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414화 (407/1,404)

# 414

#414화 마음 가는 대로 (2)

게임 밖에서 메신저로 연락하는 거라 이름으로 연락이 갔다.

<은하> 인터뷰 벌써 끝났어요?

<승호> 응,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금방 끝났어.

<은하> 오빠, 근데 밖이에요? 메신저로 연락이 왔어요!

<승호> 인터뷰 끝나고 나왔어.

<은하> 혹시 어디 아파요? 아직 접속 시간 많이 남았는데…….

<승호> 아, 그런 건 아니고. 잠시 볼일이 있어서. 그보다 시간 되면 잠시 볼래?

<은하> 언제요?

<승호> 지금.

<은하> 네?

<승호> 지금 아니면 생각 못 할 것 같아서.

<은하> 으음, 네. 일단 나갈게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뭐라고 해요?

<승호> 스케줄 정도면 되지 않으려나?

<은하> 네, 알았어요.

연락을 마치고 VRS에서 나와서는 멍하게 천장을 바라봤다.

결국.

저질렀다.

이래도 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예전부터 그런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의 입장. 위치를 생각하면 내 마음 가는 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분명히 언젠가는 후회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집 밖을 나서자 곧 해가 지려는 듯 한쪽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지금 나서면 해가 완전히 넘어가기 전에는 도착하겠네.

문득 차고에 박혀 있는 그 녀석이 생각났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 좀 운전을 배워둘 걸 그랬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좋은 차가 있으면 뭐하나.

정작 필요할 때 써먹을 수가 없는데.

주인을 잘못 만나서 썩고 있는 녀석을 아쉬워하며 곧장 택시를 타 목적지로 향했다.

꼭 시간을 내서 운전을 배우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렇게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사이 점점 해는 저물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위로 오라 했던가?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주변보다 높은 언덕을 끼고 몇 개의 건물이 서 있었다.

그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한 건물이 눈에 띄었다.

오면 바로 알 수 있을 거라고 하더니.

조금 걸어 올라가 아기자기한 여러 소품으로 꾸며놓은 그 건물로 들어갔다.

“예약하셨습니까?”

입구에서부터 예약을 물어오는 종업원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간단한 안내를 해주었다.

그렇게 2층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가니 고풍스럽게 꾸며둔 개인 룸들이 보였다.

이런 곳을 잡은 이유가 이건가?

확실히 이렇게 해두면 누가 와 있는지 알 수 없겠네…….

그렇게 복도를 지나 미리 고지받은 방 번호로 가서 문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문이 열리면서 후드를 쓴 은하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리고 고개를 복도 좌우로 돌려 확인하고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곧장 내게 눈짓을 했다.

“오빠 얼른 들어와요.”

“아, 그래.”

무슨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난이도에 혀를 내둘렀다.

은하하고 만나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얼떨결에 은하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둘이 앉기 좋은 테이블과 함께 멀리 시내 풍경이 훤하게 보이는 테라스가 눈에 띄었다.

“여기 어때요?”

“생각보다 훨씬 좋네.”

순수한 감상.

좋다.

단순히 만나기에는 과도할 정도로.

막혀 있는 룸에 이런 테라스가 있다니 여기 굉장히 비싼 곳 같은데?

“좋죠?”

내가 마음에 들어 하자 은하가 바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해맑게 웃는 모습에 순간 숨이 덜컥했다.

게임 속에서 매일 보는 모습인데 왜 이러지?

그런 느낌을 겨우 억누르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문득 은하의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거 물어봐도 되려나…….

“그런데 이렇게 나와도 괜찮아?”

“네, 이제 다리 괜찮아요.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다행히 다리는 생각보다 좋아진 것 같았다.

그리고 분명 재활하는 동안에는 집에 있는다고 했지.

집에서 가까워서 그런지 부담 없이 나온 모양이다.

아마 다른 곳으로 갔다면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여기 아는 언니가 하는 가게에요.”

“아, 그래서 여기로 오자고 했구나?”

“네, 여기가 제일 마음이 편한걸요. 다른 사람 눈치 안 봐도 되고.”

그러면서 주변이 막힌 벽과 문을 가리켰다.

확실히 테라스와 문을 제외하고는 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보아하니 벽 자체가 방음도 잘 되는 것 같았고.

적어도 반대편 방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 방에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을 봐선 그건 확실했다.

거기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편하게 하기엔 이보다 좋은 곳이 없을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종업원?

그런데 지금 이렇게 둘이 앉아 있는 것을 보여줘도 괜찮은 건가?

자연스럽게 들어온 종업원 때문에 나는 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바라봤고, 그 여성도 물끄러미 나와 은하를 번갈아 바라봤다.

“어머?”

그 여성이 뭔가 물어보려고 하자 은하가 손가락을 입술을 막는 시늉을 해보였다.

“언니!”

“아! 알았어, 그럼 좋은 시간 보내렴! 호호!”

“언니! 주문은 받아야지!”

그러자 아차, 했다는 표정으로 나가려던 여성이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뭘 시켰는지 정신도 없이 막 시키고는 입꼬리를 잔뜩 올리며 나가는 여성을 멍하게 바라봤다.

“이거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내 말에 은하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친한 언니가 장난친 거예요. 괜찮아요.”

그 말에 겨우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나마 이런 곳이 있는 것이 다행이네.”

“정말요. 마음 편히 다닐 수 있는 곳이 생각보다 많진 않아요.”

그 말을 끝으로 둘 다 잠시 꿀 먹은 병아리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의 어색한 침묵 뒤.

“저기…….”

“오빠…….”

둘 다 동시에 말을 꺼냈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 갑자기 왜 이렇게 말하는 것이 힘들지.

