격하기를 반복했다.

어떻게든 잡기만 하면 된다는 건가?

어쩐다…….

죽고 귀환하기를 반복하면 어떻게든 체력을 깎아놓을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엄청난 희생이 동반되어야겠지만.

그때 재중이 형이 나서서 말했다.

“좀 기다리지.”

“의외네요.”

그 말에 재중이 형이 어깨만 으쓱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뜻.

화련이 그런 재중이 형을 보다가 내게 시선을 돌리고는 한참 쳐다봤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자기 쪽 길드로 돌아가 버렸다.

“그냥 둬도 되나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못 잡을 거야.”

확신이 가득 담긴 말.

그리고 그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이 되었다.

체력을 깎아놓는 데 성공은 했지만, 페이즈가 올라간 악마형 케르베로스는 정말 강했다.

단순히 휘두르는 한 방에 유저 대여섯이 죽음의 빛으로 사라져 버리는 어이없는 공격력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물약과 힐을 퍼부어도 기본 공격 배율에서 너무 차이가 나 피해가 극심하게 늘어났다.

어느 정도 맞받아칠 여력이 있어야 유지를 할 텐데 지금은 그것도 버거워 보였다.

광역기가 터질 때마다 한 방향에 있던 유저들이 싹 사라져 버릴 정도로.

그동안 악착같이 버티던 프로들도 난색을 보이면서 결국 손을 떼버렸다.

“자, 우리 시간이네.”

당연히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재중이 형이 일어났다.

“어차피 저 녀석 못 잡아.”

“역시 그런가요.”

한동안 전투를 지켜보면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저 녀석을 잡기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모든 찬스를 네게 몰아주마. 할 수 있지?”

재중이 형의 굳은 표정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의 손톱. 반드시 부숴 버려.”

그 말을 끝으로 전사 형과 재중이 형, 이쁜소녀가 먼저 앞장서서 나갔다.

챠밍과 막내별은 손에 힐을 잔뜩 걸어놓고 기다렸고 나르샤 누나는 챠밍과 막내별을 언제든 빼낼 수 있도록 옆에서 대기했다.

후.

방해도 없겠다.

이제 제대로 해볼까?

어차피 더 이상 숨길 생각도 없고.

【 트리플 캐스팅! 】

【 라이트 웨폰! 】

【 라이트닝 웨폰! 】

【 아쿠아 웨폰! 】

삼색의 빛이 검에 깃들자 주변에서 감탄이 이어졌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전사 형, 재중이 형, 이쁜소녀가 돌아가면서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상대하는데 연신 밀려나면서도 억지로 틈을 만들어주었다.

잠깐 녀석이 움찔하는 그 순간.

【 더블 크래쉬! 】

배율 두 배.

검에 깃든 잔상과 합쳐 무려 여섯 개의 빛이 머무르는 검투사 블레이드와 카스카라를 동시에 휘둘러 녀석이 내려치는 길고 검은 손톱을 그대로 강타했다.

까가강!

파가각!

카운터.

크리티컬.

내가 낼 수 있는 배율의 최대치가 터지면서 뭔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검은 손톱 한 곳이 깊게 갈라졌다.

필살기 급의 위력을 가진 공격을 단 한 곳에 집중하니까 생기는 현상.

그런 피해에 녀석이 날 보려고 하자 전사 형이 어글 스킬을 써서 녀석의 고개를 돌려놓았다.

전사 형의 체력이 바닥을 치면 챠밍과 막내별이 멱살을 잡아 살려내고 그래도 안 되면 재중이 형이 라이데인으로 녀석을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이쁜소녀도 죽기를 각오하고 어글을 끌었고.

나르샤 누나도 화살을 날려 시선을 방해했다.

이 모든 것이 오직 내가 최고의 일격을 날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 팀이 녀석의 광대한 공격력을 억지로 받아넘기는 동안 몇 번 더 새로운 조합으로 녀석의 손톱만을 노리고 내려쳤다.

그러자 어느 순간.

퍼걱!

툭!

녀석의 가장자리에 있던 검은 손톱 중 하나가 바닥에 툭 떨어져 내렸다.

『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검은 손날 / 제작 재료 』

더 없이 강한 아이템을 제작할 최고의 제작 재료가 그렇게 부위 파괴로 떨어지자 우리 팀의 눈빛이 화끈하게 살아났다.

그때, 이쁜소녀가 크게 외쳤다.

“오빠! 저놈 손톱 다 뽑아버려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