왠지 은하도 얼굴이 빨개진 것 같기도 하고.

“먼저 해.”

“아뇨, 오빠 먼저 해요.”

“알았어. 그럼…….”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고는 말을 꺼내놓았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 말인데, 그 대전에서 있었던 일.”

“아, 네에…….”

내가 그 말을 꺼내자마자 은하가 잔뜩 기가 죽은 듯 어깨가 축 늘어졌다.

어, 왜?

저런 반응을…….

그리고 은하에게서 나온 의외의 말.

“그냥 그건 잊어주세요.”

오히려 내가 당황해서 물었다.

“왜?”

“그게, 그냥 저 혼자 실수한 거예요.”

은하가 실수했다는 말에 내가 사과부터 했다.

“미안.”

그런데 그때 은하의 눈가가 바르르 떨렸다.

마치 곧 울 것 같은 사람처럼.

순간 당황해서 바로 말이 튀어나왔다.

“아, 그게. 미안하다는 말이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고.”

“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은하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어렵사리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놓았다.

“나, 네… 가 좋다.”

“아!”

그러자 은하의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그대로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막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 흑… 나 혼자…… 그런… 흑….”

아,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여자가 눈앞에서 우는 것은 처음 봐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순간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은하를 그대로 끌어당겨 내 품에 안았다.

그렇게 흐느껴 우는 은하를 품안에 두자 점점 은하의 떨림이 사라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작고 부드러운.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부서질 것 같은 연약한 느낌에 정말 조심스럽게 안고만 있었다.

그리고 감미롭고 달콤한 향기가 은하에게서 흘러나왔다.

막상 안기는 안았는데 그때부터는 마치 돌부처라도 된 듯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가만히 안고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기만 했다.

몸 안쪽이 따스하다 못해 뜨거워지는 것 같이 달아오르자 겨우 고개를 내려 은하를 바라봤다.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은하를 보고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거 놓기는 싫은데…….

놓아야 하나?

어쩌지?

지금 놓으면 굉장히 어색할 것 같기도 하고…….

어쩌지?

어쩌나?

이성은 슬슬 놓아줘도 된다고 하는데 본능은 내 이성을 싸그리 무시하고 그대로 있었다.

뭐 딱히 본능에게 이기고 싶은 생각이 없기도 하고…….

때론 져줄 수도 있는…….

그때, 갑자기 문이 덜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리자 깜짝 놀란 모습을 한 예의 그 여인이 눈을 껌뻑거리면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망했…….

그리고 화들짝 놀란 은하가 내 가슴을 두 손으로 강하게 밀어버렸다.

컥!

너무 놀란 나머지 내 몸이 벽에 가서 내동댕이쳐질 때까지 정신이 나가 있었다.

은하도 혼이 반쯤 빠져서 그 여인을 보고는 막 횡설수설을 했다.

“아! 아니, 여기… 사람이… 아니, 그러니까!”

그 모습에 그 여인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음식과 음료를 내려놓고 다시 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돌아서서 입가에 씨익 웃는 표정을 짓고는 방문을 닫으면서 말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방 안에 적막감이 흘렀다.

그리고 은하가 절규했다.

“아! 언니! 아니야! 아니라니까아!”

“이미, 늦은 것 같은데…….”

벽에 부딪쳐 쓰러졌다가 일어나는 날 보더니 은하가 깜짝 놀라 물었다.

“괜찮아요?!”

“아,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었어.”

“미안해요.”

“살아 있으니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되고. 그런데 저 사람 정말 괜찮은 거야?”

가장 먼저 든 걱정.

난 괜찮지만 은하는 아니다.

소문 하나에도 삐걱거릴 수 있는 위치니까.

아무리 저쪽 세계에 무지하다고 해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예전에 재중이 형이 말한 은하는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계속 내 발목을 잡았었다.

그동안 내가 은하의 생각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계속 외면했던 이유이기도 하고.

나 하나 좋자고 은하의 미래를 힘들게 만들 순 없었다.

재중이 형은 계속 내게 신호를 줬었다.

생각을 잘하라고.

신중하라고.

장난스럽게 말할 때도 있었지만.

핵심은 항상 하나였다.

결론도 항상 하나였고.

그래서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은하가 한 행동이 내 생각을 모두 깨 놓아 버렸다.

은하가 저렇게까지 하는데?

정말 이대로 괜찮나?

애써 생각을 누르려고 했지만.

지금도 늦었지만 더 늦으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았다.

미련을 남겨두고 싶지도 않았고.

적어도.

내 마음에 비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서 은하와 함께 서 있었다.

그렇게 괜찮냐는 내 걱정 어린 말에 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언니는 괜찮아요. 우리 친언니하고 친구예요. 그리고 우리 멤버 중 다른 그룹 애랑 사귀는 애 있거든요. 그것도 다 알고도 아무 말 안 해요.”

“……그렇게 사귀어도 되는 거냐?”

“에, 어떻게 다들 사귀긴 사귀는 편이에요. 안 들키게? 잘?”

은하가 아까 울었던 그 사람이 맞는지 장난스러운 말투로 내게 말했다.

하아, 힘 빠지네.

순간 진이 빠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휴, 난 간이 작아서 이거 못 하겠다.”

“오빠, 사귄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저 차려고요?”

“아! 그런 말은 아니고. 응? 그런데 말이 이상하네. 누가 사귄다고?”

“저랑 오빠요.”

그 말에 손가락으로 나와 은하를 한 번씩 번갈아 가며 가리켰다.

“너랑 나?”

“네, 오빠하고 저요.”

그리고 은하가 당돌하게 쐐기를 박았다.

“오빠가 저 안았으니까 이제 책임져야죠. 오늘부터 우리 1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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